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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명 경영’ 보일 줄 알았는데 덩치 커진 ‘오너’에 가렸다

국내 대기업 집단 주력 계열사의 주총 안건 분석 / 대주주 지배 체제 강화하는 흐름 보여

이은지 ㅣ lej81@sisapress.com | 승인 2010.03.23(Tue) 15:10: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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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태원 SK 회장이 올해 열린 SK그룹 신년 교례회에서 신년사를 하고 있다.
ⓒ시사저널 사진 자료


국내 대기업 집단의 경영 지배 구조가 후진성을 면치 못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국내 대기업 집단 주력 계열사 30곳의 주주총회 안건을 분석해 보면, 오너 지배 체제가 공고해지고 ‘경영 투명성’을 높이는 책무를 맡은 사외이사의 수는 줄어드는 추세가 지배적이었다. 이지수 좋은기업지배구조연구소 연구위원은 “지난해 국내 대기업 집단의 경영 지배 구조를 살펴보면, 대주주 지배 체제를 강화하는 흐름이 뚜렷하다”라고 말했다.

대주주 권한 강화 측면에서 가장 주목되는 대기업 집단은 SK그룹이다. 최태원 SK그룹 회장은 올해 주주총회에서 SK㈜와 SK에너지 대표이사에 이어 SK C&C 등기이사에 재임되었다. 최회장은 SK C&C 지분 44.5%를 가지고 있다. SK C&C는 SK㈜의 지분 31%를 보유하고 있어 SK그룹 지주사라고 해도 지나치지 않는다. 최회장은 지주사 사내이사로 또 나서면서 오너 경영 체제를 확고히 한 것이다. 그러다 보니 최회장이 개인 회사 격인 SK C&C로 SK그룹을 장악하려 한다는 비판이 나오고 있다. 경제개혁연대는 지난해 11월 논평을 통해 ‘SK C&C가 SK텔레콤과 거래하면서 무한정 수익을 편취하는 사업 구조를 형성하고 있으나 SK그룹 자회사가 아니기 때문에 그 이익은 최회장 개인의 몫으로 돌아간다. 최회장은 이에 대한 해답을 내놓고 있지 않다’라고 비판했다. 이에 대해 SK그룹은 책임 경영을 하겠다는 취지로 보아야 한다는 입장이다. 하석 SK 브랜드관리실부장은 “SK C&C 사내이사로 활동한다는 것은 경영 성과에 대해 책임을 지겠다는 의미가 있다. 자회사로 편입하는 문제는 경영진에서 고민하고 있지만 단기간에는 이루어지기가 어려울 것이다”라고 답했다.

최회장은 조기행 전 SK그룹 구조조정본부 재무담당 상무를 SK텔레콤 사내이사로 올렸다. 조기행 전 상무는 지난 2003년 최회장과 함께 부당 주식 거래 혐의로 유죄 판결을 받은 인물이다. 이지수 좋은기업지배구조연구소 연구위원은 “조 전 상무의 업무 능력이 탁월하면 집행 임원으로 앉혀도 충분하다. 그런데 이사회 구성원인 사내이사로 선임했다는 것은 회사를 장악하겠다는 의도가 있는 것으로 보인다”라고 말했다. 

최은영 한진해운홀딩스 회장 역시 이번 주총을 통해 지배 체제를 공고히 하려 한 것으로 해석된다. 그는 한진해운홀딩스 특수관계인인 양현재단의 김찬길 이사를 사외이사로 선임했다. 최회장은 양현재단을 통해 한진해운을 지배하고 있다. 지난 2006년 남편 고 조수호 한진해운 회장이 타계하자 최회장은 한진해운 자사주와 조회장의 지분을 합쳐 4.56%를 양현재단에 양도했다. 재단에 증여할 경우 증여세가 면제될 뿐 아니라 이사회 의결권도 가질 수 있다는 관련 법규를 교묘하게 활용했다. 당시 적대적 합병·매수(M&A) 시도에 시달리던 최은영 회장에게는 한 주가 아쉬운 상황이었다. 지난해 12월에도 최회장은 한진해운 자사주를 사모펀드에 매각했다. 이와 함께 사모펀드가 매입한 지분은 한진해운 자회사인 사이버로지텍이 4년 뒤 매입할 수 있다는 계약을 체결했다. 최회장은 의결권이 없는 자사주를 우호 세력인 사모펀드에 파는 방식으로 우호 지분을 늘린 것이다. 이로써 최회장은 자신과 자녀가 보유한 지분 5.5%에 양현재단 지분 3.71%를 합치면 9.21%를 보유하게 되었다.

