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B 정부 덮치는 후폭풍
  • 감명국 (kham@sisapress.com)
  • 승인 2010.03.30 16: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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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방부 초기 대응 미숙 등 위기 관리 시스템에 허점 노출…‘지방선거 악영향’ 등 위기론 불거져

 

▲ 이명박 대통령이 3월27일 오전 서해상에서 전날 발생한 해군 초계함 천안함 침몰 사건의 대책을 논의하기 위한 안보 관계 장관 회의를 재소집해 방안을 논의하고 있다. ⓒ연합뉴스


이명박 대통령이 지난 3월26일 밤 10시쯤, 급히 청와대 지하 벙커로 들어갔다. 김태영 국방부장관을 비롯한 안보 관계 부처 장관들과 청와대 참모들도 속속 모여들었다. 이날 밤 9시45분 서해안 백령도 부근을 경비 중이던 1천2백톤급 해군 초계함 ‘천안함’이 강력한 폭발음과 함께 침몰했다. 함장 최원일 중령은 휴대전화로 평택 2함대에 긴급히 상황을 알렸고, 이 상황은 곧바로 청와대에 보고되었다. 

청와대는 발칵 뒤집혔다. 함정 한 척이 수십 명의 군인들과 함께, 그것도 북한 해안경계선과 인접한 곳에서 순식간에 바다 속으로 수장된 충격적인 사태가 벌어진 것이다. 사고가 일어난 지 불과 15분 만에 관계 장관 회의가 소집되었다. 이번 사태의 심각성에 대해 현 정부가 갖고 있는 위기감의 무게를 반영한다. 청와대는 당초 북한의 도발 가능성에 주목한 것으로 보인다.

국방부와 합참은 사고 발생 1시간여 뒤인 26일 밤 11시께 긴급조치반과 위기관리반을 구성해 사태 파악과 인명 구조 지휘에 들어갔다. 이즈음 TV 뉴스 속보를 통해 이 소식이 일반 국민들에게도 알려지기 시작했다. 이때부터 정부의 위기 관리 능력에 하나둘씩 허점이 드러나기 시작했다. 대통령과 청와대 핵심 참모 및 안보 관계 장관들이 26일과 27일에 걸쳐 수차례 모여 대책회의를 가졌음에도 사고 원인은 전혀 오리무중이었다. “북한과 관련은 없는 것처럼 보인다”라고 했다가, 곧 “모든 가능성을 열어두고 보고 있다”라고 하기도 했다.  

청와대의 움직임은 사고 이튿날인 27일 더 긴박해졌다. 하지만 여전히 국방부는 허둥댔고, 합참과도 손발이 안 맞는 분위기였다. 27일 오전 7시30분부터 두 번째 안보 관계 장관 회의가 소집되었고, 대책이 논의되었다. 이대통령은 이 자리에서 “한 명의 생존자라도 더 구조할 수 있도록 군은 총력을 기울여서 구조 작업을 진행하라”라고 지시했다. 바로 덧붙여 “모든 가능성을 염두에 두면서 철저하고 신속하게 진상을 규명해야 한다”라고 강조했다 하지만 불안해하는 국민들에게 안정감 있는 메시지로 전달되지는 못하는 느낌이었다. “청와대와 군이 무언가를 알면서도 숨기는 것이 아닌가”라는 의심마저 불거질 정도였다. “당초 북한 도발 가능성에 주목했다가 자체 사고 쪽으로 무게중심이 기울자 발표를 미루는 것이 아닌가”라는 의혹도 제기되었다.

 

▲ 해군 초계함 천안함 침몰 사건과 관련해 3월27일 오후 국회 국방위원회 긴급 전체회의가 열렸다. ⓒ연합뉴스

 

역시 초미의 관심사는 사고 원인에 있다. 크게 두 가지로 압축되었다. 북한의 무력 도발이냐, 아니면 자체 사고냐 하는 것이다. 두 가지 중 어느 쪽으로 결론 나느냐에 따라 정국의 향방이 크게 바뀔 수 있는 상황이다. 집권 3년차를 맞는 이명박 정부의 운명이 판가름 날 수 있다는 얘기도 들려올 만큼 예민한 문제임에 틀림없다. “어느 쪽도 단정 지을 수 없다”라며 청와대측이 상당히 조심스러워하는 것도 그 때문이다. 그럴수록 국민들의 불만은 더 높아만 갔다.

