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구촌 정치, ‘여풍’이 휩쓴다
  • 김회권 (judge003@sisapress.com)
  • 승인 2010.08.03 18: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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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통령·총리 등 여성 지도자들 갈수록 늘어…북미 대륙 제외한 전 대륙에서 맹활약

 

▲ 2008년 6월26일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왼쪽)가 독일을 방문한 엘렌 존슨 설리프 라이베리아 대통령(오른쪽)을 안내하고 있다. ⓒ AFP PHOTO

국제 정치계에서 우먼 파워가 꾸준히 커지고 있다. 특히 국가 권력의 정점에 서는 여성들이 시나브로 늘어나고 있다. ‘미스터 프레지던트’가 물러난 자리를 ‘마담 프레지던트’들이 물려받는 일이 이제는 그리 새삼스럽지 않다. 현재 국제연합(UN)에 가입된 1백92개 국가 가운데 대통령이나 수상 등으로 활약하는 여성 지도자는 14개국 15명이다. 남성이 주도하던 기존 정계에 여성들이 약진하는 것은 기존 정치 관행에 대한 변화 요구를 반영한 것이기도 하지만, 현실 정치에서 여성 정치인들의 활약이 점점 더 인정받고 있다는 반증이기도 하다.

세계의 여성 지도자 중에서 첫손가락에 꼽히는 이는 역시 독일의 앙겔라 메르켈 총리(56)이다. 그녀는 2005년 독일 최초의 여성 총리가 된 이후 4년 연속 <포브스>가 선정한 ‘세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여성’ 1위 자리를 놓치지 않고 있다. 메르켈 총리를 일컫는 또 다른 이름은 ‘동베를린의 대처’이다. ‘동베를린’은 동독 출신의 물리학자에서 통일 독일의 여성 총리에 오른 그녀의 독특한 이력 때문에 붙은 명칭이다. ‘대처’라는 별칭은 정치인 메르켈이 가진 뛰어난 협상 능력 때문에 붙여졌다. 그녀의 이런 정치적 능력은 국제사(史)에서 주변 국가에게 위협적인 존재로만 인식되어온 독일을 ‘신뢰할 수 있는 중재자’로 거듭날 수 있게 해주었다. 독일은 최근 그리스 사태를 두고 유럽연합(EU) 차원의 공동 해법을 도출하는 데 성공하면서 국가적 위상이 높아지고 있다. 과거 영국과 프랑스 정상에게 몰려들던 기자들은 이제 메르켈 총리의 입이 열리기만을 기다린다.

북유럽의 핀란드는 여풍(女風)이 가장 거센 곳이다. 세계의 눈은 핀란드의 경쟁력을 주목한다. 펄프와 제지의 나라는 이제 정보기술(IT) 등 고부가 가치 산업의 나라로 탈바꿈했고, 환경 지수와 학력 평가 등 각종 긍정적 지수에서 세계 1위를 기록하며 다른 국가들의 벤치마킹 모델이 되고 있다.

또 주목해야 할 것이 있다. 이원집정부제 국가인 핀란드는 지난 6월 마리 키비니에미(Mari Kiviniemi)를 총리로 선출하면서 타르야 할로넨 대통령과 함께 여성으로만 투톱을 구성한 세계 유일의 국가가 되었다. 이번에 선출된 41세의 키비니에미 총리는 두 아이의 엄마이자 15년차 하원의원이다. 마티 반하넨 전 총리의 경제담당보좌관과 지방행정장관을 지냈다. 키비니에미 총리를 보면 핀란드가 여성에게 얼마나 열린 곳인지 알 수 있다. 그녀는 1991년 스물두 살의 나이에 처음 하원의원에 도전했다가 고배를 마셨으나, 다음 선거에 재도전해 당선되었다. 26세의 나이로 초선 의원이 된 것이다. 지난 2005년에는 출산을 한 뒤 몸을 추스르자마자 무역개발장관과 지방행정장관을 잇달아 맡기도 했다. 젊음에 대한 편견도 없고 보육 제도도 잘 갖추어진 덕분에 핀란드 여성의 경제 활동 참가율은 무려 73%에 이른다. 정치 분야 역시 예외가 아니다.

그녀 앞에는 금융 위기 이후 침체되어 있는 핀란드 경제를 살려야 하는 과제가 놓여 있다. 대통령과 보조 맞추기가 매우 중요한데 대통령 역시 여성이다. 핀란드의 대표적 여성 정치인인 타르야 할로넨은 지난 2000년 최초의 여성 대통령으로 당선되었고 지난 2006년 재선에 성공했다. 할로넨 대통령이야말로 ‘핀란드 여성 정치인 전성시대’를 활짝 연 인물이다.

