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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서 깊은 삼다도, 인물도 많네

특별 기획 시리즈 - 한국의 신 인맥 지도 | 제주도

이춘삼 | 편집위원 ㅣ sisa@sisapress.com | 승인 2010.06.29(Tue) 16:18: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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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주도 관광단지 전경
ⓒ연합뉴스

 

제주도만큼 혈연과 인맥이 강하게 작동하는 지역도 없을 것이다. 선거 때면 늘 등장하는 “이 당 저 당보다 ‘권ㅣ 당’이 낫다”라는 말이 있다. ‘권ㅣ 당이란 ‘권당(眷黨)’이라는 제주도 특유의 용어가 발음하기 편하게 변한 방언으로, 친척 혹은 씨족 간의 관계를 말하는 것이다. 선거 마당에서 정당이나 여야의 관계를 떠나 혈연과 지연, 학연이 우선된다는 것이 바로 이 ‘권ㅣ 당’이다. 조그만 섬 안에서조차 ‘한라산 남쪽(산남)이냐 북쪽(산북)이냐’ ‘동이냐 서냐’에 따라 뭉침과 흩어짐이 갈린다. 12개의 읍·면(제주시 구좌·애월·조천·한림읍, 한경·추자·우도면 / 서귀포시 남원·대정·성산읍, 안덕·표선면)에서 ‘어느 읍, 어느 면 출신이냐’를 따지는 정도이니 짐작할 만하다.

 

   

 

전체 도민이 56만5천명 정도의 작은 지역 사회로서 육지의 큰  시·군보다 인구가 적고 면적도 좁기 때문에 인맥과 연고가 어느 지역보다 눈에 띄게 드러난다. 한 치 건너 두 치, 사돈 관계까지 따지면 모두 일가 친척이다. 경조사 등의 부조 문화가 매우 발달해 있고 도지사와 도민의 만남이 수시로 이루어지는 곳이 제주도이다.

이렇게 작은 지역 사회이지만, 예전부터 제주도 출신으로서 중앙 정치 무대에서 중요한 역할을 한 사람들이 적지 않았다. 작고한 현오봉 전 의원은 제주도가 낳은 정치인 중 거목으로 우뚝 섰던 인물이다. 4대와 6~10대의 6선 의원으로서 공화당 원내총무와 제주도지부 위원장, 유정회 정책위의장을 지낸 당내 실력자였으며, 원내에서는 운영위원장과 건설위원장의 중책을 맡았었다. 양정규 전 의원 역시 6선 의원과 원내총무를 역임했던 중견 정치인이다. 2004년 17대 총선 불출마를 선언한 뒤 정계를 떠났던 양 전 의원은 지난해 3월 치러진 헌정회(전직 국회의원들의 모임) 회장 선거에서 참석 회원 6백5명 중 5백6표를 얻어 임기 2년의 회장에 당선되었다. 전직 국회의장이 추대 형식으로 회장을 맡아오던 관례를 깨고 헌정회 창립 이후 첫 회원 직선제로 선출되었다. 검사 출신의 현경대 전 의원은 16대까지 5선으로 국회 법사위원장과 민자당 원내총무로 활동했다. 정계를 떠난 후 현재 법무법인 로고스 고문으로 재직 중인 현변호사는 서울대 법대에서 노동법을 강의한 김치선 전 숭실대 총장(작고)의 사위이며 아들과 딸, 사위가 모두 법조인인 법조 가족으로 유명하다.

 

   

 

편안 강씨·연주 현씨 ‘가문의 영광’ 돋보여

현역 국회의원으로는 고향인 제주도를 지역구로 둔 강창일·김우남·김재윤 의원이 모두 민주당 소속이다. 서울 양천 갑의 원희룡 의원은 한나라당 소속으로 3선을 기록해 18대 국회 후반기 외교통상통일위원장직을 맡고 있다. 현직에 있는 고위 공직자로는 현인택 통일부장관과 예비역 대장인 김인종 청와대 경호처장이 눈에 띈다.

학계에서는 사회학자인 신용하 이화여대 석좌교수와 김세원 경제인문사회연구회 이사장의 이름이 널리 알려졌고, 문인으로 고원정·오성찬·현기영 씨가 있다.

