아무리 목놓아 불러도 메아리 없는 '부활의 노래'
  • 김지영 (young@sisapress.com)
  • 승인 2009.11.30 18: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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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순영 전 신동아그룹 회장, 여러 통로로 “DJ 정권에 빼앗긴 회사 되찾겠다” 주장…법조계·재계 반응은 ‘싸늘’ / 지난해 8·15 사면 복권됐으나 추징금 1천9백억원 못 갚고 있어…“여권에 최순영 재기 비호 세

ⓒ연합뉴스


‘비즈니스 프렌들리’를 표방하고 있는 이명박 정부가 석 달 후면 집권 3년차로 접어든다. 이 시점에 공교롭게도 ‘왕년에 잘나갔던’, 하지만 지금은 몰락한 유명 재벌 총수들이 다시 부쩍 목소리를 높이고 있어 관심을 끌고 있다. 

최순영 전 신동아그룹 회장을 비롯해 최원석 전 동아그룹 회장 등이 최근 언론 인터뷰 등을 통해 “DJ 정권 실세들은 굶주린 이리떼처럼 달려들어 20조원짜리 회사를 뜯어먹었다” “동아그룹은 김대중 정권의 ‘보이지 않는 손’에 의해 강탈당했다”라고 주장하고 나섰다. 여기에 더해 재계에서는 김우중 전 대우그룹 회장과 정태수 전 한보그룹 회장 등도 재기를 모색하고 있다는 관측까지 나돌고 있는 상황이다. 지난 10년 동안 김대중·노무현 정부 당시 침묵하며 ‘와신상담’했던 과거의 재벌들이 때를 기다렸다는 듯이 일제히 ‘입’을 열어 자신들의 억울함을 호소하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이들의 목소리는 메아리 없는 ‘부활의 노래’라는 지적을 받고 있다. 그들을 바라보는 세인들의 시선도 그리 곱지만은 않다. ‘컴백’을 꿈꾸는 이들 가운데서도 최순영 전 회장의 행보가 가장 주목된다. 언론뿐만 아니라 신앙 간증 등을 통해서 강하게 재기 의욕을 드러내고 있기 때문이다.

최 전 회장은 1999년 2월, 2억6천여 만 달러를 해외로 밀반출하고 계열사를 이용해 1조2천억원을 불법 대출받은 혐의로 구속되었다가 8개월 만인 1999년 10월에 보석으로 풀려났다. 그러나 그는 2005년 1월 다시 법정 구속되었다. 2006년 7월 법원은 최 전 회장에게 징역 5년에 추징금 1천5백74억원을 확정 판결했고, 같은 해 9월에 그는 건강 악화로 다시 병원으로 실려 갔다. 그리고 이명박 정부가 들어선 지난해 8·15 광복절 특사로 형 집행이 면제되었다.

대검찰청에 따르면, 11월 현재 최 전 회장은 2005년도의 추징금 1천5백74억원을 포함해 모두 1천9백63억원을 납부하지 못했다. 이는 23조원대에 달하는 김우중 전 대우그룹 회장에 이어 추징금 미납자 순위에서 2위를 차지하는 것이다.

그럼에도 그는 사면 복권이 이루어지자 굳게 닫았던 입을 열기 시작했다. 2002년 <신동아>와의 인터뷰 이후 7년여 만에 처음으로 <월간조선> 3월호에 얼굴을 드러냈다. 최 전 회장은 인터뷰를 갖고 “1992년과 1997년 대선 때 김대중 후보측에 선거 자금을 안 낸 기업으로 지목되면서 정치적 보복을 당한 것이다. 신동아 그룹 해체는 DJ 정권의 시나리오에 의해 실행된 것이다. 김대중 사람들은 나중에 내 회사를 통째로 가져갔다”라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그는 “회사 매각 처분이 잘못되었으니 조사해 달라고 수없이 이야기해도 마이동풍(馬耳東風)이었다. 지금이라도 조사해야 한다”라고 말했다. 

