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복’과 ‘흥행복’은 따로따로
  • 라제기 | 한국일보 문화부 기자 ()
  • 승인 2010.05.04 13: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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칸 영화제 간 한국 영화들의 극장 성적, 어떻게 될까?

 

▲ 영화 는 수업이 벌어지는 교실의 모습을 다큐멘터리와 픽션을 조합한 형식으로 그려냈다.

 

5월12일(현지 시각) 막을 올리는 제63회 칸 국제영화제를 앞두고 충무로가 술렁이고 있다. <시>와
<하녀>의 경쟁 부문 동반 진출을 흥행으로 연결시키려는 <시>와 <하녀>의 마케팅 싸움도 더욱 치열해지고 있다. 상을 받으면 더 많은 관객이 극장을 찾으리라는 것이 해당 영화사의 기대이다. 영화상과 흥행은 과연 어떤 상관관계를 가지고 있을까. 유명 영화상만 받았다 하면 관객들이 객석을 꽉꽉 채우게 되는 것일까. 결론부터 말하자면 ‘그때그때 달라요’이다.

제63회 칸 국제영화제를 앞두고 충무로가 술렁이고 있다. <시>와 <하녀>의 경쟁 부문 동반 진출을 흥행으로 연결시키려는 <시>와 <하녀>의 마케팅 싸움도 더욱 치열해지고 있다. 상을 받으면 더 많은 관객이 극장을 찾으리라는 것이 해당 영화사의 기대이다. 영화상과 흥행은 과연 어떤 상관관계를 가지고 있을까. 유명 영화상만 받았다 하면 관객들이 객석을 꽉꽉 채우게 되는 것일까. 결론부터 말하자면 ‘그때그때 달라요’이다.

아카데미영화상의 위력, 예전보다 못해

 

 

한때 ‘상발’ 하면 아카데미영화상이었다. 트로피를 못 가져가도 몇 개 부문 후보에 올랐다는 것이 강력한 마케팅 수단이 되던 시절이 있었다. 하지만 2000년대 들어서며 아카데미의 위세는 급전 직하했다. 아카데미가 인디영화에 애정 공세를 펼치면서 대중들은 아카데미를 멀리하기 시작했다. 아카데미가 흥행의 굴레로 돌변한 것이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한동안 아카데미를 홍보에 내세우지 않는 경향까지 있었다”(A영화홍보사 직원)라고 한다.

올해 작품상과 감독상 등 여섯 개의 오스카를 가져간 <허트 로커>의 제작비는 1천5백만 달러이다. 전쟁영화이지만 저예산영화이다. 상을 받아 마땅한 수작임에도 대중성은 떨어진다. 4월22일 국내 개봉한 <허트 로커>가 28일까지 모은 관객 수는 13만명가량이다. 영화사 관계자는 “꽤 쏠쏠한 흥행 성적이다”라고 평가하지만, 아카데미의 후광을 받은 영화치고는 초라한 성과이다. 지난해 작품상을 받은 <슬럼독 밀리어네어>의 1백75만명과 비교하면 트로피의 빛이 바랜다.

산드라 블록에게 첫 여우주연상을 안긴 <블라인드 사이드>(4월15일 개봉)는 23만명을 불러모았다. 남우주연상(제프 브리지스) 수상작 <크레이지 하트>는 거론하기 민망할 정도이다. 전국에서 6천2백13명이 보았다. 한 영화 관계자는 “<슬럼독 밀리어네어>의 흥행은 영화의 대중성에서 비롯되었다. 아카데미 특수는 결국 영화가 대중성을 지녀야 발휘된다”라고 말했다.

한국 영화의 ‘칸 마케팅’ 여전히 유효…애국심 자극하는 듯

세계 제일이라는 칸 영화제 수상작은 어떨까. 예술영화 붐이 일었던 1990년대 칸은 영화 애호가의 가슴을 벅차게 하는 그 무엇이었다. 하지만 지금 칸 영화제 수상이라는 수식어는 따분한 예술영화로 왕왕 인식되곤 한다. 흥행에 큰 도움을 주지 못하는 것이다.

4월1일 개봉한 <클래스>는 2008년 칸 영화제 대상인 황금종려상을 받은 작품이다. 수상 2년이 다 되어서야 늑장 개봉했다. 한 달가량 전국에서 7천명이 보았다. 지난해 황금종려상 수상작인
<하얀 리본>도 올여름 개봉을 추진 중이나 아직 불투명하다.

