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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짜릿함’ 사라지면 애정도 식고 마는가

영화 <스피드> 속 사랑을 통해 본 강렬한 스릴과 사랑의 상관관계

전우영 | 충남대 심리학과 교수 ㅣ 승인 2010.05.31(Mon) 19:32: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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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have to warn you. I’ve heard relationships based on intense experiences never work.” 영화 <스피드>의 마지막 장면에 기적적으로 살아남은 잭(키아누 리브스)이 애니(산드라 블록)에게 키스하면서 했던 대사이다. 잭에 원한이 있던 페인(데니스 호퍼)은 로스앤젤레스 시내버스에 폭탄을 장치해놓고 잭에게 전화를 건다. 버스가 속도를 시속 50마일(약 90km) 이하로 줄이면 자동적으로 폭파되고, 누구라도 탈출을 시도하면 원격 조정 장치로 버스에 설치된 폭탄을 터뜨릴 수 있다. 승객을 구하기 위해서 잭이 가까스로 달리는 버스에 올라타고, 버스를 운전하던 기사가 총을 맞고 쓰러지자 승객 중 한 명이었던 애니가 버스 운전대를 잡으면서 영화는 엄청난 속도로 질주하기 시작한다. 1994년에 만들어졌지만, 지금 다시 봐도 처음부터 끝까지 손에 땀을 쥐게 하는, 영화에서 스피드를 느낀다는 것이 무엇인지 실감케 해주는 영화이다. 많은 액션영화의 끝이 그렇듯이 처음 만나서 죽음의 고비를 넘기고 살아남은 두 남녀 주인공은 첫 키스를 하면서 사랑에 빠지게 된다. 다른 액션영화의 결말과 조금 차이가 있다면, 키스를 하던 남자 주인공이 느닷없이 이런 식으로 시작한 관계는 오래가지 못한다고 여자 주인공에게 경고한다는 것이다. 과연 강렬한 스릴을 함께 경험하는 과정에서 사랑을 시작한 사람들이 끝까지 잘되기는 힘든 것일까? 

 

   

 

■ 사랑의 감정을 느끼게 하는 두 가지 심리적 요인

사람들이 어떻게 사랑을 포함한 다양한 감정이나 정서를 느끼게 되는지를 설명하는 심리학의 이론 가운데 하나는 ‘2요인 이론’이다. 이 이론에 따르면, 우리가 특정 감정이나 정서를 느끼기 위해서는 두 가지 요인이 필요하다고 한다. 그중 하나는 신체적인 각성이다. 각성은 우리가 흔히 흥분했을 때 경험하게 되는 일종의 생리적인 변화이다. 각성이 증가하면 가슴이 두근거리고, 호흡이 가빠지며, 손과 발에는 땀이 나게 된다. 정서를 느끼기 위해 필요한 또 다른 요인은, 이러한 각성에 대한 인지적인 해석이다. 내 가슴이 왜 두근거리는지에 대해 일종의 명칭을 부여하는 과정이 필요한 것이다. 예를 들어, 당신이 앞에 있는 누군가와 눈이 마주쳤는데, 가슴이 두근거리기 시작했다고 하자. 그런데 자세히 보니 그 사람은 바로 오래전에 헤어졌던 당신의 첫사랑이었다. 어떤 감정이 들까? 아마도 당신은 당신의 가슴 두근거림이 그(녀)에 대해 아직도 남아 있는 사랑의 감정 때문이라고 생각하게 될 것이다. 하지만 만약 눈이 마주친 상대가 검은색 양복에 깍두기 머리를 한 상당한 덩치의 남성이었다고 생각해보자. 이 ‘조폭스러운’ 남성이 팔짱을 낀 채 당신을 지긋이 노려보고 있었던 것이다. 과연 이 경우에도 가슴 두근거림이 사랑의 감정 때문이라고 생각할 수 있을까?

■ 조폭이나 첫사랑이나 가슴을 뛰게 하는 것은 마찬가지

2요인 이론에 따르면, 우리가 경험하게 되는 신체적인 각성은 첫사랑과 눈이 마주쳤을 때나 조폭과 눈이 마주쳤을 때나 거의 비슷하다고 한다. 즉, 조폭이나 첫사랑이나 가슴을 뛰게 하는 것은 마찬가지라는 것이다. 동일한 생리적인 변화를 우리가 인지적으로 어떻게 해석하느냐에 따라 어떤 경우에는 사랑의 감정을 느낄 수도 있고, 다른 경우에는 공포를 경험할 수도 있다는 것이다. 따라서 인지적인 해석은 생리적 각성을 해석하고 의미를 부여하는 기능을 담당한다. 즉, 우리가 경험하는 감정이나 정서의 종류가 무엇인지를 결정하는 것이다.

