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인4색 ‘장외 플레이’의 대결
  • 위원석 | 스포츠서울 기자 ()
  • 승인 2010.06.15 02: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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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조 감독들, 언론 대응 스타일 제각각…허정무 ‘여유’, 마라도나 ‘천방지축’, 레하겔 ‘뻣뻣’

프랑스에는 권위 있는 스포츠 전문 일간지 레퀴프가 있다. 이 신문은 1998년 프랑스에서 열렸던 월드컵을 앞두고 ‘레 블뢰(파란색이라는 뜻으로 프랑스 대표팀의 애칭)’를 이끌던 에메 자케 감독이 영 마음에 들지 않았다. 그래서 자케 감독의 결정마다 시비를 걸었다. ‘선수를 보는 눈이 없다’ ‘감독으로서 기본적인 자질이 의심스럽다’ 정도는 애교였다. ‘프랑스가 (자케의 지휘로) 월드컵에서 우승하면 신문사 문을 닫겠다’고까지 비난의 수위를 한껏 올렸다. 한데 그해 프랑스는 사상 처음으로 월드컵을 들어올렸다. 레퀴프는 결국 사장 명의로 ‘우리가 자케의 능력에 대해 잘못 판단했다. 진심으로 사과한다’라는 반성문(?)을 1면에 실었다. 이 정도로 극단적인 경우는 드물지만 감독과 언론의 마찰은 월드컵의 또 다른 메뉴 가운데 하나이다. 감독이나 선수들도 언론의 엄청난 압박을 이겨내는 것이 개인적인 능력의 하나라고 평가받기도 한다.

 

▲ 그리스전을 앞둔 6월11일 새벽(한국 시간) 허정무 감독이 남아공 포트엘리자베스 갈벤데일 경기장에서 훈련을 마친 뒤 보도진의 질문 공세를 받고 있다. ⓒ연합뉴스

 

‘태극전사’를 이끌고 있는 허정무 감독은 원래 언론과의 관계가 좋은 편만은 아니었다. 2010 남아공월드컵 3차 예선과 최종 예선을 치르는 과정에서 혹독한 비판에 시달려야 했다. 특히 2008년 3차 예선 요르단과의 홈경기에서 이기던 경기를 2-2로 비겼을 때와 그해 9월 최종 예선 북한전에서 무기력한 플레이 끝에 1-1로 무승부를 기록했을 때 비난이 절정에 달했다. 훗날 허감독은 “다른 것은 몰라도 내 이름을 가지고 희롱하는 것만은 참기 힘들었다”라고 털어놓았다. 당시 언론은 ‘허무 축구’ ‘허접 축구’라는 식으로 비아냥거렸다.

허감독은 언론에 대해 ‘불가근 불가원’ 원칙을 고수하는 스타일이다. 언론에 대해서 개인이 할 수 있는 기본적인 서비스는 제공하지만, 속내까지 잘 드러내지는 않는 편이다. 자존심이 강하고 ‘욱하는 성질’이 있는 그답게 언론과 마찰을 빚던 시절도 있었다. 2000년 대표팀을 이끌고 아시안컵에 나섰을 때는 현지 취재진과 언성을 높이며 논쟁을 벌였던 적도 있다. 하지만 이런 것은 옛날 일이다. 요즘은 언론을 대하는 방식이 세련되게 변했다. 그래도 가끔 ‘성격’이 나오는 경우가 있다. 이번 월드컵을 앞두고 오스트리아에서 전지훈련을 할 때의 일이다. 부상에서 재활 중이던 이동국의 발탁 여부를 놓고 언론의 관심이 집중되고, 인터뷰 때마다 비슷한 질문이 반복되자 공개적으로 짜증을 냈다. 그는 “부상 중인 선수 한 명에게만 모든 언론이 관심을 갖는 것은 국가적 낭비이다”라고 직격탄을 날렸다.

남아공에 입성한 뒤에는 오히려 여유를 되찾았다. 예민한 질문에 대해서 기자들이 원하는 속 시원한 답변을 해주지는 않지만, 인터뷰 자체를 거부한 일은 한 번도 없었다. 그리고 가능하면 늘 웃는 얼굴로 인터뷰에 응한다(물론 속마음까지 그렇게 편하지는 않을 것이다).

이원재 대표팀 미디어담당관은 “매일 국내 언론의 주요 보도 내용을 A4용지 10쪽 분량으로 정리해 노흥섭 단장(대한축구협회 부회장)에게 보고한다. 이 문건이 허감독에게 전달된 적은 한 번도 없다. 감독이 언론의 반응을 일일이 찾아보기를 원하지 않는다”라고 귀띔했다. 허감독의 휴대전화 연결음은 프랑크 시나트라의 <마이 웨이>이다. 아마도 월드컵 기간만이라도 언론에 흔들리지 않고 ‘나만의 길’을 가겠다는 의지가 그렇게 표현되었는지도 모른다.

