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류 대 비주류 ‘권력 내전’?
  • 김지영 (young@sisapress.com)
  • 승인 2010.07.14 03: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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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운찬 총리 교체설 논란과 함께 대립 양상 불거져…정총리는 “7월8일 사퇴한다는 얘기한 적 없다”

 

▲ 정운찬 국무총리(오른쪽)가 김창영 총리실 공보실장과 대화하고 있다.

정운찬 국무총리는 유임될 것인가, 퇴임할 것인가. 지난 6월2일 지방선거 이후 한 달 이상 총리의 거취와 관련해 이런저런 얘기가 끊이지 않고 있다. 하루가 멀다 하고 ‘유임론’과 ‘교체론’이 반복되고 있다. 더군다나 이 모든 소문의 진원지가 청와대 등 여권 내부라는 점이 주목된다.

정총리는 지방선거에서 한나라당이 참패한 직후 이명박 대통령에게 처음으로 사의를 표명했다. 그리고 국회에서 세종시 수정안이 부결된 이후 또 한 번 사퇴 의사를 밝혔다. 이대통령이 캐나다 등을 순방하고 귀국한 직후인 7월3일에도 청와대 독대 자리에서 거듭 사의를 표명했다. 정총리는 이날의 독대 내용과 관련해 “대통령과의 대화 내용을 밝히는 것은 예의가 아니다”라며 함구하고 있다. 총리실 관계자는 “정총리는 대통령께서 지방선거 이후 국정 쇄신을 단행하는 데 있어 자신의 거취 등과 관련해 편하게 결정하시라는 순수한 마음에서 사퇴 의사를 표명했던 것이다”라고 설명했다. 

거듭된 사퇴 표명에도 이대통령이 되레 정총리에게 힘을 실어주는 정황이 곳곳에서 포착되고 있다. 항간에 나도는 ‘교체설’보다는 ‘유임설’에 좀 더 무게가 실리는 형국이다. ‘7·3 독대’에서 이대통령은 “함께 일을 더 하자”라며 정총리의 어깨를 다독였다는 후문이다.

그럼에도 일부 언론에서 ‘7·8 공식 사퇴설’이 불거지자 이대통령이 진노한 것으로 알려졌다. 청와대 담장 밖으로 흘러나온 정황은 이렇다. 언론에서 구체적인 날짜까지 못 박아 사퇴할 것이라는 보도가 나간 이후 정정길 대통령 비서실장이 정총리에게 전화를 걸어 “대통령께서 정총리가 공식 사퇴한다는 보도를 보시고 대단히 화를 내셨다”라고 전했고, 정총리는 “나는 한 번도 사퇴한다는 말을 한 적이 없다”라고 답했다. 정실장이 “그러면 도대체 누가 이런 사퇴설을 흘린다는 것이냐”라고 반문하자 정총리는 “청와대 참모들 입에서 나온 얘기가 아니냐. 그것을 나한테 물어보면 어떻게 하느냐”라며 오히려 불쾌감을 드러냈다는 것이다. 이대통령의 속내를 잘 아는 정부의 한 고위 관계자는 “막내로 자란 이대통령은 정총리를 친동생처럼 생각한다. 만약 이대통령이 정총리를 교체할 필요성을 느꼈다면 정총리에게 직접 ‘미안하다’면서 먼저 교체의 불가피성을 설명했을 것이다. 청와대 참모들에게 간접적으로 교체 얘기를 꺼낼 스타일이 아니다”라고 강조했다.

정총리는 소외 계층을 위한 희망 근로 사업에 유난히 관심이 강한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이 사업이 올해 마무리되면서 내년도 예산이 없자 이대통령에게 도움을 청했고, 이대통령은 7월7일 국무회의에서 윤증현 기획재정부장관에게 “희망 근로 사업 예산을 확보하라”라고 지시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럼에도 청와대 안팎에서는 끊임없이 정총리의 교체설 내지 사퇴설이 나오고 있다. 이를 놓고 청와대 참모들과 총리실 사이의 알력설까지 불거졌다. 이를 의식한 정총리가 7월8일 작심한 듯 총리실 간부들과 가진 티타임 자리에서 강한 불쾌감을 드러내며 “우리끼리 할 얘기가 있고, 외부에 할 얘기가 따로 있지 않느냐”라고 따끔하게 질책했다. 총리실 주변에서는 청와대의 일부 핵심 참모들이 불순한 의도를 가지고 퇴임설을 흘리고 있다고 의심한다.

