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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우먼 파워’ 명예의 전당

특별 기획 시리즈 - 한국의 신 인맥 지도 | 이화여대 ①

이춘삼 | 편집위원 ㅣ sisa@sisapress.com | 승인 2010.05.04(Tue) 14:06: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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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화여자대학교

지난해 2월 방한한 힐러리 클린턴 미국 국무장관은 바쁜 일정의 한 나절을 쪼개 이화여자대학교(이하 이화여대)를 찾았다. 오전에 청와대, 총리실, 외교부를 한 바퀴 돌고 나서였다. 2천명이 넘는 학생들 앞에 선 그녀는 ‘여성들의 권익 강화가 진보의 핵심’이라는 주제로 연설했다. 학생들은 그의 열강에 떠나갈 듯한 함성으로 화답했다. 클린턴 장관은 왜 이화여대를 찾았을까. 클린턴은 연설에서 자신이 이화여대에 올 수밖에 없는 인연이 있다고 설명했다. 이화여대는 감리교 재단이 세운 학교이며, 그녀도 감리교도이다. 이화여대의 전신인 이화학당은 1886년 북미감리교 여선교회 소속 선교사 메리 스크랜튼이 학생 한 명을 가르치면서 시작된 학교이다. 그리고 클린턴이 졸업한 웰즐리 대학은 이화여대와 자매결연을 한 학교이다. 주한 미국대사관에 근무하는 이화여대 졸업생이 50명이 넘는 것도 한 요인일 수 있다. 미국대사관 전 직원 4백여 명 중 한국인이 2백여 명인데, 이 중 이화여대 출신이 50명이 넘으니 한국인 직원 중 4분의 1에 해당한다.

그러나 무엇보다 중요한 점은 이화여대가 세계에서 가장 큰 여자 대학이라는 사실이었을 것이다. 클린턴 장관은 북핵이나 한·미 동맹 등 공식적인 의제 외에 ‘여성’을 방한의 부주제로 삼았다. ‘세계 최대 여자 대학’은 여권 신장을 논하기에 더없이 좋은 무대였다. 퍼스트 레이디를 지냈고 대권 경선에 나선 적이 있는 그녀가, 국무장관 취임 후 첫 해외 순방 길에서 이화여대를 방문했다는 사실은 이화여대의 위상을 군더더기 없이 보여주기에 충분했다.

이화여대가 세계에서 가장 큰 여자 대학이라는 사실은 한국이 갖고 있는 어느 세계 기록보다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이화여대 재학생은 학부생만 1만5천명이 넘는다. 서울대 학사 과정 1만6천명, 그중 여학생 숫자가 6천여 명인 것과 견주어볼 만하다. 신촌·원주 캠퍼스를 포함한 연세대 학부생이 2만6천여 명이다. 이화여대는 오늘날 11개 단과 대학 65개 전공과과 15개 대학원, 65개 전공을 갖춘 세계 최대의 여자 대학으로 성장했으며, 지금까지 수많은 ‘한국 여성 1호’를 포함한 17만7천명의 여성 인재를 배출했다.

이화여대는 재원(才媛)의 집합처라 할 만하다. 많은 이화여대 동문은 여러 가지 제약 속에서도 사회 각계에서 남성에 뒤지지 않는 역할을 해내고 있을 뿐 아니라, 20세기 한국 여성 지도자 그룹에서 중추적 위치에 있다. 그들은 이 땅의 2세들을 훌륭한 재목으로 길러냈으며, 사회를 이끌어나가는 일꾼들을 가정에서 내조하는 공로자들이기도 하다.

이화여대 설립자인 스크랜튼 선생은 한국을 찾은 첫 여선교사이기도 했다. 지난해 스크랜튼 선생의 서거 100주기를 맞아 국민훈장 무궁화장이 추서되었다. 그녀가 1885년 6월, 52세의 미망인으로서 한국 땅을 밟은 이래 최초의 여성 교육 기관인 이화학당을 설립해 한국의 근대 여성 교육에 이바지한 공로를 기린 것이다. 이 훈장은 정치·경제·사회·교육·학술 분야에서 국민 복지 향상과 국가 발전에 기여한 공적이 뚜렷한 사람에게 수여하는 상급으로, 일반 시민이 받을 수 있는 최고 등급의 훈장이다. 이 훈장을 외국인이 받은 것은 매우 이례적이다.

