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뒷문’ 열린 아프간 전장
  • 조홍래 | 편집위원 (sisa@sisapress.com)
  • 승인 2010.08.03 18: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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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키스탄 정보국(ISI), 탈레반·알 카에다 조직과 내통하면서 미군의 작전 정보 제공한 정황 드러나

 

▲ 702008년 11월30일 인도의 우익 단체 운동가들이 뭄바이 테러 사건과 관련해 파키스탄의 ISI를 규탄하는 시위를 벌이며 모형과 깃발을 불태우고 있다. ⓒAFP

미국의 아프가니스탄(이하 아프간) 전쟁이 엉뚱한 복병을 만났다. 미국은 아프간 전쟁을 위해 파키스탄에 매년 10억 달러, 지금까지 총 100억 달러 이상을 원조했다. 올해도 5억 달러를 줄 예정이다. 파키스탄 내 탈레반 및 알카에다를 소탕하는 데 협조를 얻기 위해서다. 그러나 무슨 이유에서인지 반군 소탕은 별 성과가 없고 아프간 전쟁은 지지부진하다. 아프간이 제2의 베트남 전쟁이 될지도 모른다는 우려마저 나오는 상황에서 미스터리의 실마리가 일부 밝혀졌다. 파키스탄 정보국(ISI; Inter-Service Intelligence)이 그동안 탈레반 및 알카에다 조직과 내통하면서 미군의 작전 정보를 반군에 알렸다는 것이다. 이 사실은 폭로 전문 인터넷 사이트 위키리크스(WikiLeaks)가 뉴욕타임스에 제공한 자료에 의해 7월26일 처음으로 밝혀졌다.

파키스탄은 적어도 겉으로는 미국의 강력한 동맹이며 9·11 이후 대테러 전쟁에서 미국에 전폭적으로 협조해왔다. 그러나 이 기정사실은 여지없이 무너졌다. ISI는 아프간 전쟁이 시작된 2001년 이후 지난 9년간 아프간에서 탈레반 조직과 비밀 회담을 갖고 미군에 대항하는 전술 전략을 수립했다. 미국에는 청천벽력과 같은 일이지만, 파키스탄 입장에서는 그만한 이유가 있다. 아프간과 파키스탄은 대테러 전쟁에서는 동조하는 사이이지만, 미국을 배제한 관계에서는 잠재적인 적이다. 파키스탄은 내심 현 하미드 카르자이 대통령이 이끄는 친미 아프간 정부보다 탈레반이 장악한 아프간 정부를 선호한다. 그래서 ISI와 탈레반 회동에서는 아프간 지도자들을 암살하는 계획도 논의되었다. ISI와 탈레반의 인연은 1980년대 소련의 아프간 침공 시절로 거슬러 올라간다. 두 세력은 이때부터 ‘동지’였고, 그렇게 맺어진 숙명적 유대가 지금까지 유지된다. 

위키리크스 보도로 미루어보면, 아프간 미군은 아프간 북부 파키스탄 국경에서 탈레반 및 알카에다 조직에 완전히 노출된 상태에서 작전을 한 셈이다. 이번에 폭로된 정보의 대부분은 객관적으로 확인할 수 없으나 출처는 파키스탄을 적으로 간주하는 탈레반 소식통에서 나왔다. 미국 군부는 이 정보를 상당히 신뢰할 수 있는 것으로 보고 있다. 전·현직 미군 관리들은 이 정보가 미국 정보 기관들의 분석과 대략 일치한다고 말했다. 파키스탄은 지금까지 아프간 국경에서 알카에다나 탈레반과의 정면 대결을 피하면서 은연중 이들에게 피난처를 제공하는 이적 행위를 자행했다. 결국 반군 소탕에 최선을 다했다는 파키스탄의 선전은 거짓말로 드러났다.

▲ 2007년 3월16일 파키스탄 경찰이 이슬라마바드에서 열린 이프티크 무하마드 초드리 대법원장 해임 규탄 시위 현장에서 하미드 굴 전 ISI 대장을 체포하고 있다. ⓒAFP
미국의 대파키스탄 정책과 아프간 출구 전략 수정 불가피

지난 7월 파키스탄을 방문한 힐러리 클린턴 국무장관은 5억 달러의 추가 원조를 발표하면서 “미국과 파키스탄이 공동의 대의를 위해 손을 잡았다”라고 말했다. 하지만 이번 일로 그녀의 말도 해프닝이 되고 말았다. 