무엇보다 국민들이 경악했던 것은 함장을 비롯해서 40명이 넘는 생존자가 있음에도 사고 원인을 두고 계속 ‘설’만 난무하는 상황에 대한 답답함이다. “어떻게 이렇게 무기력할 수 있는지 이해가 안 된다”라는 반응이었다. 심지어 군도 마찬가지였다. 현재 진해에서 훈련 중인 해군 모 부대 소속 ㄱ상사는 “20년이 넘게 함선 훈련을 해왔지만, 이런 류의 사고는 처음이다. 설사 북한의 도발이라 해도 그렇게 속수무책으로 당할 수만은 없는 건데, 만약 자체 사고라 하면 더더군다나 어이가 없는 일이다. 군의 사기가 크게 저하될까 염려된다”라는 견해를 밝혔다.

집권 3년차에 잇따르는 악재들

▲ 3월27일 해군 2함대 사령부에서 실종자 가족이 해군 관계자에게 명확한 해명을 요구하고 있다. ⓒ시사저널 임영무

정부·여당이 크게 우려하는 부분도 바로 여기에 있다. 실종자 가족들이 “진상 규명을 빨리 하라”라고 울부짖는 가운데서도 국방부와 합참측이 명확한 이유를 내놓지 못하고 있는 상황이 이어지는 데 대한 여론의 불만에 민감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국민들의 궁금증과 당혹스러움도 점점 분노로 바뀌고 있다. 그리고 그 분노의 화살은 정부를 향하고 있다.

지방선거를 앞둔 여당에서도 몹시 난처해하는 모습이 역력하다. 사건의 진상이 무엇인지 오히려 기자들에게 묻는 모습도 목격되었다. 국회는 3월27일 오후 3시 국방위원회를 열었다. 이 자리에 참석한 여야 의원들은 국방부와 합참측에 상황을 물었으나, 뾰족한 답변이 나오지 않았다. 여당의 한 의원은 “국회 상임위에서 국방위원들이 사고가 발생한 지 17시간 만에 알아낸 사실이라고는 고작 2분, 20분, 3시간 그 세 가지뿐이었다”라고 허탈해했다. 배에서 폭발음이 들린 지 2분 만에 함정의 선미가 가라앉았고, 20분 만에 선체의 60%가 물에 잠겼으며, 3시간 만에 선체가 완전히 가라앉았다는 사실이 확인된 것을 말하는 것이었다. 이번 사고의 원인이 어떻게 결론 나더라도 향후 이명박 정부의 위기론이 크게 대두될 가능성이 크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공통적인 견해이다. 현 정부 역시 집권 3년차의 위기 징크스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는 전망이 그것이다.

제기되는 이명박 정부의 위기론은 크게 네 가지로 요약된다. 첫째는 이명박 정부의 위기 관리 능력에 대한 비판이다. 3월27일 국회 국방위에서도 이 문제가 여야를 막론하고 집중적으로 제기되었다. 의원들은 “해군 함정이 이렇게 순식간에 침몰되고, 수십 명의 군인들이 실종되었는데도, 하루가 지나도록 군은 아무런 답변도 못하고 있다는 것이 말이 되느냐”라고 군을 질타했다. 국방부장관 출신인 한나라당 김장수 의원은 “이번 사태를 계기로 총체적인 군 기강의 해이를 점검해야 한다”라고 강조했다. 

단순히 군 기강 문제만이 아니라 전체적인 공직 사회의 위기관리 시스템이 상당히 느슨해진 것이 아니냐는 지적도 많다. 이날 상임위에 참석한 여당의 한 관계자는 “지난해 임진강 수몰 사건 때에도 한번 질타를 받았음에도 우리 군과 공무원 사회 전체의 기강과 시스템에 대한 문제가 다시 불거질 수밖에 없을 것 같다. 사고는 그렇다 치더라도 그 이후 사고를 처리하는 순발력과 대응 시스템이 너무 무기력하다”라고 우려했다. 현 정부의 자문위원회에 참여하고 있는 한 예비역 장성은 “그냥 속수무책으로 군인도 잃고 무기도 잃고 다 잃었다는 말밖에 국민들에게 할 말이 뭐가 있나. 이런 군을 국민들이 어떻게 믿을 수 있을지 걱정스럽다”라고 말하기도 했다.

