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보 신문 ‘약진’ 눈에 띄네
  • 김진령 (jy@sisapress.com)
  • 승인 2010.08.17 11:45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한겨레·경향신문, 지목률·순위 모두 상승…영향력 1위는 KBS 신뢰도는 MBC-한겨레-KBS 순…열독률에서는 조선-한겨레-네이버가 앞 순위

 

ⓒ시사저널 임준선

미디어에 대한 언론 소비자들의 평가는 지난해보다 더욱 냉담해진 것으로 보인다. <시사저널>의 ‘누가 한국을 움직이는가’ 언론 분야 조사 결과를 놓고 보면 신뢰도 평가나 영향력 평가 항목에서 메이저 언론으로 불리는 주요 매체들에 대한 지목률이 두드러지게 하락했다. 언론 관련 조사는 ‘가장 영향력 있는 언론 매체’ ‘가장 신뢰하는 언론 매체’ ‘가장 열독하는 언론 매체’  세 항목으로 나누어 실시했다.

먼저 ‘가장 영향력 있는 언론 매체’ 항목의 조사 결과를 보자. 전반적으로 지목률이 낮아졌다는 점이 눈에 띈다. 올해 영향력 1위로 지목된 KBS의 경우 51.4%의 지목률을 보였는데 이는 2008년의 59.7%, 2009년의 58.6%에 비해 크게 떨어진 수치이다. 2, 3위를 차지한 조선일보와 MBC의 지목률도 하락했다. 조선일보는 지난해에 비해 9.2% 하락한 48.3%를, MBC는 지난해에 비해 6.7% 하락한 42.3%를 기록했다. 

 

지목률 전반적으로 낮아지고 보수 신문들 신뢰도 하향세 보여

1~3위 그룹과 큰 차이를 보이고 있는 4~8위 그룹 내에서도 변화가 있었다. 중앙일보의 상승세가 꺾이고, 포털 사이트인 네이버가 2008년 이후 2년 만에 다시 4위 자리를 차지했다. 지난해부터 대형 스포츠 이벤트 중계를 독점하고 있는 SBS의 영향력은 오히려 감소한 것으로 나타났다. 7.7%의 지목률을 기록하며 지난해보다 두 계단 낮은 9위를 기록했다. 10위권에 처음 얼굴을 내민 경향신문은 2008년과 2009년 모두 3%의 지목률로 11위를 기록했지만, 올해에는 5.6%의 지목률로 10위를 기록했다.

10위권에 든 종이 신문의 이념적 지형도를 보면 보수지로 분류되는 조선일보·중앙일보·동아일보와 진보지로 분류되는 한겨레·경향신문의 지목률 추이가 대비된다. 조·중·동 진영에서는 조·동의 순위는 지난해와 같았지만 지목률은 떨어졌고, 중앙은 순위가 한 계단 하락했다. 반면, 진보지로 분류되는 한겨레와 경향신문은 지목률과 순위가 모두 상승했다. 한겨레는 순위가 한 계단 올랐고, 경향신문은 처음으로 톱 10에 진입했다.

원용진 서강대 신문방송학과 교수는 “처음 온라인 매체가 순위권으로 진입할 때의 파죽지세와 비교해보면 주춤거리는 모습이 보인다. 온라인 매체에도 분명히 한계가 있다. 언론 소비자들 사이에 올드미디어에 대한 기대가 여전히 있다는 것으로 풀이된다”라고 말했다.

‘가장 신뢰하는 언론 매체’ 항목의 조사 결과는, 순위를 놓고 보면 지난해와 별반 차이가 없었다. 다만 ‘영향력’과 마찬가지로 전반적으로 지목률이 떨어졌다. 언론 전반에 대한 국민들의 신뢰도가 떨어진 현상을 반영하는 것으로 보인다. MBC는 지난해에 이어 올해도 1위를 기록했지만, 지목률은 31.3%에서 28.4%로 하락했다. 2008년 1위였던 한겨레에 대한 신뢰도는 지난해에 이어 올해에도 2위를 기록했다. 2008년 한겨레-KBS-MBC-조선일보 순이었던 신뢰도 상위 그룹의 순서는, 2009년 MBC-한겨레-KBS-경향신문 순으로 재정렬된 뒤 올해는 이 순위가 그대로 유지되면서 신뢰도 하위 그룹과의 격차를 벌리고 있는 모습이다.

