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의실에서 다진 ‘인재 경영’ 사회 곳곳에서 영향력 분출
  • 이춘삼 | 편집위원 (sisa@sisapress.com)
  • 승인 2009.12.29 16: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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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울대 상대 건물 ⓒ시사저널 임준선

어느 대학을 막론하고 상대를 다닌 학생들이 선망하는 직업은 대개 고위 관료나 기업인일 것이다. 서울대 상대 출신 가운데도 관계 요직에 오른 인물이 셀 수 없이 많다.  박정희 정권 이래로 경제 개발이 국가의 주된 목표가 되면서 경제 관료들의 위상이 상대적으로 높아졌고 그 가운데에서 자연스럽게 권력의 핵심에 진입한 사람이 적지 않았다. 현 이명박 정부에서도 경제 관료 출신은 아니지만, 권력 실세로 불리는 이대통령의 친형 이상득 한나라당 의원과 정두언 의원, 이주호 교육과학가술부 1차관 등이 서울대 상대 출신이다. 서울대 총장 출신인 정운찬 국무총리(경제 24회)와 사공일 G20정상회의 준비위원장(상학 16회)도 대통령의 신임을 두텁게 받고 있다.

과거 경제학과·경영학과·무역학과·상학과 4개 과로 이루어졌던 서울대 상과대학은 몇 차례 개편 과정을 통해 상과대학이 없어지는 대신 경영대학이 별도로 독립하고 사회과학대에 경제학부가 소속되는 등 변화를 거쳤다. 그러나 지금도 경영대학과 경제학부 졸업생들은 예전의 뿌리를 찾아 상대 총동창회에 모인다.

지금은 ‘경영대학’이라는 단과대학으로 독립한 상대 경영학과 학생 가운데는, 선대에서 이루어놓은 기업을 이어받기 위해 진학하는 경우가 꽤 많았다. 고 김준성 이수그룹 명예회장의 막내아들인 김상범 이수화학 회장(48세)은 경영학과를 다녔고, 미국 미시간 대학에서 석·박사를 마친 후 대우 국제법무실, 이수화학·이수건설을 거치면서 경영 수업을 쌓았다. 맨손으로 광동제약을 일궈 우뚝 세운 최수부 회장의 막내아들인 최성원 광동제약 사장(40세)도 경영학과를 마치고 아버지 회사에 들어가 기획 파트와 영업을 두루 섭렵한 뒤에 사장 자리에 올랐다. 경기고-서울대 경영학과를 수학한 박용만 두산인프라코어 회장은 박두병 선대 회장의 5남이다.

경영학은 ‘사람을 다루는 방법’을 공부한다는 점에서 정치학과 맥을 같이한다고 볼 수 있다. 정치인 중에서는 이한구·김효석·임태희·진성호 의원 등이 경영학과를 다녔고, 관계에서는 임창열 전 경제부총리, 김범일 대구시장, 김상곤 경기도교육감, 김문수 경기도지사, 변재진 전 보건복지부장관, 진영곤 청와대 사회정책수석비서관이 눈에 띈다.

이석채 KT그룹 회장, 김재용 대우인터내셔널 대표이사, 양승석 현대자동차 사장, 김석수 동서식품 회장도 경영학과 출신이다.

요즘의 실세라고 할 만한 중심축 ‘3정(鄭)’에는 정운찬 총리와 정몽준 한나라당 대표가 들어 있다. ‘신경제 실세 3인방’ 가운데서는 사공일 G20정상회의 준비위원장이 탄탄한 위치를 굳혀 서울대 상대 출신들의 영향력을 대변해주고 있다.

경영학과나 상학과, 무역학과에서 비즈니스 현장과 관련이 깊은 공부가 이루어진다면 경제학과는 조금 다르다. 문자 그대로 ‘학문으로서 경제학을 연구하는’ 성격이 있다. 그래서 입시에서 커트라인이 가장 높은 학과로 꼽히기도 했다. 경제학과 출신의 학자들이 많은 것도 그런 데서 연유할 것이다. 이현재 전 서울대 총장, 박우희 세종대 총장, 엄영석 서울디지털대 재단 이사장, 안병직 서울대 명예교수, 박영철 고려대 국제대학원 석좌교수, 송병락 자유기업원 이사장, 이영선 한림대 총장, 좌승희 경기개발연구원장, 최종원 서울대 행정대학원장, 김명호 전 한국은행 총재, 신동규 전국은행연합회 회장 등이 대표적 인물이다.

정치권을 살펴보면 역대 국회마다 상대 출신만으로 원내교섭단체를 구성할 수 있을 정도의 숫자(20명)가 여의도에 진출하고 있다. 18대 국회에서도 박종근·홍재형·이상득·강봉균·이한구 의원 등 다선 의원을 앞장세우고 김효석·이종구 의원과 정몽준 한나라당 대표가 상과대학의 존재를 부각시켰다.