이와 함께 최회장은 지난해 말 한진해운홀딩스라는 지주회사를 설립하고 한진해운 주식을 공개 매수했다. 한진해운홀딩스는 한진해운 지분 37.2%를 보유하고 있다. 최회장은 한진해운홀딩스 지분 26.5%를 확보하게 되었다. 우호 지분으로 분류되는 사이버로지텍과 사모펀드 지분까지 합치면, 최회장은 지주회사 지분 38.4%를 확보하면서 시숙이자 2대 주주인 조양호 한진그룹 회장(지분 27.4%)을 견제할 수 있게 되었다.

이에 대해 경제개혁연대는 “상법상 상장 회사의 특수 관계인은 사외이사가 될 수 없다. 회사를 견제할 권한도, 독립성도 확보하지 못한 김이사를 사외이사로 선임한 것은 회사 장악력을 높이려는 최회장의 뜻이다”라고 지적했다. 이에 한진해운홀딩스는 “김이사가 양현재단 이사직을 사임했고, 법률상 하자가 없다. 한진해운에서 수년간 사장직을 경험한 노하우를 높이 평가했기 때문에 사외이사로 선임했다”라고 반박했다.

사외이사 수는 줄어들고, 사내이사 중 총수 일가 비중 커지기도  

   
▲ 최은영 한진해운홀딩스 회장, 정준양 포스코 회장, 정용진 신세계 부회장(왼쪽부터).
ⓒ시사저널 사진 자료

포스코는 신규 사내이사 3명을 선임하며 이사회를 큰 폭으로 물갈이했다. 신임 이사들은 정준양 포스코 회장 측근으로 분류되는 인사들이다. 오창관 부사장과 김진일 부사장은 모두 포항제철소장 출신으로 생산기술 부문에 정통하다. 또, 박한용 포스코 ICT 대표는 인사와 감사실, 마케팅 분야를 두루 거쳤다. 사내이사 임기도 1년에서 2년으로 늘려 정회장의 남은 2년 임기와 맞추었다. 친정 체제 강화라는 시각에 대해 이상춘 포스코 홍보팀장은 “(사내이사 교체는) 정준양 회장의 뜻이 아니다. 사외이사 3명과 사내이사 1명으로 구성된 이사 후보 추천위원회에서 결정한 것이다”라고 말했다.   

LS네트웍스는 가족 중심 친정 체제를 강화한 대표 사례이다. 구자용 LS네트웍스 회장이 사내이사로 연임한 데 이어, 형 구자열 LS전선 대표도 사내이사로 재선임되었다.

효성그룹도 비슷하다. 조석래 효성그룹 회장을 비롯해 장남인 조현준 효성그룹 사장과, 차남인 조현문 효성 전략본부 부사장 모두 사내이사로 재선임되었다. 이로써 사내이사 중 총수 일가 비중이 60%를 넘으며, 이들이 갖고 있는 효성 지분은 24%가 넘는다. 

정용진 신세계 부회장은 사내이사로 선임됨으로써 2세 체제를 공고히 했다. 정부회장은 최병렬 신세계푸드 대표와 박건형 센텀시티점장을 사내이사로 선임했다. 정의선 현대차 부회장 역시 이번 주총을 통해 사내이사에 처음으로 선임되었다. 이로써 그는 기아차, 현대모비스에 이어 현대차까지 핵심 계열사의 등기이사를 모두 꿰찼다. 비상장사인 엔지비와 오토에버시스템즈까지 포함하면 다섯 개 회사의 이사직을 맡게 되는 셈이다. 공기업의 정권 눈치 보기는 올해에도 여전했다. KT&G는 이명박 대통령의 측근인 지승림 알티캐스트 사장을 사외이사로 선임했다. 지승림 사외이사는 지난 대선에서 이명박 캠프 정보기술 담당 특보에 이어 대통령직인수위원회 자문위원을 지낸 바 있다.

전문가들은 국내 기업의 지배 구조가 후진성을 벗지 못하고 있다는 것에 동의한다. 경영 능력이 검증되지 않은 대주주 2세가 핵심 요직을 차지하는가 하면 경영 능력이나 사업 실적보다 지배 주주와 맺은 특수 관계 덕에 임원으로 승진하거나 중용되는 국내 대기업 집단의 관행은 기업의 성장 잠재력과 소액 주주들의 이익을 해친다는 비판까지 나오고 있다. 정재규 한국기업지배구조센터 평가조정실장은 “지난해 평가에도 상장 법인의 70%에 해당하는 4백34개사가 취약 또는 매우 취약으로 조사되었다. 얼마 되지 않는 지분을 가지고 있으면서 개인 회사인 양 이익을 편취하는 행위는 소액 주주들의 의결권 행사로 막을 수밖에 없다”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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