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영화’ 속앓이 깊은 산업은행
  • 이석 (ls@sisapress.com)
  • 승인 2010.08.03 18: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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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유성 회장, 취임 후 정부와 자주 충돌 빚어…정부 의지와 무관하게 공격 경영 펼친 것이 원인

 

▲ 2008년 10월21일 국회에서 열린 정무위원회의 국정감사에서 민유성 산은금융지주 회장이 의원의 질문에 답변하고 있다. ⓒ시사저널 자료사진

민유성 산업은행 행장 겸 산은금융지주 회장의 속이 까맣게 타들어가고 있다. 어렵게 ‘민영화’를 위한 돛은 올렸는데, 좀처럼 앞으로 나가지 못하고 있다. 정부와 엇박자를 내는 모습도 자주 감지된다. 1년 정도 남은 임기 동안 민영화의 초석을 다질 수 있을지 은행 안팎에서 의구심이 제기되고 있다. 산업은행 내부에서조차 “2년 임기 동안 해놓은 것이 무엇이냐”라는 볼멘소리가 나올 정도이다. 산업은행도 답답하기는 마찬가지다. 산업은행 관계자는 “칼자루를 쥐고 있는 정부조차 명확한 기준을 가지고 있지 않다. 이런저런 의견이 나왔다가 번복되는 상황만 반복되고 있다”라고 어려움을 토로했다.  

산업은행은 지난 4월1일 창립 56주년을 맞아 대대적인 행사를 준비했다. 은행 관계자는 “민영화 원년이라는 상징성이 있어서 북 콘서트 등 대형 공연을 준비했다. 행사 진행 업체에 계약금까지 지불한 상태였다”라고 귀띔했다. 그런데 기념일을 코앞에 둔 시점에서 돌연 공연이 취소되었다. 서울 여의도 사옥 지하 강당에서 민유성 회장의 축사와 김윤종 SYK글로벌 회장의 강의를 듣는 것으로 행사는 마무리되었다. 산업은행측은 “천안함 사태가 발생하면서 내부적으로 자중하자는 의견이 제기되었다”라고 연기 사유를 밝혔지만, 은행권 안팎에서는 ‘정치권의 눈치를 보는 것이 아니냐’라는 지적도 나왔다.

민회장은 지난 2008년 6월11일 산은금융지주 회장에 취임했다. 초창기만 해도 그는 산업은행 민영화를 이끌 적임자로 꼽혔다. 금융위원회는 ‘리먼브러더스, 모건스탠리 등 글로벌 금융 회사에서 근무한 경험과 전문 지식을 높게 살 만하다’라는 내용의 보고서를 청와대에 제출했다. 이를 바탕으로 산업은행 민영화 계획이 마련되었다. 하지만 산업은행 민영화는 시작부터 삐걱거렸다. 민회장은 부도 직전이던 리먼브러더스를 인수하려다 정치권으로부터 호된 공격을 받았다. 민주당은 물론이고, 한나라당에서조차 ‘산업은행 민영화 재검토’ 목소리가 나왔다. 그러는 사이 산업은행 민영화법의 국회 통과는 해를 넘겼다.

지난해 5월 우여곡절 끝에 관련법이 국회를 통과했다. 10월에는 공공 부문인 정책금융공사와 민간 부문인 산은금융지주로 산업은행이 분리되었다. 민영화를 위한 항해가 본궤도에 오른 셈이다. 이후 산업은행의 민영화 시계는 다시 멈추었다. 민회장이 의욕적으로 추진했던 외환은행 인수는 정부 반대로 무산되었다. 진동수 금융위원장이 공개 석상에서 “M&A(합병·매수) 주체는 주인(정부)이지 은행이 아니다”라고 꼬집을 정도였다. 수신 규모 확대와 은행 경쟁력 확보 차원에서 도입할 예정이었던 예금 모집인 제도도 무산되었다. 금융 당국은 예금 모집인 제도를 은행법 위반이라고 규정했다. 올해 초 추진했던 태국 시암시티 은행(SCIB) 인수도 정부가 반대하면서 포기해야 했다.

