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시 제도 개편, 신중해야 한다
  • 염재호 / 현 고려대학교 행정학과 교수 ()
  • 승인 2010.08.23 15: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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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정안전부가 행정고시 제도를 전면적으로 개편하는 ‘공무원 채용 제도 선진화 방안’을 발표했다.  이번 행시 제도 개편 방안은 내년부터 5급 공무원 공채 시험에서 민간 전문가를 필기시험 없이 서류 전형과 면접만으로 30%를 뽑고, 이를 점차 확대시켜 2015년에는 50%를 충원한다는 계획이다. 행시 제도 개편의 논리는 어느 정도 설득력이 있어 보인다. 먼저 행시 출신들이 고위직을 독점하고, 고시 기수가 주요한 인사의 기준이 되고, 경직되고 권위적인 행정 문화가 나타나는 것이 바로 고시 제도 때문이라는 것이다. 또 수험생들이 고시를 준비하기 위해 대학 수업도 전폐하고 고시촌과 고시 학원을 전전하면서 단순 암기식 필기시험만으로 고위 공무원이 되곤 한다. 이와 같은 선발 제도로서는 미래의 복잡한 행정 문제를 해결하기에 적합한 인재를 선발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정책은 사회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수단이다. 하지만 문제와 해결 방안 사이에는 충분한 인과 관계가 전제되어야 한다. 그런 점에서 이번 행시 제도 개편안을 갑작스럽게 발표한 것은 그리 적절해 보이지 않는다. 우선 학계 전문가들의 의견을 충분히 수렴하는 절차 없이 문제를 단순화시켜 느닷없이 변화를 추진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못하다. 이는 정책의 부정적 영향과 사회적 비용을 놓치기 쉽기 때문이다. 지금까지 행시를 준비해 온 수험생들이 느낄 충격과 반발은 차치하고라도, 서류 전형과 면접만으로 과연 객관적이고 공정하게 전문가를 채용하는 일이 가능할지 모르겠다. 더 나아가 전문가를 채용하는 것이 과연 행정 업무를 수행하는 데 얼마나 많은 도움을 주는지에 대해서도 고민해야 한다. 행정 관료는 정치적 중립성을 지키며 문제를 객관적으로 이해하고 갈등을 조정하는 포괄적인 행정 능력을 갖고 있어야지 특정 분야의 전문성만으로 복잡한 행정 업무를 잘 추진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만약 전문가를 대상으로 50%의 고위 공무원을 충원하는 정책이 추진되면 대학생들의 고학력화와 자격증을 따기 위한 사교육비가 더 많이 들어갈 것이라고 쉽게 예견할 수 있다. 잘못하면 서민층 수험생들의 불이익과 명문대 및 외국 대학 출신 위주로 채용되어 사회적 불평등이 심화될 수도 있다. 게다가 자신의 전문 영역에서 정착하지 못하고 행정 부처에 채용된 전문가는 자신의 경력 관리를 위해 행정 부처를 활용한 다음 전직할 가능성도 크다. 

고시 제도의 문제점은 출제 방식의 변화와 고위 공무원 경력 관리 및 교육 훈련을 통해 해결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이제 고시가 단순 암기 시험이라는 착각에서도 벗어나야 한다. 이미 지난 몇 년 사이에 단순 암기 위주의 1차 시험이 PSAT 시험으로 바뀌었고, 2차 시험도 사례 분석 등 문제 해결 능력을 측정하는 시험으로 많은 변화를 가져왔다. 특히 3차 면접은 교수·국장·헤드헌터 등 전문 면접관 그룹이 하루 종일 대여섯 명의 수험생을 대상으로 심층 면접을 해서 2차 시험 성적과 관계없이 다수를 탈락시키고 있다.

훌륭한 인재를 고위 공무원으로 선발해서 국가의 경영을 맡기는 것은 중요하다. 이를 위해서는 시험 제도를 개선하고 교육 훈련을 하는 것이 중요하지 민간에서 전문가를 대거 영입하는 것만으로 일거에 문제가 해결되는 것은 아니다. 성급한 행시 제도 개선은 신중하게 재고되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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