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아탑에 유령이 떠돌고 있다
  • 김윤태 | 고려대 교수·사회학 ()
  • 승인 2010.04.13 14: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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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품 가치’라는 거대한 허상에 사로잡혀…자퇴 권하는 사회에서 자유와 진리 탐구는 멀고 먼 이상

▲ 고려대 학생들이 정경대 후문 게시판에 붙은 김예슬씨의 대자보를 보고 있다. ⓒ시사저널 박은숙

'오늘 나는 대학을 그만둔다. 아니, 거부한다’라는 고려대생 김예슬의 선언은 큰 충격을 주었다. 취업 브로커로 전락한 대학을 거부한다는 주장 역시 거센 논란을 일으켰다. “나만 힘든 게 아니었군요”라는 공감의 글도 붙었다. 서울대에서도 ‘제2의 김예슬 선언’이 나왔다. 이렇게 학생들이 대학을 떠나거나 불만을 터뜨리는 이유는 무엇인가?

2009년 국회에 제출한 전국 국공립 대학의 자료에 따르면, 3년간 학교를 그만둔 자퇴생은 2만7천4백92명으로 나타났다. 지역별로는 서울에 있는 대학보다 수도권과 지방 대학에서 자퇴가 많았다. 아직 대학을 자퇴하는 이유가 대학에 실망한 것인지, 경제적 어려움 때문인지 분명하지 않다. 일부는 기대와 적성이 달라 다른 대학이나 학과로 옮긴 경우도 있을 것이다. 무엇보다도 한 해 국립대 등록금이 6백만원이 넘고, 사립대는 7백만원이 넘는 현실이 대학생들에게 너무 벅차 보인다. 5년 전에 비하면 국립대는 44%, 사립대는 25% 정도 인상되었지만, 취업률은 오히려 낮아만 갔다.

인간성 회복하고 사회 현실 들추는 본연의 모습 찾아야

지금 대학생들은 학비 마련과 취업난으로 고통을 겪고 있다. 대학 분위기는 척박해지고 있다. 생활비를 벌기 위해 과외와 편의점 아르바이트로 친구 만날 시간도 없다. 상대평가제 때문에 친구도 경쟁자가 되는 현실에서 외로움을 하소연할 곳도 없다. 취업 전쟁에 대비하기 위해서 ‘스펙 쌓기’에 바쁜 대학생들은 자신들이 읽고 싶은 책을 읽을 여유도 없다. 오늘날 대학생들은 경주마처럼 경쟁에 내몰리고 거대한 기계의 부품처럼 팔리는 존재에 불과한가? 안타깝게도 기숙사 한쪽에서 스스로 목숨을 끊는 학생들도 있다. 누가 이들을 이렇게 만들었는가?

사실 따지고 보면 대학이 항상 자유와 진리 탐구의 산실이었던 것은 아니었다. 1980년대 한국의 어두운 현실을 외면하는 대학을 개탄하며 대학생 스스로 강의실을 떠났다. 그들이 찾아간 곳은 공장과 농촌 그리고 가난한 이들의 거리였다. 1960년대 유럽과 미국의 대학들도 기성세대가 강요한 대학의 권위주의와 관료주의에 맞섰다. 학생들은 대학의 커리큘럼을 바꾸고 교수에게 강의 평가를 요구하고 학사 행정에 대한 발언권을 요구했다. 대학에 더 많은 자유를 부여해야 한다는 외침은 성난 파도가 되었다. 상아탑을 넘어 사회를 개혁하려는 학생들은 아시아와 아프리카에서 빈곤과 전쟁으로 고통받는 사람들의 곁으로 찾아갔다. 이처럼 대학이 새로운 도전과 창의적 실험을 하기 위해서는 학생들이 스스로 목소리를 내야 한다.

지금 한국 대학의 하늘에는 상품 가치라는 거대한 유령이 떠돌고 있다. 대학 경쟁력이라는 이름으로 자유와 진리를 추구하는 대학의 정체성이 무너지고 있다. 대학 평가, 산학 협력, 취업 지도의 필요성도 있지만 사회의 과잉 경쟁으로 대학이 흔들리면 국가의 미래도 어둡다. 미국의 경제학자 로버트 프랭크가 <승자 독식 사회>에서 지적한 것처럼 승자가 독식하는 시장은 낭비적 경쟁에 빠져드는 경향이 많다. 우리는 대학을 떠나는 학생들에게 박수를 칠 수는 없지만, 자퇴를 권하는 사회를 수수방관할 수도 없다. 대학은 최고의 대학이 되려는 학벌 전쟁이 아니라 비판적 사고와 창의적 능력을 키우는 역할로 돌아가야 한다. 지금이라도 대학이 인간성을 회복하고 자유를 추구하며 사회 현실을 날카롭게 지적하는 본연의 모습을 찾아야 한다. 대학은 시대의 아픔을 가장 먼저 말하는 곳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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