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멀리 내다보는 ‘유치원장’의 실험

조광래 감독, 1990년대생들 앞세워 과감하게 세대교체…투지의 축구 넘어 ‘아름다운 축구’ 지향

서호정 | 스포탈코리아 기자 ㅣ 승인 2010.08.10(Tue) 13:35: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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축구 국가대표팀의 새 수장으로 선임된 조광래 감독은 현역 시절 정교한 패스를 구사한 덕에 ‘컴퓨터 링커’라는 멋진 별명이 붙었다. 하지만 지도자 조광래의 별명은 권위와는 거리가 먼 ‘유치원장’이다. 축구와 별 연관은 없어 보이지만 사연을 들어보면 ‘유치원장’이 그의 철학을 반영하는 별명임을 알 수 있다. 1986년 아시안게임 우승 후 현역에서 은퇴한 조광래 감독은 지도자 수업을 위해 유럽과 남미를 떠돌았다. 선진 축구를 경험한 그가 내린 결론은 ‘조기 육성만이 팀의 운명을 바꾼다’였다. 한국으로 돌아온 조광래 감독은 채 완성되지 않은 어린 선수들의 잠재력을 꿰뚫어보고 팀 전력의 주축으로 세우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대학생이 대상이었지만 그 뒤에는 고등학생, 안양 LG 감독이던 2002년부터는 중학생으로 점점 관심 연령대가 내려갔다. 지난 2008년부터 이끈 경남 FC에서는 김병지를 제외하고는 K리그 100경기 이상 출전한 선수가 아예 없었다. 그래서 붙은 별명이 ‘조광래 유치원’이었다.

 

   
▲ 축구 국가대표팀 조광래 감독이 8월5일 축구협회에서 나이지리아전 대표팀 명단을 발표하고 있다.
ⓒ연합뉴스

■ 대표팀에서도 실험은 멈추지 않는다

조광래 감독은 대표팀 감독 부임 후 처음으로 치르는 나이지리아전에 소집할 명단을 발표하면서 A매치 출전 경험이 아예 없는 6명의 선수를 포함시켰다. 올 시즌 K리그 신인상 후보인 지동원(전남), 윤빛가람(경남), 홍정호(제주) 그리고 J리그에서 뛰는 김영권(FC 도쿄), 조영철(니가타), 김민우(사간토스)가 그들이다. 이들은 모두 1989년생에서 1991년생 사이인 갓 스무 살 무렵의 어린 선수들이다.

청소년 대표 출신이지만 아직 검증되지 않은 어린 선수들을 뽑은 조광래 감독의 실험에 대해 우려하는 목소리도 있다. 그러나 조광래 감독의 입장은 단호하다. 그는 한국 축구가 2014년 브라질월드컵에서도 성공을 거두기 위해서는 세대교체를 단행해야 한다는 소신을 밝혔다. 특히 수비 불안과 득점력 빈곤 같은 해묵은 과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기존 선수들이 아닌 한·일월드컵을 통해 진일보된 환경과 시스템에서 자란 어린 선수들의 재능이 필요하다”라는 말을 남겼다.

조광래 감독이 자기 방식에 확신을 갖는 것은 이미 결과물이 있기 때문이다. 2010 남아공월드컵을 통해 대표팀의 기둥으로 확실히 자리매김한 이청용이 바로 그 주인공이다. 이청용은 조광래 감독의 강력한 설득으로 15세이던 2003년 도봉중을 중퇴하고 프로 무대에 입성했다. 조광래 감독은 “당시 이청용은 전국의 중학생 중 유일하게 상대 수비 사이로 파고드는 도전적인 드리블을 구사하는 선수였다”라고 말했다. 재능이 있다면 연령, 학력, 명성은 얼마든지 배제할 수 있다는 것이다.

■ 속도에서 이겨야 세계를 이긴다

조광래 감독은 취임 당시에 가시적 성과도 중요하지만 한국 축구의 질적 향상이 더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2002년 월드컵 4강, 2010년 원정 월드컵 16강의 성과를 낸 만큼 이제는 투지와 정신력, 체력에 의존하는 축구가 아닌 한 단계 업그레이드된 ‘아름다운 축구’를 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는 한국 축구가 장기적인 롤 모델로 삼아야 할 팀으로 2010 남아공월드컵 우승을 차지한 스페인 대표팀을 꼽았다. 패스와 기술을 우선에 둔 스페인은 완벽한 축구로 상대를 무너뜨리는 것으로 유명하다.