일부 미국 의원들은 ISI와 탈레반의 내통에 대해 미국 정보 기관에 몇 년 전부터 진위 확인을 요청했으나 중앙정보국(CIA)과 국방부는 번번이 애매모호한 답변만 해왔다. 의원들은 파키스탄 정보 기관과 반군 간의 제휴를 거의 확신하고 있었다. 상원 군사위 소속 의원 두 명은 최근 파키스탄을 방문했을 때 요사프 라자 질라니 총리에게 이 문제를 직접적으로 따졌으나 강한 부인 외에 신통한 답변을 듣지 못했다. 

2008년 7월에는 카불 주재 인도 대사관이 공격을 받았다. 이 공격도 ISI와 탈레반의 합작품이었다고 한다. 파키스탄은 인도와 앙숙 관계이기 때문에 여기에 ISI가 개입했다는 것이 미국의 판단이다. 2008년 8월에는 ISI 요원들이 탈레반과 제휴해 카르자이 아프간 대통령의 암살까지 모의했으나 계획이 실현되지는 않았다. ISI와 탈레반의 관계에는 하미드 굴이라는 파키스탄 군 중장이 중심 인물로 떠오른다. 그는 1987년부터 1989년까지 ISI를 이끌었다. 그가 대소 항전 당시 상대했던 무장 반군 무자헤딘은 탈레반으로 진화했다. 그 후 20년의 세월이 흘렀지만 그는 여전히 ISI와 탈레반을 맺어주는 역할을 하고 있다. 그가 조직한 수천 명의 탈레반 조직은 아프간 반군의 주력으로 활동한다.

위키리크스 자료에 그의 이름이 수없이 등장하는데 파키스탄 군부가 그의 역할을 몰랐을 가능성은 없어 보인다. 그는 2009년 남부 와지리스탄 성 수도 와나에서 탈레반 지도자들과 만났다. 이 자리에는 알카에다 지도자 세 명도 동석했다. 이 회동에서는 미군의 무인기 공격으로 사망한 알카에다 수괴 자마리에 대한 복수 계획이 논의되었다. 탈레반은 그 후 세를 과시하기 위해 50명의 아랍인과 50명의 와지리 전사들을 아프간 가즈니 성에 침투시키는 계획을 세웠다. 굴 장군은 파키스탄 내 부족 지역에 있는 반군의 존재를 눈감아주는 대가로 아프간 내에서 미군과 나토군을 공격하는 작전을 벌이도록 명령했다. 이를 감지한 미국은 유엔에 굴을 테러리스트 명단에 올리도록 압력을 넣었다. 현재 군에서 퇴역해 파키스탄 군 사령부가 있는 라왈핀디에서 거주하는 굴은 이런 보도를 일축했다. 파키스탄 군부도 굴이 아직 모종의 역할을 하고 있다는 주장을 부인했다. 그러나 수년 전 페레스 무샤라프 파키스탄 대통령은 미국의 압력에 견디다 못해 굴과 탈레반의 관계를 시인한 바 있다. 2006년 갑자기 격렬해진 아프간 내 자살 폭탄 공격도 굴의 작품으로 확인되었다.

위키리크스가 공개한 9만건의 비밀 문서는 2004년부터 2009년까지 6년간의 미군 야전 일지를 담고 있으나 ISI와 반군의 내통은 9년째 계속되고 있다. 파키스탄과 탈레반의 내통은 미국의 아프간 전략에 치명적인 허점이 있음을 보여준다. 이 사건은 미군 작전 기밀의 공개라는 파장 외에도 파키스탄을 동맹으로 믿고 벌여온 미국의 대테러 작전에 치명타를 안겼다. 오바마 행정부의 아프간 출구 전략도 크게 흔들리고 있다. 아프간 논쟁에 당장 불이 붙었다. 그러나 해답은 보이지 않고 오바마의 고민만 깊어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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