일반적으로 김·이·박 씨 차례로 대성의 순서가 매겨지듯이 제주도에서도 역시 본관을 김해로 둔 김씨를 필두로 하여 김씨 성이 가장 많다. 통계청이 집계한 2000년 기준 제주도 성씨 분포를 보면 전체 도민 51만2천5백41명 중 김씨가 12만3천4백28명으로 24%를 차지한다. 김해·경주·광산·나주 등 본관은 다르더라도 같은 김씨라는 이름 아래 힘을 합친다. 물론 정치적인 입장이 갈리거나 이해가 충돌하는 경우라면 문제가 달라지지만, 그렇지 않을 경우에는 “본은 달라도 같은 김가 아닌가”라며 같은 ‘한글 김씨’로서 우의를 다지는 모습을 보인다. 이씨가 4만9천6백72명으로 그 다음을 잇고, 박씨는 2만4천8백20명이다. ‘삼성혈’의 설화를 통해 탐라국의 3시조라고 알려진 고씨·양씨·부씨 중에서는 고씨가 4만5백65명으로 대성이다. 양씨도 2만2천3백61명으로 상위 그룹에 끼는 반면, 부씨는 4천9백85명에 불과하다.

 

   

 

서울대 법대 교수를 역임한 양창수 대법관은 제주도가 배출한 수재 가운데 한 사람이다. 그는 당초 철학을 공부하고 싶어 했지만, 아버지를 비롯한 가족들의 격렬한 반대에 부딪쳐 서울대 법대에 입학해 법조인의 길을 걸은 것으로 알려졌다. 강씨 중에는 2만9천8백68명인 진주 강(姜)씨와 1만6천9백87명인 편안 강(康)씨가 있는데, 편안 강씨는 다른 지역에서와 달리 제주도에서 크게 번성한 편이다. 두 강씨를 합하면 4만6천여 명으로 서로 협력이 필요할 때에는 ‘한글 종씨’로 뭉쳐 힘을 발휘한다고 한다. 오현고 출신인 강창희 의원과 일찍 서울로 나간 강금실 전 법무부장관이 강씨 문중의 유명 인물이다. 강만생 한라일보 사장과 강병희 제주일보 사장이 지역 언론계의 중진으로 활동하고 있다. 단일 본(本)인 연주 현씨는 1만3천24명으로 숫적으로는 가까스로 10위권에 드는 정도이나 현오봉 전 의원이나 현경대 전 의원, 현명관 전 삼성물산 회장 등 쟁쟁한 인물들을 꾸준히 배출하면서 탄탄한 가문으로 꼽힌다. 6·2 지방선거에서 고배를 마신 현 전 회장은 삼성 출신 CEO 중에서 처음으로 공직 선거에 출마한 인물이다. 그 밖에 문씨(1만3천3백63명), 송씨(1만5백3명), 오씨(2만2백14명), 정씨(1만2천5백19명), 한씨(1만3백64명), 홍씨(1만6백69명)가 제주도에 1만명 넘게 거주하는 성씨이다. 좌승희 경기개발연구원장으로 대표되는 좌(左)씨는 제주도에만 있는 희성이다.

육지에서 제주도로 건너와 정착해 시조가 된 사람들을 제주에서는 ‘입도조(入島祖)’라고 부른다. 여기에는 제주도에 유배 왔다가 자리 잡은 경우, 고려 말과 조선 초의 혼란 속에 정치적 피신을 한 경우, 또는 연주 현씨처럼 제주 관리로 부임했다가 돌아가지 않고 정착한 경우가 포함된다. 입도조를 모시는 후손들은 성씨별로 종회와 분회를 조직하고 읍·면 체육대회 등을 통해 결속을 다진다.

 

   

 

제주도 출신 가운데 눈이 번쩍 뜨일 만큼 대단한 집안이 있다. 바로 전혜성 미국 예일대 동암문화연구소 이사장 가족이다. 전이사장의 남편은 주미 대사를 지낸 고광림 박사(작고)이다. 애월읍 하귀리가 고향인 고박사는 장면 정부 때 주미 대사를 지내던 중 5·16 군사 쿠데타가 일어나자 이에 반대해 미국으로 망명한 후 센트럴 코네티컷 주립대학과 예일 대학에서 교수 생활을 했다. 전이사장 자신은 이화여대 영문과 2학년 때 도미해 보스턴 대학원에서 사회학과 인류학 2개 박사학위를 따고 예일 대학 교수를 지냈다. 그녀는 자신의 성취뿐만 아니라 4남2녀 모두를 하버드 대학·MIT·예일 대학 등 미국 최고 명문대에서 박사학위를 받은 최고 엘리트로 키워낸 장한 어머니로도 유명하다. 장남 고경주씨는 예일 대학에서 의학 박사학위를 받고 다섯 개의 전문의 자격(종양학·혈액학·피부학·내과학·보건학)을 갖고 있는 미국에서도 몇 안 되는 복수 전문의이다. 하버드 대학 보건대학원 교수이면서, 미국 보건부 차관보직을 맡고 있다. 그의 부인은 하버드 의대 안과 교수이다. 하버드 대학 법학박사인 삼남 고홍주씨는 예일대 법대 학장으로서 미국 국무부 법률고문이다. 클린턴 행정부에서는 국무부 인권담당 차관보를 지냈다. 하버드 대학을 졸업하며 마셜 장학생으로 선발되어 영국 옥스퍼드 대학에 유학하고 하버드 대학 법과대학원을 거치는 등 미국 최고 엘리트 코스를 밟았다. 부인 역시 변호사이다. 1961년부터 예일 대학이 있는 뉴헤이븐에 정착한 일가는 미국에서 가장 성공한 가정 교육 사례로 꼽히며 케이스 스터디 대상이 되기도 했다.