 

▲ (왼쪽 부터)그리스의 오토 레하겔 감독, 아르헨티나의 마라도나 감독, 나이지리아의 라예르베크 감독.

 

나이지리아 라예르베크 감독은 ‘신사형’

그리스의 오토 레하겔 감독은 ‘오토크라시’[Ottocracy: 독재를 뜻하는 오토크라시(Autocracy)에 그의 이름 오토(Otto)를 빗댄 것]라는 별명답게 언론에 대해서도 권위를 내세운다. 웬만한 비판에는 눈 하나 깜짝하지 않는다. ‘유로2004’에 우승했지만 2006 독일월드컵 예선에서 탈락하면서 비난의 화살이 쏟아질 때에도 미동조차 하지 않았다. 그리스 축구협회도 줄곧 그를 편들었다. 언론과 친숙한 관계를 유지하려고 애쓰지도 않는다. 남아공에 입성한 뒤에도 공식 인터뷰를 거의 하지 않고 있다. 당연히 기자들에게 인기가 없다. 그리스 ‘센트라 FM’의 니콜라스 기자는 “레하겔 감독은 큰 대회가 있기 전에는 한두 번 정도밖에 기자회견장에 모습을 드러내지 않는다”라고 말했다. 언론 기피증까지는 아니지만 언론 친화적인 사령탑은 아닌 셈이다. 오스트리아에서 한국의 평가전을 직접 관전하기 위해 경기장을 찾았을 때도 국내 취재진의 질문에 대해 손짓 하나로 거부 의사를 밝혀 원성을 샀다.

아르헨티나의 마라도나 감독은 심하게 말하자면 안하무인형이다. 펠레와 함께 20세기 축구가 낳은 가장 위대한 선수로 꼽히는 그의 화려한 경력이, 이런 독선적인 스타일을 낳았는지도 모른다. 남미 예선 최종전에서 우루과이를 꺾고 천신만고 끝에 본선 티켓을 손에 넣은 뒤 공식 기자회견에서 그동안 자신을 비난했던 자국 언론에 대해서 성적인 표현이 들어간 욕설을 퍼부었다. 이 일로 그는 국제축구연맹(FIFA)으로부터 2만5천 스위스 프랑의 벌금과 2개월간의 자격 정지 처분을 받았다. FIFA의 결정이 나오자 아르헨티나 신문들이 ‘너무 가벼운 징계’라고 대거 반발했던 것은, 그와 언론의 관계가 얼마나 악화되어 있었는지를 보여주는 좋은 예이다. 남미 예선을 통과한 뒤에도 공공연히 감독 교체를 요구했던 아르헨티나 언론도 요즘은 조용한 편이다. 월드컵이라는 대사를 앞두고 일단 ‘지금은 미우나 고우나 마라도나’라는 암묵적인 공감대가 형성되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우승 후보 아르헨티나가 비틀거리는 행보를 하게 된다면, 마라도나는 또다시 언론의 십자 포화를 맞을 수밖에 없는 처지이다.

나이지리아의 라르스 라예르베크 감독은 신사형에 비유된다. ‘슈퍼 이글스’의 단기 쪽집게 과외교사로 나선 그는, 지난 5월 영국 런던에서 열린 콜롬비아와의 평가전에서 졸전 끝에 1-1로 비긴 뒤 기자들로부터 매서운 ‘청문회’를 당했다. 일부 기자들은 감독의 고유 권한인 선수 기용 문제를 정면으로 들고 나오면서 비난했다. 하지만 라예르베크는 정면으로 대응하기보다는 원론적인 대답으로 노련하게 상대의 예봉을 피해나갔다.

나이지리아 기자들은 매우 직선적인 질문을 하는 것으로 유명하다. 한 나이지리아 기자는 아르헨티나와의 1차전을 앞두고 상대팀 캠프 기자회견에서 아르헨티나 선수 에인세에게 “아프리카 팀을 상대하는 데 정신적인 부담감이 없느냐”라는 무례한 질문을 던졌을 정도이다. 스웨덴 태생인 라예르베크는 북구 출신답게 감정적이기보다는 매우 이성적이고 논리적인 인물로 알려졌다. 나이지리아의 불같은 기질과는 상충될 수도 있고, 오히려 극과 극은 통한다는 말처럼 궁합이 잘 맞을 수도 있다. 물론 이 모든 것은 성적이 좌우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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