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 체제 떠받치는 ‘비밀 돈줄’
  • 김지영 기자 (young@sisapress.com)
  • 승인 2010.05.31 19: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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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 최대 외화 벌이 창구 ‘노동당 39호실’, 무기 수출 등 관여하며 김정일 사금고 구실 / 미국의 금융 제재 타깃 될지 ‘주목’

천안함 사태로 남북 간 긴장 대치가 갈수록 심화되는 가운데 미국이 ‘또’ 북한 돈줄 죄기에 나서 주목된다. 지난 5월25일 미국 하원이 대북 결의안을 거의 만장일치로 통과시킨 데 이어, 샘 브라운백 공화당 상원의원이 2005년 마카오 소재 방코델타아시아(BDA)의 북한 계좌에 취해졌던 동결 조치와 유사한 법안을 추진하고 있다. 이른바 ‘제2의 BDA식 금융 제재’에 나서겠다는 것이다.

미국은 2005년 9월 마카오 소재 BDA에 예치된 북한 돈 2천4백만 달러를 동결하면서 북한을 상당히 곤혹스럽게 했다. 당시 BDA에 예치되었던 괴자금은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의 통치 자금이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이는 김위원장의 비자금을 조성·관리하는 ‘조선노동당 39호실’이 담당하고 있다. 그런데 미국이 또다시 ‘북한 돈줄 죄기’에 나섬에 따라 노동당 39호실에 대한 관심이 증폭되고 있다. 베일에 가려져 있는 노동당 39호실의 실체를 소개한다.

북한의 외화 벌이는 크게 세 곳에서 담당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내각의 무역성과 조선노동당의 ‘38호실’ 및 ‘39호실’ 그리고 인민무력부 정찰총국 등이다. 무역성과 정찰총국에서 벌어들이는 외화는 그리 많지 않다. 북한의 외화 벌이 최대 창구는 39호실이다. 지난해 초 38호실을 통합했다. 통폐합되기 전까지 38호실은 송이버섯 등을 일본에 수출했으며 호텔과 상점, 식당 등을 운영해 외화를 벌어들였다. 반면, 1974년에 생긴 39호실의 사업 영역은 상당히 광범위하다. 대성무역·대성은행 등이 속해 있는 대성총국을 비롯해 강원도 문천금강제련소, 대성타이어공장 등 무려 1백20여 개의 무역회사를 통해 외화를 벌어들이고 있다. 마카오, 베이징, 홍콩, 싱가포르 등 17개 해외 지사가 조직되어 있다. 북한산 금을 마카오에 있는 조광무역을 통해 밀수출하고 있다. 미국 중앙정보국(CIA)은 39호실이 마약 밀매와 ‘슈퍼 노트’로 불리는 위조 달러 제작에도 관여하고 있는 것으로 의심하고 있다. ‘가짜 담배’와 무기 수출에도 관여하고 있으며, 재외 공관을 통해 이른바 ‘충성 자금’을 모으는 작업도 수행한다. 이렇게 해서 벌어들이는 외화가 매년 2억~3억 달러인 것으로 전해졌다.

이 돈의 지출은 전적으로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손에 달렸다. 정광민 국가안보전략연구소 선임연구위원은 “39호실에서 조성한 통치 자금(비자금)은 김위원장 개인이 마음대로 쓸 수 있는 돈이다”라고 말했다. 그렇다면 39호실에서 벌어들인 외화는 어떤 용도로 쓰일까. 출처가 불분명한 ‘검은돈’인 만큼 그 사용처 역시 베일에 가려져 있다. 다만, 북한 소식통과 외신을 종합하면, 대량살상무기(WMD) 개발과 대남 공작비 등으로 지출되며, 김위원장 개인의 비자금 등으로 쓰이는 것으로 추정된다. 일각에서는 금강산과 개성 관광 등으로 현금 지급된 관광 대금 가운데 상당액이 김위원장의 주머니로 들어가는 것으로 보고 있다. 관광 대금을 송금받은 대성은행과 조광무역 등이 모두 39호실 산하에 있기 때문이다. 김대중 정부에서 대북 송금했던 4억 달러도 조광무역을 거쳐 39호실로 흘러들어간 것으로 전해졌다.  

