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권 넘나든 곽영욱 ‘문어발 로비’
  • 정락인 (freedom@sisapress.com)
  • 승인 2009.12.15 17: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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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여정부 인사뿐 아니라 현 정권 유력 인사도 정황 포착돼…지연·학맥 얽힌 정·관계 인사들 이름 오르내려

▲ 수백억 원의 회사 공금을 횡령한 혐의로 구속 기소된 곽영욱 전 대한통운 사장(왼쪽). 곽 전 사장에게 돈을 받은 혐의를 받고 있는 한명숙 전 총리(오른쪽 사진 맨 왼쪽). ⓒ연합뉴스(왼쪽)/시사저널 박은숙(오른쪽)

‘곽영욱 리스트’는 진짜 있는 것일까. 곽영욱 전 대한통운 사장이 ‘판도라의 상자’가 되고 있다. 곽 전 사장에게서 거액을 건네받았다고 떠돌던 참여정부 인사 3인방(ㄱ·ㅈ·ㅎ 씨) 가운데 ㅎ씨가 한명숙 전 국무총리로 알려지면서 정치권이 초긴장 상태이다. <조선일보>는 지난 12월4일 ‘2007년 무렵 곽영욱 전 대한통운 사장이 한명숙 전 총리에게 수만 달러를 건넸다’라는 검찰발 기사를 보도했다. 실명 보도가 나가자 한 전 총리는 “곽 전 사장에게 1원도 받은 적이 없다”라며 법적 대응을 불사하겠다고 밝혔다.

그러나 곽 전 사장이 “총리 공관에서 5만 달러를 건넸다”라고 진술하는 등 구체적인 정황을 말하면서 새로운 양상으로 변했다. 한 전 총리는 검찰의 소환에 불응하며 “정치 공작에 맞서 싸우겠다”라고 선언했다. 한 전 총리와 검찰의 ‘진실 게임’은 머지않아 결말이 날 것으로 보인다. 결과에 따라 어느 한쪽은 큰 타격을 입는 것이 불가피한 상황이다.

정치권에서는 제3, 제4의 인물이 튀어나올 것에 주목하고 있다. 검찰은 곽 전 사장이 현 정권에서 장관을 지낸 이 아무개씨에게 로비를 한 정황을 포착하고 진위를 확인 중에 있다. 곽 전 사장의 문어발 로비가 참여정부 인사뿐만 아니라 현 정권에까지 깊숙이 뻗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곽 전 사장은 정치권과 거리를 좁히기 위해 안간힘을 썼다. 정치권과 줄을 대고 유명 인사들과 친분을 맺기 위해 노력했으며, 여기에는 지연과 학맥을 이용했다.

충남 금산에서 태어난 곽 전 사장은 충청권 인사들과는 ‘백소회’를 통해서 교류했고, 호남권은 전주고 출신 언론인 모임인 ‘전언회’를 통해 끈끈한 인맥을 쌓아갔다. 여기서 쌓은 인맥을 발판으로 정치권 등에 문어발 로비가 가능했던 것이다(<시사저널> 제1049호 참조).

당장 언론이 주목하는 인물은 이니셜로 표기되어 보도되고 있는 ‘ㄱ·ㅈ’ 씨이다. 두 사람은 참여정부 시절에 핵심 요직을 지냈다. 곽 전 사장과 전주고 동문이자 전언회 회원이다. 물론 양 진영에서는 “전혀 사실 무근”이라며 금품을 수수했다는 소문에 대해 억울해하고 있다.

곽 전 사장과 절친했던 정·관계 인사들 중에는 또 누가 있을까. 곽 전 사장의 지근 거리에서 근무했던 대한통운 인사들은 대표적인 인물로 김대중 정부 때 행정부의 요직에 있었던 ㅈ씨를 꼽는다. 그들은 ㅈ씨가 곽 전 사장과는 전주고 선후배 사이로 부부 동반으로 해외여행을 다닐 정도로 가깝게 지냈으며, 나중에 자치단체장 선거 등에 나선 ㅈ씨에게 곽 전 사장이 상당한 도움을 준 것으로 알고 있었다.

‘로비 리스트’ 존재 가능성은 희박

정치권에서는 역시 김대중 정부 때 요직을 지낸 ㅎ씨가 곽 전 사장과 유달리 절친했다고 한다. ㅎ씨는 전주 출신으로 전주고를 나오지는 않았지만, 서로 가깝게 지냈다고 한다.

곽 전 사장의 이력을 보면 눈에 띄는 것이 하나 있다. 2000년 8월에 ‘새천년민주당 총재’의 표창장을 받은 것이다. 보통 당 총재의 표창장은 ‘당에 기여한 사람’에 대해 당 지도부나 의원들이 추천한 관례로 볼 때 곽 전 사장이 일정 정도 금전적인 지원을 했을 것으로 추측된다. <시사저널>은 추천 인사가 누구인지를 추적해보았으나 알 수 없었다.

