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절대적 합리성’의 덫을 벗어나라
  • 염재호 / 현 고려대학교 행정학과 교수 ()
  • 승인 2010.06.29 15: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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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니엘 카네만은 인지심리학을 경제학에 적용시켜 눈길을 끈 노벨 경제학상 수상자이다. 2002년에 노벨 경제학상을 수상한 그는 인지심리학 실험으로 인간의 합리성이 제한된다는 것을 보여주었다. 예를 들어, 10달러짜리 연극을 보기 위해 극장 앞에 갔을 때 자신의 주머니에서 10달러가 없어진 것을 발견한 사람들 중 88%의 사람들이 다시 10달러를 찾아서 연극표를 사고 연극을 보겠다고 대답했다. 하지만 이미 예매를 한 10달러짜리 연극표를 갖고 왔다가 그 표를 잃어버린 사람이 새로 10달러를 내고 연극표를 사서 극장에 들어갈 확률은 46%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마치 조삼모사(朝三暮四)와 같이 동일한 내용인데 상황을 바꾸게 되면 인간들은 다르게 행동하게 된다.

이러한 인지심리학의 관점에서 인간의 행동을 설명한 대표적인 것이 확인 편향(confirmation bias)이다. 즉, 사람들은 자신이 아는 것과 보는 것에 따라 모든 정보를 자의적으로 해석하고, 판단하고, 결정한다는 것이다. 따라서 인간의 합리적 판단은 정보의 틀(frame)에 의해 크게 좌우된다. 이후 행동경제학이라는 이름으로 발전한 이러한 이론들은 최근 우리의 정치 상황에 매우 적절한 해석의 시각을 제공해준다.

우리는 지난 6·2 지방선거를 통해 세대 간에 사회를 보는 시각의 차이가 매우 큰 것을 알 수 있었다. 이는 노무현 전 대통령이 대통령으로 당선될 때 느꼈던 노·장년층의 충격과 비슷할 것이다. 어떻게 젊은 사람들은 진보 이데올로기에 빠져서 이처럼 다른 판단을 하는 것일까?

정부와 여당은 4대강 사업이 홍수 방지 및 환경 보호를 위해 가장 합리적인 대안이고, 세종시 문제도 정부 부처의 대규모 이전에 따른 문제의 심각성으로 볼 때 과학비지니스 도시로 만드는 것이 더 합리적인데도 이를 알아주지 않아 안타깝다고 생각할 것이다. 객관적 합리성을 거부하는 사람들을 도대체 이해할 수가 없다고 생각할지도 모른다.

반세기 만에 고도 경제 성장을 이룩한 것에 가치를 두는 보수적인 입장에서는 국가 경쟁력의 강화와 경제 성장이 최고로 합리적인 국정 방향일 것이다. 경쟁이 우리 사회에 최고의 가치로 자리 잡고 있는 것을 부인하기 어렵다. 하지만 청년 실업과 소득 양극화를 경험하는 젊은 세대에게는 그러한 정책 방향이 전혀 합리적이지 않을 수도 있다. 젊은 층과 노·장년층이 접하는 언론 매체와 정보의 소스 또한 전혀 다르기 때문에 객관적이고 합리적인 판단을 자신의 입장에서만 강요하는 데는 무리가 있다.

지금 우리 사회에서 심각한 문제는, 자신들은 합리적인 판단을 하고 상대방은 그렇지 못하다고 생각하는 합리적 가정의 오류이다. 인간은 어쩔 수 없이 자신이 믿고 싶어 하고, 보고 싶어 하는 것에 의해 영향을 받는 제한된 합리성의 존재이다. 동일한 문제도 틀이 어떻게 만들어지느냐에 따라 전혀 다른 판단을 할 수 있다. 그렇기 때문에 인식을 제약하는 틀을 깨는 것이 중요하고, 자신의 의견만이 절대적으로 합리적이라는 오류를 버리는 것이 필요하다. 정치권이나 언론이나 사회단체들이 자신의 판단이 틀 지워져 있고, 합리적이지 못할 수도 있다는 인식을 가져야 엄청난 사회적 갈등을 줄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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