▲ 2010년 2월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함경남도 금야군 원평대흥수산사업소를 시찰할 때 수행한 전일춘의 모습(맨 왼쪽). ⓒ연합뉴스

 김정일 위원장 중학 동창인 전일춘이 실장직 맡아

현재 39호실은 김위원장과 남산고급중학교 동창생인 전일춘이 실장을 맡고 있다. 그는 1980년대 정무원 대외경제사업부 부부장과 대외경제위원회 부위원장 등을 역임했다. 1990년대 중반부터 39호실에서 근무했으며, 올해 초 실장에 올랐다. 그는 지난 3월 출범한 국가개발은행 이사장도 겸임하고 있다. 특히 김위원장의 명령에 따라 외자 유치 창구로 지난해 12월 설립된 조선대풍국제투자그룹(대풍그룹)에도 전일춘은 7명의 이사진 가운데 한 명으로 참여하고 있다. 김위원장의 신임이 얼마나 두터운지를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 한 대북 전문가는 “국제적으로 39호실이 불법 공작을 벌이고 있다는 이미지가 강하기 때문에 대외 이미지 개선 차원에서 국가개발은행을 설립한 것으로 보인다”라고 말했다.   

<시사저널>은 지난 제1075호(6월1일자)에서 ‘정통한 대북 소식통’이 작성한 ‘대풍그룹의 실체’ 문건을 입수해 보도한 바 있다. 이 문건에 따르면, ‘대풍그룹은 임원진 구성에서부터 낙후된 북한 경제 발전을 위한 기업이라기보다는 김위원장의 비자금을 조성하고 국방력 확충 등 체제 유지에 필요한 외화를 확보하기 위한 목적으로 설립되었다’라고 적시하고 있다. 한 대북 소식통은 “전일춘 외에도 대풍그룹 수뇌부에는 김양건 북한 노동당 통일전선부장이 이사장, 원동연 통일전선부 부부장 등이 이사로 참여하고 있다. 국방위원회와 통일전선부 등 군과 공작 기관이 관여하면서 대남 공작과 김위원장의 비자금을 담당하는 인물들이 대거 참여하고 있기 때문에, 대풍그룹이 김위원장의 비자금 창구일 가능성이 크다”라고 밝혔다. 한마디로 전일춘이 ‘김정일의 개인 금고지기’라는 것이다. 김위원장의 전체 비자금 규모를 확인하기는 거의 불가능하다. 

▲ 2005년 미국에 의해 북한 소유의 계좌가 동결되었던 마카오 소재 방코델타아시아. ⓒ연합뉴스

북한 내부뿐 아니라 해외 은행에 분산 예치된 것으로 알려졌기 때문이다. 다만, 지난 3월 영국 일간지 데일리 텔레그라프가 ‘김위원장이 40억 달러를 스위스 은행에서 룩셈부르크의 은행으로 이체했다’라고 보도한 내용을 통해 그 규모를 대략 짐작할 수 있을 뿐이다. 그런데 김위원장의 후계자가 누가 되든지 39호실을 계속 유지할 것이라는 주장이 나와 주목된다. 미국 국방부 산하 전략문제연구소(SSI)가 지난 3월 발간한 ‘북한의 불법적인 국제 활동에 대한 이해’라는 보고서에서 ‘39호실을 핵심으로 한 경제가 북한 전체 경제의 30~40%에 이르고 있다. 김위원장의 후계자가 누구이든 39호실의 안정적 인계가 권력 승계의 가장 중요한 과제이다. 김위원장의 후계자가 39호실을 이용해 북한 지도층을 장악할 수 있다’라고 밝혔다. 정광민 선임연구위원은 “김위원장은 39호실에서 조성된 통치 자금(비자금)을 개인적으로 마음대로 사용하기도 하지만, 핵이나 미사일 개발 등 군 쪽으로도 흘러들어가는 것으로 안다. 미국이 금융 제재에 나설 경우 39호실에 상당한 타격을 줄 것으로 예상된다”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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