신동아그룹 계열사에 대한 최 전 회장의 애착은 상당히 강하다. 실제로도 여기저기서 기업을 되찾겠다는 의지를 공공연하게 밝히고 있다. 특히 개신교 장로인 그는 신앙 간증을 통해 자신의 ‘부활’ 의지를 강하게 드러내고 있다. 최 전 회장은 “회사를 되찾으려는 것도 내 자신을 위해서가 아니라 어려운 사람들을 돕고 하나님의 복음을 전하기 위해서다”라고 강조한다.

법조 당국, ‘유죄 판결’ 사안에 억울함 호소하는 것 못마땅해 해

최근만 해도 최 전 회장이 자신의 컴백 의지를 강하게 드러낸 일들이 여럿이다. 지난 8월14일 세종문화회관 세종홀에서 열린 보수 단체 행사 ‘대한민국사랑 국민운동연합 전국 대표자 대회’에는 4백여 명이 참석했는데, 이 자리에서 최 전 회장은 “10년 동안 고난 속에 살아온 것도 다 하나님의 은혜이다. DJ 정부가 아무런 부실이 없는 신동아그룹을 대선 자금을 한 푼도 주지 않았다는 이유로 공중분해했다”라고 주장했다.   

또한 지난 10월30일, 서울 강남에 있는 광림교회에서 열렸던 철야기도회에는 1천여 명의 교인이 참석했는데 여기서도 그는 한 시간 이상 신앙 간증을 하면서 “나는 집도 없이 양재동 횃불선교센터 숙소에서 살고 있다. DJ 정권이 정치 헌금을 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신동아그룹 계열사를 빼앗아 갔다”라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그동안 어쩔 수 없이 포기했으나 하나님께서 회사를 회복하라고 하셨다. 따라서 하나님의 재산을 찾아서 좋은 일에 쓰도록 할 테니, 반드시 찾을 수 있도록 여러분들이 기도하고 도와주기를 바란다”라고 호소했다. 동시에 미리 복사해 온 자신의 인터뷰가 실린 기사와 탄원서 등을 교인들에게 돌리기도 했다.

특히 최 전 회장은 대한생명(이하 대생)에 대한 애착이 강한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그를 바라보는 법조 당국의 시선은 싸늘하다. 법조 당국에서는 최 전 회장이 법원에서 ‘유죄’ 판결을 받았음에도 곳곳에서 억울함을 호소하는 것을 상당히 못마땅하게 여기고 있다. 법조계의 한 인사는 “최 전 회장은 대생을 되찾기 위해 금융감독위원회(금감위)와 대생 등을 상대로 민사 소송, 행정 소송, 헌법 소원 등 제반 소송을 제기했으나 거의 다 패소했다”라고 말했다.

민사 소송의 경우, 최 전 회장은 대생을 상대로 신주 발행 및 자본 감소 무효 확인 소송을 제기했으나, 2006년 9월 대법원에서 패소했다. 금감위를 상대로 부실 금융 기관 지정을 다투는 취지로 행정 소송도 제기했으나 2006년 2월 패소했고, 금감위 및 관리인의 권한 근거가 되는 법률 규정에 대한 헌법 소원까지 제기했으나, 이 역시 패소했다. 법원은 “1998년 말 신동아그룹은 최 전 회장의 불법 행위로 부실화된 상태였고, 대생의 국유화 과정에 큰 문제가 없었다”라는 점을 분명히 하고 있다. 그럼에도 최 전 회장이 “DJ 정권에 밉보여 뺏겼다”라며 마치 정치적인 이해관계에 의한 희생양인 것처럼 주장하고 있어 법조 당국이 강한 불만을 갖고 있다는 전언이다.