 

 

오마이뉴스는 올해 5.7%의 지목률을 보이면서 언론 신뢰도 항목에서 9위로 뛰어올랐다. 오마이뉴스 10위권 진입의 희생양은 케이블 뉴스 채널인 YTN이다. YTN은 지난해 10위를 기록했던 ‘영향력’ 부문에서도 경향신문에 밀렸다. 경향신문이 3위인 KBS와 0.1%의 차이를 보이며 신뢰도 빅4의 하나라고 불러도 될 만한 지목률을 기록했다는 점도 눈여겨볼 만하다. 전반적으로 신뢰도가 하락하는 추세에서 오히려 신뢰도가 상승했기 때문이다. 이에 대해 원용진 서강대 교수는 “미디어의 생명력은 신뢰도에 달렸다는 측면에서 볼 때 질적인 면에서 인정받고 있다고 볼 수 있다”라고 해석했다. 반면에 보수지로 분류되는 조·중·동이 11.1~7.0%를 기록하며 언론 신뢰도에서 선두 그룹과 큰 차이를 보이는 그룹으로 분류되기 시작했다는 점도 눈에 띄는 대목이다. 보수 정권이 출범한 이후 이들 언론에게는 ‘신뢰도의 위기’라고 할 만한 상황이 펼쳐지고 있다.

‘가장 열독하는 언론 매체’ 조사에서는 지난해 결과와 비교했을 때 방송 채널에 대한 선호도가 낮아졌다는 점과 한겨레에 대한 열독률이 높아졌다는 점이 특징이다. ‘열독률’은 2008년에는 조선일보-KBS-MBC-네이버-한겨레 순이었다. 올해는 조선일보가 1위를 지킨 가운데 MBC와 KBS가 각각 4, 5위로 밀렸다. 김창룡 인제대 교수는 “두 방송사 모두 사장 임명 과정과 이후 인사에서 시청자들에게 정부에 휘둘린다는 인식을 심어주었다”라고 풀이했다.

반면 한겨레는 2008년 5위, 2009년 4위에서 올해는 2위까지 치고 올라왔고, 경향신문은 2008년 9위에서 지난해 8위, 올해는 6위를 차지했다. 상승세가 무섭다. 원용진 서강대 교수는 “경향신문이 이명박 정부 들어서 미디어 평가 조사에서 약진한 것은 눈여겨볼 대목이다. 언론 소비자들은 경향신문이 현 정부를 가장 잘 비판했다고 평가한 것으로 볼 수 있다”라고 분석했다.

ⓒ시사저널 전영기
지금은 사정이 나아진 편이지만 ‘독립 언론’을 표방한 경향신문은 그동안 재정 운용에 상당한 어려움을 겪었다. 물론 지금도 여전히 허리띠를 졸라매고 있다. 이런 상황에 나온 <시사저널>의 조사 결과는 경향신문 구성원들에게 새로이 허리를 곧추세울 수 있는 용기를 줄 것으로 보인다. 박노승 경향신문 편집국장을 만나 조사 결과에 대한 반응과 경향신문의 향후 비전에 대해 물어보았다. 박국장은 경향신문의 정체성에 대해 “진보적이라고 단언하기는 힘들다”라고 말했다.

 

▶경향신문이 다른 언론과 다른 점은 무엇인가?

경향신문은 사원들이 대부분의 주식을 갖고 있는 소유 구조나 제작·의사 결정 체계가 상대적으로 민주적이다. 외부의 압력이나 간섭으로부터 자유롭다. 또, 객관적인 시각에서 사안을 바라보려고 노력한다.

▶경향신문의 어떤 점이 독자들에게 평가받고 있다고 보는가?

가능한 한 정직한 시각과 균형 있는 시각을 유지하려고 노력하는 우리의 보도 원칙이 수용자들에게 어필하는 것 같다. 이를테면 4대강 사업에 대해서 우리는 반대하지만 이를 보도하면서 사실을 왜곡하거나 침소봉대하는 일은 하지 않는다. 의욕이 앞설 때 오보를 내보낼 수도 있고 침소봉대하는 경우도 생긴다. 우리는 그러지 않으려고 한다. 기자들에게도 그렇게 주문한다.

