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력 위한, 권력의, 권력 개편인가
  • 정락인 (freedom@sisapress.com)
  • 승인 2010.08.17 11: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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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희락 경찰청장 사퇴 두고 정권과 ‘사전 교감설’ 솔솔…충성도 높은 기관장들, 레임덕 막을 첨병 될 듯

 

▲ 지난 6월18일 강희락 경찰청장(오른쪽)과 조현오 경찰청장 내정자(서울지방경찰청장·왼쪽)가 서울 마포구 아현초등학교를 방문해 초등학교 주변 통학로와 놀이터, 공원 등에 범죄 취약 요소가 있는지를 점검하고 있다. ⓒ연합뉴스

이명박 대통령의 집권 후반기 레이아웃이 그려졌다. 지난 8월8일에 단행한 3기 개각은 ‘친위 부대’의 전면 배치였다. 그중에서도 4대 권력 기관(국가정보원, 검찰, 경찰, 국세청)의 수장들은 가장 충성도가 높은 인사들로 채워졌다. 이번 개각에서는 원세훈 국정원장과 김준규 검찰총장을 제외한 경찰청장과 국세청장 두 자리가 바뀌었다.

특히 논란이 되는 것은 강희락 경찰청장의 갑작스런 사퇴와 그 후임에 조현오 서울경찰청장을 내정한 것이다. 강청장은 지난 8월5일 대변인실을 통해 “대통령이 집권 후반기 새로운 진용을 갖추는 데 도움이 되고, 경찰 내부의 인사 적체에 숨통을 틔워주기 위해 용퇴를 결심했다”라며 사퇴 의사를 밝혔다. 강청장이 느닷없이 사퇴하자 가장 당황한 것은 출입기자들과 경찰 조직 내부였다. 그만큼 의외였다. 강청장은 ‘용퇴’라며 스스로 거취를 정한 것처럼 표현했지만 이를 그대로 받아들이는 사람은 별로 없었다. 오히려 여러 의혹을 증폭시킬 뿐이었다.

경찰청장은 임기가 보장되어 있는 ‘임기제 청장’이다. 지난 2003년 경찰의 정치적 중립을 위해 법으로 2년 임기를 정해놓았다. 강청장의 경우 지난해 3월 김석기 경찰청장 내정자가 용산 철거민들을 강경 진압한 책임을 지고 사퇴한 후 그 후임으로 임명되었다. 내년 3월까지 임기가 7개월이나 남아 있었다. 재임 중에 성범죄 발생, 양천서 고문 의혹 등이 문제가 되었으나 강청장이 직접 책임질 사안은 아니었다.

그런데도 강청장은 법에 보장된 ‘임기’를 박차고 나섰다. 왜 그랬을까. 일부 언론에서는 경북 청도 출신인 이현동 국세청 차장을 청장으로 승진시키기 위한 사전 포석이라고 해석하고 있다. 강청장을 그대로 둘 경우 원세훈 국정원장(경북 영주), 강희락 경찰청장(경북 상주) 등 4대 권력 수장 중 세 명을 TK(대구·경북) 출신들로 채운다는 부담을 안게 된다는 것이다.

나름으로 설득력이 있는 분석이다. 그러나 그것만으로는 설명이 부족해 보인다. 조현오 경찰청장 내정자 또한 부산 출신이라 결국 ‘영남 출신’으로 묶이기 때문이다. 이런 이유로 강청장이 사퇴한 시점에 주목하는 이들이 많다. 강청장이 사퇴하지 않았다면 차기 경찰청장은 내년 3월에 임명하게 된다. 문제는 차차기 청장의 임명 시점이다. 이번에 청장이 바뀌지 않았다면 차차기 청장은 차기 정권이 출범한 직후인 2013년 3월에 임기를 시작하게 된다. 

이럴 경우 현 정권은 큰 부담을 떠안아야 한다. 차차기 청장을 노리는 경찰 간부들이 차기 정권에 줄을 서면서 정권의 기반이 흔들릴 수도 있다. 즉, 임기 하반기에 정권의 손발이나 다름없는 사정 기관에서 권력 누수 현상이 일어날 수 있다는 우려가 있다. 이 때문에 이명박 대통령은 이번에 경찰청장 교체가 절실했다고 볼 수 있다.

강청장의 사퇴로 이대통령은 실보다 득이 훨씬 많아졌다. 차차기 청장은 2012년 8월에 바뀌게 된다. 현 정권에서 임명권을 행사하게 되고, ‘자기 사람’을 심어놓을 수 있게 되었다. 혹시 모를 화근을 미리 자르는 한편, 충성도가 강한 측근을 청장에 배치하는 ‘일석이조’의 효과를 거둔 셈이다.

때문에 일각에서 제기되는 청와대와 강희락 청장과의 ‘사전 교감설’이 설득력을 얻고 있다. 강청장에게 사퇴하는 대신 모종의 자리를 제안했을 가능성이 제기되는 이유이다. 

