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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 따라 표류하는 ‘민영 미디어렙’

여야 같은 당 내에서도 ‘1민영 안’ ‘다민영 안’으로 나뉘어 이견 못 좁혀…지난해 말부터 입법 지연돼

김창룡 | 인제대 신문방송학 교수 ㅣ 승인 2010.05.04(Tue) 14:07: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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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 실종이 대한민국을 무법 사회로 만들어가고 있다. 여야 의원들은 서로에게 책임을 떠넘기며 헌법재판소의 헌법 불합치 결정에 따른 입법을 하지 못해 사회 혼란을 가중시키고 있다. 2008년 헌법재판소의 헌법 불합치 결정에 따라 지난해 말 한국방송광고공사(KOBACO)의 독점 대행은 끝났다. 그러나 2010년 4월 임시국회에서조차 후속 입법이 지연되어 현재 방송 광고 판매 시장은 ‘무법 상태’라는 지적을 받고 있다. 그동안 한국의 방송광고 시장을 독점해왔던 체제가 헌법재판소의 판결로 더 이상 유지될 수 없어 대체재로 만들라고 한 것이 ‘미디어렙’이다.

‘미디어렙(Media Representative·방송 광고 판매 대행사)’이라는 생소한 용어가 등장하자 많은 사람이 혼란스러워한다. 방송광고 시장에서는 일반적으로 사용하지만, 일반인들에게는 여전히 낯선 용어이다. 미디어렙은 ‘방송사를 대신해 방송 광고를 판매하는 회사’라고 쉽게 이해하면 된다. 여기서 민영 미디어렙이라는 용어는 SBS처럼 민간 방송사를 대신하는 방송광고 판매 대행사를 의미한다. 공영 미디어렙이라는 용어는 KBS처럼 공영 방송사를 대신하는 방송광고 판매 대행사를 의미한다.

그렇다면 방송은 왜 신문처럼 언론사가 직접 광고를 판매하지 않고 대행사 체제를 유지하고 있는 것일까. 거기에는 방송 편성과 제작의 중립성과 공정성을 상업주의로부터 보호하겠다는 뜻이 포함되어 있었다. 또한, 공익성과 공공성이 높은 프로그램을 보호·지원하겠다는 의지도 있었기 때문에 이런 방송광고 대행 체제를 만든 것이다. 다만, 방송광고 판매 대행 독점 체제에 대해서는 과거에도 논란이 되어온 것이다.

그동안 자본주의 경쟁 사회에서 독점 체제가 형성될 경우 순기능보다 역기능이 더 심해질 것이라는 지적이 있어왔다. 이런 관점에서 헌법재판소는 그동안의 논란에 종지부를 찍고 독점적 방송광고 대행 체제는 더 이상 ‘안 된다’는 결론을 내렸고, 국회는 2009년 말까지 미디어렙 관련법을 제정해야 하는 시한부 책임을 맡았던 것이다.

방송광고 판매 대행 독점 체제는 편성·제작과 광고 영업의 제도적 분리를 담보하는 한편, 과잉 광고 수주와 지나친 시청률 경쟁을 막아왔다는 긍정적 측면도 지니고 있다. 그러나 민영 미디어렙의 출현은 방송광고 시장에서의 치열한 경쟁 체제 도입을 예고한다. 이 과정에서 여야 국회의원들은 ‘1공영 1민영 안’ ‘1공영 다민영 안’ 등을 제안하며 서로의 의견을 좁히지 못해 결국 기한 내 입법이라는 숙제를 성공적으로 풀지 못한 것이다.

   
▲ 김인규 KBS 사장(오른쪽 두 번째)이 4월19일 국회 문방위에서 최문순 민주당 의원의 질의를 듣고 있다.
ⓒ시사저널 유장훈

국민 시청권과 방송 발전 위한 타협안 시급

‘1공영 1민영 안’이란 공영 방송사와 민영 방송사를 대표하는 각각의 광고 판매 대행사를 1개씩 두자는 안이다. 연합뉴스가 최근 여야 문방위 소속 의원들을 상대로 설문조사를 실시한 결과, 설문에 응한 15명의 의원 가운데 9명이 ‘1공영 1민영 안’을 지지했다고 한다. 반면 ‘1공영 다민영 안’이란, 공영 방송사를 대표하는 1개의 광고 판매 대행사를 두고, 민영 방송사의 경우 광고 판매 대행사를 다수로 두도록 하자는 안이다. 연합뉴스에 의하면 이 안을 지지한 의원은 15명 중 5명에 그쳤으며, 1명은 입장 표명을 유보했다고 한다.

대체적으로 ‘1민영 안’에 찬성한 국회의원은 한나라당의 강승규·김효재·안형환·진성호 의원 등이라고 한다. ‘다민영 안’에 찬성한 국회의원은 한나라당의 한선교·성윤환·이정현 의원, 민주당의 전병헌·조영택 의원 등이라고 한다. 또한, 추가적으로 한나라당 허원제 의원과 민주당 최문순 의원은 다민영안 지지 쪽이라고 이 매체는 밝혔다. 같은 당 내에서도 ‘1민영’ 체제와 ‘다민영’ 체제에 대한 의견이 엇갈릴 정도로 대립적인 구도를 형성하는 것은 이 법안이 바로 방송의 생존 방식과 각 개별 방송의 미래를 결정짓는 중요한 변수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는 또한 향후 방송광고 시장 판도를 뒤흔드는 계기가 될 것으로 예상된다.

‘1공영 1민영 체제’는 과도기적 단계에서 방송광고 시장의 지나친 경쟁을 제어할 수 있다는 장점도 있지만, 과연 헌법 정신에 합치하는가라는 의문도 일으킬 수 있다. ‘1공영 다민영 체제’는 자유 경쟁을 보장하지만 민간 방송사들을 과도한 시청률 경쟁으로 내몰고 방송 저질화·상업화를 부추길 위험성이 있다는 문제점이 제기되고 있다.

다양한 인간이 모여 사는 다원화 사회에 어느 제도나 제도 자체로서 완벽할 수는 없다. 문제는 그 제도를 운영하는 인간이 제도를 어떻게 선용하는지, 또 부작용을 최소화할 수 있는 견제 장치를 만들고 이를 실용화하는지에 달린 것이다. 그래서 업자들의 이해관계보다 국민의 시청권과 질 높은 방송 발전을 염두에 둔 타협안이 도출되어야 한다. 정치가 실종된 현 상황에서 여야의 타협과 양보를 기대하기는 매우 어렵다. 그렇다 하더라도 어떤 경우에서든 무법천지 상태가 지속된다는 것은 입법 의원들의 직무 태만·직무 유기를 의미한다. 조속한 입법·제정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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