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협은 가깝고 대화는 멀어…‘전쟁 먹구름’ 덮치는 중동
  • 조홍래 편집위원 ()
  • 승인 2010.05.31 19: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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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스라엘, 대이란 가상 전쟁 훈련 돌입…미국도 비밀 군사 작전 확대한 것으로 밝혀져

천안함 사태로 남북 긴장이 고조되는 가운데 이스라엘이 이란과의 전쟁을 가상한 모의 전쟁 훈련에 들어가는가 하면, 미국은 중동에서의 비밀 특수 작전을 확대하는 등 이란 핵과 북한의 도발을 둘러싸고 중동과 동북아에 긴박한 기류가 흐르고 있다. 또한, 오바마 행정부는 대화를 통한 외교로는 테러 위협을 제거하는 데에 한계가 있다고 판단해 군사력에 의존하는 쪽으로 선회했다.  

▲ 이스라엘 군인들이 모의 전쟁 훈련을 하고 있다. 최근에는 이란과의 전면전을 전제로 하면서 훈련 내용이 달라졌다. ⓒEPA

이스라엘이 이란 핵시설을 공격할 것이라는 뉴스는 몇 년 전부터 나왔으나 이란과의 전면전을 전제로 한 전쟁 게임을 시작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5월16일 텔아비브 북방 군 진지에서 실시된 이 훈련에는 전직 장성과 외교관들이 대거 참석했다. 이스라엘은 이란이 2011년 핵을 보유할 것으로 보고, 이에 대한 모든 옵션을 검토 중이다. 정부가 운영하는 부처 간 통제센터(IDC)에 모인 20개 팀은 이란의 핵 보유를 선제 차단하되 이에 실패할 경우 핵 시설을 파괴하는 시나리오를 실행했다.

모의 시나리오에 따르면 이란은 스스로 핵 보유를 선언한 다음 이스라엘을 직접 공격하기보다는 레바논 내 친이란 무장 단체 헤즈볼라를 시켜 이스라엘에 미사일 공격을 감행한다는 것이다. 이란은 헤즈볼라에게 방사능 폭탄(dirty bomb)을 제공해 초기 단계의 방사능 폭탄을 개발하고 이를 이스라엘에 투하할 계획이다. 따라서 이스라엘-이란 전쟁은 일단 레바논의 헤즈볼라와의 사이에서 시작될 가능성이 크다. 이란에 적대적인 다수 아랍 국가들은 이스라엘의 모의 훈련을 전폭 지지했다.

이란 핵을 눈엣가시로 간주하는 미국은 헤즈볼라가 이스라엘을 공격할 경우 이란과의 전면전 개시를 정당화하는 구실로 삼을 듯하다. 일단 전쟁이 개시되면 미국은 외교적으로는 대화를 강조하면서 이스라엘에 은밀히 미군을 파견하는 한편, 헤즈볼라와의 전쟁에 유엔 안보리 상임이사국들을 개입시키는 외교 노력도 병행한다. 이번 훈련에서 오바마 대통령 역할을 맡은 전 이스라엘 주재 미국대사 댄 커처는 이른바 ‘더러운 폭탄’에 대한 훈련  성과에 만족한다고 말했다. 국내 테러 그룹과 싸우고 있는 중국과 러시아도 테러 조직의 수중에 문제의 폭탄이 들어가는 것을 경계하는 입장이다.

헤즈볼라에 대한 이란의 무기 공급이 자칫 그 한계를 넘어  레바논의 핵 무장으로 이어질 경우 이란의 우방 시리아를 자극할 우려가 있다. 이 훈련에서 이란 최고 지도자 알리 하메이니 역을 맡은 전 이스라엘 정보 책임자 아론 지비 파르카시는 이스라엘이 사실상 핵을 보유한 마당에 이란의 핵폭탄은 자위 수단일 뿐이라고 말했다. 이에 대해 이스라엘 우파 정부는 자체 핵 보유를 부인하면서 이란의 핵 보유는 치명적 위험이라는 입장을 견지했다. 이스라엘은 미국이 어떤 수단을 쓰든 이란의 핵 보유를 저지하라고 촉구했다.

