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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50은 왜 밖으로 날지 못했나

국산 고등훈련기, 지난해 UAE에 이어 싱가포르 수출도 좌절…자국 산업 육성 정책 못 읽어 실패

김종대 | 포커스> 편집장 ㅣ 승인 2010.07.26(Mon) 18:57: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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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7년 1월19일 이명박 당시 대선 주자가 경남 사천시 한국우주항공산업 내에서 고등훈련기 ‘T-50’ 조정석에 앉아 회사 관계자와 대화를 나누고 있다.
ⓒ연합뉴스

올해 1월 필자는 청와대 안보 관련 부서가 작성한 메모 한 장을 입수했다. 대통령의 국방 관련 연중 계획에 대한 구상이 담겨 있는 메모였다. 여기에서 특히 눈에 띄는 대목은 ‘(한국형 고등훈련기) T-50 수출을 계기로 대통령 주재 방산 수출 전략 대회를 5월에 개최한다’는 것이다. 굳이 이 문건이 아니더라도 정부와 업체에서 일제히 T-50 수출에 대한 낙관적인 전망을 쏟아내고 있던 터였다. 따라서 당연히 청와대에서는 그런 구상을 할 만한 충분한 이유가 있다고 믿어졌다. 더군다나 1월에는 이명박 대통령이 아랍에미리트(UAE) 원전 수출이라는 세일즈 외교의 성과로 크게 고무되어 있는 상황이었다. 필자가 청와대 국방 관계자에게 문건에 대해 문의하자 그는 “당연히 그런 방향으로 가지 않겠느냐”라며 부인하지 않았다. 세일즈 외교의 달인인 대통령이 독려하는 판에 안 될 이유가 없다는 투였다.

여기에다가 지난해 2월 UAE에 대한 T-50 수출 좌절을 교훈 삼아 정부는 대한무역투자진흥공사(KOTRA)에 지경부, 국방부, 방사청 등 범정부 민간 전문가로 구성된 민·관 합동 조직으로 ‘방산물자 교역지원센터’를 설립해 진용을 새로 갖춘 터였다. 당연히 정상 외교도 여기에 한몫했다. 6월6일에 이명박 대통령은 싱가포르를 방문해 리센룽 싱가포르 총리와 정상회담을 가졌다. 양국 간 경제·통상 협력과 안보 협력, 녹색 성장 협력, 문화 협력, G20 정상회의 등 국제 무대에서의 협력 문제 등에 대해 의견을 교환하면서 T-50에 대한 말이 오고 가리라는 것은 당연히 예견되었다. 정상회담 후 언론이 이대통령의 싱가포르 방문으로 고등훈련기 T-50의 싱가포르 수출 가능성이 커졌다는 관측을 내보낸 것도 세일즈 대통령에 대한 기대감 때문이었다.

청와대 분위기가 낙관적으로 흐르자 정부 관료들도 너나없이 장밋빛 전망을 쏟아냈다. 변무근 방위사업청장은 올해 1월25일에 취임 1주년을 맞아 T-50 탑승 행사를 진행하고 ‘연내 수출 성사’ 가능성에 강한 자신감을 내비친 바 있다. 변청장은 지난 6월 조선일보와의 인터뷰에서 “T-50의 싱가포르 수출 계약이 올해 성사될 가능성이 크다. 이같은 대형 수출 계약이 추가되면 올해 15억 달러의 방산 수출 목표를 달성할 수 있을 것이다”라고 호언장담했다.

‘이제 축포 터뜨리는 일만 남았다’는 식의 연이은 정부 관료들의 발언과 기대감으로 한국항공(KAI)과 그 협력업체들의 기업 가치가 상승하고 있던 지난 7월12일쯤. 일부 언론에 싱가포르 정부와 진행하던 T-50 판매 협상이 전면 중단되었다는 보도가 나오기 시작했고, 급기야 UAE에 이어 싱가포르에서도 이탈리아의 아음속 항공기 ‘M-346’에 고배를 마셨다는 내용이 터져나왔다. 더군다나 M-346은 아직 개발도 안 된 항공기였다. 이에 대해 “두 번 좌절은 없다”라며 강한 자신감을 보였던 우리측 관계자들은 침묵했다.

