확신에 찬 주장에 속지 마라
  • 전우영 |충남대 심리학과 교수 '심리학의 힘 P' 저자 ()
  • 승인 2010.07.26 18: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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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실에 가깝게 들리지만 거짓말인 경우 많아…타당성 검토해보는 시간 가져야

TV 시트콤 <지붕 뚫고 하이킥>(이하 <지붕킥>)에서 가장 설움 받은 캐릭터는 배우 정보석이 연기한 ‘쥬얼리 정’이다. 장인에게 매일 야단맞고, 아내에게는 무시당하기 일쑤이며, 심지어는 막무가내인 초등학생 딸에게도 치이는 캐릭터이다. 하도 이리 치이고 저리 치여서인지 누가 세게 한마디라도 하면, 바로 자기 생각이나 주장을 접곤 한다. 하지만 <지붕킥>에 나오는 캐릭터들 중에서 그래도 지나칠 정도로(가끔은 사람을 피곤하게 할 정도로) 순수하고 단순한 면이 있어서 인간적으로 정이 가는 캐릭터가 바로 쥬얼리 정이다.

■ 쥬얼리 정의 성희롱 사건 | 어느 날(<지붕킥> 1백3회) 쥬얼리 정이 친구들과 점심을 먹다가 반주를 한잔하고 회사로 돌아온다. 소파에 잠깐 곯아떨어진 채로 잠든 쥬얼리 정의 사무실(부사장실)에 여비서가 들어와 찻잔을 들고나가다 스푼을 하나 떨어뜨린다. 스푼을 집으려고 허리를 구부린 여비서의 엉덩이가 쥬얼리 정의 얼굴을 향하는 순간 화면은 사무실 밖으로 바뀐다. 잠깐의 정적이 흐르고 갑자기 여비서의 비명이 빌딩 전체로 울려퍼진다. 비명을 듣고 부사장실로 달려간 이순재 사장에게 여비서는 쥬얼리 정이 자기 엉덩이를 더듬었다며 울먹인다. 하지만 쥬얼리 정은 한순간의 주저도 없이 말도 안 되는 소리라며 강력하게 부인한다.

하지만 늘 그래왔듯이 이순재 사장을 위시해서 가족들 중에서 쥬얼리 정의 말을 들어주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웬만해서는 소리를 높이는 법이 없는 쥬얼리 정이, 자기는 절대로 그런 짓을 하지 않았다고 목에 핏대를 올려가면서 호소해도 그 누구도 믿으려고 하지 않는 것이다. 엉덩이를 만졌다고 주장하는 증인(비서)과 엉덩이를 만지지 않았다고 주장하는 또 다른 증인(쥬얼리 정)만 존재하는 상황에서 쥬얼리 정의 가족들은 모두 비서의 말만 믿고 쥬얼리 정의 말은 일고에 무시해버린 채 치한으로 몰아 버리는 것이었다.

아무도 쥬얼리 정의 말을 믿지 않았지만, 사실 필자는 쥬얼리 정을 믿었다. 그 이유는 크게 두 가지였다. 하나는 <지붕킥>의 팬으로서 이전 에피소드에서 쥬얼리 정의 행동을 지켜본 바에 따르면, 그가 엉뚱하거나 특이한 행동을 하기는 하지만 파렴치한 짓을 할 사람은 아니었다는 것이다. 또 다른, 하지만 더 중요한 이유는 쥬얼리 정이 처음부터 끝까지 극도로 확신에 찬 목소리로 자신의 결백을 주장했다는 것이다. 지붕킥을 보면서 그가 그렇게 단호하고 일관되게 자신이 가지고 있는 생각을 확신을 가지고 이야기하는 것을 본 적이 없었다. 따라서 필자는 쥬얼리 정의 결백을 확실하게 믿었다. 그런데 안타깝게도 그의 확신에 찬 주장은 거짓말인 것으로 드러났다. 쥬얼리 정은 여비서의 엉덩이를 만진 것이다.

 

ⓒ honeypapa@naver.com

 ■ 확신에 찬 사람의 주장은 더 믿을 만한 것일까? | 이 에피소드가 개인적으로 충격적이었던 이유는 <지붕킥>의 등장 인물들은 아무도 믿지 않았던 쥬얼리 정의 주장을 시청자인 필자만 믿었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러한 믿음을 갖게 된 주된 이유가 바로 쥬얼리 정의 주장이 너무나도 확신에 차 있었다는 것 때문이었다. 과연 확신에 찬 사람의 주장은 더 믿을 만한 것일까?