정·관·재계뿐 아니라 다양한 분야에 두루 진출해 맹활약

관계에서도 상대 출신들이 요직에 다수 진출해 있다. 총리·장관을 지낸 전직들이 많지만, 현직에서도 정운찬 국무총리를 비롯해 권태신 국무총리실장, 차기 대권 주자로 꼽히는 김문수 경기도지사, 김성환 청와대 외교안보수석비서관, 박재완 청와대 국정기획수석비서관, 허경욱 기획재정부 1차관, 김대기 문화체육관광부 2차관, 진영곤 청와대 사회정책수석비서관, 이용걸 기획재정부 2차관, 임태희 노동부장관, 이주호 교육과학기술부 1차관 등 쟁쟁한 인물들이 즐비하다. 기획재정부의 경우에는 허경욱 1차관과 이용걸 2차관이 버팀목이 되어주는 가운데 2백명에 가까운 동문들이 모여 있어 눈길을 끈다. 지식경제부에는 김경식 기획조정실장과 안현호 산업경제실장, 김정관 에너지자원실장을 포함해 87명이 재직 중이다. 국세청 내에는 송광조 본청 조사국장과 임성균 광주지방국세청장을 비롯해 50명이 넘는 인원이 있고, ‘기업 검찰’이라고 불리는 공정거래위원회에는 손인옥 부위원장과 주순식 상임위원, 박상룡 사무처장 등 35명가량이 있다. 서울대 상대 출신들의 금융계 인맥 또한 탄탄하다. 한국은행에는 이성태 총재를 필두로 3백명에 육박하는 동문들이 세를 과시하고 있고 한국산업은행에는 김영기 수석부총재와 1백40여 명의 동문이 있으며, 각종 금융 기관을 망라하면 그 숫자는 엄청나게 불어난다. 이 밖에 금융위원회에도 50여 명, 금융감독원에도 1백20명이 포진해 있다.

사법부 내 상대 출신으로는 성기문 서울고법 부장판사를 비롯한 80여 명이 있고, 검찰 쪽에서는 고위직에는 드물지만 평검사급 55명이 활약 중이다. 서울대 상대 출신으로 외교관이 된 경우도 많다. 한덕수 주미 대사(경제 25)를 필두로 강병일 벤쿠버 총영사(상학 26), 김대식 브루나이 대사(경영 28), 김영길 전 베네주엘라 대사(경제 22), 김중근 싱가포르 대사(무역 29), 박재현 라오스 대사(경영 31), 정해문 태국 대사(무역 30), 조환복 멕시코 대사(무역 29), 조희용 스웨덴 대사(경제 33), 최중경 필리핀 대사(경영 33)가 외교 일선에서 동분서주하고 있다.

경제학과를 중심으로 한 학계 인물들은 수준이나 숫자 면에서 가히 압도적이라 할 만하다. 상대 출신 서울대 전·현직 교수만 해도 1백20명에 이른다. 변형윤·조순·이현재·박우희·안병직·곽수일·송병락·김인준 교수 등 많은 석학을 배출했다. 상대 총동창회가 동문들이 재직하는 것으로 파악하고 있는 대학만도 서울대, 연세대, 고려대를 비롯해 전국 80개 대학이 넘을 정도이고 이들 대학 강단에 서는 동문 교수의 숫자는 무려 1천4백여 명에 달한다.

공인회계사 세계는 서울대 상대 출신들의 독무대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주요 회계법인 별로 보면 삼일회계법인에는 총 2백95명이 몸담고 있으며, 삼정회계법인에 87명, 딜로이트 안진회계법인에 65명이 근무 중이다.

한때는 일본 도쿄 대학의 영향을 받아 젊은 학생들이 마르크스 경제학에 심취하는 경향이 있었다. 김수행 성공회대 석좌교수(경제 19)는 국내 마르크스 경제학 연구의 대부로 꼽힌다. 자본주의 주류 경제학이 아닌 마르크스 경제학을 평생토록 천착한 학자이다. 

<귀천(歸天)>으로 유명한 고 천상병 시인도 서울대 경제학과 9회 졸업생이다. 천시인은 19편의 논문·저서와 74편의 시를 발표하면서 많은 사람으로부터 연민이 서린 사랑을 받았다. 동백림 사건에 연루되어 전기 고문을 받는 고초를 겪었고, 1970년 그가 실종되었을 때 친구들이 유고 시집으로 <새>를 출간했으나, 이듬해 서울시립정신병원에 생존해 있음이 밝혀졌다. 돋보기 살 돈 2만원이 없어 지인에게 편지로 애걸해야 했으면서도 막걸리를 마시면서 ‘나는 세계에서 가장 행복한 사나이’라고 자족했던 그는, 1993년 63세를 일기로 세상을 떠났다. 그런 천시인에게는 생전보다 사후에 팬이 늘어났다. 의정부에 있는 천시인의 묘소에는 지금도, 떡이 굳는 날이 없고 꽃이 시드는 날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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