이화학당 설립의 배경에는 기독교의 박애, 희생과 봉사 정신이 깔려 있다. 이화학당의 교육 이념은 가부장적 전통과 인습의 굴레 속에서 고통받는 여성들을 기독교 진리를 통해 해방시키고 인간답게 살게 하려는 것이다. 이화학당이라는 이름으로 출발해 학생 수가 점차 늘자 1910년에 대학과가 생겼다. 조혼이 대세이던 시절, 여성에게 더 많은 교육 기회를 주는 대학과의 신설은 쉬운 일이 아니었다. 대학과가 1925년 이화여자전문학교로 확장·발전했고, 광복 후 종합 대학교로 승격한 이화여자대학교의 모태가 된다. 이화학당 중등과가 현재의 이화여고로 존속하고 있으므로 비록 재단은 별개로 나뉘었을망정 두 학교는 같은 뿌리를 둔 자매 관계인 셈이다.

이화의 역사를 얘기하면서 김활란 초대 총장을 빼놓을 수는 없다(정확히 표현하면 스크랜튼 이화학당장을 초대로 보고 역대 당장과 이화여전 교장을 거쳐 7대가 되겠지만 종합대학 승격 후로 따지자면 초대 총장이 된다). 김활란 총장은 이화여전 5회 졸업생이다. 인천의 기독교계 학교인 영화소학교를 마치고 이화학당에 입학해 중학과·고등과·대학과를 거치면서 탁월한 성적을 보였다. 1925년 6월 보스턴 대학에서 철학 석사학위를 받고 이화여전 학감에 취임했다가 아펜셀러 교장의 권유로 다시 유학 길에 올라 1931년 컬럼비아 대학에서 철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한국 부흥을 위한 농촌 교육’이라는 논문으로 한국 여성 박사 제1호를 기록한 그녀는 1939년 이화여전 교장으로 취임한 이래 1961년까지의 역사적 격동기에 총장으로 재직하면서 이화를 명실상부한 세계적 여자 대학으로 키웠다. 총장직에서 퇴임한 후 재단 이사장을 맡아 1970년 타계하기까지 그녀의 생애는 이화의 역사 그 자체였으며, 이화가 길러낸 이화인이자 이화를 반석에 올려놓은 주인공이었다. 그녀의 활동은 여성 교육·정치·외교·기독교 등 다방면에 걸쳤고, 시대를 앞서가는 탁월한 능력의 여성상을 구현했다. 눈부신 업적으로 대한민국상, 막사이사이상, 다락방상 등을 수상했다.

   

유관순 열사 등 많은 독립운동가 키워내기도

김활란 총장에 이은 제8대 김옥길 총장도 이화에서 배우고 자란 전형적인 이화인이었다. 이화여전 문과를 졸업하고 미국 웨슬리언 대학에 유학해 기독교문학을 전공하고 템플 대학에서 교육행정학을 연구한 그녀는, 늘 온화한 표정이었지만 강의 시간의 꼼꼼한 출석 체크 등 엄격한 일면을 지니고 있었다. 김활란 총장에게 자리를 물려준 제6대 아펜셀러 교장이 일찍이 꿈꾸었던 것처럼 김옥길·정의숙·윤후정·장상·신인령 총장을 거쳐 이배용 현 총장에 이르기까지 모두가 이화인이다. 이 중 장상·이배용 총장이 기혼이고, 나머지는 미혼이다. 장상 전 총장의 부군인 박준서 경인여대 총장은 경기중·고와 서울대 법학과를 졸업한 후 연세대 신학과와 미국 예일 대학, 하버드 대학, 프린스턴 대학 등에서 신학을 공부해 연세대 신학과 교수와 대학원장, 부총장을 역임한 신학자이다.