둘째는 지방선거를 앞둔 위기론이다. 신율 명지대 정치학 교수는 “많은 희생자가 난 상황에서 할 소리는 아니지만, 이번 사태가 향후 정국의 방향과 지방선거에 미치는 영향은 상당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라고 전망했다. 그는 “만에 하나 북한의 도발로 인한 사고라면 이는 국가 비상사태가 되고, 지방선거는 여당의 압승으로 끝날 수도 있다. 그러나 우리 군의 자체적인 결함이나 사고에 의한 침몰과 희생이라면 여권으로서는 지방선거에 상당한 악재가 또 하나 추가되는 셈이다. 향후 책임 소재는 물론, 이명박 정부의 위기 관리 능력에 대한 의문이 야권의 공격용으로 사용될 것이다”라고 전망했다.

군의 동요와 내부 갈등 우려하는 목소리도

6·2 지방선거를 앞두고 여권은 지금 여러 가지 동시다발적인 악재에 시달리고 있다. ‘한명숙 공판’ 과정에서 계속 검찰의 무리한 수사 가능성이 언급되고 있고, 천주교계와 불교계 등 종교계의 움직임도 심상찮은 상황이다. 게다가 김우룡 전 방송문화진흥회 이사장의 ‘큰집’ 발언으로 청와대 외압설도 불거졌다. 여기에 이번 함정 침몰 참사까지 겹친다면 여권으로서는 그야말로 엎친 데 덮친 격이 되는 셈이다. 모든 것이 선거를 코앞에 둔 상황에서 연쇄적으로 일어나고 있다는 점에서 징조가 좋지 않다. 정부·여당이 세종시와 4대강 사업 등에만 맹목적으로 매달린 결과가 다른 잠재된 곳의 대규모 참사로 이어지고 있다는 야권의 공격이 불을 보듯 뻔한 상황이기 때문이다.

셋째는 한반도 분위기에도 크게 악영향을 미칠 것이라는 전망이다. 이번 사고의 원인 규명이 어떤 식으로 결론이 나든, 현 정부가 한반도를 긴장 상태로 몰아가는 데 따른 그 부작용이 일어나고 있다는 역풍에 시달릴 것이라는 얘기이다. 외교안보 전문가인 김종대 <D&D포커스> 편집장은 “설사 사고 원인이 북한의 도발 쪽으로 나온다 하더라도 그것이 반드시 정부·여당에 호재가 된다고 보기만은 어렵다. 향후 한반도가 준전시 상황까지 치닫는 악화일로의 국면이 계속될 수 있고, 집권 기간 내내 한반도가 초긴장 상태에 놓이는 것은 정권에도 도움이 안 된다”라고 밝혔다.

넷째는 군 내부의 심상찮은 동요와 함께 자칫 ‘군심’마저 등 돌릴 수 있다는 위기론이 그것이다. 한나라당 국방위 소속 의원실의 한 관계자는 “지난 F-5 전투기 추락 사고도 그랬듯이, 지금 군의 시설이 전반적으로 낙후된 까닭에 애먼 군인들의 희생이 이어지고 있다는 불만이 가중될 수밖에 없다. 이번에 침몰한 초계함 역시 노후화가 심했다는 증언이 나오고 있는데, 군심이 동요될 것으로 보인다”라고 우려했다. 한편에서는 이번 사고로 인해 군 내부 갈등이 첨예하게 불거질 가능성도 제기되고 있다. 지나친 육군 위주의 예산 편성과 인사 시스템 등의 문제에 반발해온 해·공군측에서 본격적으로 반발할 가능성이 그것이다. 국방 문제에 정통한 한 관계자는 최근 “이대통령이 집권 초에는 군과 관련해서도 실용을 내세우며 강력한 개혁 의지를 피력했다가 점점 후퇴해서 지금은 거의 국방 분야가 천덕꾸러기 신세로 전락한 모양새이다. ‘대통령이 아예 국방 문제에는 관심 자체가 없는 것 같다’라는 불만의 목소리들이 많다”라고 기자에게 귀띔한 바 있다. 현 정부에 대한 군의 불만이 점점 높아질 수도 있다는 우려가 그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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