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숨은 표’ 현상은 계속되려나
  • 이철희 | 한국사회여론연구소 컨설팅본부장 ()
  • 승인 2010.05.25 18: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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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추어진 ‘10~15%’의 표심, 여론조사에 반영되지 않는 경우 많아…신뢰성 논란 불씨 돼

어지럽다. 이 조사 다르고, 저 조사 다르다. 도대체 종잡을 수가 없다. 선거 여론조사를 두고 말들이 많다. ‘조작의 수단’에서부터 ‘민주 사회의 신’이라는 주장까지 신뢰하는 정도가 극과 극이다. 아예 조사(調査)가 아니라 조사(操詐, manipulation & deceit)라고 말하는 극도의 폄하도 없지 않다.

일본에서 이런 조사 결과가 나온 적이 있다. 2003년 특정 지역을 대상으로 고이즈미 내각의 지지율을 물었다. 한 조사에는 지지율이 44.5%, 비(非)지지율이 46.3%였다. 그런데 다른 조사에서는 지지율이 58.0%, 비지지율이 29.0%로 나타났다. 앞의 조사에서는 격차가 1.8% 포인트 차이인데, 뒤의 그것은 29% 포인트이다. 차이가 발생한 까닭은 단순했다. 앞의 조사는 아사히 신문 구독자를 대상으로, 뒤의 조사는 요미우리 신문 구독자를 대상으로 한 것이었다. 샘플이 달랐기 때문에 이처럼 큰 오차가 발생하는 것이다. 이 사례처럼 극단적이지는 않지만, 조사의 난점이 빚어내는 소소한 오류는 결코 적지 않다.  

▲ 5월20일 경남 창원시청 앞에서 한나라당 지방선거 필승을 위한 출정식이 열린 가운데, 이달곤 경남도지사 후보(가운데)가 로고송에 맞춰 춤을 추고 있다. ⓒ연합뉴스

더 심각한 것이 있다. 어떤 선거에 후보가 두 명 출마했다. P기관이 A후보와 B후보의 지지율을 조사했다. 결과는 각각 33.1%와 28.1%로 나타났다. 이 결과를 가지고 A후보가 앞서고 있다는 결론을 얻을 수 있을까? 없다. 표본 오차 때문이다. 이 조사의 샘플 수는 1천명이었다. 따라서 표본 오차는 ±3.1이다. A후보의 지지율은 30.0~36.2% 사이에 있다. B후보의 지지율 구간은 25.1~31.2%가 된다. 여기서 포인트는 경우에 따라 B후보가 앞선다고 할 수도 있다는 점이다. 따라서 중간점(median point)에 불과한 수치를 가지고 우열을 단정하는 것은 그 자체로 매우 위험하다. 좋게 보면 모험이고, 나쁘게 보면 왜곡이다. 이런 점을 감안하면 여론조사를 수치 게임으로 보는 것은 잘못이다. 여론조사의 키워드는 추세(trends)이다. 고려할 것이 또 있다. A와 B의 후보 지지율을 읽을 때는 ‘모름·무응답’을 고려해야 한다. P기관 조사에서 모름·무응답층은 38.8%였다. 이 정도의 규모이면 모름·무응답층이 성패를 좌우한다. 이들이 어떤 결정을 하느냐에 따라 A와 B의 지지율, 나아가 결과가 달라진다. 그러니 현재의 지지율 구간 중에서 특정 수치만 가지고 누가 앞선다고 하는 것은 애당초 무리이다. 피해야 할 일이다. 

최근 이른바 ‘숨은 표’ 논란이 끊이지 않고 있다. 사실 오래된 논란이다. 최근에 다시 불거지게 된 까닭은 지난해 10월 재·보궐 선거 때문이다. 여론조사에서 뒤지던 수도권의 민주당 후보가 결과에서 이겨버린 것이다. 선거를 한참 앞둔 시점의 조사가 아니라 투표 직전에 실시한 조사와 선거 결과가 달랐으니 숨은 표가 있다는 주장의 근거는 충분하다.

