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제 문화유산 복원 3종 세트
  • 김진령 (jy@sisapress.com)
  • 승인 2010.08.30 13: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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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백제 5악사의 귀환

 

▲ 백제 오악사. 배소, 종적, 완함, 북, 거문고(왼쪽부터).

 

대백제전을 통해 되살린 백제문화유산 하이라이트 중의 하나는 백제 5악사이다.
1천4백년 전 사라진 백제 음악이 5악사와 함께 되살아온다. 이들이 귀환할 수 있었던 것은 백제 금동대향로 덕분이다.

지난 1993년 12월23일 부여군 능산리 절터의 목곽 수로 안에서 발견되어 국보 287호로 지정된 백제 금동대향로는 백제가 부여로 도읍을 옮긴 후 정치적 안정을 되찾은 7세기 초의 작품으로 알려졌다. 이 금동향로에는
1천4백년을 단숨에 뛰어넘는 백제에 대한 정보가 가득 담겨 있다. 특히 전통 악기를 연주하는 5악사 조각은 백제 문화사 복원에 큰 자료가 되었다. 충청남도 문화산업과에서는 금동향로에 새겨진 배소(가는 대나무로 엮어 만든 악기), 종적(세로로 부는 피리), 완함(비파 계열의 현악기), 항아리북(항아리 모양의 토기에 가죽을 씌운 북), 거문고 등 전통 악기를 국립국악원 등 각계 전문가를 동원해 3D로 복원했다. 그리고 그 뒤 실물 악기를 재현하고, 표준 음원을 만들어 수제천(정읍사)·무등산 등 기록이 남아 있는 전래 백제 소리를 정리해 이를 바탕으로 창작곡을 만드는 등 총 아홉 곡을 만들었다. 악기와 그 악기로 연주할 노래까지 함께 복원한 셈이다. 아울러 한복 디자이너 이영희씨에게 의뢰해 금동대향로의 악사가 입고 있는 옷까지 복원하는 작업에 나섰다. 이 프로젝트에 충남도가 들인 돈은 8억원.

금동대향로 덕에 백제 문화사의 생생한 현장이 가장 실물에 가깝게 복원된 셈이다. 이 악기로 연주된 음악은 대백제전 개·폐막식은 물론 축제 기간 중 열리는 수상 공연 <사비미르>에서 수시로 들을 수 있다.  

■ 역사문화단지

 

대백제전을 통해 처음 선을 보이는 것은 재현된 백제 시대 건축물이다. 탑조차 성히 남아 있는 것이 없는 백제 건축물을 어떻게 복원했을까 하는 의문이 남는다. 이번 백제 시대 건축물 재현 작업에는 김동현 전 문화재연구소장, 장경호 전 문화재연구소장, 김홍식 명지대 건축과 교수, 이왕기 목원대 건축학부 교수 등이 참여해 힘을 모았다.

 

능사(절)는 장경호 전 소장이 기본안을 잡았고, 왕궁은 김동현 전 소장이 기본안을 만들었다. 절이든 왕궁이든 건축물 복원에서 가장 큰 난제는 자료가 없다는 것이다. 백제 시대 절터나 왕궁터에서 크기나 건물의 배치 양식에 대한 자료는 나왔지만 그 위에 건물을 어떻게 짓고, 처마는 어떻게 처리했는지, 창호는 어떤 무늬였는지 알 수가 없기 때문이다.

최고 목조 건축물인 봉정사 극락전이나 부석사 무량수전의 창호를 참조하고 1천3백~1천4백년 전 백제와 동시대에 존재했던 중국와 일본의 건축물 양식을 참조하는 방식으로 백제 시대 건축물을 재현했다. 이왕기 교수는 “동아시아 국가는 서로 교류하면서 발전했다. 백제 시대의 청동탑이 출토된 것이 있다. 또 중국에는 위·촉·오 삼국 시대나 남북조 시대에 건축물을 그린 그림이 많이 남아 있다. 그런 자료를 통해서 창호나 처마 형태를 추정했다”라고 말했다.

■ 디지털 복원

이번 대백제전에서는 <동아시아의 문화강국 백제>라는 15분짜리 영상물이 상영된다. 실물 유산이 별로 없는 백제 유적지의 대안으로 디지털 기술을 통한 찬란한 백제의 영화를 재현하는 것은 불가피한 선택이었다.

무령왕릉과 사비성 왕흥사, 정림사, <삼국사기>에 가장 큰 절로 기록된 대통사, 웅진성 등 지금은 옛 영화를 찾아보기 힘든 백제 유적의 디지털 복원은 카이스트 문화기술대학원의 디지털헤리티지연구실에서 맡았다. 이 연구실의 박진호 연구원은 “무수히 많은 보물이 쏟아진 무령왕릉을 실제로 방문해보면 안에 들어가 볼 수도 없지만 들어간다고 해도 벽돌로 꾸며진 전실만 보일 뿐 안에 유물은 없다. 하지만 디지털 복원 기술을 통해 1천6백년 전 무령왕릉의 문이 닫힐 때의 화려했던 유물의 모습을 복원하는 것이 가능했다”라고 설명했다. 지난 10여 년 동안 고구려와 신라의 문화유산의 디지털 복원 작업에 참여했던 그는 “작업을 하다 보니 백제가 인도나 중국의 문물을 받아들여 그보다 더 뛰어난 결과물을 배출해냈음을 알 수 있었다. 금동향로가 대표적이다. 저절로 존경심이 든다”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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