재계에서도 최 전 회장이 재기하려는 움직임을 곱지 않은 시각으로 바라보고 있다. 특히 최 전 회장이 연루된 형사 소송에서 모두 유죄 판결을 받았다는 점을 지적한다. 최 전 회장은 신동아그룹 계열사인 SDA(옛 신아원 종합무역상사)를 이용해 석유 정제 시설의 위장 무역을 통해 국내 은행으로부터 무역 대금을 사기로 취득했고, 이같은 위장 무역을 하면서 수입 대금을 한국은행 총재의 허가 없이 해외로 송금함으로써 재산을 해외로 도피시킨 혐의를 받았으며 법원은 이에 유죄 판결을 내렸다.

이와 함께 특정경제가중처벌법상 배임 혐의에서도 유죄 판결을 받았다. 외환위기 체제에서 금융 기관들이 대출금 상환을 요구하자 대생으로 하여금 대출금을 상환하기는커녕 운전 자금조차 없는 SDA 등 신동아그룹 11개 계열사에 1조2천8백9억원을 대출하게 했다. 또한, 1997년도에 대생의 누적 결손금이 이미 1조2천31억원에 달할 정도로 부실했는데도, 이사회 결의도 없이 자신이 이사장인 신동아학원과 기독교선교 횃불재단에 1백67억원을 기부하도록 했다. 뿐만 아니라, 1997년에 신동아건설의 누적 결손금이 2천8백17억원에 이를 정도로 부실했음에도 이사회 결의도 거치지 않고 한동대학교에 5억원을 기부하도록 했다.

특히 법원은 최 전 회장이 가공 인물을 만들어 그에게 대출해준 것처럼 꾸며 대생으로부터 8백80억원을 인출해 비자금을 조성한 뒤 주식 투자 등 개인 용도로 사용하고, 역외 펀드인 그랜드 밀레니엄 펀드를 조세 회피 지역인 케이먼 군도에 설립해 대생 자금 1억 달러를 투자하도록 함으로써 제기되었던 횡령 혐의에 대해서도 유죄 판결을 내렸다. 사실상 최 전 회장은 연루된 형사 소송에서 모두 유죄 판결을 받은 셈이다. 

부당 대출·횡령 등으로 얼룩진 ‘신동아그룹 사태’는 현재 진행형

▲ 1999년 11월 이형자씨가 옷 로비 의혹 사건과 관련해 최병모 특별검사 사무실로 조사받기 위해 출두하고 있다. ⓒ시사저널 임준선

뿐만 아니라, 최 전 회장은 신동아그룹 계열사에 대한 부당한 대출 행위와 횡령, 외화 밀반출 등으로 대생에 천문학적인 손해를 끼친 것으로 드러났다. 이에 당시 김대중 정부는 한화그룹이 대생을 인수하기 전인 2000년에 대생을 통해 최 전 회장에 대해 손해배상 청구 소송을 제기했다. 그리고 2005년 5월, 법원은 최 전 회장의 행위는 모두 위법하기 때문에 대생에 손해배상 책임이 있다고 인정된다고 판결했다. 손해액은 무려 1조6천5백여 억원에 달했지만 소멸 시효 등 여러 사정을 감안해서 최 전 회장에 대한 대생의 손해배상 청구 금액은 1천억원으로 판결났다. 예금보험공사가 홍콩에 은닉되어 있던 그의 재산을 찾아 36억원만 회수했을 뿐이다.

이밖에 최 전 회장이 1992년부터 1999년까지 대생 이사회의 사전 승인 없이 회사 자금 2백31억원을 신동아학원에 무단으로 기부한 것에 대해서도, 대생이 지난 2002년 10월 신동아학원에 대해 부당 이득 반환 청구 소송을 제기했으나, 현재까지 전혀 회수되지 않고 있다. 특히 신동아학원이 사학법인이어서 강제 집행도 불가능한 상태라고 한다.

최 전 회장은 이사회 승인 없이 회사 자금 2백14억원을 자신이 이사장으로 있던 횃불재단에 기부함으로써 대생은 횃불재단에 부당이득 반환 청구 소송을 제기해 승소했다. 현재까지 원금 2백14억원은 회수했으나 지연 이자는 1백33억원으로 조정하고 3년 동안 분할 상환하도록 했다. 이처럼 최 전 회장과 얽힌 ‘신동아그룹 사태’는 아직도 끝나지 않은 채 현재 진행형인 셈이다.