반면, 신체적인 각성은 우리가 경험하게 되는 감정이나 정서의 강도를 결정한다. 만약 어떤 이성을 만났을 때는 가슴이 살짝 설레기만 하는데, 다른 이성을 만났을 때는 가슴이 쿵쾅거린다면, 가슴을 쿵쾅거리게 만든 이성에 대해 더 큰 사랑의 감정을 느끼게 되는 것이다. 물론 조폭의 경우에도 가슴이 살짝 두근거리는 때보다 가슴이 쿵쾅거리는 경우에 더 큰 공포의 감정을 경험하게 된다.

그런데 자신의 신체적 각성이나 흥분의 원인이 무엇인지 정확하게 파악하는 것이 생각하는 것만큼 쉽지는 않다. 그 이유는 신체적 각성이 증가했을 때 나타나는 신체적인 변화는 거의 동일한 데 반해, 신체적인 각성을 유발하는 원인은 너무나도 다양하기 때문이다.

흥미로운 것은 자신의 신체적 각성의 원인을 잘못 파악한 결과 실제보다는 더 강렬한 감정에 휩싸일 수 있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놀이동산에서 바이킹을 탔기 때문에 증가한 가슴 두근거림을 바이킹을 함께 탄 남자친구나 여자친구 때문이라고 생각하게 되면, 상대방에 대한 사랑의 감정이 바이킹을 타지 않았을 때보다 더 커지게 되는 것이다.

한 연구에서는 남자 대학생들에게 약 2분간 트레드밀에서 달리기를 시킨 다음에 매력적인 여성의 사진을 보여주고 사진 속의 여성이 얼마나 매력적인지, 그리고 실제로 기회가 온다면 사진 속의 여성과 데이트를 하고 싶은 마음이 어느 정도인지 물어보았다. 결과에 따르면, 달리기를 하지 않았던 대학생들보다 달리기를 한 다음에 사진을 본 대학생들이 사진 속의 여성을 더 매력적으로 지각하고 데이트를 하고 싶은 욕구도 더 강한 것으로 나타났다. 달리기에 의해서 증가된 각성이 사진 속의 여성에 대해 참가자들이 가지고 있던 호감의 정도를 더 강화시킨 것이다.

따라서 영화 <스피드>에서처럼 강렬한 사건을 함께 경험하면서 사랑을 시작하는 사람들의 경우에는 사랑의 감정을 실제보다 과대 지각한 상태에서 관계를 시작하게 될 가능성이 크다. 사랑과는 무관한 엉뚱한 원인에 의해서 발생한 가슴 두근거림을 사랑 때문이라고 잘못 해석한 상태에서 관계가 시작되는 것이다. 이러한 오해 덕분에 불같은 사랑 또는 운명적 사랑에 빠지기도 한다.

하지만 오해에서 시작된 관계가 오래 지속되기는 쉽지 않다. 키아누 리브스의 대사가 말해주듯이 강렬한 경험에서 비롯된 각성을 상대방에 대한 자신의 사랑의 감정이라고 잘못 판단한 상태에서 시작된 사랑은 곧 그 실체를 드러내게 된다.

■ 같이 뛰는 사랑이 더 오래 간다

하지만 이미 상대방에 대한 사랑이 충분히 확인된 커플이라면, 생활 속에서 건전한 방식으로 각성을 증가시킬 수 있는 방법을 찾는 것은 관계를 더 강화시키는 데 도움이 될 수 있다. 가장 추천할 만한 것은 함께 운동을 하는 것이다. 운동은 혼자 할 때는 신체의 기능을 강화시켜주지만,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하면 사랑의 감정을 강화시켜준다. 사랑하는 여자가 겨울에 춥다고 하면, 고대생은 자기 옷을 벗어주고, 연대생은 안아주는데, 육사 생도는 일어나서 “같이 뛰자”라고 한다는 오래된 우스갯소리가 있다. “같이 뛰자”라는 발상에 많은 사람이 웃음을 터뜨리고는 했는데, 만약 이미 서로 사랑하고 있다면, 그 사랑을 더 단단하게 하는 데 함께 뛰는 것만큼 좋은 것이 없을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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