조현오 서울경찰청장을 차기 경찰청장에 내정한 것도 논란거리이다. 조청장은 부산경찰청장, 경기경찰청장, 서울경찰청장을 거치면서 ‘성과주의’를 강조했다. 경찰 안팎에서 적지 않은 반발이 있었던 것도 사실이다. 급기야 지난 6월 서울 양천경찰서에서 피의자 고문 사건이 터졌고, 채수창 당시 서울 강북경찰서장은 “고문 배경에 조청장의 무리한 성과주의가 있다”라며 조청장과의 동반 사퇴를 주장했다. 무궁화클럽 등 경찰 커뮤니티는 ‘조현오식 성과주의’를 비판하는 글들로 넘쳐났다. <시사저널>이 서울에 근무하고 있는 경찰관 1백20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조사에서도 66.7%가 조청장의 퇴진을 요구했다. 

설문조사 결과로만 보면 조현오 청장에 대한 경찰 조직 내부의 반감이 어느 정도인지를 알 수 있다. 이런 상황에서 경찰청 중앙징계위원회는 채수창 전 강북서장을 파면한 반면, 이대통령은 조청장을 차기 경찰 총수로 지목했다.

일각에서는 오는 11월에 열리는 G20 정상회의를 앞두고 경비 전문가인 조청장을 중용했다고 분석하고 있다. 이에 대해 한 경찰 고위 간부는 “그것은 경찰을 잘 모르고 하는 말이다. G20 행사 하나만 보고 경찰 총수를 임명하는 정권은 없다. 무엇보다 가장 믿을 만한 사람, 가장 충성도가 가장 높은 사람을 찾았을 것이다. 조청장은 지연(영남)과 학연(고려대)으로 대통령과 연결되었으니 정권에서 보면 이만큼 최적임자가 없는 것 아니냐. 하지만 조청장의 무리한 성과주의가 오히려 국민의 반감을 일으켜 정권에 부담이 될 수도 있다”라고 말했다.

그는 또 “강청장과 조청장은 둘 다 사법고시와 외무고시 출신이다. 비(非)경찰대 출신들이 알게 모르게 경찰대 출신들을 견제하고 있기 때문에 정권이나 비경찰대 출신들 입장에서 보면 경찰대 출신 청장이 빨리 나오는 것을 달갑지 않게 볼 것이다”라고 덧붙였다. 강청장이 사퇴하면서 경찰대 1기인 윤재옥 경기경찰청장과 이강덕 부산경찰청장이 차기 청장 하마평에 오르내리는 것을 두고 한 말이다.  

정권 교체 후 ‘방패막이’ 역할하게 시기 조정

지난 개각에서 주목되는 인물이 또 한 명 있다. 바로 국세청장으로 내정된 이현동 차장이다. 이차장의 국세청장 내정은 오래전부터 예견된 일이었다. 그는 박영준 지식경제부 제2차관과 김명식 청와대 인사비서관 등과도 친분이 있는 등 ‘형님 라인’으로 분류된다. 

이차장은 경북 청도 출신으로 영남대를 졸업한 TK 인사이다. 1981년 제24회 행정고시에 합격한 후 강동세무서장, 서울지방국세청 조사3국 국장 등을 거쳤다. 현 정부가 출범한 후에는 초고속 승진을 거듭했다.

대통령직인수위에 파견되었다가 청와대 선임 행정관을 지냈으며, 국세청에 복귀한 후 요직 중의 요직으로 꼽히는 조사국 국장을 지냈다. 이후에 서울지방국세청장으로 승진했고, 지난해 7월 당시 백용호 국세청장에 의해 차장으로 발탁되면서 일찌감치 ‘차기 청장’으로 거론되었다. 이차장은 이대통령의 도곡동 땅 문제가 언론에 보도되는 것을 적극 차단하고, 그림 강매 논란을 야기한 안원구 전 서울지방국세청 국장의 사퇴를 종용하는 등 이대통령의 방패막이 구실을 했다.

원세훈 국정원장은 이대통령의 ‘분신’으로 통한다. 서울시장 시절 행정1부시장을 지냈고, 현 정부 들어서면서 행정안전부장관으로 발탁되었다. 5공화국 시절 ‘장세동 경호실장’에 비유될 정도로 충성도가 높다. 원원장도 개각 이전에는 한때 대통령실장 임명설이 나돌았다. 하지만 이대통령이 임기 하반기 국정 장악력을 높이기 위해서도 친위부대의 핵심인 원원장을 교체할 가능성은 적어 보인다.

김준규 검찰총장은 4대 권력 기관장 중 유일하게 비영남권이다. 서울 출신인 김총장도 2년 임기가 법적으로 보장되어 있다. 김총장은 지난해 8월 검찰총장에 임명되었고, 2년 임기를 채운다면 내년 8월에 교체된다. 이럴 경우 차기 검찰총장은 정권이 바뀐 뒤에도 5개월여의 잔여 임기가 남게 된다.

흔히 권력 기관장들은 정권의 손과 발로 통한다. 사정과 정보 권력을 상징하기 때문이다. 이대통령은 권력 기관장들을 친위부대로 채움으로써 임기 후반기 국정 장악력을 더욱 높여갈 것으로 전망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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