숨은 표에 대해서는 이론적 근거도 제시되어 있다. 노엘레 노이만(Noelle-Neuman)이 제시한 ‘침묵의 나선’(spiral of silence) 이론이다. 대개의 경우 보통 사람들은 자신의 생각이 다른 사람들과 비슷할 경우 적극적으로 의사를 밝히나, 그렇지 않을 경우에는 꺼린다는 것이다. 다수 의견이 소수 의견을 짓누르는 결과로 빚어지는 현상이라고 이해할 수 있다.

우리나라의 경우, 특히 매우 많은 수가 나오는 지방선거와 총선에서는 이런 현상이 더 심각할 수 있다. 우선 후보 대다수가 너도나도 여론조사를 이용하다 보니 건성으로 대답하기 쉽다. 또, 조사 기관에 대한 신뢰가 없는 탓에 진심을 드러내는 데 주저하게 된다. 대개 튀지 않고 ‘정답’을 말하려는 소통 문화도 작용한다. 숨은 표가 생길 수 있는 가능성에서 가장 심각한 것은 표본 추출에 있다. 대개의 여론조사는 일반 전화를 이용한다. 그런데 우리나라 총 가구 가운데 전화번호부에 등재된 가구 수는 60%가 안 된다. 40%가 넘는 가구가 아예 대상에서 원천 제외되어 있는 것이다. 또, 여론조사가 거의 대부분 평일 낮에 이루어지기 때문에 일부 계층의 의사가 과잉으로 대표될 수 있다. 미국의 연구에 의하면, 노인이나 여성 등의 의사가 그들이 차지하는 인구통계학적 비중보다 높게 대표된다고 한다.

▲ 공식 선거운동이 시작된 첫날인 5월20일 김두관 무소속 야권 단일 경남도지사 후보가 마산 어시장에서 선거운동원들과 함께 자신의 기호 7번을 알리고 있다. ⓒ연합뉴스

오해·착시나 투표율 요인에 따른 착오 가능성도 
 
오해나 착시 현상도 있다. 구간으로 읽지 않는 데서 발생한다. 표본 오차가 ±3.5인 경우, 실제 득표에서는 중간점을 기준으로 한 후보는 +3.5% 포인트, 다른 한 후보는 -3.5% 포인트의 지지율을 얻을 수도 있다. 따라서 두 후보 간에는 7% 포인트의 격차가 생길 수 있는 것이다. 이런 경우는 조사 결과가 틀린 것이 아니다. 하지만, 앞에서 언급한 B후보가 이기는 것이 애당초 가능했음에도 발표한 중간 수치만 생각하다 보니 마치 뒤바뀐 것처럼 비치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투표율 요인도 있다. 전체 투표율의 높낮이를 말하는 것이 아니라, 계층이나 집단, 출신이나 성향별로 투표율이 다르게 나타나는 것이다. 여론조사는 인구통계학적 구성에 맞추어 샘플을 구성한다. 그러나 실제 투표장에 나오는 사람들은 그렇지 않다. 단적인 예로 유권자 비율로 보면 20~30대가 50~60대 이상에 비해 훨씬 많지만, 투표자 비율로 보면 그렇지 않다. 거의 대등한 규모가 된다. 그래서 투표 적극 참여층을 대상으로 조사를 실시하기도 하지만 그것도 한계가 있다. 

문제는 규모인데, 정확하게 알 도리는 없다. 경험칙에 맞춰 가늠해볼 수밖에 없는 셈이다. 지난해 재·보궐 선거의 수도권 지역에서는 10% 안팎은 되는 것으로 나타났다. 선거 전 여론조사에 비해 10% 포인트 오른 득표율을 보였기 때문이다. 하지만 전국 단위의 큰 선거에서는 이보다 다소 줄어들 것이다. 숨은 표를 낳은 요인들이 작동하는 정도가 많이 약해지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야권의 후보를 지지하는 표들이 여론조사 지지율보다 더 높게 나오는 ‘숨은 표’ 현상은 이번 선거에서도 여전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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