상장 시기를 놓고도 정부와의 사이에 불협화음이 감지되고 있다. 민회장은 취임 2주년을 맞아 “내년까지 국내에 상장할 계획이다. 현재 정부와 상장 계획이나 절차를 논의 중이다”라고 밝혔다. 그러나 금융위측은 “산업은행과 협의한 적이 없다”라고 말하고 있다. 금융위 관계자는 “산업은행 민영화와 관련해 ‘5년 내에 최초 지분을 매각한다’는 원칙 외에 현재까지 결정된 것은 아무것도 없다”라고 밝혔다.

최근 가계 대출 시장까지 진출했다가 낭패 ‘일보 직전’  

▲ 서울 여의도에 있는 한국산업은행 본점. ⓒ시사저널 유장훈

민영화 칼자루를 쥐고 있는 정부와 민회장이 잇달아 충돌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산업은행이 민영화되기 위해서는 자립 기반을 확보해야 한다. 하지만 산업은행의 경우에는 지점 기반이 없다고 해도 지나치지 않다. 시중 은행처럼 수신 기반도 많지 않다. 민회장의 입장에서는 시중 은행 M&A를 통해 단점을 보완할 필요가 있다. 반면에 정부 입장은 다르다. 매각 대상이 덩치를 키울 경우, 오히려 매각 작업만 더 복잡해질 수 있다고 본다. 금융위 관계자는 “산업은행을 현재 시장에 내놓는다고 해도 당장 인수할 수 있는 주체는 없을 것으로 본다. 민영화 전까지는 최대한 체질을 개선하는 것이 목표이다”라고 말했다.

민회장이 카드 사업이나 부동산 대출 시장 진출을 선언한 것도 같은 맥락으로 이해할 수 있다. 민회장은 “취약한 민간 금융을 보안할 수 있는 카드 사업을 검토하고 있다”라고 밝혔다. 지난 6월에는 시중 은행이 취급하는 아파트 대출 시장에까지 진출하는 등 공격적 행보를 이어가고 있다. 산업은행 관계자는 “민영화를 위해서는 자립 기반을 마련해야 한다. 모든 가능성을 열어두고 검토 중이라고 보면 된다”라고 귀띔했다. 그 이면에는 정부안대로 민영화를 추진했다가는 은행의 경쟁력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는 속내가 포함된 것으로 풀이된다. 

산업은행은 지난 6월23일 서울 여의도 본점에서 SK건설과 수원 정자동 SK스카이뷰 중도금 대출 업무 협약을 맺었다. 민영화를 앞두고 가계 대출 시장까지 진출한 것이다. 대출 규모는 5천억원 상당이다. 이를 위해 최근 모델하우스에 상담 부스를 설치하고 분양 고객들로부터 대출 상담을 받았다. 민회장은 “처음으로 취급하는 업무이니만큼 은행 이미지를 실추시키는 일이 없도록 철저히 준비하라”라고 지시했다는 후문이다.

그런데 최근 변수가 발생했다. 수원시에서 이 아파트의 특혜 분양 의혹을 다시 들추고 있는 것이다. 수원 스카이뷰 부지는 원래 SK케미칼 공장 부지였다. 그런데 2007년 수원시가 갑자기 도시 기본 계획을 변경시키면서 공업용지가 주거용지로 바뀌었다. 민주당 소속인 염태영 수원시장이 당선되면서 용도 변경 관련 의혹이 다시 불거지는 흐름이다. 아파트 문제가 원점에서 재검토된다면 시공사인 SK건설뿐 아니라 중도금 대출을 맡은 산업은행에도 유탄이 튈 수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SK건설이나 산업은행측은 “계약금까지 지불한 상태에서 인허가를 재검토하는 것은 말이 되지 않는다”라고 불만을 나타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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