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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벌가는 지금 ‘차녀들 성공 시대’

이석 ㅣ ls@sisapress.com | 승인 2010.08.30(Mon) 13:11: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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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 2월5일 서울 중구 순화동에 위치한 호암아트홀에서 이병철 삼성 선대 회장 탄생 100주년 기념식이 열렸다. 이부진 호텔신라 전무(오른쪽)와 이서현 제일모직 전무(왼쪽)가 행사를 지켜보고 있다.
ⓒ시사저널 유장훈

차녀가 재벌가의 새 ‘경영 코드’로 떠오르고 있다. 톡톡 튀는 감성과 창의력을 바탕으로 성공 신화를 써가고 있기 때문이다. 재벌가에서는 그동안 ‘장남 승계’ 관행을 암묵적으로 유지해왔다. 오너 일가라고 해도 딸들은 경영에서 배제해왔던 것이 사실이다. 특히 차녀 경영인은 이화경 오리온 사장이 눈에 띌 뿐 그리 많지 않은 것이 사실이다. 이런 보수적인 재벌가에 최근 변화의 바람이 불고 있다. 차녀들이 적극적으로 경영에 진출하고 있다. 상당한 성과를 내기도 한다. 그들은 언니나 오빠처럼 화려하지는 않지만, 창의력과 감성으로 조직에 활력소가 되고 있다는 평가를 받는다. 첫째와 경쟁하는 둘째 특유의 성취욕까지 더해지면서 경영에도 두각을 보이고 있다.  

심리학자들은 이러한 ‘차녀 심리’를 새로운 경영 트렌드로 주목하고 있다. <백곰 심리학>의 저자인 일본 심리학자 우에키 리에 씨는 “차남이나 차녀는 태어나면서부터 ‘모델링 학습’을 통해 성장하기 때문에 원하는 성과도 좀 더 빠르고 손쉽게 얻을 수 있다”라고 평가했다. 프랭크 설러웨이 미국 MIT 대학 교수도 “변화를 필요로 하는 기업은 둘째를 경영자로 뽑으라”라고 역설했다.

‘차녀 성공 시대’를 써가는 대표적인 인물은 조양호 한진그룹 회장의 차녀 조현민씨이다. 조씨는 현재 대한항공 통합커뮤니케이션실 팀장으로 근무 중이다. 지난 2007년 3월 대한항공 광고선전부(현 통합커뮤니케이션실) 과장으로 입사한 뒤, 2년 만에 부장(기획팀장)으로 승진했다. 올해 2월에는 그룹 지주회사 격인 정석기업의 등기이사에 올랐다. 4월에는 저가 항공사인 진에어의 등기이사로도 선임되었다. 장녀인 조현아 기내식사업본부장(전무)과 장남인 조원태 여객사업본부장(전무)이 오랜 기간 경영 수업을 받은 것과는 대조적이다.

그룹 내에서는 조팀장의 독특한 마케팅이 조직 내에 신선한 바람을 불러일으키고 있다고 평가한다. 이른바 ‘스타크래프트 마케팅’이 조팀장의 첫 번째 작품이다. e-스포츠 대회인 ‘스타리그’ 후원을 통해 잠재 고객인 젊은 층과의 중간 다리 역할을 톡톡히 해내고 있다. 지난 5월에는 서울 공항동 대한항공 격납고에서 ‘대한항공 스타리그 2010’ 결승전을 개최해 좋은 반응을 얻었다. 일부 e-스포츠 팬들은 조팀장을 ‘스타리그의 여신’이라 부른다. 재벌가 자제로는 드물게 프로야구 시구자로 초청되기도 했다.

최근 좋은 반응을 얻고 있는 대한항공의 새 CF ‘동유럽 귀를 기울이면’ 편도 조팀장의 작품이었다. CF의 인기에 힘입어 동유럽에 대한 여행 정보 서비스인 ‘사운드 투어’ 역시 좋은 반응을 얻고 있다. 이 서비스는 단순히 여행 정보를 전달하는 데 그치지 않는다. 여행지의 역사와 문화를 체험할 수 있는 가이드 파일을 스마트폰으로 다운받을 수 있도록 해놓았다. 덕분에 사이트 방문자도 한 달 만에 네 배 가까이 늘었다고 한다. 대한항공 관계자는 “(조팀장의) 새로운 마케팅으로 대한항공이 많이 젊어졌다는 평가를 듣고 있다. 보수적인 조직 문화에 큰 활력소가 되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라고 귀띔했다. 

