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량 은퇴’ 쇼크 시대 노후 돈방석을 챙겨라
  • 김진령 (jy@sisapress.com)
  • 승인 2010.02.09 16: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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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이비붐 세대인 1955~63년생이 정년 퇴직하기 시작하면서 이들의 노후가 사회 문제로 떠올랐다. 평균 수명 연장으로 늘어난 여생을 즐겁게 보내기 위해 필요한 실탄은 ‘돈’이다. 이 노후 자금을 충분히 모으고 관리하며 당당하게 사는 길은 무엇일까.

은퇴 쇼크가 드디어 우리나라에도 상륙했다. 한국전쟁이 끝난 뒤인 1955년부터 본격적인 산아 제한이 시작되기 전인 1963년까지 태어난 베이비붐 세대는 총 7백14만명으로 우리나라 인구의 15%를 차지한다. 이들 중 1955년생이 올해 처음으로 정년(55세)을 맞이하게 된다.

남의 나라 이야기로만 듣던 대규모 은퇴가 일어나는 첫 해가 바로 올해이다. 이들 베이비부머의 은퇴를 기점으로 해 우리나라에서도 근로자의 은퇴와 노후 문제가 본격적으로 주목되기 시작했다.

고용 시장에서는 대규모의 노동력 은퇴로 구멍이 생기기 시작했다는 것이 쇼크이다. 은퇴 당사자 입장에서는 집 한 채 외에는 별다른 자산이 없는 상황에서 갑자기 고정 수입이 끊기는 것이 쇼크이다. 전문가들은 베이비붐 세대의 집단 은퇴가 외환위기 때의 구조조정 붐과는 비교할 수 없는 큰 변화와 위기를 불러올 것이라는 지적이 많다. 소득 규모가 줄어든 대규모 장년 세대의 등장은 소비 성향의 약화로 내수 침체, 부동산 침체로 이어지며 경제에 악영향을 끼치기 때문이다. 

우리 사회의 선행지표로 일컬어지는 이웃 일본에서도 1947년부터 1949년까지 베이비붐 시기에 태어나 일본의 고도 성장을 주도한 단카이(團塊) 세대가 2007년부터 은퇴를 시작했다. 실버 계층을 대상으로 한 금융업과 소비재 산업에 대한 연구가 붐을 이루기도 했지만, 1990년대 이후 긴 침체기에 들어선 일본 경제에 부담을 주는 측면이 큰 것으로 평가되고 있다.

18세 이상 가구의 25%, 노후 준비 전혀 안 돼

▲ 각 기업체의 본사 건물이 밀집해 있는 광화문 거리에서 직장인들이 걸어가고 있다. ⓒ시사저널 박은숙
우리나라의 경우 일본보다 준비가 훨씬 덜 되어 있다는 점에서 걱정이 더 크다. 이런 상황에서 빠르게 늘어나고 있는 평균 수명은 축복이 아니라 짐이다. 2008년 우리나라 국민의 평균 수명은 80세를 넘었다. 지금 일터를 떠나는 50대 초·중반의 숙련된 노동자들은 앞으로 적어도 20년 이상은 소비를 계속하며 살아야 한다. 하지만 현실은 이들을 위한 일자리도 턱없이 부족하고, 은퇴 세대가 마련해놓은 돈도 초라하기만 하다. 

자산가를 대상으로 금융 서비스를 제공하는 우리은행 투체어스 강남센터의 박성안 센터장은 “최근에는 기업 CEO나 대기업 임원급 고객도 은퇴 뒤를 고민하면서 은퇴 플랜에 대해 체계적으로 알려달라는 요구가 많아지고 있다”라고 전했다. 은퇴 후에 줄어들 수입과 유동성에 대한 고민이 비교적 부유한 계층에서도 마찬가지라는 이야기이다.  

2009년 통계청이 실시한 사회 조사 결과에 의하면 18세 이상 가구의 25%가 노후를 위한 준비를 전혀 하고 있지 않은 것으로 나타났다. 노후 대비 자산의 대부분이 부동산으로 구성되어 있는 것도 문제이다. 미래에셋 퇴직연금연구소의 자료에 따르면 50~70대 대다수가 은퇴 자산으로 6억원 이상을 원했지만 대부분이 부동산을 포함해 4억원대의 자산만 보유하고 있을 뿐이다. 게다가 부동산을 제외하면 2억원대로 은퇴 전 생활 수준을 유지하기에는 턱없이 부족한 자산을 보유하고 있다.