 

▲ 이명박 대통령이 정운찬 총리에게 힘을 실어주는 듯한 정황도 포착되고 있다. ⓒ연합뉴스

 

여권 내 TK 세력, “총리가 책임져야” 사퇴론 계속 제기

정총리의 한 측근은 “정총리는 세종시 논란으로 자신의 전공인 경제와 교육 분야에 대한 구상을 제대로 펼치지 못한 것에 대한 아쉬움이 적지 않다. 이 상황에서 퇴임하면 ‘무능한 총리’로 남게 된다는 점도 잘 알고 있다”라고 말했다. 이런 식으로 불명예스럽게, 그것도 떠밀리듯이 퇴임하고 싶지는 않다는 정총리의 속내가 읽히는 대목이다. 그렇다면 여권 내에서 사퇴설이 계속 흘러나오는 까닭은 무엇일까. 여권뿐 아니라 총리실 내에서도 “정총리가 ‘고군분투’하고 있다”라는 얘기를 많이 한다. 지난해 9월 총리에 내정될 당시 정총리는 현재 총리실 공보실장을 맡고 있는 김창영씨와 자신의 서울대 제자였던 수행비서 등 ‘고작’ 2명만을 데리고 총리실에 입성했다. 각계에 인맥이 두터운 정총리로서는 ‘초라한 모양새’였다. 그렇다 보니 국회 인사청문회를 준비할 때부터 삐걱거렸다.

정총리는 이후 국정원 경기지부장을 지낸 김유환씨를 정무실장에 앉히려 했다. 하지만 정정길 대통령실장이 두 차례나 반대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결국 정총리의 강력한 의지로 지난 2월 김실장이 임명되었지만, 이후 정총리와 정실장의 관계는 소원해졌다. 그런 과정을 거쳐 ‘정운찬 맨’으로 김창영 대변인과 김유환 실장이 총리실에 자리를 잡았다. 정총리와 절친한 한 인사는 “국회 인사청문회 때부터 정총리의 철학과 비전을 실행할 수 있는 인물들로 총리실이 구성되었어야 하는데 그렇게 되지 못했다. 여권으로부터 정책적으로나 정무적으로 별 도움을 받지도 못했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내각뿐 아니라 총리실 등 조직을 장악하는 데 문제가 생길 수밖에 없었다. 상황이 이렇게 된 데는 충청 출신인 정총리가 총리실과 청와대 등에 포진해 있는 TK(대구·경북) 인맥에 둘러싸인 점을 무시할 수 없다”라고 말했다. 한마디로 여권 내 TK 출신들의 정총리에 대한 견제가 상당히 강했다는 설명이다.

‘정총리 사퇴설’이 흘러나온 배경도 이와 무관하지 않다. 청와대의 일부 핵심 참모들은 “정총리가 세종시 문제와 공직윤리지원관실 문제 등을 책임지고 물러나야 하는 것 아니냐”라는 말을 출입 기자들에게 흘리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일부 언론에서 ‘7월8일 공식 사퇴설’을 보도한 것도 같은 맥락으로 해석된다.

이와 관련해 여권의 핵심 인사는 “여권의 ‘주류 세력’이 정총리를 흔들고 있기 때문이다”라고 단언했다. 이 인사는 “청와대의 핵심 참모 몇몇이 여당의 지방선거 참패와 세종시 수정안 부결, 국무총리실 산하 공직윤리지원관실의 민간인 사찰 파문 등 여권의 모든 실정에 대한 책임을 정총리가 지는 모양새로 사퇴하기를 바라는 것 같다”라고 설명했다. 진보 성향의 학자 출신으로 여권 내 ‘비주류’에 속하는 정총리를 여권의 총체적인 국정 난맥상을 해결하는 ‘희생양’으로 삼겠다는 의도가 깔려 있다는 것이다. 여권 내 ‘주류’와 ‘비주류’의 권력 투쟁 양상을 띠고 있는 셈이다.

이대통령은 7월8일 임태희 고용노동부장관을 대통령실장으로 내정한 데 이어 조만간 청와대 참모진 교체와 대폭적인 개각을 단행할 예정이다. 정총리의 교체설은 아직도 살아 움직인다. 여권의 권력 다툼은 현재 진행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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