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자체도 ‘뒷문’ 활짝 열렸다
  • 김세희 기자 (luxmea@sisapress.com)
  • 승인 2010.09.13 15: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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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하 기관에 지역 유력 인사 자녀들 ‘특혜 채용’ 수두룩…의혹 불거져도 다수가 ‘근무 중 이상 무’

 

▲ 9월7일 정부중앙청사 앞에서 공무원 노조 등 단체 회원들이 정부의 특채 인사 비리에 대한 전면 조사를 촉구하고 있다. ⓒ뉴시스

1970~80년대는 ‘개천에서 용 난다’는 명제가 한국 사회에서의 입신양명을 위한 든든한 받침대 역할을 하던 시기였다. 가난하고 힘이 없어도 본인의 노력으로 고관 대작의 꿈도 충분히 이룰 수 있었던 긍정과 희망의 시대였다. 시계를 거꾸로 되돌려 보면, 고려에 이어 조선 시대에는 과거 제도가 있었다. 이 제도는 개천에서 용 나는 것을 가능하게 해주는 일종의 공개 채용 시스템이었다. 그러나 과거 제도의 반대편에는 음서 제도 또한 뿌리 깊게 자리 잡고 있었다. 이 제도로 인해 가진 자와 힘 있는 자의 직위 세습이 가능했고 혈연·지연·파벌의 영향력이 막강해졌다.

‘대한민국판 음서제’ 논란이 뜨겁다. ‘그들만의 리그’라는 외교부를 넘어서 각 중앙 부처와 지방자치단체(이하 지자체), 그리고 공기업에까지 여파가 미치고 있다. 일부 힘 있는 자들이 편법으로 자녀나 친·인척들을 공직에 진출시키는 행태가 알려지자 민심이 들끓고 있다. 지자체를 중심으로 만연해 있는 ‘현대판 음서 제도’의 실태를 추적했다.

지난 9월7일 김만수 부천시장은 기자회견을 갖고 “공정한 사회를 구현하자는 이명박 대통령의 말에 100% 공감한다. 산하 기관을 감사해 일부는 중징계 조치를 취하고 있다”라며 인사 개혁 필요성을 역설했다. 문제가 된 부천시 산하 기관에는 현재 부천 지역 유력 인사의 자녀나 친·인척들이 근무하는 것으로 드러났다.

부천시설관리공단의 경우 전 시의원 자녀나 친·인척 등 여덟 명이 공단 내 핵심 부서에서 일하는 것으로 밝혀졌다. 부천문화재단, 부천산업진흥재단, 복사골연수원, 부천시체육회 등 여타 산하 기관의 경우도 이와 크게 다르지 않다. 지역 내 정치인과 유력 인사가 지자체 인사에 강한 압력을 행사한 것이다.

현재 시설공단에 대한 감사는 완료되고 나머지 기관들에 대한 감사가 진행 중이다. 권희춘 부천시 감사실장은 “감사 결과 (부천)시설공단에 전직 시의원의 자녀와 그 외 공직자의 자녀나 친·인척도 꽤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초창기에 채용 기준이 미흡했는지 대다수가 특채로 채용되었다. 일부는 공채라 하더라도 형식만 빌려온 것으로 보인다”라고 말했다. 그러나 김시장이 언급했던 ‘중징계 조치’와 관련해서는 “업무 수행에 문제가 있어 징계하는 경우는 있지만, 인사 절차와 관련해서 당사자를 징계하지는 않는다. 개개인의 도덕적인 문제가 아닌가. 채용 과정에 문제가 있을 수는 있지만 징계까지 할 만한 사항은 아니다”라며 말을 흐렸다.

일부는 고속 승진 의혹까지

지자체 산하 기관의 불공정 특혜 채용 논란은 서울시 구로구에서도 이어진다. 지난 2008년 12월 구로지방자치시민연대는 성명을 통해 구로구 시설공단 인사 비리 의혹을 밝혔다. 구청 전직 고위 공무원의 자녀 네 명, 전·현직 구의원의 자녀 두 명, 전 구로경찰서 정보계장의 자녀 한 명, 이사장의 친척 두 명을 비롯해 소개 의혹까지 더해 총 21명이 인사 비리의 도마에 올랐다. 무려 37%에 달하는 이른바 ‘인맥 인사’가 공단을 차지하고 있었다.

