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용 불안 시대 직원들이 오래 다니는 기업은?
  • 김회권 (judge003@sisapress.com)
  • 승인 2009.12.01 17: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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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오정’ ‘삼팔선’이란 용어조차 옛말이 될 정도로 고용의 안정성이 점차 중요해지고 있다. 취업자들은 퇴직률이 낮으며, 보상도 적정하게 받고 오랫동안 근무할 수 있는 직장을 원한다. 대한민국에서 그런 곳은

 

ⓒ일러스트 이경국

 


45세 정년을 뜻하는 사오정은 이미 옛말이다. 고용 불안 시대이다. 38세를 뜻하는 삼팔선이 새로운 유행어로 등장한 지도 꽤 오래되었다. <시사저널>이 ‘매출액 5백대 기업들의 평균 근속 연수’를 조사한 결과에서도 이런 경향이 두드러졌다. 매출액 기준 5백대 기업 중 2008년 사업보고서를 통해 평균 근속 연수를 파악할 수 있었던 곳은 3백28곳이었다. 이들 기업의 평균 근속 연수는 9.77년으로 나타났다. 이제는 10년 정도도 한 회사에 머무르기 어려운 시대가 왔다. 잘리거나, 옮기거나 둘 중 하나이다.

 

 

기업들 가운데는 5~10년 정도의 평균 근속 연수를 보인 곳이 많았다. 근속 연수가 20년 이상인 곳은 2곳, 15~20년은 34곳, 10~15년은 1백16곳, 5~10년은 1백37곳, 0~5년은 39곳으로 나타났다. 여전히 직장 내에서 남성과 여성의 근속 연수 차이는 컸다. 남성의 평균 근속 연수는 10.48년이었지만, 여성이 회사에 머무를 수 있는 평균 기간은 6.05년으로 나타났다. 취업하면서 ‘이 회사에 들어간다면 평균적으로 얼마나 재직할 수 있을까’를 짐작해보지 않는 사람은 없다. 구직을 준비하거나 이직을 생각하는 사람들에게 요즘 최대 화두는 안정성이기 때문이다. 이규용 한국노동연구원 동향분석실장은 “요즘은 안정된 고용 관계에 관심이 많다. 회사에 들어갔을 때 퇴직률이 낮고 보상도 적정하게 받고 오랫동안 다닐 수 있다면 종업원 만족도가 높을 것이다”라고 말했다. 이규용 실장은 “기업을 근속 연수로만 평가할 수는 없다”라고 말했다. 맞는 말이다. 일단 기업의 내부 퇴사 연한이 길면 근속 연수가 길다. 게다가 오래된 기업일수록 근속 연수도 늘어난다. 흔히 미국의 노동 시장이 유연하다고 생각하지만, 실제 근속 연수를 조사한 바에 따르면 한국보다 미국의 근속 연수가 더 길다. 오래된 기업들이 많기 때문이다. 때로는 창업이 활발하게 일어나면 근속 연수는 짧아진다. 벤처붐이 일었던 2000년대 초반의 경우는 지금보다 근속 연수가 짧았다.

평균 근속 연수에 영향을 미치는 것은 장기 근속자가 얼마나 많은지 여부이다. 이직률도 중요하다. 이규용 실장은 “기업 내 내부 노동시장에서 승진이 체계적으로 이루어지고 장기 고용 관계가 성립되면 근속 연수는 길어진다고 볼 수 있다”라고 말했다. 같은 업종의 회사들을 비교하면서, A라는 회사가 다른 곳과 똑같이 채용하면서 상대적으로 이직률이 낮고 장기 근속자가 많아 정년까지 가는 직원이 많다면 그 회사는 직원 입장에서는 좋은 회사라고 볼 수 있다. 하지만 같은 업종이 아닌 이상 근속 연수만을 들여다보면서 좋다, 나쁘다를 평가하는 데는 무리가 있다. 그런데도 사람들은 고용 안정성에 여전히 목말라 한다. 지난 11월11일, 서울 구로구 환경미화원 공채 시험에 사람들이 몰려든 것이 이를 단적으로 증명한다. 대학원 석사 수료자까지 모여들며 사상 최고의 경쟁률을 기록했다. 8명을 뽑는데 몰려든 사람은 무려 2백78명. 이들이 환경미화원에 지원한 이유는 안정성 때문이다. 만 60세까지 정년이 보장되고 지방 공무원에 준하는 대우, 그리고 3천3백만원이라는 연봉이 사람들을 운집하게 했다. 기업들의 평균 근속 연수를 조사하는 것은 안정성이 높은 기업과 업종은 어디인지 짐작할 수 있고, 자신의 기대 근속 연수를 예상할 수 있다는 점에서 의미를 찾을 수 있다.

 

 

 

 

현대가 기업, 상위권에 많이 포진

매출액 5백대 기업 중 직원들의 평균 근속 연수가 가장 긴 곳은 스테인리스 강판 전문 제조 기업인 현대자동차그룹 계열의 비앤지스틸로 22.5년이었다. 평균 근속 연수 조사에서도 상위권을 휩쓴 곳은 제조 업체였다. 2위 휴비스(22년), 4위 카프로(19.2년), 5위 포스코(19.07년), 6위 현대중공업(18.4년), 7위 여천NCC(18.37년), 8위 현대로템(18.13년), 9위 대한유화공업(17.65년)이 모두 제조업 군에 속한다. 현대자동차그룹 계열사인 비앤지스틸과 현대로템이 상위권을 차지한 것이 이채롭다. 같은 현대가(家)인 현대중공업과 함께 범현대 기업이 세 곳이나 10위 안에 이름을 올렸다.

