잃어버린 꿈을 향해 ‘샤우팅’하다
  • 정덕현 | 대중문화평론가 ()
  • 승인 2010.08.17 11: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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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악 내세운 드라마 <나는 전설이다> 화제…‘밴드’의 자유·저항 정신 통해 답답한 중년의 현실 탈출 그려

 

▲ ⓒSBS

 


호화로운 집, 고급 세단, 화려한 파티, 명품 백과 우아한 드레스, 게다가 누구나 부러워하는 명망가의 변호사로 잘나가는 남편. 돈 걱정 없는 삶…. 하지만 SBS 월화드라마 <나는 전설이다>(극본 임현경· 마진원, 연출 김형식)의 전설희(김정은)는 이런 삶이 거짓이라고 말한다. 그녀는 “더 이상 나를 숨기며 살 수는 없다”라며 이혼을 결심한다. 그렇다면 그녀의 진짜 삶은 무엇일까. 젊은 시절, 가난했어도 피를 끓게 했던 무대 위, 그곳에 그녀가 꿈꾸는 진짜 삶이 있다. 기타 하나 들고 노래를 부르면 가슴 속의 답답한 체증을 전부 날려버릴 수 있었던 그 시간의 기억들. ‘밴드’에 어떤 매력이 숨겨져 있기에 이 여성은 자신이 가진 모든 것을 버리려고 하는 것일까.

‘밴드’라는 열쇳말을 두고 보면 <나는 전설이다>라는 드라마를 상기시키는 영화가 있다. 이준익 감독의 <즐거운 인생>(2007년)이다. 이 영화에서 비루한 인생을 살아가던 남자들은 ‘밴드’로 묶이면서 그 갑갑하고 출구 없는 일상을 음악으로 돌파한다. 자꾸만 설 자리가 없어지는 남성들이 이 영화를 보며 열광했던 것은 매일매일 치열한 경쟁 속에서 살아오면서 잊고 있었던 즐거운 청춘에 대한 기억과 꿈을 떠오르게 했기 때문이다.

물론 <나는 전설이다>의 전설희라는 여성이 밴드로 복귀하는 이야기와 <즐거운 인생>에서 지질한 남성이 밴드로 복귀하는 이야기 사이에는 약간의 차이가 존재한다. 남성들은 인생의 끝단에 몰려서 밴드라는 희망의 끈을 부여잡는 반면, 전설희라는 여성은 가진 모든 것을 버리고 밴드를 선택한다는 점에서 좀 더 능동적이다. 남성이 사회에서 겪는 절망을 밴드를 통해 풀어낸다면, 여성들은 여전히 남아 있는 가부장적인 결혼 생활이 갉아먹는 자존감을 밴드를 통해 확인하려 한다. 성별에 따른 삶의 차이가 있기 때문에 밴드를 선택하는 동기의 차이는 분명 존재하지만, 밴드를 중심으로 보면 삶의 억압과 그 탈출구로서의 음악이라는 점은 그리 다르지 않다.

그렇다면 밴드에는 도대체 어떤 매력이 숨겨져 있는 것일까. 이 질문에 대한 답의 단초는 “왜 다른 것도 아니고 하필 ‘밴드’인가”라는 질문으로 풀릴 수 있을 것이다. 여기에는 ‘밴드’만의 자유, 저항 정신, 마이너리티 정서 같은 감성에 대한 향수가 숨겨져 있다. 밴드 하면 연관되어 떠오르는 록의 정신, 사회적인 억압이나 관습적인 틀을 비집고 튀어나오는 그 저항 정신의 뜨거움, 가진 것 하나 없어도 젊음(생각의 젊음이다) 하나로 하나가 되는 사람들. 위선과 거짓으로 가득한 메이저의 세상을 뒤집는 위치에 있기에 마이너리티일 수밖에 없지만, 바로 그것 때문에 무엇 하나 거칠 것이 없는 생각의 자유. 이것들이 답답한 현실 속에서 하루하루를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밴드’라는 존재가 던지는 매혹이다.

현실에 대한 비판과 ‘지금 현재’ 우리가 어떤 삶을 누려야 하는가 질문도 담아

이들 ‘밴드 콘텐츠(?)’ 속에서 주목해야 할 것은, 그렇게 모든 것을 던지고 밴드로 회귀하는 인물의 연령대이다. 그들은 대부분 사회 경험을 통해 그 깊은 억압을 겪어본 중년이다. 중년이 그 청춘의 시절에 만끽했던 ‘밴드’의 경험(여기에는 밴드에 열광했던 기억까지 포함된다)은 이런 콘텐츠 속에서 향수가 되어 이들을 자극한다. 이 중년들은 ‘밴드’를 통해 청춘의 기억을 더듬으며 그때의 마음으로 되돌아가려 한다. 도대체 나이가 장애가 될 것은 뭔가. 왜 지금 하면 안 되는가.

중년들의 이 행위는 잃어버린 문화의 복원을 꿈꾸는 것이면서, 또한 지나치게 상업화되면서 사라져버린 아마추어리즘의 도전과 실험 정신을 꿈꾸는 것이기도 하다. <나는 전설이다>에서 밴드 음악을 하는 주인공의 이야기와 동시에, 아이돌로 대변되는 상업화된 현재의 음악계가 등장하는 것은 흥미로운 일이다. 그러니 그들이 돌아간 무대는 단지 향수에 머무르는 것이 아니다. ‘밴드’라는 존재가 그려내듯이 거기에는 현실에 대한 비판과 ‘과거 그때’가 아니라 ‘지금 현재’, 우리가 어떤 삶을 누려야 하는가에 대한 질문이 들어 있다.

▲ ⓒKBS
윤도현이 출연했던 <정글스토리>는 당대 ‘록 월드’라는 실제 라이브 록카페를 공간으로 사라져가는 밴드 음악의 끝단을 잡아냈다. 음악을 영화로 끌어들이기를 즐겨하는 이준익 감독은 <라디오 스타>에서 한물간 가수의 삶을 그려내고는, <즐거운 인생>으로 직장인 밴드를 통해 당대 고개 숙인 남자들을 환호하게 만들었다. 심지어 그의 음악 취향(?)은 <님은 먼 곳에>라는 영화에까지 이어져 월남으로 가는 순이(수애)에게 마이크를 쥐게 했다.

 

TV는 주로 예능 프로그램이 밴드를 다뤄왔는데, ‘오빠밴드’처럼 아예 밴드를 특화해 하나의 코너로 만든 것도 있고, <무한도전>이나 <남자의 자격>처럼 하나의 아이템으로 밴드를 활용한 것도 있다. 최근에는 드라마가 밴드를 소재로 하기 시작했는데, <나는 전설이다>가 대표적이고 주말극으로서 <글로리아>도 역시 밤무대 가수를 소재로 한다는 점에서 유사점이 있다. 이들 드라마들이 무대 위에 여성들을 올린 것은 다분히 사회적 억압으로부터의 탈피와 동시에 개인적 성장의 공간으로서 무대가 매력적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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