1939년 이화가 모교 출신이 학교를 경영하는 시대를 맞은 것은 아펜셀러 교장의 덕이다. 그녀는 평소 ‘이화는 한국인의 손으로, 그것도 반드시 이화가 키워낸 이화인의 손으로 운영되어야 한다’라는 신념을 갖고 있었다. 아펜셀러 교장은 자신의 제자였던 김활란 박사에게 교장직을 넘겨주었다. 1925년 이화학당 대학과를 이화여전으로 발전시킨 것도 그녀였다. 이화의 웅비를 꿈꾸며 신촌 캠퍼스를 마련하기 위해 뉴욕으로 건너가 모금 활동을 벌이는 등 각고의 노력을 쏟은 끝에 1935년 3월9일 마침내 현 이화여고가 있는 정동을 벗어나 새로운 터전을 닦는 업적을 남겼다.

   

아펜셀러는 1885년 내한한 최초의 개신교 선교사 아펜셀러 목사의 딸로, 한국에서 태어났다. 그녀의 부친은 정동제일감리교회를 설립해 복음 전파에 힘썼고, 최초의 서구식 남자 학교인 배재학당을 세웠다.

이화여전은 광복을 맞은 1945년 10월에 다시 문을 열면서 국내 대학 중에서 최초로 종합 대학 인가를 신청해 다음 해인 1946년 문교부로부터 종합대학교 제1호의 인가서를 받았다. 국내 대학 중 광복 후 최초로 인가받은 종합대학이라는 의미를 이화여대는 학교 배지에 ‘1945’라는 숫자로 새겨넣었다. 일제에 의해 종합대학 승격을 저지당하고 전문학교에 머물러야 했던 한을 마침내 푼 것이다.

이화학당으로부터 면면히 흘러내려온 기독교 정신과 이에 바탕을 둔 애국 정신은 유관순 열사(1902~1920)를 비롯한 많은 독립운동가를 키우는 토양이 되었다. 황애시덕(에스터), 이살롬, 김수은, 하란사, 이화숙, 이애라, 조신성, 채혜수, 김공순, 김애일라, 유예도(유관순의 사촌 언니), 안임순, 조충성, 최금봉, 김원경, 최선화가 그들이다. 황애시덕(에스터)은 여성 독립운동 조직의 효시라 할 수 있는 송죽회를 만들어 농촌 계몽과 여성 운동에 큰 발자취를 남겼다. 이살롬은 해외 독립운동에 주요 역할을 했으며, 최금봉은 대한애국부인회라는 비밀 결사에 주도적으로 참여했다. 서대문형무소에서 복역하며 갖은 악형에 시달리다 18세의 꽃다운 나이에 순국한 유관순 열사에게는 1962년 건국훈장 독립장이, 1996년 이화여고 명예졸업장이 추서되었다.

역대 장관급 공직을 지낸 동문의 역사는 김활란 전 공보처장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김처장은 한국전쟁이 발발한 1950년 8~11월 약 3개월 동안 재직했다. 1979년 12·12 사태로부터 이듬해 5·17이 벌어지기까지 문교부장관을 지낸 김옥길 전 이화여대 총장(이화여전)은 김동길 연세대 명예교수와 함께 남매 교수로 유명하다. 노태우 대통령 시절의 조경희 전 정무2장관(이화여전)과 김영정 전 정무2장관(영문)도 있다.

김영삼 정부 시절에는 김숙희 교육부장관(가정학)과 이연숙 정무2장관(교육)이 국무위원을 지냈고, 김대중 대통령 시절에는 신낙균 문화관광부장관(기독교학)과 윤후정(대통령 직속 여성특별위원장법학)이 활약했다.

   

한명숙 전 총리 등 정·관계에 실력자 다수 배출

김숙희 전 장관은 오빠인 김용준 전 고려대 화공과 교수와 동생인 도올 김용옥 교수와 함께 세 남매가 모두 교수를 지낸 학자 집안이다. 이연숙 전 장관은 KBS <심야 토론>의 첫 여성 진행자로 세간에 이름이 널리 알려졌다.