 

   

 

오현고·제주제일고, 지역 수재들의 산실로서 쌍벽 이뤄

김덕중 전 교육부장관, 김관중 예비역 장성 그리고 김우중 전 대우 회장 형제의 부친이며 해방 후 제주도지사를 지낸 고 김용하씨도 애월읍 하귀리에서 출생했다. 김씨는 일제 강점기 경성제국대학 철학과를 졸업하고 대구사범학교 교장으로 재직하던 시절 박정희 전 대통령을 가르쳤다. 김우중 전 회장이 이때 대구에서 태어났고, 두 사람의 인연은 그렇게 맺어졌다. 김 전 회장은 제주 출신 광산 김씨 자녀들을 위한 장학회를 운영했고, 1985년에는 한라산 사봉산책로에 부친의 호를 딴 우당(愚堂)도서관을 건립해 기증하기도 했다.

도내의 고등학교로는 1951년 개교한 오현고가 단연 독보적인 위치를 지켜왔다. 인문계 사립고인 오현고는 제주도 인재의 집합처로 현경대 전 의원, 변정일 전 의원, 김원치 전 검사장, 부만근 전 제주대 총장, 신구범 전 제주도지사를 비롯한 많은 인재를 배출했다. 타 지역에서는 제주도 하면 ‘오현고’를 먼저 떠올릴 만큼 명성이 높다. 1955년 공립고로 개교한 제주제일고는 1970년대를 지나면서 ‘선 시험-후 지원’ 방식의 입시 제도 채택 등 공립교 육성 시책에 힘입어 떠오르기 시작했다. 좌승희 경기개발연구원 원장, 현인택 통일부장관, 원희룡 의원 등의 모교인 제주제일고는 오현고와 함께 막상막하의 실력을 겨루고 있다. 오늘날에 와서는 인문고인 이 두 학교가 전국적으로도 상위권에 속한다. 그러나 아직도 선후배 관계라는 학연을 염두에 두어, 기왕이면 동문들이 융성한 오현고를 선호하는 경향은 남아 있는 것처럼 보인다. 한편, 실업계 고교로는 제주상고가 유명하고, 한림공고 출신들은 도내 건설업계에서 중요한 몫을 하고 있다.

대학으로는 제주대 출신이 제주 사회를 이끌어나가는 주류 역할을 하고 있으나 매년 1천~1천5백명에 이르는 고교 졸업생들이 육지의 대학으로 진출한 후 의사 등 일부 전문 직종을 제외하고는 대부분 돌아오지 않는 현상은 제주의 발전을 위해 해결해야 할 숙제로 남아 있다.

한때 재일동포 사회에서는 전체 숫자의 3분의 1 정도를 점했을 만큼 제주도 출신들의 세가 강했다. 돈벌이를 위해 출향하는 사람들은 지리적으로 가까운 부산을 통해 일본으로 건너가는 경우가 많았다. 집안 사람 한 명이 자리를 잡으면 그 연줄을 따라 일본행을 택하다 보니 숫자가 불어났다. 돈을 모은 사람들은 고향에 투자하고 모교에 기부를 해 도움을 주곤 했다. 제주 인명록에는 일본에서 크고 작은 사업을 일으킨 출향 인사들의 이름이 상당수 실려 있다.

제주도 사람들은 간혹 배타적이라는 말을 듣는다. 그러나 거친 바다와 싸워야 하고 바람과 돌이 많은 척박한 자연환경을 이겨내 생존하자면 서로 뭉칠 수밖에 없는 도서 지역의 특수성을 무시할 수 없다. 제주도 말로 ‘수눌음’이라고 불리는 품앗이 정신으로 공동체적 성격을 키워온 것이 제주도민들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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