일각에서는 여권에서 최 전 회장의 부활을 비호하는 세력이 있다는 관측까지 나오고 있다. 재계의 한 인사는 “한나라당 중진 의원을 비롯해 몇몇 여권 인사들이 무슨 영문에서인지는 모르겠지만 최 전 회장이 재기하는 데 유리한 활동을 하고 있어서 주목된다”라고 말했다.

특히 한나라당 한 중진 의원의 부인은 최 전 회장의 손아래 동서인 하용조 목사가 담임목사로 있는 온누리교회의 신자인 것으로 알려졌다. 이같은 전반적인 내용에 대한 최 전 회장의 입장을 들으려 했으나, 최 전 회장측은 “최 전 회장의 건강 문제로 답변할 수 없는 상황이다”라는 입장을 밝혔다. 최순영 전 회장이 재기의 나래를 펴고 있는 것은 분명해 보인다. 하지만 그의 부활 몸짓을 바라보는 법조계와 재계 등의 시선이 싸늘한 것 역시 분명해 보인다.


▲ 최순영 전 신동아그룹 회장의 부인 이형자씨 소유의 집이 있는 서울 한남동 빌라. ⓒ시사저널 유장훈
최순영 전 신동아그룹 회장은 지난 2006년 법원으로부터 징역 5년에 추징금 1천5백75억원의 형을 선고받았으며, 이 추징금을 포함해 전체 1천9백63억원을 체납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하지만 최 전 회장은 주변에 “집과 가재도구까지 모두 경매 처분되어 현재는 빈털터리이다”라고 말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그는 <월간조선> 3월호에서 “나도 추징금 체납액을 내고 싶다. 하지만 방법이 없다. 내가 가진 게 아무것도 없다. 회사를 되찾으면 국가에 내야 할 추징금을 반드시 낼 것이다”라고 말했다.

<시사저널>은 2008년 1월, 최 전 회장의 부인 이형자씨가 ‘한국판 베버리힐즈’로 불리는 서울 한남동 유엔빌리지에 고급 빌라를 소유하고 있는 것으로 확인되었다고 보도한 바 있다.

그렇다면 최 전 회장이 재기를 노리고 있는 현재 시점에서 당시 빌라는 어떻게 되어 있을까. 등기부등본을 들여다보니, 여전히 이형자씨 소유로 되어 있다. 서울 용산구 한남동 15-12·14번지에 있는 지상 3층에 지하 4층짜리 빌라의 3층(83평)이 바로 이씨 명의로 등재된 곳이다. 이씨는 이 빌라를 건축했던 ㄴ건설로부터 2006년 1월에 35억원에 매입했고, 지난 2007년 3월부터 유 아무개씨에게 18억원에 전세를 준 상태이다. 이씨는 현재 서울 서초구 양재동 57-2번지에 위치한 신동아빌라에 거주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문제는 이형자씨가 소유한 한남동 빌라를 매입했던 자금의 출처가 어디냐는 점이다. 예전에 신동아그룹 사건 수사를 지휘했던 전직 검찰 간부는 최근 기자와 만나 “이형자씨가 교회 사업만 헌신했을 뿐 돈을 버는 등 사업을 한 적은 없다. 따라서 이씨 명의로 된 재산이 있다면 그것은 최 전 회장의 주머니에서 나왔을 가능성이 매우 크다”라고 말했다. 전 신동아그룹 관계자 역시 “화가 출신인 이씨는 돈을 버는 사업을 한 적이 없다”라고 말했다. 이에 이씨의 빌라 매입 자금 출처가 최 전 회장이 아니겠느냐는 의혹이 제기되고 있다.

물론, 이형자씨의 이 빌라가 ‘순수한’ 개인 재산이라면 법적으로는 문제 삼을 수 없다. 하지만 최 전 회장의 은닉 재산으로 밝혀질 경우에는 회수도 가능하다는 것이 검찰 관계자의 설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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