요즘 서울시장 후보로 나서 태풍의 눈이 되고 있는 한명숙 전 국무총리(불문)는 김대중 전 대통령에 의해 여성부장관으로 발탁되었고, 노무현 전 대통령이 환경부장관으로 기용했으며 같은 정권에서 최초의 여성 국무총리를 지냈다. 박성준 성공회대 명예교수가 부군이다.

지은희 전 여성부장관(사회학·현 덕성여대 총장), 장하진 전 여성가족부장관(사회학·한국미래발전연구원 원장), 김선욱 전 법제처장(법학과·이화여대 법학과 교수)이 노무현 대통령 시절에 장관직을 지냈다. 전남여고를 졸업하고 이화여대에서 석·박사까지 모두 마친 장하진 전 장관은 전남이 자랑하는 ‘천재 집안’ 출신이다. 그녀는 김대중 정부에서 산업자원부장관을 지낸 장재식 전 민주당 의원의 조카이다. 장 전 장관의 집안은 독립운동가와 고위 공직자, 국회의원, 교수, 의사, 공기업 사장 등 저명 인사를 많이 낳은 지방 명문가이다. 장 전 장관의 조부인 장병상씨 형제는 독립운동가들이었다. 장병상씨의 차남인 장충식 전 도의원이 장장관의 부친이다. 삼남이 장영식 전 한국전력 사장, 막내가 장재식 전 장관이다. 신안의 대지주 가문으로서 경제적으로는 상류층이지만, 10여 명의 형제·사촌들은 대부분 진보 성향의 학자들이거나 의사 직업을 갖고 있다. 그중 장장관의 동생인 장하성 고려대 경영대학장이 참여연대 경제개혁센터 운영위원장으로서 소액주주 운동과 재벌 개혁 운동에 앞장선 시민운동가로 유명하다.

관계에서 현직으로 활동하는 동문들 중에 장·차관급은 없고, 국장급 인사들이 눈에 띈다. 김영순 서울 송파구청장, 장옥주 보건복지가족부 저출산고령사회정책실장, 김은미 공정거래위원회 심판관리관, 경향신문 기자 출신의 조은희 서울시 여성가족정책관, MBC 기자 출신의 김은혜 청와대 제2대변인 등이다.

   

역대 국회의원을 지낸 인물로는 모윤숙(이화여전)·박정자(미술)·서영희(불문)·이범준(정외)·이승복(법학)·박영숙(영문·전 민주당 부총재)·김현자(영문)·이영희(영문)·김영정(초대 한국여성개발원장)·한양순(체육)·김정숙(교육대학원)·문희(약학)·신낙균(기독교학)·최영희(간호학)·김행자(정외)·손봉숙(정외)·한명숙(현 민주당 상임고문)·서혜석(영문·미국 변호사)·이계경(사회복지)·이경숙(신문방송)·홍미영(사회학)·이승희(정외)·유승희(기독교학)·고경화(영문)·강혜숙(교육대학원) 씨 등이 있다. 이범준 전 의원의 부군은 국회의원과 초대 외교통상부장관을 역임한 박정수씨이다. 한때 부부가 함께 국회의원을 지냈던 시절도 있었다.

현 18대 의원으로는 이미경(영문)·전여옥(사회학)·강명순(시청각교육·목사)·김금래(사회학)·이성남(영문)·최영희(사회학)·김상희(제약학)·김유정(정외)·박선영(법학) 의원이 있다. 이미경 의원은 1970년대부터 여성 운동에 참여해 한국여성단체연합 공동대표를 지냈고, 15대 국회에 진출해 현 18대까지 4선을 기록하고 있다. 17대 국회에서는 문화관광위원장을 맡았고, 현재는 민주당 사무총장으로 있다. 당내 중진 중 손꼽히는 소신 개혁파로 알려져 있다. 전여옥 의원은 방송 기자와 저술 활동으로 일반에게 친숙하다. 17대 국회에 한나라당 비례대표로 들어가 박근혜 대표 시절 당 대변인을 지냈고, 18대에 들어서는 서울 영등포 갑구에 출마해 금배지를 달았다. 이성남 의원은 홍일점 금융통화위원이고 박선영 의원은 자유선진당 대변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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