당시 여당 중진 의원의 보좌관을 지냈던 ㅅ씨는 “그때는 당 총재의 표창장이 남발되었다. 그렇다고 아무에게나 주는 것은 아니다. 대한통운 사장이라면 재정적으로 지원을 했다는 이유로 받지 않았을까 생각된다”라고 말했다.

곽 전 사장의 성격과 스타일은 조금 독특하다. 그의 지근 거리에 있었던 ㅇ씨는 곽 전 사장의 스타일을 이렇게 말한다. “유명 인사와 악수하고 명함만 교환해도 직원들한테는 ‘아주 가깝다’ ‘친하다’라고 떠벌렸다. 또, 해당 유명 인사가 아닌 그의 보좌·비서진과 만나도 그 인사를 만난 것처럼 말했다. 평소 허풍이 심해서 그의 말을 곧이곧대로 믿기는 어렵다”라고 했다.

이와 관련해 기자가 겪었던 일화가 있다. 지난 2002년 10월쯤에 있었던 일이다. 당시 대한통운 사장실에 갔더니, 곽사장이 누군가와 전화 통화를 하다가 화들짝 놀라는 것이었다. 나중에 기자인 것을 확인하고는 이내 안심하는 표정이었다. 그는 전화를 끊고 나서 방금 통화한 상대방과의 친분을 연신 자랑했다. 그가 친하다는 사람은 당시 정보 기관의 수장이었던 ㅅ씨였다.

곽사장이 기자를 보고 놀란 것은 기업을 출입하는 해당 기관의 직원에게 ㅅ씨와 친분을 자랑했다가 호되게 혼난 일이 있었는데, 그 직원과 기자를 잠시 혼동했기 때문이었다.

실제 곽 전 사장은 ㅅ씨와 얼마만큼 친분이 있었던 것일까. 이에 대해 ㅅ씨측은 “(곽 전 사장과) 안면은 있으나 친한 관계는 아닌 것으로 안다. (ㅅ씨가) 워낙 사람을 편하게 대하니까 그것을 친하다고 말하고 다녔을 수는 있다”라고 말했다.

곽 전 사장은 씀씀이가 컸던 것으로 보인다. 대한통운에 근무했던 ㅇ씨는 “(곽 전 사장은) 배포가 컸다. 꼭 어떤 대가가 따르지 않더라도 ‘봉투’를 내밀기도 했다. 인사 치레로 하는 경우도 있지만, 자기 과시욕도 있었던 것 같다. 그리고 사람에 대한 의심이 많다. 만약 누군가에게 검은 돈을 건넸다면 직원을 시키기보다는 직접 전달했을 가능성이 크다”라고 말했다.

곽 전 사장의 성격 등으로 미루어 볼 때 ‘로비 리스트’의 존재 가능성은 희박하다. 다만, 곽 전 사장의 ‘기억력’이 비상했다는 것으로 미루어 당시 상황을 정확하게 기억하고 있을 것으로 보인다. 곽 전 사장의 말 한마디에 정치권 인사들의 생사가 달려 있는 상황이다.


▲ 퇴임 후 참뜸 봉사를 하며 제2의 인생을 사는 김여환 전 대한통운 사장.
대한통운 전·현직 사장들이 불운을 겪고 있다. 수백억 원의 회사 공금을 횡령한 혐의로 구속된 이국동 사장(59)은 같은 혐의로 구속된 곽영욱 전 사장(69)의 후임이다. 곽 전 사장의 전임이던 김여환 전 사장(70)은 지난 1999년 5월8일 사장직에서 물러난 후 지금까지 8년 째 검찰청사와 법원을 오가며 지루한 법정 싸움을 벌이고 있다.

앞의 전·현직 사장은 ‘횡령’ 등의 범죄를 저지른 경우이지만 김 전 사장은 상황이 다르다.

지난 2000년 11월 동아건설 채권단은 동아건설의 워크아웃을 중단하고 부도 처리했다. 이때 동아건설에 지급 보증을 섰던 대한통운도 동반 부도 처리되고 법정 관리에 들어간다. 김 전 사장은 ‘부실 채무 기업의 경영자’라는 이유로 고발당해 검찰 수사를 받았고, 지금까지 재판을 받고 있다.

공교롭게도 대한통운의 전·현직 사장 세 명 모두 검찰 청사를 드나들며 조사를 받았고, 이 중 두 명은 구속되고 한 명은 재판이 진행 중이다. 김 전 사장은 퇴임 후 침뜸 봉사를 하며 제2의 인생을 살고 있다. 뜸과 침을 배운 후 매주 토요일에 몸이 불편한 노인들에게 무료 봉사를 하며 남은 여생을 보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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