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난에 허덕이는 북한 “6자회담 조기 참여 불가피”
  • 고유환 | 동국대 북한학과 교수 (sisa@sisapress.com)
  • 승인 2010.03.09 21: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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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북 제재 해제’ 앞당기려 3~4월께 회담 희망할 수도…미국·중국도 회담 재개 위해 적극 나서

 

▲ 지난 2월8일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이 함흥시에서 왕자루이 중국 공산당 대외연락부장(맨 왼쪽)을 만나고 있다. ⓒ연합뉴스


1년4개월여 동안 중단된 6자회담 재개를 위한 관련 당사국들의 움직임이 빨라지고 있다. 정부 고위 당국자는 지난 2월27일 6자회담 재개 시기와 관련해 “최근의 정황 증거로 볼 때 조만간 6자회담이 재개될 가능성이 있다. 시기로 본다면 3월이나 4월 정도로 얘기할 수 있을 것 같다”라고 말했다. 같은 날 아시아를 순방 중이던 스티븐 보즈워스 미국 대북정책 특별대표도 6자회담이 ‘상당히 빨리(fairly soon)’ 재개되기를 기대한다고 밝혔다.

조만간 6자회담의 계기를 살려내지 못하면 6자회담 무용론이 제기될 수 있고, 또한 향후 북핵 해결의 새로운 틀을 마련하는 데 많은 시간과 노력이 필요하다는 점에서 관련 당사국 모두 6자회담을 조속히 재개해야 한다는 데는 동의하고 있다. 하지만 북한이 6자회담 복귀의 전제 조건으로 대북 제재 해제와 평화협정 체결을 일관되게 주장하고 있어, 6자회담 재개로 이어지기까지는 관련 당사국들의 외교적 노력이 좀 더 필요할 듯하다. 비핵화, 대북 제재 해제, 평화협정 등의 문제를 어떤 순서로 해결할 것인지 등에 대해서 어느 정도 협의가 이루어져야 6자회담이 재개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북핵 문제 해결 방안으로 ‘그랜드 바겐’(grand bargain)을 제시한 한국 정부는 북핵 문제와 관련한 모든 의제를 일괄 타결하자는 입장을 견지하고, 북한이 조속히 6자회담에 복귀하기를 기대하고 있다. 이명박 대통령은 이번 3·1절 기념사에서, 북한이 우리를 진정한 대화의 상대로 인정하고 그랜드 바겐 등 여러 현안에 대해 진지한 대화를 가질 것을 촉구했다.

그동안 북한은 한국과 미국의 6자회담을 통한 ‘핵문제 우선 해결론’에 맞서 로켓 발사와 핵실험을 강행하며 6자회담에 참가하지 않겠다고 버텼지만, 국제 사회의 제재와 압력을 더 이상 견뎌내기 어려운 궁지에 내몰리고 있다. 북한은 지난해 9월3일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의장에게 보낸 편지에서 “6자회담 구도를 반대한 것이지, 조선반도 비핵화와 세계의 비핵화 그 자체를 부정한 적은 없다”라고 밝혔다. 북한도 현실적으로 6자의 틀을 깨기는 쉽지 않다는 판단 아래 그 틀 내에서 북·미 양자 대화를 지속하면서 평화협정 체결 공세를 강화하는 전략을 펼치고 있다. 북한은 근본적으로 핵문제를 북·미 적대 관계의 산물로 규정하고 있다. 때문에 북핵 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하는 열쇠는 북·미 간 적대 관계 해소를 위한 평화협정 체결에 있다고 주장하는 것이다. 지난해 12월 보즈워스 특별대표의 평양 방문 당시 북한과 미국은 한반도 평화 체제 구축을 위한 4자회담 개최에 의견 접근을 본 것으로 알려졌다. 2005년 9·19 공동성명에서 합의한 대로 6자회담 틀 내의 별도의 포럼에서 4자회담을 열고, 이를 통해 한국전쟁 종식과 함께 평화 체제(새로운 평화 보장 체계)를 구축할 것을 합의한 것으로 알려진다.