변호사였던 할로넨 대통령은 34세 때인 1977년 헬싱키 시의원을 시작으로 정치에 입문했고, 1979년 국회의원으로 중앙 정계에 데뷔했다. 할로넨 대통령은 책으로 치자면 스테디셀러라고 볼 수 있다. 대다수의 대통령은 임기 초반에 높은 지지도를 나타냈다가 퇴임을 앞두고 바닥을 친다. 하지만 그녀는 달랐다. 첫 대통령 임기 6년 동안 평균 지지율은 80%를 웃돌았다. 그녀가 재선을 선언하자마자 핀란드 정계에서는 ‘누가 이기나’보다 그녀가 ‘얼마나 압도적으로 이기나’를 관전 포인트로 삼았을 정도였다.

할로넨 대통령의 별명은 ‘무민 마마(moomin mama)’이다. 무민은 핀란드의 동화작가 토베 얀손이 만든 것으로 핀란드에서 가장 사랑받는 캐릭터이다. 핀란드 국민들은 할로넨 대통령을 설명할 때 주로 ‘친절’ ‘소박’ ‘핀란드 아줌마’와 같은 단어를 많이 사용하며 친근감을 보인다. 하지만 그런 것만으로는 그녀의 높은 인기를 모두 설명할 수는 없다. 국가 청렴도, 국가 경쟁력, 학력 평가, 환경 지수 등 각종 지표 세계 1위는 그녀가 집권 기간에 이루어냈기 때문이다.

핀란드와 인접한 아이슬란드 역시 지난해부터 여성이 총리직을 맡고 있다. 아이슬란드는 2008년의 금융 위기로 큰 타격을 받아 국제통화기금(IMF)의 구제 금융을 받는 등 경제가 붕괴된 상황이다. 이런 상황에서 치러진 2009년 총선에서 처음으로 사회민주동맹(Social Democratic Party)과 녹색당(Green Party)의 중도 좌파 연합 정부가 출범했고 ‘성(聖) 요한나’로 불리며 광범위하게 지지를 받아오던 요한나 시귀르다르도티르(68)가 첫 여성 총리로 취임했다. 그녀의 첫 취임 일성은 이러했다. “여성 특유의 부드러움으로 위기를 치유하겠다.” 그녀는 금융 위기 원인들 가운데 하나로 ‘남성 우월적인 엘리트주의’를 지적하며 국유화된 네 개 은행 중 두 곳의 은행장을 여성으로 교체하면서 경제 재건을 위한 첫 삽을 떴다.

옛 소련에서 분리 독립한 크로아티아·리투아니아의 ‘선택’ 눈길

1980년대 유럽에서 가난한 가톨릭 국가로만 여겨졌던 아일랜드는 대통령 한 사람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보여주는 사례를 만들었다. 1997년 북아일랜드 출신으로는 처음으로 대통령이 된 여성 정치인 메리 매컬리스는 집권 10년 만에 아일랜드를 개인 소득 5만 달러가 넘는 국가로 탈바꿈시켰다. 이원집정부제인 아일랜드에서 내치는 총리가 담당하기 때문에 모든 공을 그녀에게 돌릴 수는 없다. 하지만 북아일랜드와의 갈등을 봉합하고 부패 정치 세력과의 단절을 선언하는 등 매컬리스 대통령이 아일랜드 발전의 밑바탕을 만들어냈다는 데는 이견이 없다. 첫 임기가 끝나가던 2004년 실시된 여론조사에서 매컬리스 대통령의 지지도는 무려 88%를 기록할 정도였다. 임기 말의 지지도 88%는 그녀를 자연스럽게 재선되도록 이끌었다.

옛 소련에서 독립한 뒤 유고슬라비아로부터 또다시 분리 독립을 추진한 크로아티아도 여성 지도자가 나라를 이끈다. 1990~95년 사이에 벌어졌던 세르비아인과 크로아티아인 사이의 인종 대립은 참극을 낳았다. 야드란카 코소르(56)는 참극이 벌어지는 동안 라디오 저널리스트로 분쟁 현장에 서 있었다. 인종 대립이 마무리된 1995년 코소르는 국회의원이 되었고, 지난 해에는 크로아티아 최초의 여성 총리로 취임했다. 취임 직후 난제로 남아 있던 슬로베니아와의 국경선 문제를 풀기 위해 스웨덴 스톡홀름에 국제중재재판소를 설치하기로 합의하는 등 발 빠르게 능력을 발휘하고 있다.

