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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중급유기에 ‘편파’ 날개 달았나

미 공군 사업 입찰 과정의 의혹 싸고 미국·유럽 방산업체 ‘충돌’…미국 자유 무역주의에도 ‘오점’

조명진 | 유럽연합집행이사회 안보자문역 ㅣ 승인 2010.03.30(Tue) 15:57: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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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미 공군의 공중급유기 획득 사업 입찰에서 탈락했다가 재입찰을 통해 유리한 고지에 올라선 것으로 평가되는 보잉 사의 767모델.
ⓒEPA


3월8일 미국의 방위 산업 부문 3위 업체인 노드롭 그럼맨은 미 공군의 공중급유기 획득 사업에서 입찰을 철회한다고 발표했다. 사실 2008년에 노드롭과 유럽 최대의 우주항공회사인 EADS가 컨소시엄을 이루어 입찰 경쟁에서 보잉을 제치고 계약 당사자로 선정된 바 있다. 그런데 경쟁사인 보잉의 강한 항의로 재입찰이 실시되었고, 미국 국방부는 새로운 소요 조건을 삽입했다. 이를 두고 보잉이 새로운 입찰에서 판세를 역전시키기 위해 자신들에게 유리한 조건을 넣은 것이라는 관측이 우세하다. 문제는 이번 입찰 철회의 파장이 미국과 유럽의 방산업체 간 협력에서뿐만 아니라 미국과 유럽 관계에까지 부정적인 영향을 미친다는 점이다.

보잉이 펜타곤(미국 국방부의 별칭)에서 이미 결정된 사안에 대해 번복하도록 만든 데는 그들 나름의 이유가 있다. 먼저 미 공군의 최대 전투기 획득 사업인 JSF(Joint Strike Fighter)를 록히드 마틴이 2001년에 차지했고, F-15 후속으로 개발하는 F-22에는 록히드 마틴이 주 사업자로, 보잉은 파트너로 참여하고 있다. 즉, 보잉으로서는 무인기 사업 이외에 F-15K를 한국에 인도한 것 말고는 독자적인 유인기 사업이 없는 실정이다. 게다가 민간 여객기 수주량에서도 EADS의 자회사인 에어버스에 1위 자리를 내준 상태였다. 역사상 JSF 사업 다음으로 막대한 5백억 달러 규모의 공중급유기 사업을 또다시 에어버스에 넘겨준다는 것은 용납할 수 없는 것이었기에, 사업 진행에 무리수를 두고서라도 보잉이 전방위 로비를 펼쳤다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결과적으로 볼 때 미국 정부는 그동안 방위 산업에서도 자유 경쟁을 지향해 다른 국가의 참여를 독려한다는 기본 방침을 스스로 저버렸다. 말로만 자유 무역을 외치면서 실제로는 보호주의의 모습을 인정한 꼴이기에 미국 정책의 일관성을 두고 방산 관련자들뿐만 아니라 정치인들도 문제를 제기하고 나섰다.
<이코노미스트> 3월9일자에 따르면 영국과 독일 정부는 유럽연합 집행이사회와 함께 미국 국방부가 보잉에 유리하도록 공개 경쟁을 거부한 것에 대해서 깊은 우려를 표명했다. 더불어 영국의 멘델슨 장관은, 미국과 유럽의 공동 입찰자가 공중급유기 획득 과정이 자신들에게 불리하게 만들어져 입찰할 가치조차 없다고 판단한 것은 펜타곤에 대해서 실망스러움을 감출 수 없는 일이라고 비판했다.

입찰 철회로 유럽 업체 EADS ‘곤경’…나토 회원국 관계에도 악영향 예상

   
▲ 파리 에어쇼에 참가해 비행하고 있는 에어버스의 공중급유기.
ⓒEPA

미 공군의 공중급유기 획득 사업은 2002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초 펜타곤은 보잉의 767 여객기를 기본 틀로 한 급유기를 임대할 것을 희망했었다. 하지만 존 매케인 공화당 상원의원은 그것은 보잉의 기업 복지를 보장해줄 뿐, 미 공군의 전력 향상에는 도움이 안 되므로 더 나은 급유기를 획득하기 위한 입찰을 해야 한다고 반론을 제기했다. 그러던 와중에 보잉이 미국 국방부 고위직 인사를 로비스트로 기용한 사실이 드러나, 2004년에 미국 의회에서 임대 방식을 철회하게 되었다. 당시 보잉의 고위직 간부 2명이 징역형을 받았고, 회장인 필 콘딧도 사임했다.