‘김정일 3월 방중’ 실현되면 논의 급진전될 가능성

▲ 2월26일 방미 중인 유명환 외교통상부장관이 힐러리 클린턴 미국 국무장관과 환담하고 있다. ⓒ연합뉴스

최근 6자회담 재개를 위해 가장 적극적으로 움직이는 나라는 중국이다. 지난 2월8일 왕자루이 중국 공산당 대외연락부장이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을 만났다. 그에 따른 추가 협의를 위해 북한 김계관 외무성 부상이 중국을 방문하고 돌아갔다. 6자회담 의장국인 중국으로서는 6자회담의 실패는 곧 ‘중국 외교의 실패’로 인식될 수 있다. 또한, 안보적으로도 북한의 대량살상무기(WMD) 개발에 따른 ‘북한 위협론’이 중국 안보를 위협하는 핵개발 경쟁과 미사일 방어 체제 구축의 빌미로 활용되는 데 부담을 느낄 수밖에 없다. 특히 대북 제재에 따른 북한 체제의 위기 심화와 급변 사태론의 재부각은 중국으로서도 방치하기 어려운 문제이다. 따라서 중국은 대북 지원을 통해 영향력 확대를 모색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중국의 정치·경제적 지원이 절실한 북한의 입장, 여기에 지속적인 경제 성장을 위한 동북아 지역 안정 필요성이 강조되는 중국의 입장이 서로 맞물리며 북·중 관계는 전통적 우호 협력 관계를 복원하는 수준으로 긴밀해지고 있다. 김정일 위원장의 3월 방중설이 현실화된다면, 북한은 중국에 6자회담 복귀라는 선물을 주고 중국의 대규모 경제 지원을 챙기려 할지도 모른다.  

최근 중국이 6자회담을 재개하기 위해 ‘북·미 대화→6자 예비회담→6자회담 개최’로 이어지는 3단계 방안을, 미국과 일본 등 6자회담 참가국들에게 타진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진다. 중국의 우다웨이 한반도 사무 특별대표가 중국을 방문한 보즈워스 특별대표 및 한국의 위성락 외교통상부 한반도평화교섭본부장을 만난 자리에서 이같은 방안을 제시했던 것으로 알려진다. 왕자루이 부장의 방북 당시 김정일 위원장은 “한반도 비핵화를 실현하겠다”라는 북한의 일관된 입장을 강조하면서, “6자회담을 재개하려는 관련 당사국들의 진정성이 매우 중요하다”라고 밝혔다. 김위원장이 진정성을 언급한 것은 대북 제재 해제와 평화협정 체결에 대한 관련 당사국들의 진정성이 확인되면 6자회담에 복귀하겠다는 뜻으로 해석될 수 있다.

북한이 연초부터 바쁜 외교 행보를 보이는 것은, 지난해 로켓 발사와 핵실험 이후 유엔 차원의 대북 제재가 본격화하면서 경제난이 가중되고 있기 때문인 것으로 분석된다. 지난 2년 동안 남측은 정부 차원의 대북 지원을 대부분 중단했다. 식량난의 가중, 제재에 따른 외화 부족, 화폐 개혁에 따른 혼란 등으로 북한의 경제 사정은 현재 매우 심각한 상황이다. 이러한 경제적 어려움을 완화하기 위해서는 중국의 도움과 남북 정상회담 추진 및 6자회담 복귀 이외에 다른 대안은 없다.

평화협정 체결과 대북 제재 해제를 위해서는 결국 미국의 정책적 결단이 중요하다. 미국 오바마 행정부는 개입과 제재를 병행하는 정책을 통해서 국제 공조 속에 북한의 비핵화를 압박하고 있다. 북한의 전통적 동맹국인 중국과 러시아마저 동참하고 있는 대북 제재를 풀기 위해서는 북한이 6자회담에 복귀해 비핵화 합의를 이행하는 과정이 필요하다. 4월 핵안보 정상회의와 5월 핵확산방지조약(NPT) 평가회의를 앞두고 미국의 리더십과 체면을 세워주어야 제재 해제와 평화협정 체결 협의라는 과실을 챙길 수 있다는 점에서 북한은 빠르면 3월, 늦어도 4월 이전에는 6자회담 복귀가 불가피할 전망이다. 핵무기 없는 세상을 만들겠다는 ‘오바마 구상’과 한반도 비핵화에 관한 ‘김일성 유훈’ 사이에 대타협이 이루어질 기회의 문이 열리기 위해서는, 우선 북한이 6자회담에 복귀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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