크로아티아처럼 옛 소련에서 분리된 리투아니아도 국가 수장으로 여성을 선택했다. 지난해 5월 열린 대선에서 베테랑 정치인이자 ‘철의 여인’으로 불리던 달리아 그리바우스카이테(53)는 리투아니아의 첫 여성 대통령으로 선출되었다. 젊은 날 레닌그라드의 모피 공장에서 일하기도 했던 그녀는, 대학 졸업 후 미국에서 공부한 뒤 리투아니아가 독립하자 귀국해 국제경제유럽국장을 지내며 ‘EU’와 ‘경제’ 분야에 인연을 맺기 시작했다. 2001년에는 재무장관을, 리투아니아가 EU에 가입한 2004년에는 EU 예산담당 집행위원을 지냈다. 이력에서 볼 수 있듯이 EU 국가 가운데 최악의 경제난을 겪고 있는 리투아니아 국민들은 해결사로 그녀를 지목한 셈이다. 지난 1월 전 정부에서 운영하던 CIA 비밀 감옥을 은폐하려던 외무장관을 사임시키는 등 과감성도 지니고 있어 동유럽의 대처로 불린다.

에바 페론을 배출한 바 있는 아르헨티나의 대통령 역시 여성이다. 남편 키르치네르(Kirchner) 전 대통령의 후광에 힘입어 2007년 아르헨티나 대통령이 된 크리스티나 페르난데스(57)는 현재 어려움을 겪고 있다. 서민과 빈민층의 절대적 지지가 당선의 원동력이었지만 인플레이션을 제어하지 못하면서 지지층이 이탈했기 때문이다. 설상가상으로 남편 집권 기간과 자신의 집권 기간 6년간 재산이 7배로 늘면서 각종 부패 의혹에서도 자유롭지 못하다. 이제는 ‘보톡스의 여왕’ 등의 비아냥이 더 자주 들리는 판국이다.

아프리카에서도 여성 총리와 대통령 배출…올해만 새로 네 명 등장 

아프리카와 아시아에서도 여성 지도자가 나서고 있다. 라이베리아 독재 정권 아래에서 수감 생활을 하다 망명했던 ‘철의 여인’ 엘렌 존슨 설리프(71)는 2006년 아프리카 최초의 여성 대통령으로 돌아왔다. 경쟁 후보였던 아프리카의 축구 영웅 조지 웨아를 20%포인트 이상 따돌렸다. 설리프 대통령은 취임 직후 연설에서 “과거의 폭력과 근본적으로 결별하겠다”라고 선언했다. 내전 기간 동안 남성적 야만이 판치던 라이베리아를 복원하기 위해서는 여성이 나서야 한다고 강조했다. 잘못된 것을 바로잡기 위해 적극적으로 나설 의지도 밝혔다. 설리프 대통령은 취임 직후 ‘부패’를 상징하던 재무부 직원 3백명을 전원 해고하면서 강력한 의지를 보였다.

남부아시아의 이웃 국가인 인도와 방글라데시에서도 여성이 정치 전면에 등장해 있다. 간디 가문의 가신인 프라티바 파틸 인도 대통령(72)이 대표적이다. 그녀는 1962년 주의회 의원 선거에서 당선되어 정계에 입문한 뒤 주의회 의원만 다섯 번을 했고, 주정부 장관은 20년 이상을 지냈다. 1985년 상원의원에 당선되면서 중앙 정계에 데뷔했다. 그녀는 강단 있는 정치인으로 알려져 있다. 라자스탄 주 주지사 재직 시절 ‘개종 금지법’이 양심과 신앙의 자유를 침해한다는 이유로 수차례 법 집행을 거부하기도 했다. 비록 인도에서 대통령이 의전상의 자리라고 하지만 그녀를 만만하게 볼 수 없는 이유이기도 하다.

방글라데시 총리인 셰이크 하시나는 1975년 군사 쿠데타로 살해된 셰이크 무지부르 라만 초대 대통령의 딸이다. 아버지의 죽음이 정계 입문의 배경이 된 셈으로, 불안정한 서남아시아 정국의 희생양이라 할 수 있다. 1996년 처음 총리직에 오른 하시나 총리는 방글라데시 남동부 부족민들과의 평화 협상을 이끌어내면서 25년간의 길고 긴 분쟁을 청산한 업적을 남겼다. 2001년 총리직에서 사임했지만 지난 2009년 2년간의 군사 통치를 끝내고 치러진 총선에서 아와미 연맹을 이끌고 승리해 다시 총리가 되었다.

