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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사저널

만화의 대세는 이제 ‘병맛’이다

느닷없는 설정·황당한 스토리 등 새로운 웃음 코드로 무장한 웹툰 큰 인기…이말년·주호민 등 ‘주목’

김진령 ㅣ jy@sisapress.com | 승인 2010.05.11(Tue) 19:24: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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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맛 만화’라는 것이 있다. 10~20대는 열광하고 30대 일부는 동조하면서 킥킥거리고 대개의 40대로부터는 ‘이뭐병’(이것은 무슨 병신 같은)이라는 반응을 얻는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병맛’은 인터넷 유행어로 ‘병신 같은 맛’ 정도로 해석된다. 요즘 인터넷 만화계(웹툰)에서 ‘병맛의 꼭대기’(?)라는 찬사를 듣는 ‘이말년’ 작가(본명 이병건)는 “아버지가 재미있다고 칭찬하는 만화는 올리면 꼭 망한다”라고 말했다. 세대 간의 웃음 코드가 달라진 것이다.

   
▲                                        ⓒ조석 마음의 소리

병맛 만화는 ‘기승전병’이다. 기승전결(起承轉結) 대신 병맛으로 끝난다. 전통적인 내러티브는 박살났다. 상황 설정도 느닷없고 언제, 어디서, 어떻게 진행될지 도통 감을 잡을 수 없는 패러디와 냉소로 점철되어 있다. 그런 것을 보면서 요즘 네티즌은 웃는다.

이런 식의 웃음 코드는 <웃음을 찾는 사람들(웃찾사)> 같은 개그 프로그램이나 <무한도전> 같은 텔레비전쇼에서 확인할 수 있다. 병맛 만화의 주 소비층에게서 열렬한 지지를 받았던 <지붕 뚫고 하이킥>에서 주인공이 한창 사랑놀음을 하다가 느닷없이 교통사고 사망을 암시하는 것으로 끝났을 때 네티즌들은 ‘병맛 결말’이라고 정의했다. 하재근 대중문화 평론가는 “밑도 끝도 없이 ‘알래스카의 김상덕씨를 찾아라’라는 설정을 해놓고 알래스카에 유재석과 노홍철, 정형돈을 던져놓은 <무한도전>의 김상덕 에피소드는 ‘병맛 코드’와 맥을 같이한다”라고 설명한다.


병맛 만화의 모태는 웹툰이다. 웹툰 시장은 출판만화 시장이 무너지고 만화의 포털 사이트 소비 시대가 열리면서 생겨난 장르이다. 클릭해서 보는 웹툰은 마우스의 스크롤바 길이만큼 짧게 진화되었다. 몇 장씩 넘어가는 서사체의 극만화 시대는 종말을 맞이했다.

다음과 엠파스의 출판만화 스캔 서비스로 시작된 웹툰 시대는, 2005년 네이버가 뒤늦게 뛰어들면서 창작 만화 위주의 서비스로 승부를 걸면서 자리를 잡았다. 수많은 아마추어 만화가들이  웹 게시판에 작품을 올리고 이 가운데 반응이 좋은 것은 포털 사업자와 계약을 맺고 연재되기 시작했다. 작가들의 등용 방식이 완전히 바뀐 것이다. 만화기획가인 이재식 씨앤씨레볼루션 대표는 “기존 출판만화 세대의 작가들이 웹 시대에 들어 머뭇거리는 사이 웹 게시판에 익숙한 새로운 세대들이 쏟아져 들어왔다. 전문적인 만화 교육을 받지 않은 이들은 극화 능력이 미숙했다. 그러다 보니 간단한 그림체에 일상 속의 소재를 택한 일기체, 생활 에세이류의 만화를 대거 쏟아냈다”라고 분석했다.