▶이명박 정부가 들어서면서 외부의 평가가 더 좋아진 듯하다.

현 정부에 탄압을 받았으면 받았지 덕을 본 게 없는데….(웃음) 언론 환경은 갈수록 척박해지고 있다. 정권이 바뀐 뒤 알게 모르게 경영 측면에서 비우호적으로 바뀌다 보니까 어려움이 많다. (<시사저널> 조사 결과) 다른 언론보다 상대적으로 경향신문에 대한 반응이 우호적으로 바뀐 것만 놓고 보면, 요즘 언론이 언론으로서 제대로 기능하고 있는가 하는 문제 제기를 할 수 있을 것 같다.

▶노무현 정부 때 경향신문은 청와대와 가깝지 않았나?

노무현 정부가 좌측 깜빡이를 켜고 우회전할 때 우리는 비판했다. 그래서 당시에도 갈등이 있었다. 그 한편으로 우리는 노무현 정부의 지방 분권 정책은 찬성했다. 이명박 정부에 대해서도 일정한 잣대와 기준으로 시시비비를 가리고 있다. 다른 매체가 제대로 기능하고 있는지는 의문이다. 언론은 공익적 목적도 중요한데 언론사가 사익에 휘둘리면서 언론 전반에 대한 불신이 높아지고 있다.

▶언론사가 사익에 휘둘린다는 말은 무슨 뜻인가?

우리도 신문을 만들다 보면 제작 기조가 회사 이익과 배치되는 경우가 많다. 특히 광고주와 관련된 사안이나 부동산 문제가 그런 경우이다. 그러나 그런 사안에서도 우리는 지면을 통해 부동산 거품 문제를 비판적 시각으로 제기한다. 그것이 경영적 이익과 배치되지만.

▶언론에 대한 불신이 커지고 있는 이유가 무엇이라고 보는가?

지난 정권 시절과 비교해 잣대나 기준이 많이 바뀐 언론사가 있다. 같은 사안도 다른 기준으로 판단한다. 우리는 그런 측면에서 평가받을 부분이 있다고 생각한다. 경제 권력이든, 정치권력이든, 권력과 불화하는 것은 언론의 본령이다. 비판하고 대안을 제시하는 것이 저널리즘의 원칙이다.

▶경향신문의 이념적 위치는 어디인가?

사회에서는 우리를 가리켜 진보라고 하지만, 유럽과 비교하면 ‘온건 보수’라고 지적하는 이들도 있다. 아마도 그럴 것이다. 우리는 분단 때문에 대단히 우익화된 사회이고 한 가지 색깔에서 벗어나면 모질게 구는 사회이다. 경향신문이 진보를 지향한다지만 확실히 구현하고 있는지는 자신하지 못하겠다. 그래도 우리 사회 지형도 내에서는 진보에 속한 듯하다. 내부 구성원들도 비슷한 생각일 것이다. 그러나 객관적으로 평가해보면 (진보적이라고) 단언하기 힘들다.

▶경향신문의 재정 악화 문제는 타개책이 있는가?

미디어업계의 상황이 전반적으로 안 좋지만 그중에서도 우리가 더 큰 어려움을 겪고 있다. 아마 상대적으로 광고주를 덜 의식하고 있는 제작 기조와도 관련이 있는 듯하다. 이런 과정에서 고민이 많았다.

▶경향신문의 미래를 어떻게 보는가?

새로운 계기가 있을 것이다. 일반적으로 신문의 수입 구조는 광고 수입 80%, 신문을 팔아서 얻는 지대 수입 20%이다. 이런 구조에서 탈피해야 한다. 단기간에 풀릴 수 있는 문제는 아니다. 하지만 이런 구조에서 벗어날 수 있고, 벗어나야 한다고 생각한다. 상황을 어렵게만 보면 해법은 없다. 과거에는 조선·중앙·동아일보와 경향신문을 비교하면 신문의 질을 놓고 비교하기보다는 정기 독자 경품 등 자본력의 크기로 경쟁을 벌였다. 그러나 앞으로는 다양한 매체와 플랫폼이 등장할 것이다. 미디어의 본래 힘인 콘텐츠의 힘으로 평가받는 시대가 올 것이다.

 

이 기사에 댓글쓰기펼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