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기 ‘시리즈’에 유명인 더하니 ‘대박’
  • 김진령 (jy@sisapress.com)
  • 승인 2010.08.23 15: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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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극 무대, 질 높은 기획에 대중적 인지도 높은 배우나 감독 끌어들여 흥행몰이 이어가

지난 7월 말 무대에 오른 연극 <너와 함께라면>은 개막 1주일 만에 대박이 터졌다. 입소문을 타고 2층 객석까지 거의 꽉 차는 등 객석 점유율이 95%가 넘는다. 지난 8월6일 무대에 오른 연극 <클로저>는 개막 전에 이미 표가 다 팔렸다. 문근영이 출연하면서 개막 전 티켓박스가 열리기 무섭게 매진된 것이다. 문근영 효과로 관심이 높아지면서 다른 캐스팅의 공연도 예매율이 70% 선을 기록하고 있다. 지난 8월15일 막을 내린 <사나이 와타나베 완전히 삐지다(이하 <사나이 와타나베>)는 연극 불모지라는 강남에서 재공연까지 하는 기록을 세웠다.

▲ 은 ㈜연극열전에서 기획한 연극열전3의 시리즈 공연 중 한 편이다.

이 세 공연의 공통점은 시리즈 공연이라는 점이다. <너와 함께라면>은 ㈜연극열전에서 기획하고 무대에 올리는 연극열전3의 시리즈 공연 중 한 편이다. <클로저>는 악어컴퍼니와 CJ엔터테인먼트, 나무액터스가 공동 제작하는 ‘무대가 좋다’ 시리즈의 두 번째 공연이다. <사나이 와타나베>는 엠뮤지컬컴퍼니가 기획한 ‘감독, 무대로 오다’ 시리즈의 마지막 작품이다. 또 다른 공통점이라면 대중적 인지도가 높은 배우나 감독을 땀 냄새 나는 소극장 무대로 끌어들여 작품에 대한 인지도를 끌어올렸다는 점이다. 하지만 재공연에 나서는 것은 작품 자체의 함량이 떨어지면 불가능한 일이다. 연극판의 시리즈 공연이 공연 팬들에게 확실한 인상을 심어주고 있다는 것으로 해석되고 있다.

▲ 출연진과 연극 중 한 장면.

연극판의 시리즈 공연 선두 주자는 연극열전이다. 지난 2004년 ‘한국 연극 20년사를 돌아보자’라는 콘셉트를 내세우며 기존 흥행작의 리메이크 무대로 시작된 연극열전 시즌1은 평균 객석 점유율 80%를 기록하며 17만명을 동원하는 성공을 거두었다. 이 성공은 4년 뒤인 2008년 ㈜연극열전이라는 회사가 세워지고 연극열전2가 무대에 오르면서 객석 점유율 95%, 관객 28만명 동원으로 이어졌다. 연극열전 시즌2는 배우 조재현이 프로그래머로 가세하면서 유명배우의 출연이라는 이벤트성이 훨씬 강화되었다.

연극열전3는 지난해 12월1일 <에쿠우스>로 문을 열어 7월 기준으로 관객 12만명 동원이라는 기록을 세우고 있다. 연극열전2보다 관객이 20% 정도 더 늘어난 수치라고 한다.

연극열전의 성공은 뮤지컬 제작사인 엠뮤지컬컴퍼니가 지난해 11월부터 시작해 지난 8월까지 계속된 ‘감독, 무대로 오다’ 시리즈로 이어졌다. 영화감독 허진호(<봄날은 간다>)의 <낮잠>은 영화 팬들을 무대로 이끌었고, 장항준 감독의 <사나이 와타나베>는 재공연을 할 정도였다.

이어 지난 7월6일에는 연극열전보다 좀 더 산업화된 모델이 출현했다. 연극·뮤지컬 제작사인 악어컴퍼니가 국내 최대 기획 투자사인 CJ엔터테인먼트와 연예매니지먼트사인 나무액터스와 공동 제작하는 ‘무대가 좋다’ 시리즈가 등장했다. 무대 제작 노하우와 안정적인 자본, 홍보 마케팅, 배우 캐스팅 파워가 수평으로 결합한 것이다.

‘무대가 좋다’ 시리즈는 CJ가 연극에 참여해 투자·제작한 첫 사례이기도 하다. 대자본인 CJ는 왜 공연예술계에서 달동네로 꼽히는 연극판에 들어간 것일까.