확신에 찬 사람의 주장에 더 신뢰가 가는 이유는, 확신에 찬 사람이 그렇지 않은 사람들보다 자신이 말하는 사건에 대해 더 잘 알고 있거나 최소한 정확하게 알고 있는 것처럼 보이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확신에 찬 어조로 말하면 동일한 내용이라고 하더라도 더 진실에 가깝게 들리게 된다. 쥬얼리 정의 사례에서처럼 의도적으로 거짓말을 하는 사람이 확신에 찬 어조로 주장을 할 경우에 그 말이 거짓이라고 생각하기 힘들어지는 것이다. 확신에 찬 말이 상대방에게 미치는 이러한 효과를 잘 알고, 이를 실전에 사용하는 사람들을 우리는 사기꾼이라고 부른다. 제3자의 입장에서 보이스 피싱 같은 사기의 피해자들이 사기를 당한 내용을 보면 어처구니가 없다는 생각이 들 때가 있다. 어떻게 그런 단순한 말에 속아 넘어갈 수가 있을까? 문제는 사기꾼이 한 말의 내용만을 보면 크게 설득력이 없지만, 그 내용을 확신에 찬 목소리로 전달했을 때 상대방이 순간적으로 느끼는 설득력의 정도는 크게 달라진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거짓말을 하려는 의도가 전혀 없는 사람이 확신에 차서 하는 말은 믿을 만한 것일까?

■ 확신이 불러온 불행 | 제니퍼 톰슨은 대학생이던 스물두 살에 강간 피해를 당했다. 많은 강간 피해 여성이 강간범에게 끝까지 저항하지 못하는 가장 큰 이유 중의 하나는 강간범이 자신을 죽일지도 모른다는 두려움 때문이라고 한다. 제니퍼도 죽음에 대한 공포를 느꼈지만, 강간을 당하면서도 만약에 살아남는다면 강간범을 반드시 잡아서 감옥에 처넣겠다는 생각으로 강간범이 어떻게 생겼는지 그의 얼굴을 자세히 기억하려고 노력했다고 한다. 결국 살아남은 제니퍼는 경찰이 가지고 온 수백 장의 용의자 사진 중에서 로널드 코튼이라는 남성의 사진을 보자마자 주저하지 않고 바로 “이 놈”이라고 그를 범인으로 지목할 수 있었다. 그녀는 사진 속의 로널드가 자신을 강간한 범인이라고 확신했다. 실제로 용의자들을 불러서 세워 두고 그중에서 범인을 지목하게 했던 경우에도 그녀는 바로 로널드를 찾아냈다. 유일한 목격자가 피해자였던 이 사건에서 목격자인 제니퍼가 확신에 찬 목소리로 범인을 지목했고, 로널드는 결국 무기징역형을 선고받고 철창으로 향했다. 제니퍼는 강간당하는 도중에도 냉정하게 범인의 얼굴을 기억함으로써 강간범에게 죄의 대가를 치르게 하겠다던 결심을 실현시킨 것으로 보였다.

그런데 로널드를 감옥으로 보낸 후 몇 년이 지나서 흥미로운 사건이 발생한다. 바비 풀이라는 사람이 다른 범죄 때문에 잡혔는데, 여죄를 심문하는 과정에서 제니퍼를 강간한 사람이 바로 자기라고 실토한 것이다. 경찰은 제니퍼에게 바비를 보여주고 확인하도록 했는데, 제니퍼는 처음 보는 사람이라고 주장했다. 사건은 이대로 종료되는 것으로 보였다. 이후 시간이 더 흐른 후에 미국에서 DNA 검사가 일반화되기 시작했다. 그리고 사건 현장에서 발견되었던 범인의 정액을 보관해 오던 경찰은 로널드측의 요청으로 DNA 검사를 실시했고, 검사 결과 진범은 바비 풀인 것으로 밝혀졌다. 로널드 코튼은 억울하게 11년간 감옥에 수감되었던 것이다.

■ 확신이 정확성의 지표가 되지 못하는 이유 | 연구들에 따르면, 확신의 정도와 기억의 정확성은 전혀 관련성이 없거나, 있더라도 일반적으로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는 매우 낮다고 한다. 그 이유는 동일한 변인이 확신과 기억의 정확성에 동시에 영향을 미치지 못하기 때문이다. 목격자에게 용의자들의 사진을 보여주면서 경찰들이 인사치레로 “아주 잘하고 있어요”와 같은 말을 하면, 목격자는 자신의 기억이 정확하다는 것을 경찰이 확인해주었다고 착각하는 경향이 있다. 그 결과 목격자의 자신의 판단에 대한 확신은 크게 증가한다. 하지만 경찰이 칭찬을 한다고 해서 목격자의 기억의 정확성이 커질 수는 없다. 즉, 기억의 정확성은 그대로인데, 확신만 커지게 되는 결과를 낳게 되는 것이다. 누군가가 너무나 큰 확신에 찬 어조로 당신을 설득하려고 한다면, 그 사람이 주장하는 것의 타당성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해보는 시간을 갖는 것도 나쁘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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