게다가 부동산 자산은 임대 소득의 변동성이 크다. 우리나라의 인구 증가세가 정체를 보이고 있다는 점에서 주택 수요가 이미 정점을 찍었다는 연구 결과가 잇따라 나오고 있다. 이는 부동산 자산의 수익성이 향후 은행권 금융 상품보다 나을 게 없을 것이라는 의미이다.

물론 그동안 정부가 약속한 ‘복지 국가’의 청사진만 믿는다면 국민연금을 통해 은퇴 직전 소득의 50%를 충당할 수 있어야 한다. 이를 소득 대체율이라고 하는데 국민연금의 소득 대체율 50%는 40년간 연금을 납부한 경우이다. 그러나 우리나라 근로자들의 평균 퇴직 연령이 53세 전후임을 감안하면 40년간 연금을 납부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대부분 20년에서 25년 정도의 납부 기간을 가정하면 이 비율은 20%대로 낮아진다. 최근 연구 결과에 따르면 1990년 이후 국민연금에 가입한 세대는 생애 소득 대체율이 27.2% 수준으로 추산된다고 한다. 국민연금을 받는다고 해도 은퇴 이후에 곧바로 받을 수 있는 것이 아니다. 현재는 60세부터 받을 수 있고, 1953년생부터는 지속적으로 수급 연령이 늦추어지게 된다.

“지금 당장 내가 어떤 상태인지부터 파악하라”

때문에 최근에는 개인연금에 가입하는 경우가 많다. 나라에서도 개인연금 불입분에 대해 세제 혜택을 주는 등 가입을 유도하고 있다. 국민연금과 퇴직연금, 개인연금을 더해 ‘3층 보장 제도’라는 말이 나오고 있다. 3층 보장 제도의 핵심은 국민들이 스스로 근로 활동 기간 동안 퇴직금을 쌓아놓고 그래도 모자라는 금액은 개인연금을 통해 알아서 준비하라는 것이다.

‘3층 보장 제도’라는 개념은 위기에 처한 각국의 공적 연금 문제의 대안으로 1994년 세계은행의 보고서 ‘고령화 사회의 위기 탈출(Averting the Old Age Crisis)’에서 본격화되었다. 사회 복지 제도의 도입이 빨랐던 선진국에서도 국민연금 같은 공적 연금이 가입자의 은퇴 뒤 생활을 책임지기에는 부족하다는 것을 자인한 것이다.

우리나라는 선진국보다 더 취약하다. 3층 보장 수단 가운데 국민연금을 빼고 퇴직연금이나 개인연금이 민간에 넘겨졌지만 아직 도입 초기이다. OECD(경제협력개발기구) 자료에 의하면 우리나라의 3층 보장 전체를 통한 소득 대체율은 약 42.1%인 것으로 나타났다. 은퇴 전 100만원을 받았던 사람이 은퇴를 하면 42만원을 받는다는 이야기이다. 국민연금에 퇴직연금과 개인연금을 합해도 원하는 소득 대체율 70% 수준에서 약 30%가 모자라는 것이다. OECD 평균은 이보다 훨씬 높은 68.4%이다. 90.2%를 기록하고 있는 아이슬란드나 88.3%에 달하는 네덜란드, 78.8% 수준인 미국 등과 차이가 크다.

모든 근로자는 잠재적인 은퇴자이다. 국민연금에 20년 이상의 세월을 맡기기에는 턱없이 부족하다는 점은 자명해졌다. 3층 보장을 한다고 해도 부족하다. OECD 통계에 따르면 2005년을 기준으로 66세 이상 고령 인구 가운데 두 명 중 한 명은 빈곤층으로 나타났다. 

이 현실을 외면하면 불안을 덜 수 있을까? 우리은행의 박성안 센터장은 “지금 당장 내가 어떤 상태인지부터 파악하라”라고 조언했다. 막연하게 자신의 재무 상태를 짐작하지 말고 구체적으로 재산은 얼마이고, 수입과 지출은 얼마인지, 예·적금은 얼마인지, 부채는 얼마인지를 적시하고 매달의 재무 상태를 확인하는 것이 좋다는 것이다. 그래야 이런 상태로 10년 뒤, 20년 뒤에 내가 어떤 모습으로 미래를 맞을지 가늠할 수 있고, 만약 비관적이라면 어디를 어떻게 손보아야 할지 구체화할 수 있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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