이름만 대면 알 만한 상위 30개 대기업의 평균 근속 연수는 12.73년으로 전체 평균보다 3년 정도 길었다. 대학생들이 가장 가고 싶어 하는 기업에서 매년 1위에 꼽히는 삼성전자의 근속 연수는 7.2년으로 짧은 편이었다. LG전자는 8.45년, SK텔레콤은 10.5년으로 30개 기업의 평균에 미치지 못했다. 근속 연수 상위 100개 기업을 들여다보자. 매출액을 기준으로 분포도를 보면 1~100위 41곳, 1백1~2백위 20곳, 2백1~3백위 17곳, 3백1~4백위 10곳, 4백1~5백위 12곳이 이름을 올렸다. 매출액이 상위권인 기업일수록 근속 연수 리스트에 이름을 많이 올렸다. 기업의 규모와 근속 연수에 어느 정도 상관 관계가 있음을 보여준다. 매출액이 큰 대기업의 근속 연수가 긴 것은 여러 각도로 볼 수 있다. 일단 오래된 기업이 많기 때문이다. 더불어 KT, 포스코 등 보수적인 인사 제도로 인해 직원들의 근속 연수가 긴 기업들이 상위권에 이름을 올렸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최근에는 이들 매출액 상위 기업의 근속 연수가 점점 길어지는 경향이 나타난다. 경기 불황으로 기업들이 신입사원의 채용 규모를 줄이고 있고, 직원들 역시 이직을 자제하고 있기 때문이다.

업종별로 보면 현대·기아자동차그룹 등 자동차업계의 평균 근속 연수가 14.64년으로 가장 길었다. 한국수력원자력발전 등 발전업이 13.24년으로 뒤를 이었다. 화학(12.46년), 제철·제강(12.39년), 조선(11.80년), 에너지(11.57년), 자동차 부품업체(11.25년), 금속(11.24년), 기계(11.04년) 등이 상대적으로 근속 연수가 긴 업종에 속했다. 반대로 유통(7.65년), 전기·전자(7.66년), 금융(8.33년) 등은 근속 연수가 짧았다. 여성의 비중이 높거나 개인 실적으로 철저히 평가받는 곳 그리고 이직이 잦은 업종은 근속 연수가 짧다고 풀이할 수 있다.

제조 업종은 근속 연수에서 절대적인 강세를 보인다. 이는 업종의 특성 때문이다. 일단 매출액이 높은 제조업체들은 대부분 오래된 기업이고 독점적인 지위에 있다. 안정된 시장을 보장받는 자동차 부품업체의 근속 연수도 길다. 그리고 연봉제보다는 호봉제를 적용받는 곳이 많다. 한 인사컨설턴트는 “제조업, 특히 현장 인력의 경우 최고의 역량은 ‘근면함’이다. 사무직은 성과를 잘 내야 하지만 제조업이나 현장 인력의 경우 근면함이 일을 잘하는 기준이 된다. 특히 현장 인력을 회사에서 쉽게 내보내지 않는 이유가 있다. 제조업은 오래 근무할수록 숙련도가 높아지기 때문에 일을 더 잘할 수밖에 없다. 회사 입장에서도 내보내는 것이 손해가 된다”라고 말했다. 자동차나 중공업 등 이른바 ‘헤비 인더스트리’로 가게 될 경우 연봉도 상당히 높은 편이라 근속 연수는 더욱 길어진다. 반면, 성과를 밑바탕으로 움직이는 증권 등 금융 업종은 근속 연수가 짧다. 이들 업종은 전통적으로 안정적인 고용 관계를 기초로 한 인사 제도를 시행하지 않는 곳이다.

 

ⓒ시사저널 유장훈

 

근속 연수는 연봉보다 업종과 더 밀접하게 관련

먹고사는 문제는 매우 중요하다. 높은 보상 수준은 근속 연수를 높이는 요인 중 하나이다. <시사저널>은 제1049호에 실린 커버스토리 ‘한국인 월급’에서 월 급여 랭킹 100위 기업을 적시한 바 있다. 이들 기업의 근속 연수를 알아보면 재직하는 기간은 연봉보다는 업종과 더욱 깊은 연관이 있음을 알 수 있다. 월 급여 순위 1위인 대우증권은 근속 연수에서는 2백3위에 올랐다. 급여 2위 현대증권 역시 근속 연수에서는 1백55위에 자리했다. 오히려 급여 16위인 여천NCC, 19위인 한국중부발전은 근속 연수에서 각각 7위와 30위를 차지했다. 같은 업종 내에서는 보상 수준이 근속 연수를 좌우하는 데 중요한 변수가 된다. 근속 연수 1위인 비앤지스틸의 오용국 인력운영팀장은 “우리의 연봉 수준도 제철·제강 업계 평균 수준 이상은 된다. 가이드라인이 있다면 무엇이든 그 이상은 해주어야 직원들이 만족한다”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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