한국 축구가 스페인과 같은 아름다운 축구를 따라잡으려면 가장 필요한 것이 경기 속도의 향상이다. 현대 축구는 공수 전환 시 얼마나 빠른 속도를 낼 수 있느냐를 핵심 과제로 삼고 있다. 한국 축구는 히딩크 감독이 지휘봉을 잡기 이전까지 그 속도전의 요체를 개인의 스피드로 착각했다. 하지만 조광래 감독은 패스라는 축구의 가장 기본적인 도구에 주목한다. ‘공보다 빠른 선수는 없다’라고 늘 강조하는 그는, 좁은 공수 간격을 유지하며 정확한 패스로 상대의 압박을 깨는 스페인식 축구를 K리그에서 보여주었다.

조감독은 대표팀에 들기 위해 갖춰야 할 가장 중요한 자격으로 ‘생각하는 축구’를 강조한다. “90분을 뛸 강한 심장과 축구 지능이 있다면 체격 조건은 중요하지 않다”라고 말할 정도이다. 공수 전환 속도와 효과적인 전술에 대해 고민하고, 생각하는 플레이를 펼쳐야 대표팀에 부르겠다는 입장이다. 현재 K리그에서 좋은 기량을 보여주고 있는 이동국은 그런 기준에 포함되지 못해 나이지리아전 명단에서 전격 제외되었다.

■ 조광래호의 키워드, ‘3분의 1 법칙’을 읽어라

아름다운 축구를 위해 조광래 감독은 대표팀 구성에서 ‘3분의 1 법칙’을 유지하겠다는 입장이다. 대표팀 전체를 놓고 볼 때 팀의 확실한 중심이 되어 줄 해외파를 3분의 1로 구성하겠다는 것이 우선이다. 이에 해당하는 선수는 박지성, 이영표, 박주영, 이청용, 기성용, 이정수이다. 다음은 당장 경기에 투입할 수 있는 국내의 젊은 선수들이 3분의 1을 차지한다. 조용형, 염기훈, 황재원, 최효진, 백지훈, 정성룡 등 20대 중·후반의 국내파를 얘기한다. 그리고 향후 2~3년을 내다보며 세대교체를 위한 젊은 피가 마지막 3분의 1에 해당한다. 이번에 조광래 감독이 전격 발탁한 지동원, 윤빛가람, 홍정호, 김민우, 김영권 등이 이 범주에 속한다.

이같은 ‘3분의 1 법칙’은 축구 대표팀의 체질 개선을 위한 세대교체 작업을 진행하는 동시에 가시적 성과도 놓치지 않겠다는 의지의 발로이다. 당장 2011년 1월에 있을 아시안컵 우승을 위해 팀의 골격을 이루는 즉시 전력들을 중용하면서도 이번 남아공월드컵의 이청용, 기성용처럼 차기 월드컵의 핵심 전력이 될 1990년대생들을 ‘조광래 키즈’로 키운다는 것이다. 대표팀 전력의 반을 차지한다는 박지성과 이영표는, 2014년 월드컵은 자신의 몫이 아니라며 대표팀 은퇴를 이미 예고했다. 결국 지금부터 준비하지 않으면 핵심 전력들의 공백을 메울 수 없다는 것이 3분의 1 법칙에 담긴 조광래 감독의 장기적 관점이다.

 분데스리가 놀라게 한 18세의 재능

 
▲ 손흥민 선수
ⓒSBS 제공
최근 독일 분데스리가는 조광래 감독이 주목할 10대 한국 소년의 재능에 들썩이고 있다. 주인공은 함부르크 SV에서 뛰고 있는 공격수 손흥민이다. 2008년 대한축구협회의 유소년 유학 프로그램에 의해 함부르크 유스팀에 입단한 손흥민은, U-19 리그에서 두각을 나타내며 올 초 2군에 승격했다. 그리고 지난 7월 초 팀과 계약 기간 2년의 1군 정식 계약을 맺으며, 오프 시즌 동안 치러지는 프리 시즌 훈련에 합류했다. 프리 시즌 9경기에서 손흥민은 무려 9골을 터뜨렸다. 지역 팀을 상대로 해트트릭을 달성하고 명문 유벤투스를 상대로 풀타임 출전했다. 7월4일 프리미어리그 챔피언 팀인 첼시를 상대로 역전골을 넣으며 독일 전역에서 화제가 되기도 했다.

중학교 2학년 때까지 정식 축구부 가입 없이 프로축구 선수 출신인 아버지 손웅정씨로부터 개인 교육만 받았던 손흥민은, 안정된 기본기를 앞세워 빠르게 성장하며 함부르크 구단의 기대를 한 몸에 받고 있다. 함부르크의 주전 공격수인 뤼트 판 니스텔로이조차 “저 소년의 특별한 재능에 반했다”라며 멘토를 자처하고 나섰을 정도이다. 안타깝게 손흥민은 첼시와의 경기 막판에 상대 수비수 태클에 부상을 입어 앞으로 4주가량 경기에 나설 수 없게 되었다. 그러나 지난 한 달간 독일 축구계는 이미 손흥민과 사랑에 빠진 모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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