지난해 칸 영화제 2등상에 해당하는 심사위원 대상을 받은 <예언자>(3월11일 개봉)는 그나마 꽤 짭짤한 성과를 올리고 있다. 2만5천명가량이 찾았고, 아직 극장 두 곳에서 장기 상영 중이다. 범죄영화라는 대중적인 형식이 관객의 눈길을 끄는 데 도움이 된 것으로 분석된다.

칸 칭호가 한국 영화에 따라붙으면 이야기는 달라진다. 최근 충무로에서 칸 영화제는 적극적으로 활용해야 할 마케팅 도구로 변신했다. 2008년 <좋은 놈, 나쁜 놈, 이상한 놈>은 칸 영화제 상영을 발판 삼아 흥행 대박을 노렸고, <올드보이>는 2004년 칸 영화제 심사위원 대상을 수상한 뒤 재개봉까지 했다.

아마도 세계 정상급 영화제에서 레드 카펫을 밟는 한국 영화인들의 모습이 관객들의 묘한 애국심을 자극하는 듯하다. 올림픽 때만 금밭이라는 이유만으로 규칙도 모르는 비인기 종목에 열광하는 것처럼.

▲ 감독 | 이창동 / 주연 | 윤정희, 안내상
볕 좋은 오후, 어느 천변. 노는 아이의 눈에 들어온 강 가운데의 풍경. 조용한 물결 위로 떠내려오는  한 구의 시신. 물풀처럼 머리카락을 풀어헤친 시신의 뒤통수가 화면 가득 들어왔다가 옆으로 물러나면 곱게 쓰인 글자 하나가 뜬다. <시>.

 

낯설고 충격적인 시작을 지나면, 영화는 꾸미기 좋아하고 상냥한 노년의 여인 미자의 삶을 비춘다. 꽃을 사랑하고 소녀 같은 감성을 가진 그녀는 서울 근교의 소도시에서 간병인 겸 파출부 일을 하며 손자와 살고 있다. 생활 보조금을 받아야 할 정도로 가난한 삶이지만 시 한 편을 쓰는 것이 평생의 목표인 미자는 병원에 가 알츠하이머 초기 진단을 받은 다음 날, 문화원의 시 쓰기 강좌에 등록한다. 그러나 곧 손자가 심각한 사건에 연루되었음을 알게 된다.

칸 영화제 경쟁 부문에 올라 화제가 된 이창동 감독의 신작 <시>는 행복하고 싶지만 행복할 수 없는 노인을 통해 삶과 죽음 그리고 사회에 대해 묻는다. 고통 없는 삶은 존재하는지, 시를 쓰는 마음은 무엇인지, 그리고 사랑이라는 이름의 방치·방관은 용서될 수 있는지. 감독은 소설적이던 전작들과는 달리 시적인 방식으로 관객에게 그같은 질문을 던진다. 전작들이 고통에 절망하고 회피하려는 인물들의 모습을 사실적으로 그려냈다면, <시>는 인물의 내면에 고통을, 일상의 갈피에 미스터리를 감추어둔 채 인물의 외면과 생활을 덤덤히 그릴 뿐이다.

미자는 좌절해 절규하지도, 적극적으로 도피하지도 않는다. 마치 몰랐던 양 계속 일을 하고 손자에게 밥을 해 먹이고 강좌에 나가고 시 낭독회에 참석한다. 문제 해결을 위해 움직여야 하는 상황에 놓인 순간조차 그녀는 맨드라미가 핀 화단을 보며 단상을 메모하고 땅에 떨어진 살구를 주우며 삶을 투사한다. 

그러나 역시, <시>는 이창동의 영화이다. 조금 덜 숨이 찰 뿐, 절제된 표현 속에 슬픔은 더욱 깊다. 절망은 더욱 처절하다. 오프닝의 충격을 잊을 정도로 영상과 이야기는 내내 덤덤하지만, 그래서 더욱 비관적이다.

자신을 지우고 미자가 된 배우 윤정희는 16년의 공백이 무색할 정도의 연기를 보여주었고, 인물 자체가 된 듯한 노배우 김희라의 연기도 반갑다. 등장마다 즐거움을 주는 김용택 시인의 연기는 영화 <시>가 주는 거의 유일한 ‘숨표’라 할 수 있다. 하지만 힘겹다. 하긴, 언제는 이창동 감독의 영화를 보는 것이 쉬운 적이 있었나. 5월13일 개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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