포털의 만화 게시판과 디씨갤러리의 카툰 연재 갤러리는 수많은 웹툰 작가의 모태이다. 요즘 웹툰을 대표하는 <짬>의 주호민(30), <마음의 소리>의 조석(28), 이말년 시리즈의 이말년(28)이 그런 경우에 속한다. 2005년 스투닷컴 홈페이지에 생활 에세이류의 군대 후일담 <짬>으로 데뷔한 주호민은 후속작 <무한동력>에서 루저 코드를 본격적으로 끌어들였다. 여기서 한 발짝 더 나아간 것은 조석의
<마음의 소리>이다. <마음의 소리>에는 소심하고 조신한 오프라인의 작가를 대신하는 ‘조석’이라는 캐릭터가 만화 속에서 ‘찌질함, 루저, 황당, 반전’이라는 병맛 코드로 포효한다. 군에서 제대한 뒤 휴학 중이던 조석은 2006년 7월, 자신의 블로그에 만화를 그려 올린 것이 네티즌의 눈에 띄어 네이버 만화란에 돈을 받는 작가로 데뷔했다. 그는 웹툰 출신 작가 가운데 가장 많은 고료를 받는 작가로 꼽힌다. <마음의 소리>는 초창기 생활 만화로 분류되었지만, 요즘에는 병맛 만화라는 다른 장르로 구분된다. 3등신의 한계를 뛰어넘는 등장  인물의 추레한 외모와 궁상맞음, 예측불허의 반전, ‘사소한 정의’에 대한 내부의 불 같은 분노에 비례해 표출되는 비굴함 등 요즘 병맛 만화의 코드로 꼽히는 요소를 두루 갖추었다. 그는 “내 만화도 처음에는 엽기 만화, 괴짜 만화라고 불렸지만, 요즘에는 더 괴이하고 강도 높은 병맛이 많아져서 어느 순간 양순한 만화가 되었다”라고 말했다.     

요즘 병맛의 대세는 이말년 시리즈이다. 조석과 이말년은 동갑이고 이들은 ‘별로 친한 사이가 아니다’라고 말하지만 상대의 작품에 대해 키득거리며 열광하고 있다. ‘말년’은 여성을 비하하는 표현이 아니라 ‘말년 병장처럼 살고 싶다’라는 뜻으로 작가가 직접 지은 이름이다. 

담배 꽁초를 버스 요금통에 집어넣어 불을 낸 청년이 밑도 끝도 없이 ‘가자, 청와대’를 외치고 아이들은 연기를 내뿜는 버스를 여름철 방제차인 줄 알고 따라다니다가 버스는 결국 청와대 앞 XX산성을 들이받아 승객 전원 사망이라는 ‘병맛 결론’을 내린 이말년의 <불타는 버스> 편은 병맛의 최고봉으로 꼽힌다. 이 만화를 보고 정치적으로 해석해 고개를 끄덕거리거나 화를 내는 사람은 키득거림의 대상으로 전락된다. 이말년은 “독자의 해석에 관여하지 않지만, 농담이다”라고 설명했다. 지하철 1호선 직통 열차와 일반 열차가 레이싱을 벌이고 시바신에게 ‘시바 시바’ 하는 욕인지 주문인지 모를 대사를 맡기는 <이말년 월드>에 심각하게 반응하면 지는 것이다.

“특정 이슈에 대해 불쑥 폭발하는 요즘 네티즌 정서와 일맥상통”

이런 반전과 허무함, 루저의 찌질한 일상, 거친 표현으로 대변되는 병맛 코드는 요즘 웹툰에서는 장르를 가리지 않고 널리 차용되고 있다.

1990년대 출판만화에서 시작해 웹툰에서도 성공적으로 안착한 박성훈 작가(39)는 요즘 <달마과장>으로 인기가 높다. 그는 “회사 내 이기심이나 가족 내 이기심을 풍자적으로 다루고 싶었는데, 오히려 사람들이 그런 찌질한 캐릭터에 공감하고 있다”라고 전했다. 무료 일간지에 연재되는 그의 만화의 주독자는 20~40대까지로 독자층이 좀 더 넓다. 그는 주5일 연재를 할 때 1회는 누구나 공감할 수 있는 내용으로, 1회는 슬랩스틱 유머로, 나머지 3회는 반전과 루저 같은 병맛 코드의 유머를 채택하고 있다고 밝혔다.

   
ⓒ주호민 신과 함께

  지면 만화의 막차 세대이자 웹툰 1세대이기도 한 최훈 작가(39·MLB카툰, 프로야구 카툰)는 “트렌드가 병맛인 것은 분명하다. 전혀 상상할 수 없는 곳에서 재미를 이끌어낸다. 기본적으로 그런 감성을 갖고 있지 않는 한 구사하기 쉽지 않은 유머이다. 내 나이 또래에서는 이해하지 못하는 독자도 많다”라고 말했다.   