CJ엔터테인먼트 쪽에서는 “공연장을 운영하다 보니 양질의 다양한 콘텐츠를 확보할 필요성이 커졌다”라고 배경을 설명했다. CJ엔터테인먼트는 현재 대학로에서 세 개의 무대가 있는 예술마당의 장기 운영권을 갖고 있고, 오는 10월1일 문을 여는 소극장 컬쳐스페이스앤유의 운영권도 갖고 있다. 또 내년에 개관하는 대학로아트홀(대·중·소극장)의 운영권과 영등포 CGV아트홀까지 더하면 8개의 라이브 무대를 채워야 할 필요성이 있는 셈이다.

▲ 연극 는 개막 전에 표가 다 팔렸다. 문근영(왼쪽)이 출연하면서 개막 전 티켓박스가 열리자마자 매진된 것이다.

스타 마케팅과 작품성이 적절하게 섞여야 장기 흥행 보장

뮤지컬평론가이자 현역 프로듀서이기도 한 조용신씨는 ‘무대가 좋다’의 삼자 결합 모델이 “산업적으로 좀 더 현대화된 시스템이다. CF 한 편에 수억 원을 받는 문근영이 1회 출연료가 많아야 수십만 원대인 출연료를 받는다고 생각을 해보아라. 이게 가능하겠는가. 나무액터스가 공동 제작자이니까 가능한 것이다”라고 평했다. 즉, 수평 결합한 연예 자본과 엔터 자본이 제작비 절감 이상의 효과를 내고 있다는 것이다. 실제로 ‘무대가 좋다’의 첫 번째 작품인 <풀 포 러브>에는 박건형·김효진·오종혁 등 웬만한 TV 드라마나 영화 못지않게 지명도 높은 배우들이 포진해 있다. 이어 두 번째 작품인 <클로저>에는 핵폭탄이 투하되었다. 수많은 고정 팬을 갖고 방송사 사장이 공개 석상에서 ‘우리 회사 드라마에 출연해달라’라고 말하는 배우 문근영이 출연한 것이다. 당연히 티켓은 동이 났다.

그렇다면 유명 아이돌이 나오는 그렇고 그런 뮤지컬과 같은 일과성 이벤트가 연극판으로도 번진 것일까?

이런 점에 대해 김유미 연극평론가는 “연극열전 같은 경우 주류 연극계에서는 기획력은 확실히 인정한다. 사람들에게 연극을 널리 알리는 노하우는 사줄 만하다. 다만 이런 시리즈 연극의 경우 상업적 요소가 강하기 때문에 작품에 대한 진지한 평가는 유보하는 편이다”라고 연극계 내부의 분위기를 전했다. 이를테면 <클로저>나 <아트> 같은 ‘무대가 좋다’ 시리즈 작품의 경우 새로운 공연이 아니라 기존의 작품에 ‘문근영 같은 익숙한 배우를 써서 관객이 먹기 좋게 서비스하는 노하우가 좋은 기획’이라는 것이다. 김평론가는 “작품을 새롭게 보여줄 수 있는 방법이 된다면 탤런트나 배우의 출연을 나쁘게 볼 이유가 없다. 김혜수의 <신의 아그네스>나 문근영의 <클로저>가 다른 해석을 보여준다면 의미가 있는 것이다. 다만 배우의 변신이 작품 완성도에 잘 녹아들었는지 여부는 따져보아야 한다”라고 정리했다.

조용신씨도 “스타 마케팅은 외국에서도 활발하다. 주드 로가 <햄릿>에 출연하고 휴 잭맨이 뮤지컬에 출연한다. 문제는 스타 마케팅과 작품성이 적절하게 섞여야 한다는 점이다. 배우는 연극을 하면 확실히 연기력이 좋아진다. 관객도 유명 배우를 무대에서 직접 보면서 만족도가 높아진다. 하지만 관객이 자기 돈 내고 지명도만 있는 배우의 ‘연기 연습’을 보는 것이라면 연극계에 득보다는 실이 커지게 된다”라고 지적했다.

㈜연극열전의 홍보책임자인 김영인씨는 “아무리 알려진 인물이 나와도 작품의 질이나 연기가 담보되지 않으면 초반 반짝 흥행으로 끝난다. 우리도 작품의 완성도를 최우선으로 놓고 있다”라고 말했다.

‘무대가 좋다’ 시리즈는 내년 4월 말까지 여덟 편이 이어진다. 기획·제작사 쪽에서는 “한국 초연작인 <풀 포 러브>나 현재 뉴욕에서 공연 중인 <3일간의 비> 등 연극열전 시리즈와 좀 더 차별화된 연극 축제가 될 것이다”라고 설명했다. 연극열전3는 ‘외부 자본의 도움 없이 연극계 자체 힘만으로’ 시리즈 연극 축제를 시작하고 성공시킨 노하우에 대한 자신감이 대단하다. 이들도 내년 초까지 여덟 편의 연극을 올린다. 연극판으로 번진 기획 마케팅의 힘이 연극판 자체를 키워낼지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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