특히 당시 공단 이사장이었던 이상운씨는 공단에 입사하기 직전 구로구 행정관리국장으로 근무하고 있었고, 해당 구청장과는 과거 영등포구에서 함께 근무하며 막역한 관계로 지냈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이사장은 인사 비리 의혹과 전국 최하위 경영 실적 평가에도 지난 2007년 연임에 성공하는 등 승승장구했다. 이이사장의 고종조카 또한 임시직인 주차관리원에서 기능 7급(운전직)을 거쳐 일반 6급(사무직)으로 초고속 승진했다. 그는 기능 7급으로 승진할 당시 해당 자격 요건인 운전 1종 대형 면허를 소지해야 하지만 면허가 없는 상태에서 승진해 잡음이 일었다. 이사장의 사촌형도 구로의 한 공용주차장에서 주차관리원으로 일하는 등 ‘인맥’ 덕을 보았다.

의혹이 난무한 21명에게는 어떤 조치가 내려졌을까. 구로지방자치시민연대 장인홍 집행위원장은 “그대로 근무하고 있다. 이사장만 사표를 제출했다. 내부적으로 감사를 한다, 투명성을 강화한다고 하지만 가시적으로 드러나는 것은 없었다. 현 구청장 인수위에 참여해 퇴임 공무원 임용 현황을 보았는데, 100% 재임용된다. 형식상으로는 공모 절차를 거쳐도 실제로는 의미가 없는, ‘눈 가리고 아웅’인 셈이다. 이런 현상은 많은 사람에게 불공정을 넘어 배신감을 줄 수도 있다”라고 말했다. 

기간제 및 계약직 그리고 ‘숨은 노른자위’라고 불리는 무기 계약직 등은 공개 채용 절차를 거치더라도 대부분이 서류 전형과 면접만으로 채용이 이루어지기 때문에 결국 특혜 채용 논란을 피해갈 수 없다. 껍데기는 공채이지만 벗겨보면 ‘짜고 치는’ 특채인 셈이다.

경기도 의정부시는 지난 2009년 1월, 시청 홈페이지에 무기 계약 근로자 채용 시험 시행 공고를 게시하고 한 명을 채용했다. 그런데 채용된 한 명이 현직 의정부시의회 안 아무개 의원의 아들 최 아무개씨(40)인 것으로 드러나 논란이 일고 있다. 의정부시청 하수도과에 근무하던 최씨는 논란이 일자 지난 9월8일 사표를 제출했다.

하지만 채용 절차에 대한 논란은 여전하다. 채용 시행 공고를 게시했을 당시 공개 채용 형식을 띠고 있었지만 채용 공고 게시일을 포함해 지원 마감까지 단 3일이 걸렸으며 지원자도 최씨 한 명뿐이었다. 뿐만 아니라 면접관 역시 당시 의정부시청 총무과장과 하수도과장이 참여해 다섯 가지 항목 심사에서 만점에 가까운 점수를 준 것으로 드러났다. 현직 시의원의 자녀라는 명목으로 특혜를 준 것이 아니냐는 의혹이 제기되는 이유이다.

이에 대해 안의원은 전화 통화에서 “(아들이) 사표를 냈다. 똥 치우러 다니는 것, 그 직업이 특혜인가. 무기 계약직이라고 하지만 하수도과 중에서도 최하급으로 들어갔다. 공무원이라고 할 수도 없다. 절차상에 문제가 있을 것이 뭐가 있나. 어미는 시의원이라고 다니는데, 아들은 맨홀 뚜껑이나 뒤지고 다니고 있었다”라고 말하며 울분을 토했다. 그러나 정년이 보장되고 공무원 수준의 복지 혜택을 누리는 무기 계약직의 특성상 특혜 의혹 논란은 당분간 계속될 전망이다.

지자체에서 ‘현대판 음서 제도’가 횡행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전국공무원노동조합 조창형 대변인은 “고위 관료층이나 정부 부처에서도 이러한 상황이 비일비재하니 정부에서 깊숙이 개입을 안 하는 것이다. 하지만 판도라의 상자는 분명히 열린다”라고 말했다. 비단 하위직 공무원뿐만 아니라 대표적 산하 기관인 시설관리공단과 같은 경우도 이사장을 채용할 때 조례를 바꿔가면서까지 채용하는 사례가 더러 있다. 조대변인은 “결국은 해당 지역 시장이 자기 표를 관리하기 위해서 측근을 내려보내 시설관리공단을 장악하는 것이다. 아무래도 돈이 많이 들어오는 곳이다 보니 시장 자신에게 들어오는 돈도 많을 것이다. 이명박 정부에서 말하는 ‘공정한 사회’가 이런 것인가. 이렇게 문제가 많은 상황에서 오히려 중앙 부처에서부터 특채 비율을 늘리겠다고 하는 것은 모든 사람에게 주어져야 할 평등한 기회를 박탈하는 것이다”라고 비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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