문화 쪽의 코드는 공감하면 번지는 것이지 학습한다고 유행이 되는 것은 아니다. 요즘 병맛 코드는 확산 일로이다. 이에 대해 하재근 대중문화평론가는 “병맛 만화를 관통하는 정서는 루저 정서이다. 굉장히 찌질하고 일상의 작은 것에 일희일비하고 냉소적이고, 그러면서 특정한 이슈나 어떤 불의에 대해 갑자기 폭발하고 이런 것들이 요즘 네티즌의 정서와 일맥상통한다. 네티즌이 그런 만화에 많이 공감하고 있다”라고 설명했다.

 디씨질’로 쌓은 유머 내공 

 
ⓒ시사저널 이종현
이말년 작가와

이말년 작가와

 

이말년 작가와

 

이말년 작가와

 

이말년 작가와  이말년 시리즈의 캐릭터는 눈만 닮았다. 찌질하게 생긴 캐릭터와 달리 작가는 멀끔하게 잘생겼다. 게다가 ‘내성적이고 온순하다’라고 자신을 소개했다. 작업은 혼자 골방에서 한다. 대학에서 시각디자인학을 전공했지만, 만화는 독학했다. 군에서 제대한 뒤 학과 공부가 재미없어 2006년 1월 휴학한 뒤 자칭 타칭 ‘인터넷 폐인들의 집합소’로 불리는 디씨인사이드에서 하루 7시간 이상씩 ‘디씨질’을 하면서 온갖 짤방(사진)과 독설, 야설을 두루 섭렵했다. 거의 모든 요즘 유행어와 농담의 시원지인 그곳에서 네티즌의 유머 코드를 몸으로 체득한 셈이다. 그 내공을 바탕으로 디씨갤러리 자유게시판에 8회쯤 만화를 올렸을 때 그는 야후의 만화 담당자로부터 연락을 받았다. 그렇게 해서 돈을 받고 연재하는 작가가 되었다. 2009년 1월, 이말년 시리즈 1편 <불타는 버스> 편부터 홈런을 치면서, 그는 병맛의 최고봉이 되었다. 귀찮아서 서울 나들이도 안 하는 그는 안산 붙박이이다. 아이디어는 거리 산책을 하면서 다듬는다. 안산시에는 단원 김홍도를 기리는 단원구가 있다. “나중에 말년구가 생길지 알아요?”라며 그는 유쾌하게 웃었다.

 

 

 ‘한 우물 파는’ 전문가 만화도 붐

최근 웹툰의 경향  중 하나는 이른바 전문가 만화가 늘어나고 있다는 점이다. 대학에서 영어를 전공하고 일본에 4년간 만화 유학을 다녀온 최훈 작가의 <MLB카툰>이나 <프로야구>는 네이버 스포츠 뉴스 섹션에 걸려 있다. 프로야구팬들은 최작가의 야구 지식과 만화 센스가 결합된 그의 작업물에 열광한다. 최 작가는 “내가 야구를 좋아해서 그리게 되었다. 만화를 그리다 보니 선수나 감독도 만나게 되고, 관계자들도 취재하다 보니 전문가가 되었다”라고 말했다. 그는 지난 WBC 대회 때는 해설자로 나서기도 했다.

   
▲                                                                                                           ⓒ최훈

   이 밖에도 현역 경찰인 강현주 경장이 그리는 경찰 이야기인 <뽈스토리>나 미술교사였던 신의철이 그린 <스쿨홀릭>도 생생한 현장감으로 인기를 얻었다. 신의철은 지난해 교사직을 그만두고 전업 작가의 길을 걷고 있다. 대학에서 고미술사학을 전공한 호연(필명) 작가의 <도자기>도 네티즌에게 인기를 끌었다.

전문가 만화 붐에 대해 이재식씨(만화 기획자)는 “웹툰의 긍정적인 효과이다. 열린 공간인 웹에서는 만화가가 되는 진입 장벽이 낮기에 전문적 지식인이 가세하기 쉽다”라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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