   
▲ 조현민 대한항공 통합커뮤니케이션실 IMC팀장(왼쪽)이 5월22일 서울 공항동 대한항공 격납고에서 열린 ‘대한항공 스타리그 2010’ 행사에 참석해 우승자에게 시상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오빠·언니 그늘에 가려 있다 뒤늦게 급부상하기도

현재현 동양그룹 회장의 차녀 현경담 동양온라인 부장 역시 정보기술(IT) 분야에서 활발한 활동을 펼치고 있다. 경담씨는 지난 2007년 동양온라인 유상 증자에 참여해 주주가 되었다. 현재 지분율 4.55%로 개인 최대 주주에 올라 있다. 직책은 부장이지만, 최근 동양온라인 등기 임원에도 등재되었다. 동양그룹은 동양메이저, 한일합섬 등 제조업과 동양종금증권, 동양생명을 아우르는 금융업이 주축을 이루고 있다. 그룹측은 즉답을 피하지만, 외아들 현승담 동양종금증권 부장이 후계자로 거론된다. 현부장은 현재 지주회사 격인 동양레저의 지분 20%를 보유하고 있다. 현회장(30%)에 이은 2대 주주이다. 최근 동양레저가 핵심 계열사인 동양메이저 지분을 확대하면서 경영권 승계가 임박한 것 아니냐는 관측도 나오고 있다. 장녀인 현정담 동양매직 상무보 역시 지난 2008년 입사 2년 만에 등기이사로 선임되었다.

이에 반해 IT 계열사인 동양온라인이 그룹 내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미미했다. 그러나 최근 경담씨가 주주로 참여하면서 회사의 외연이 급속히 확대되고 있다. 동양온라인은 최근 게임 사업 강화 차원에서 웹게임 포털 ‘게임하마’를 공식 출범했다. 하반기까지 10종의 게임을 서비스할 계획이다. 지난 7월에는 삼성전자와 게임 및 콘텐츠 사업을 제휴하기로 했다. 세계 시장을 상대로 다양한 게임 비즈니스를 할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한 셈이다. 업계의 한 관계자는 “동양그룹은 사위 경영이라는 유명한 전례가 있다. 딸들에 대한 경영 제약이 없는 것도 같은 이유로 보인다”라고 말했다.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의 차녀인 이서현 제일모직 전무는 뒤늦게 주목을 받는 경우이다. 그동안 이전무는 언니인 이부진 전무와 비교되곤 했다. 처음에는 이부진 전무의 그늘에 가려져 이목을 끌지 못했다. 하지만 올해 초 제일모직 전무 승진을 시작으로 자기 색깔을 내기 시작했다. 글로벌 패션업계의 차세대 리더로 급부상하고 있다. 지난 2월에는 미국패션디자이너협회(CFDA) 이사회 멤버에 포함되었다. CFDA에 한국인 이사가 등재된 것은 이전무가 처음이다. 또한, 지난 1월부터는 제일기획 기획담당 임원도 겸직하고 있다.

이전무의 최대 장점은 타고난 패션 감각과 전문성이다. 업계에서 수십 년 경험을 쌓은 베테랑조차 혀를 내두를 정도라고 한다. 이전무는 그동안 파슨스디자인스쿨에서 디자인을 전공한 경험을 살려 제일모직의 체질 개선을 주도해왔다. 신사복 위주의 사업 구조를 캐주얼과 여성복, 잡화 분야까지 확대했다. 여성복 매출은 지난 2002년 6백19억원에서 2008년 1천9백93억원으로 2백22% 신장했다. 이후 명품 사업에 눈을 돌렸다. 지난 2008년 이탈리아 유명 명품 편집매장 ‘10코로스 코모’를 서울 청담동에 오픈했다. 올 4월에는 서울 강남구 신사동에 미국 브랜드 ‘릭 오웬스’ 매장을 개설했다. 7월에는 청담동에 수입 패션 브랜드 ‘토리 버치’의 국내 첫 번째 플래그십 스토어를 열기도 했다. 멋쟁이 패션족들에게 입소문이 퍼지면서 인기를 모으는 브랜드들이다.

임창열 대상그룹 회장의 차녀 임상민씨와 정몽구 현대차그룹 회장의 차녀 정명이씨는 사실상 후계 구도가 마무리된 것으로 평가된다. 전문성은 떨어지지만, 지분 경쟁에서 두각을 보이고 있기 때문이다. 임상민씨는 장녀인 임세령 와이즈앤피 공동 대표를 제치고 그룹의 차기 후계자로 거론되고 있다. 임씨는 현재 유학 중이다. 그룹에서 맡고 있는 직책도 없다. 하지만 지난 2005년부터 증여 등을 통해 꾸준히 지분을 확대해왔다. 그 결과 대상그룹 지주회사인 대상홀딩스 지분 38.36%(6월 말 기준)를 확보하고 있다. 언니인 임세령씨(20.41%)보다 지분 경쟁에서 우위를 보인다.