올해 들어서도 여성 지도자가 네 명이나 새롭게 탄생했다. 지난 6월 호주에서는 연말 총선에 위기감을 느낀 집권 노동당이 줄리아 길러드(48)를 총리로 선출했다. 러드 총리의 경질론이 확산된 지 하루 만에 전격적으로 결정된 일이었다. 영국 웨일스에서 광부의 딸로 태어나 네 살 때 호주로 이민 온 길러드 총리는 첫 이민자 출신 총리, 첫 여성 총리로 기록되었다.

지난 2월 당선된 라우라 친치야 코스타리카 대통령 역시 모국에서는 ‘최초’ 수식어를 달게 되었다. 중도 좌파 정당인 국민해방당 소속이지만 친치야 대통령은 동성 결혼과 낙태에 반대하며 교회와 정치 분리에도 유보적인 입장을 취하는 등 보수적인 성향을 지니고 있다.

지난 5월 트리니다드토바고에서는 50년간 집권했던 국민민족운동(PNM)이 패배했다. 대신 제1 야당인 연합민족의회(UNC)가 중심이 된 야당 연합이 전체 41개 의석 중 29개 의석을 차지하며 정권 교체를 이루었다. 그리고 첫 여성 교육부장관과 법무부장관을 지냈고 두 아이의 어머니이기도 한 카믈라 퍼사드-비세사르(58)가 첫 여성 총리에 올랐다.

키르기스스탄에서는 지난 4월 쿠르만벡 바키예프 전 대통령이 민중 봉기로 축출된 뒤 과도 정부의 대통령 대행을 맡았던 로자 오툰바예바가 지난 7월3일 첫 여성 대통령에 공식 취임하면서 세계 여성 지도자 대열에 이름을 올렸다.

 

▲ 1. 앙겔라 메르켈 | 독일 총리 | 1954년생 - 2005년~현재 - 독일 첫 여성 총리 ⓒ AP·EPA·International Herald Tribune 연합  
▲ 3. 마리 키비니에미 | 핀란드 총리 | 1968년생 - 2010년~현재 - 핀란드 두 번째 여성 총리 ⓒ AP·EPA·International Herald Tribune 연합
▲ 4. 요한나 시귀르다르도티르 | 아이슬란드 총리 | 1942년생 - 2009년~현재 - 세계 최초 동성 결혼한 정상 ⓒ AP·EPA·International Herald Tribune 연합

 

▲ 5. 메리 매컬리스 | 아일랜드 대통령 | 1951년생 - 1997년~현재 - 아일랜드 두 번째 여성 대통령 ⓒ AP·EPA·International Herald Tribune 연합  
▲ 7. 달리아 그리바우스카이테 | 리투아니아 대통령 | 1956년생 - 2009년~현재 - 리투아니아 첫 여성 대통령 ⓒ AP·EPA·International Herald Tribune 연합
▲ 8. 크리스티나 페르난데스 | 아르헨티나 대통령 | 1953년생 - 2007년~현재 - 네스토르 키르츠네르 전 대통령 부인 ⓒ AP·EPA·International Herald Tribune 연합
▲ 9. 엘렌 존슨 설리프 | 라이베리아 대통령 | 1938년생 - 2005년~현재 - 아프리카 첫 여성 대통령 ⓒ AP·EPA·International Herald Tribune 연합
▲ 10. 프라티바 파틸 | 인도 대통령 | 1934년생 - 2007년~현재 - 인도 첫 여성 대통령 ⓒ AP·EPA·International Herald Tribune 연합
▲ 11. 세이크 하시나 | 방글라데시 총리 | 1947년생 - 1996~2001년, 2008년~현재 - 방글라데시 초대 대통령 딸 ⓒ AP·EPA·International Herald Tribune 연합
▲ 12. 줄리아 길러드 | 호주 총리 | 1961년생 - 2010년~현재 - 호주 첫 여성 총리 ⓒ AP·EPA·International Herald Tribune 연합
▲ 13. 라우라 친치야 | 코스타리카 대통령 | 1959년생 - 2010년~현재 - 코스타리카 첫 여성 대통령 ⓒ AP·EPA·International Herald Tribune 연합
▲ 14. 카믈라 퍼사드-비세사르 | 트리니다드토바고 총리 | 1952년생 - 2010년~현재 - 트리니다드토바고 첫 여성 총리 ⓒ AP·EPA·International Herald Tribune 연합
▲ 15. 로자 오툰바예바 | 키르기스스탄 대통령 | 1950년생 - 2010년~현재 - 키르기스스탄 첫 여성 대통령 ⓒ AP·EPA·International Herald Tribune 연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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