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신 본 사람, 뭔가 색다른 구석은 있다
  • 김형자 | 과학 칼럼니스트 ()
  • 승인 2010.08.30 13:04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의학적 분석으로 살펴본 신체 반응의 비밀

 

ⓒ honeypapa@naver.com


유독 여름이면 TV와 영화의 단골 소재로 귀신이 등장한다. 또 실제로 귀신을 보았다는 사람들도 많이 나타난다. 대낮에 친구들과 길을 걷다가 앞에서 형체가 없는 검은 그림자가 걸어가는 광경을 목격했다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지난날 쓰나미가 몰아쳐 폐허가 되었던 태국 푸켓에서는 ‘해변 리조트 등에 귀신이 떠돌고 있다’라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많이 등장해 세계 뉴스로 보도될 정도였다.

우리나라에서는 일반적으로 ‘귀신’ 하면 하얀 소복에 머리를 풀어헤치고 피를 흘리며 소름끼치는 흐느낌을 하면서 나타나는 처녀 귀신을 떠올린다. 과연 이렇게 고정화된 이미지와 귀신 이야기는, 서늘한 두려움과 공포로 무더위를 날려버리겠다는 납량물과 같은 단지 흥미의 산물이기만 한 것일까? 세계 각국에서 많은 사람이 보았다는 귀신은 정말 있는 것일까. 또, 귀신을 보는 사람들에게는 특별한 능력이 있는 것일까.

■ 귀신이 등장하는 장소가 음침한 이유 | 귀신의 존재와 관련해서는 아직 과학적으로 설명하거나 입증할 수 없는 현상들이 있는 것이 사실이다. 어쩌면 귀신이 ‘있다’ ‘없다’가 아니라 있는지 없는지 ‘모른다’가 정답일 것이다. 하지만 과학자들은 귀신을 느끼는 상황에 대해서는 과학적으로 연구하고 있다. 귀신의 존재감을 느낄 때 주변 환경이 어떤지, 뇌가 어떻게 반응하는지가 연구의 초점이다.

보통 귀신이 출현하는 영화를 보면 폐공장, 폐교나 공동묘지, 깊은 숲 속처럼 음침한 곳이 주요 무대이다. 실제로 사람들이 귀신을 목격했다는 장소도 어두컴컴하고 으스스한 분위기를 느끼게 하는 곳이다. 그렇다면 혹 이런 공포스러운 환경이 사람들을 지나치게 긴장시켜 마치 귀신을 보는 듯한 착각에 빠져들게 하는 것은 아닐까.

영국 허트퍼드셔 대학 심리학과 리처드 와이즈먼 교수는 <뉴사이언티스트>에 발표한 연구 논문에서, 특정한 주변 환경이 귀신이 존재하는 듯한 느낌을 받게 하는 것과 관련 있다고 설명한다. 와이즈먼 교수 팀은 귀신이 출몰하는 것으로 유명한 잉글랜드 햄프턴 궁전에서 4백62명을 대상으로 귀신 체험과 관련한 실험을 실시했다. 이 궁전에서 어떤 이상한 경험을 했고 또 어떤 존재감을 느꼈는지, 만일 이상한 기분이 들었거나 어떤 존재감을 느꼈다면 그 장소는 구체적으로 어디인지를 묻는 실험이다.

실험 결과 참가자의 46.5%가 온도가 낮고 어둡고 협소하며, 자기장이 급변하는 곳을 귀신이 나올 곳으로 지목했다. 그 장소는 예전부터 귀신이 많이 출현했다고 보고되어온 지점이다. 연구팀에 따르면 자기장이 급변하는 장소나 환경에 처하면, 사람들의 뇌파와 심장 박동 같은 인체의 생리적 리듬이 일시적으로 깨져 평소와 다른 느낌의 한기, 즉 등골이 오싹함을 느낀다고 한다. 유령의 존재를 믿는 사람이 음산한 장소에서 온도의 변화와 같은 어떤 낌새를 느끼면 유령을 느꼈다고 생각하게 된다고 와이즈먼 박사는 주장한다.

그 때문인지 귀신이 나온다는 곳을 조사해보면 자기장이 센 곳이 많다. 이는 자기장의 변화가 뇌에 전기적 자극을 주기 때문에 환시(幻視)가 생길 수 있다는 설명이다.