일부는 남편 앞세워 경영 활동 펼쳐

대상그룹 역시 임씨와 관련해 언급을 극도로 자제하고 있다. 그럼에도 업계에서는 임상민씨의 대권 승계를 기정사실화하는 분위기이다. 임창욱 회장은 지난 2001년 장녀와 차녀에게 각각 3백만주(8.85%)와 5백만주(13.19%)의 주식을 증여했다. 이후 대상이 지주회사로 전환하는 과정에서도 두 자매는 지분을 각각 21.39%와 29.86%까지 끌어올렸다. 하지만 지난 2009년 4월 임창욱 회장과 부인 박현주 부회장이 임상민씨에게만 지분 6.75%를 넘기면서 임세령씨와의 격차가 벌어졌다. 현재는 두 배 가까운 차이를 보이고 있다. 지난해 초 장녀인 임세령씨가 이혼하면서 그룹 경영에 복귀했다. 임씨는 최근 외식 계열사인 와이즈앤피의 공동 대표에 취임했지만, 대세를 뒤집기는 쉽지 않을 것으로 전망된다. 재계의 한 관계자는 “임상민씨는 그동안 그룹에서 공식 직책은 없었지만, 계열사 업무에 꾸준히 관여해왔다. 유학에서 돌아오면 본격적으로 경영 수업을 받을 것으로 예상된다”라고 말했다.

현대가의 차녀 정명이씨 역시 남편 정태영 현대캐피탈 사장과 함께 활발한 경영 활동을 펼치고 있다. 기아차는 지난 2008년 보유 중인 현대커머셜 지분 30%를 정명이씨 부부에게 매각했다. 이로 인해 정명이씨 부부는 현대차(50%)에 이어 현대캐피탈의 2대 주주가 되었다. 지난 7월 현대모비스가 또다시 현대커머셜 지분 20%를 정명이씨 부부에게 넘겼다. 현대차와 함께 현대커머셜의 최대 주주가 된 것이다. 업계에서는 정명이씨 부부를 통해 현대차그룹의 금융 계열사가 정리되는 것 아니냐는 시나리오가 나오고 있다. 현대차그룹은 현재 현대카드를 비롯해 현대캐피탈, 현대커머셜, HMC투자증권 등 네 개 금융 계열사를 갖고 있다. HMC투자증권을 제외한 세 개 회사를 현재 남편인 정태영씨가 경영하고 있다.

현대커머셜은 지난 2009년 현대카드 지분 5.5%를 갬코로부터 인수했다. 이후 추가 지분 인수는 없는 상태이지만, 최근 지분 이동을 통해 이같은 시나리오가 끊이지 않는 상황이다. 채이배 좋은기업지배구조연구소 연구원은 “장녀인 정성이씨가 광고회사인 이노션의 지분 40%를 확보했고, 차녀 부부도 현대커머셜 지분 50%를 확보했다. 이를 통해 자연스럽게 인적 분할이 이루어질 것으로 전망된다”라고 말했다.

 재벌가 ‘차녀 5인방’ 뜯어보니…
장녀보다 승진 기간 짧아…“재벌가 후손 프리미엄” 비난받기도

최근 두각을 보이는  재벌가 차녀들의 이력을 보면 승진 기간이 짧다는 점이 눈에 띈다. 장남이나 장녀의 경우 선친으로부터 엄격한 경영 수업을 받다 보니 승진 기간도 길 수밖에 없다. 임원으로 승진하기까지 적게는 5년, 많게는 10년이 걸렸다.

하지만 차녀들은 대부분 고속 성장을 거듭했다. 이서현 제일모직 전무는 지난 2002년 제일모직 패션연구소에 입사한 지 3년 만에 상무보로 승진했다. 조현민 대한항공 팀장도 입사 2년 만에 계열사 등기이사가 되었고, 현경담 동양온라인 부장 역시 그동안 초고속 승진을 해왔다.

재계 일각에서는 “재벌가 후손이라는 간판이 고속 승진의 원동력이 아니냐”라는 비난의 목소리도 나오고 있다. 한국경영자총협회 조사에 따르면 신입사원이 임원으로 승진하는 데 22.4년이 걸린다(2005년 기준). 위에 언급된 차녀 3명은 임원으로 승진하는 데 2년 정도밖에 걸리지 않았다. 일반인보다 10배 가까이 빠른 승진이다.

지분 취득 과정의 문제점도 일부 거론되고 있다. 최근 현대커머셜 지분 50%를 확보한 정명이씨가 대표적인 예이다. 현대커머셜은 지난 2007년 3월 현대차그룹 네 개 계열사가 100% 지분을 출자해 만든 회사이다. 상용차와 건설 장비의 할부 및 리스 금융 사업을 도맡아 하고 있다. 설립 첫해 영업이익 4백83억원과 당기순이익 79억원을 기록했다. 지난해에도 각각 1천2백15억원과 1백36억원의 실적을 보인 알짜배기 회사이다. 하지만 지난 2008년 계열사인 기아차와 위아(현 현대위아)가 지분 30%를 오너 일가인 정명이씨 부부에게 넘기면서 ‘회사 기회의 유용’ 논란이 일었다. 당시 참여연대는 현대차 이사회에 답변을 요청하기도 했다. 최근에는 현대모비스가 지분 20%를 또다시 정명이씨 부부에게 넘기면서 논란이 반복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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