   
▲ 변무근 방위사업청장이 1월25일 취임 1주년을 맞이해 진행한 ‘T-50 고등훈련기 비행 체험’에서 비행 전 기념 촬영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국내 항공 산업뿐 아니라 방위 산업 전반에 악영향 미칠 듯

T-50 수출 좌절은 대한민국의 항공 산업, 더 나아가 방위산업 전체에 미치는 악영향이 심각하다. T-50이 애초 내수만이 아니라 수출을 목적으로 지난 20년 동안 한국의 방위 산업 역량을 쏟아부어 개발된 제품이라는 점에서 국가 위신과 방위 산업의 자존심이 걸린 문제이다. 여기에서 실패하면 방위 산업으로 수출을 증대시킨다는 비전도 무너질 수밖에 없고, 신 성장 동력 창출도 구호로 끝나버릴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애초 T-50 개발은 최초 구상 단계에서부터 회의론자들과의 격렬한 논쟁을 거쳐 탄생한 프로젝트이다. “방위 산업은 군이 필요로 하는 무기를 공급하는 군사적 이유가 우선이지 수출은 과욕이다”라는 싸늘한 시선에도 노태우 전 대통령 이래 역대 정부가 추진해 온 사업이다. 지난 20년 동안 우리나라의 군용기 사업은 한국형 고등훈련기 개발을 지원하는 데 맞추어져 있었다. 외국으로부터 군용기를 도입하면서 절충 교역으로 T-50 업그레이드에 필요한 기술 지원을 받는 것을 우선시했던 것이다.

이렇게 T-50에 공을 들인 이유는 두 가지이다. 첫째는 언젠가 독자적인 전투기를 생산하는 나라로 도약하겠다는 꿈이다. T-50을 플랫폼으로 하여 미래에 전투기 개발까지 나아가겠다는 것이다. 당시 노태우 대통령이 1989년 한국형전투기사업(KFP)을 진행하면서 품었던 원대한 목표이다. 두 번째는 전세계에서 훈련기를 생산하는 나라가 없는 현실에서 세계 시장을 석권하는 것은 물론 미국의 훈련기 수요까지 충족시키겠다는 꿈이다. 특히 사업 착수 당시 록히드마틴(당시에는 제너럴 다이내믹스) 사가 밝은 수출 전망을 제시하며 한국을 적극적으로 포섭한 결과이기도 하다.

이 두 가지 목표에 의해 지난 20년간 대한민국 항공 산업이 꾸준히 성장해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러나 정권이 수시로 교체되면서 이러한 목표가 일관성을 잃고, 정책도 수시로 흔들림으로써 상당 부분 퇴색된 점이 있다. 지난해 UAE와 올해 싱가포르에서 우리의 파트너인 록히드마틴은 20년 전 F-16을 한국에 팔면서 했던 말을 망각했는지, 별로 적극성을 보이지 않았다. T-50에 공격기 기능을 추가하면 수출 전망이 더욱 밝아지는 데도 이를 엄격히 제한했고, 마케팅에도 적극적으로 나서지 않았다. 언젠가는 전투기로 전용될 수 있는 T-50이, 자신들이 해외에 수출하려는 F-35와 같은 전투기의 경쟁 기종이 될 수도 있다는 달라진 이해관계 때문이다. 따라서 록히드마틴과 미국 정부를 움직이려면 한국 공군의 차세대 전투기로 F-35를 적극 고려했어야 한다는 분석도 제기된다.

대다수 언론은 대당 가격이 2백50억원이 넘는 T-50 수출 실패의 원인이 높은 가격에 있다는 분석을 내놓고 있다. 물론 고성능의 초음속 항공기인 T-50은 아음속 항공기인 이탈리아의 M-346보다 가격이 훨씬 비싸다. 그러나 이것이 UAE와 싱가포르 수출 실패의 결정적 원인이라는 분석은 사실과 다른 면이 있다. 가격을 30% 이상 깎는 협상 전략까지 고려하면서 유연성을 두었다. 설령 그래도 비싸다면 더 나은 부가 서비스, 예컨대 조종사 훈련 체계 등에서 새로운 비전을 제시할 수도 있었고, 실제로 그렇게 했다.

결국 문제의 핵심은 산업 협력이다. 록히드마틴의 자회사(록히드 STS)와 손잡은 우리나라와 달리, 이탈리아 알레니아 아에르마치의 M-346은 미국의 보잉, 싱가포르 국영 항공 정비 업체(ST-에어로)와 적극적으로 제휴해 싱가포르 항공 산업 자체를 공략했다. 이에 싱가포르가 고성능 항공기 도입보다는 자국 산업 육성이라는 정책을 중시하는 방향으로 기울었던 것이 패배의 원인으로 더 설득력이 있다는 지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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