■ 전두엽과 측두엽이 활성화된다 | 정신의학에서는 사람들이 귀신을 보았다고 했을 때 뇌의 측두엽 부분의 뇌파에 변화가 생긴다는 연구 결과가 많다. 장소에 관계없이 귀신을 본다는 이른바 ‘접신(接神)’을 하는 무속인들의 뇌 반응을 살펴보면, 평소 때와 다른 모습이 관측된다는 것이다.

가톨릭 의대 정신과학과 채정호 교수가 ‘접신으로 귀신을 본다는 무속인 두 명의 뇌’를 촬영한 영상에서는, 뇌 앞부분인 전두엽과 함께 뇌의 옆부분인 측두엽이 활성을 띠는 것으로 나타났다. 측두엽은 청각과 후각을 관장하는 부위로, 이곳이 활성화되면 이상한 소리를 잘 듣거나 느낌을 잘 받는다.

이러한 현상은 캐나다 로렌티안 대학 신경과학자 마이클 퍼신저 교수의 실험에도 잘 드러나 있다. 그는 실험 참가자 다섯 명에게 머리에 헬멧을 씌우고 측두엽을 전기로 자극해 ‘측두엽과 귀신을 보는 현상의 상관관계’를 조사했는데, 참가자 다섯 명 중 네 명은 누군가 자신을 지켜보고 있다는 느낌을 받는 것으로 나타났다.

한편, 미국 펜실베이니아 의과대학 앤드류 뉴버그 교수는 종교적 무아의 경지와 신과의 관계를 밝혀내고자 묵상 중인 불교 명상가들과 수녀의 뇌를 촬영했다. 그 영상에는 종교적 몰입의 최고조에 이르는 순간 뇌에서 자아 인식을 관장하는 부위의 활동이 줄어든 모습이 포착되었다. 즉, 고도로 집중한 상태에서는 전두엽이 활성을 띠는 반면 뇌의 뒷부분인 두정엽의 활동이 약해졌다. 이는 무속인이 접신한다는 순간의 뇌 변화가 명상시의 고도 집중 상태와 비슷하다는 얘기이다.

두정엽은 물리적인 외부 자극을 지각하는 부위로, 이의 활동이 약해지면 외부의 자극과 자신의 생각을 구분하지 못한다고 뉴버그 교수는 말한다. 즉 깊은 명상 상태에서는 머릿속에서 상상한 장면을 실제로 보는 것처럼, 뇌의 활동으로 인해 환상을 보는 것이 얼마든지 가능하다는 설명이다.

■ 빙의나 접신은 해리 상태에서 경험 | 무속인 등이 체험하는 빙의(憑依; 귀신 들리는 것) 혹은 접신은 일종의 ‘해리(解離)’ 현상으로 설명된다. 해리는 쉽게 말하면 술 먹고 필름이 끊기는 것, 나아가 마약 복용 상태, 극단적으로는 다중인격장애까지 자기의식을 통제할 수 없는 상태를 가리킨다. 종교인 중 신비 체험을 경험한 사람은 보통의 사람보다 해리 경향성이 크다. 이들은 해리 상태에서 평상시와 다른 의식 체계를 경험한다. 실제 환각에 빠지거나 영적인 체험을 한 사람에게서는 뇌의 측두엽에서 발생하는 뇌파에 변화가 생긴다. 뇌의 내측두엽이 과도하게 활성화되면 분명히 물고기 얼굴이라고 알고 있어도 그 얼굴을 사람 얼굴로 볼 수 있다.

또, 귀신을 본다고 주장하는 사람의 뇌를 검사하면 간혹 측두엽에 간질 증세를 보이는 경우도 있다. 측두엽에 문제가 있는 간질 환자는 실제로 나지 않는 냄새를 맡거나, 실제로 아무것도 먹지 않았는데 맛이 난다고 느낄 때가 있다. 또한 특이하게도 환상을 보거나 환청을 듣는 경우가 많아 이럴 때 귀신을 보았다고 느낀다.

현대 과학은 아직 귀신이 ‘있다’라고 단정하지 못한다. 그렇다고 귀신을 보는 사람들의 능력이 특별하기 때문이라고도 설명하지 못한다. 다만 음침한 장소에서, 특별하게 반응하는 뇌를 가진 사람의 마음에서만은 확실히 존재하는 그 무엇을 느낀다는 것이 최선의 설명이다. 귀신이 나올 것 같은 장소, 시간 그리고 분위기라고 생각하면 실제로 마른 갈대가 바람에 흔들리는 것을 귀신의 손짓으로 보게 되지 않을까.

이 기사에 댓글쓰기펼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