그 2년 뒤인 2006년 공중급유기 획득 사업이 재개되었고, 2008년 노드롭과 EADS가 공동으로 입찰에 참가해 2008년 수주에 성공했던 것이다. 실제로 에어버스 A330 모델은 보잉의 767 모델보다 항속 거리와 적재량에서 앞선다. 그런데 입찰이 마감되었음에도 미국 감사원은 보잉의 로비에 의해 미 공군의 획득 과정에 문제가 생겼다고 발표하고 기존의 선정을 무효화시킨 것이다.

문제는 2009년 새로운 입찰이 공고되었을 때, 입찰 조건들이 보잉에 유리하도록 설정되었다는 점이다. 당초 입찰 우선 사항은 가격과 임무 수행 능력에 초점을 맞춘 반면, 새로운 입찰 조건은 공중급유기 대당 가격에 더 큰 비중을 두고 있다. 따라서 노드롭과 EASD는 새로운 입찰 조건을 검토한 후 정식 입찰서를 제출하는 것이 무의미하다고 결론 내리게 된 것이다. 

이번 획득 사업은 노후된 공중급유기를 대체하고자, 1백79대의 새로운 공중급유기를 제작하는 사업이다. 그리고 이어지는 40년간의 후속 계약은 3백~4백대의 공중급유기를 추가로 제작할 예정이어서 장기적인 가치로 보면 1천억 달러 규모가 넘는 그야말로 황금알을 낳는 대형 국방 획득 사업이다.

공중급유기 입찰 철회 결정은 EADS를 곤경에 빠뜨리고 있다. 왜냐하면 EADS는 지난해 유럽 다국적 군용수송기 A400M의 추가 개발 비용이 발생하면서 18억 유로(25억 달러)의 벌금을, 초대형 민간 여객기 A380 제작 지연으로 추가 벌금을 물게 되어 있다. EADS는 입찰을 따낸 후 미국에서 공중급유기 제작을 위한 공장 설립을 계획하고 세계 최대의 방산 시장인 미국에서 교두보를 확보할 계획이었다. 공중급유기와 유럽 다국적 수송기 A400M 사업은 방위산업체로서의 면모를 과시할 좋은 기회였는데, 두 프로젝트가 모두 암초에 부딪힌 것이다.

3월23일 로이터통신은, 유럽과 협력해야 한다는 중요성을 인식하는 오바마 행정부는 EADS를 조금이라도 달래기 위해서 노드롭이 입찰 철회를 결정했지만, EADS 단독으로라도 보잉과 입찰에 응하도록 입찰 마감일을 5월10일에서 뒤로 연기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라고 밝혔다. 하지만 미국의 면피용 노력에도 공중급유기 획득과 관련된 일련의 사태는 미국과 유럽 관계에 악영향을 주게 되는 것은 물론, 나토 내의 회원국 간 관계에도 악영향을 줄 수 있다.

무기 획득은 국민의 세금을 효율적으로 사용하고, 국방과 관련된 지출일 경우 실제 사용자인 군의 요구에 가장 잘 부합되게 결정되어야 한다. 그런데 이번 미 공군의 공중급유기 입찰 과정을 보면 두 가지 기본 요소를 다 무시했다. 왜냐하면 보잉의 공중급유기는 더 많은 연료를 소모하므로 운영비가 더 들어 지속적인 세금 부담으로 이어지고, 적재량과 항속 거리 같은 성능 면에서도 떨어지므로 미 공군의 소요에도 미흡하기 때문이다. 결국, 스펙을 임의로 바꾸면서까지 자국 방위산업체의 손을 들어주는 미국의 보호주의적 입찰 과정을 통해서 무기 획득 사업에서는 아직도 애국주의가 자유 무역이라는 실용주의보다 앞선다는 사실을 확인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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