이스라엘은 가상 전쟁 게임과 함께 대규모 민간 방어 훈련도 시작했다. 이런 움직임에 대해 인접국들은 즉각 전쟁 준비가 아니냐는 의문을 제기했다. 벤야민 네탄야후 총리는 주례 각의에 앞서 기자들에게, 전부터 해 오던 연례 훈련이며 어떤 예외적인 상황이 발생하지는 않았다고 말했다. 4일간 계속되는 이 훈련은 올해로 네 번째이다. 이 훈련을 통해 이스라엘 군과 민·관계 당국은 전시 대비 태세를 점검한다. 이스라엘은 이미 2006년 헤즈볼라와 1개월간 전쟁을 치른 바 있다.

사드 하리리 레바논 총리는 카이로에서 팔레스타인과 평화를 모색하는 민감한 시기에 그런 훈련을 하는 것은 중동 평화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비난했다. 레바논은 이스라엘의 전쟁 게임을 공격 행위로 간주하고 전군에 비상을 내렸다. 훈련은 전국에 사이렌을 울려 비상시 시나리오의 작동을 시험하는 식으로 이루어진다.

▲ 지난 4월14일 미국 워싱턴에서 열린 이란 핵 관련 회의에서 윌리엄 번즈 국무부 정무차관(맨 왼쪽)이 이란에 대한 유엔의 추가 제재 계획을 설명하고 있다. ⓒAP연합

미군, 정보기관에 의존해 온 정책 폐기하고 군의 독자 활동 범위 넓혀

 뉴욕타임스는 5월25일 미국이 중동에서 비밀 군사 작전을 확대했다고 보도했다. 이 작전은 이란, 사우디아라비아, 소말리아 등에서 알카에다와 무장 세력들의 정보를 수집하고 필요에 따라 특전사 병력으로 하여금 이들을 궤멸하는 임무를 수행하기 위한 것이다. 중동 지역 미군사령관 데이비드 페트레우스 장군이 지난해 9월에 승인한 이 극비 작전은 미군 특전사 병력을 중동, 중앙 아시아, 아프리카 남단의 우방과 적대국에 동시에 침투시켜 정보를 수집하고 현지 군과 유대를 구축한다. 이 극비 작전 명령은 또한 이란의 핵 보유가 확실해질 경우 필요한 정보를 모아 군사 작전을 할 수 있는 여건을 조성하도록 되어 있다.

이런 류의 극비 작전은 부시 행정부 시대에 일부 승인된 바 있으나 비전투 지역에 국한된 것이었다. 반면, 새 작전 계획은 좀 더 조직적이고 장기적이라는 점에서 다르다. 작전의 기본 목적은 미군이나 현지 군이 미래의 작전을 위해 ‘침투·교란·저지·파괴’ 임무를 수행하는 것이다.

미국은 극비 작전을 확대하는 과정에서 과거처럼 중앙정보국(CIA)이나 기타 정보 기관에 지나치게 의존하는 정책을 폐기했다. 이 명령은 소규모 병력으로 중동의 테러 그룹이나 위협 세력에 관한 정보 취약성을 보완하는 의미도 갖고 있다.

그러나 이 작전에는 위험성이 따른다. 예를 들면, 이미 미국에 동조적인 사우디아라비아나 예멘 같은 나라와 긴장을 조성할 수 있다. 특히 이란이나 시리아 같은 적대국을 자극할 우려도 있다. 또한, 적성국에 침투한 미군이 체포되는 경우도 배제할 수 없다.

미국 국방부는 오바마 대통령이 이란 공격을 명령할 경우에 대비해 구체적인 작전 계획을 마련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지난해 9월30일 서명된 7쪽 분량의 이 명령에 따라 예멘 주둔 미군은 3개월 후 증원되었다. 특전사 병력은 아라비아 반도의 알카에다 세력을 해체하기 위해 예멘군과 합동 작전을 펴는 한편, 1억5천5백만 달러의 예멘군 장비 현대화 작업에도 착수했다.

극비 작전 명령은 재래식 방식이나 이라크 및 아프가니스탄에 국한된 재래식 군사 작전으로는 목적 달성이 어렵다고 보고 미군의 군사 활동 범위를 세계로 확대하는 전략에서 고안되었다. 이 작전은 CIA의 다른 비밀 작전과는 달리 대통령의 재가가 필요하지 않으며, 의회에 보고할 의무도 없다. 다만, 국가안보회의의 승인은 받는다.

이스라엘의 가상 전쟁 게임과 미국의 극비 작전 명령은 한반도 긴장과 맞물리면서 오바마 대통령의 세계 전략에 변화가 있음을 예고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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