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많던 여배우들은 어디로 갔을까
  • 김진령 (jy@sisapress.com)
  • 승인 2010.08.30 12:57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한국 영화, ‘남자 배우들만의 잔치’ 계속…올해 흥행작 중 여성 주연 영화는 거의 없어

 

▲ ⓒ 핑거프린트

올해 한국 영화 시장에서 3백만명 이상의 흥행 성적을 올린 작품은 1월에 <전우치>와 <하모니>, 2월에 <의형제>, 6월에 <포화 속으로>, 7월에 <이끼>, 8월에 <아저씨> 등이 있다.

이 작품들의 면면을 보면 대부분 남성 배우 원톱이거나 투톱에 기댄 ‘남자 영화’이다. 예외적으로 <하모니>가 있었지만 이 역시 젊고 예쁜 여배우와는 상당히 거리가 먼, 삶의 굴곡(여죄수들의 합창단 꾸리기)을 다루는 이야기였다.

이런 흐름은 당분간 계속될 것으로 보인다. 현재 표현의 수위를 놓고 논란을 빚고 있는 ‘피칠갑(온몸에 피를 묻히거나 뒤바르는 일)’ 스릴러물 <악마를 보았다>는 남자 주연 배우 투톱 형식이고 추석 연휴에 맞추어 개봉하는 <해결사> 역시 설경구·이정진의 투톱에 기대를 걸고 있다.

베니스영화제 비경쟁 부문 공식 초청작인 <무적자>는 아예 꽃미남+근육질 배우들이 떼로 나온다. 주진모, 송승헌, 김강우, 조한선 등 이 영화 출연자의 면모는 여성들이 환호하는 피조물들이지만 기이하게도 여배우의 존재감은 제로에 가깝다. 제작사 쪽에서 내놓은 홍보 자료에는 ‘초콜릿 복근’ ‘완벽한 감성 연기’ ‘형제간의 감동 드라마’라는 말이 반복되고 있다. 형 역은 주진모, 동생 역은 김강우가 맡았다. 이 영화의 원작 <영웅본색>에서 주윤발이 맡았던 역할은 송승헌이 맡았다. 이런 형제애와 마초 감성의 경연장에서 여배우는 양념 이상의 역할을 기대하기 어렵다.

이 밖에도 나홍진 감독의 <황해>나 류승완 감독의 <부당거래>, <부당거래>와 <악마를 보았다>의 시나리오를 쓴 박훈정 감독이 직접 시나리오와 연출을 맡은 사극 스릴러 <혈투>, 김대현 감독의 <살인의 강> 등 남자 배우 위주인 영화가 줄을 이어 대기하고 있다. ‘국내 여배우는 전멸한 것일까’라는 의문이 절로 드는 상황이다.

스릴러물 유행과도 밀접한 관련  

영화가 아직도 가장 강력한 데이트 상품이고, 영화 선택권은 여자가 갖고 있다는 것이 ‘정설’인데 왜 여성 취향의 로맨틱 코미디와 여성 주인공 영화는 외면받고 있는 것일까.

이에 대해 대중문화평론가 정덕현씨는 “요즘 영화는 테마파크이다. 요즘 관객들은 잔잔한 로맨틱 코미디는 텔레비전 드라마나 <우리 결혼했어요> 같은 예능 프로그램으로 충분히 소비한다. 대신 영화관에서는 서커스 같은 액션이나 신기한 볼거리 위주의 영화를 체험하기를 원한다”라고 설명했다. 영화평론가 황진미씨는 “여자라고 꼭 로맨틱 코미디를 고르지는 않는다. <아저씨>나 <의형제>는 기획이 잘된 상업영화이다. 여자들이 좋아하는 꽃미남 배우가 나와서 남자들도 좋아하는 액션을 펼치니까 데이트 영화로 제격이다”라고 설명했다.

극장 체인 CGV의 이상규 홍보팀장은 “요즘 영화 관객은 배우보다는 감독에 더 반응한다. 배우가 누가 나왔다고 해서 흥행을 보증하지는 못한다”라고 말했다. 최근의 스릴러물 유행에 대해서는 “2008년 <추격자>의 흥행 성공 덕으로 그때 기획되었던 영화들이 요즘 풀린다”라고 설명했다. 스릴러물은 기획이 좋고 스토리만 잘 짜면 적은 예산으로도 제작할 수 있다. 게다가 영화를 능가하는 엽기적인 현실은 “여성은 희생자로만 존재하고 공포와 스릴의 자극은 한없이 커지는 스릴러물의 양산으로 이어지고 있다”(정덕현)라는 것이다. 


▲ ⓒ 코리아코어콘텐츠
레즈비언 부부가 정자은행에서 한 남자의 정자를 기증받아 각자 한 명씩 아이를 낳았다. 엄마가 둘인 것만 빼면 여느 가정과 다를 바 없다. 경제력은 의사인 닉(아네트 베닝)이 책임지고, 자녀 양육은 예술가적 성향을 지녔지만 꿈을 이루지 못한 줄스(줄리언 무어)가 맡고 있다. 딸이 대학에 입학해 집을 떠날 즈음, 열다섯 살인 아들은 정자 기증자를 찾고 싶어 한다. 정자은행을 통해 생물학적 아버지 폴(마크 버팔로)을 만나게 된 남매는 호감을 느끼고, 폴 역시 남매를 통해 평생 가져본 적이 없는 가정을 어렴풋이 꿈꾸게 된다. 깐깐한 닉에게 지쳐 있던 줄스는 폴의 얼굴에서 아들과 닮은 점을 발견하고 사랑을 느끼고, 갑자기 나타난 외간 남자에게 아이들과 배우자를 모두 잃을 위기감에 빠진 ‘가모장’은 전전긍긍하는데….  

레즈비언 부부의 갈등을 그린 <에브리바디 올라잇>은 동성애의 권리를 주장하는 사회극도 아니고, 심각한 막장 드라마도 아니다. 이성애 부부간에도 종종 이는 ‘바람’을 그린 로맨틱 코미디로, 이성애 부부와 차이가 있다면 갈등이 폭발하는 국면에서도 폭력이 아닌 대화로 수습된다는 점뿐이다. 오랫동안 사랑을 쌓아온 레즈비언 가족이 한 남성의 출현으로 와해되거나 남성 중심적 질서하에 놓이는 결말을 채택하지 않은 것도 지지할 만하다.  

영화의 최대 매력은 탁월한 인물 묘사에 있다. 레즈비언 커플에 대한 묘사나, 무책임해 보이면서도 푸근하게 느껴지는 남자에 대한 묘사가 아주 사실적이다. 이는 노련한 배우들의 안정적인 연기 덕분이기도 하지만, 실제로 커밍아웃한 레즈비언으로 정자은행을 통해 출산한 리사 촐로덴코 감독의 경험이 녹아난 이야기이기에 가능했던 것이리라. 아무리 나이가 들어도 여전히 현역인 아네트 베닝의 당당한 주름살과 예민한 감성을 지닌 줄리안 무어의 귀여운 베드신이 보고 싶다면 강추!

 

이 기사에 댓글쓰기펼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