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그날 ‘손’과 손잡다
  • 김진명 | 소설가 ()
  • 승인 2010.09.13 15: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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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가 김진명씨가 팩션으로 쓴 ‘2012년 대선 가상 시나리오’

  

팩션은 팩트(fact)와 픽션(fiction)을 합성한 신조어로서, 역사적 사실이나 실존 인물을 주된 소재로 하고, 여기에 작가의 상상력을 덧붙여 새로운 사실을 재창조하는 장르를 말한다. 2012년 대선을 앞두고 격동의 소용돌이에 빠져들 국내 정치 상황을 미리 예측해보는 ‘2012년 대선 가상 시나리오’를 인기 작가 김진명씨가 <시사저널>에 보내왔다. 따라서 이 글에는 실존 인물이 등장하지만, 내용은 모두 작가의 상상력을 바탕으로 했음을 밝혀둔다. 김진명씨는 <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 <한반도> <천년의 금서> 등 숱한 베스트셀러를 내며 국내 문단에서 팩션의 일인자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시장님, 이제는 결정을 해주어야 하겠습니다.”

 

오세훈은 시장실로 찾아온 이재오를 보자 오히려 마음이 홀가분했지만 한편으로는 걷잡을 수 없는 질투심이 일어나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 도대체 김문수가 나보다 나은 것이 무엇이라는 말인가. 이 사람만 내 편이었다면.

 

“하하, 장관님은 왜 김지사만 예뻐하십니까?”

“아니, 아니, 저는 김문수 편을 드는 것이 아닙니다. 현재 두 분의 지지율이 비슷하니 한 군데로 모아야 박 전 대표에게 대적할 수 있어서 그런 것이지요. 저는 두 분 중 당의 지지를 더 얻는 분을 위해 뛸 뿐입니다.”

“말씀만 그러시지요. 하여튼 저는 이미 결심했습니다. 오후에 기자들을 만나겠습니다.”

 

오세훈이 불출마를 선언하자 김문수의 지지율은 갑자기 치솟았다. 그동안 한나라에서 유력한 네 후보 중 김문수와 오세훈의 지지층이 겹치다 한쪽으로 결집한 결과였다.

 

“으음!”

 

친박 진영에서는 우려가 현실로 다가오고 있다는 공포감을 지울 수 없었다. 하루하루 날이 갈수록 이재오는 안에서 무언가를 해내고 있었고, 김문수는 밖에서 무서운 속도로 지명도를 올리고 있었다.

 

“아직 박대표님의 지지율에는 한참 못 미쳐!”

 

친박 진영에서는 아직 상당히 앞서고 있는 지지율로 애써 위안을 삼으려 들었지만, 사실 그 지지율은 진작부터 문제를 드러내고 있었다. 이미 알려질 대로 알려진 박근혜의 지지율은 답보하고 있었지만 김문수는 한 걸음 한 걸음 쫓아오다 이제는 간담이 서늘할 정도로 다가오고 있는 것이다.

 

“대표님, 이대로는 안 됩니다.”

 

결국 친박의 핵심 3인은 초조한 심정으로 박근혜를 찾았다. 그러나 박근혜는 이들의 얘기를 조용히 듣기만 할 뿐 심중을 내보이지 않았다.

 

“대표님, 이대로는 결코 한나라당의 후보가 될 수 없습니다. 아직 김문수와의 지지율 차이는 나지만 저들에게는 단일화라는 무기가 있습니다.”

“…”

“처음에는 일단 대표님과 김문수, 정몽준의 삼각 구도가 형성되겠지요. 그 외에 세대교체 등을 내세우며 소장파 가운데 한둘 정도가 나설 것입니다.”

“…”

“대표님은 처음부터 끝까지 혼자이지만 저들은 어느 정도 가다가 단일화 약속을 합니다. 하나하나 보면 별것 아니지만 이들은 각자가 대표하는 세력이 있습니다. 정몽준은 고유한 친위 세력을 가지고 있고, 소장파들은 개혁성을 무기로 젊은 층에 어필할 것입니다. 물론 김문수는 이재오가 받치고 있기 때문에 당권파의 대부분을 흡수합니다. 이들은 차례로 합치고 합쳐 결국에는 김문수가 단일 후보로 됩니다. 이 단일화는 무섭습니다. 대의원들과 국민들은 모두 이 단일화에 넘어가고 맙니다. 모든 세력이 다 김문수를 중심으로 결집되었다는 느낌을 주기 때문입니다. 이대로 있으면 안 됩니다.”

“….”

 

ⓒ일러스트 이철민

측근들이 다투어 초조한 심경을 토로했지만 박근혜는 아무런 말없이 듣고만 있었다.

 

승용차가 청와대 경내에 들어서자 이상득은 지그시 감고 있던 눈을 떴다. 삼각산을 바라보며 숨을 한 번 크게 들이마신 후 그는 차에서 내려 접견실로 향했다. 대통령은 친형을 보자 반가운 걸음으로 다가와 손을 내밀었다.

 

“명박아!”

 

이상득은 나직하고 깊은 목소리로 동생을 불렀다. 이제껏 사람이 있건 없건 대통령님이라고 동생을 불러왔던 그로서는 몹시 드문 일이었다.

 

“네, 형님.”

“인간이란 가장 안전한 길을 가야 한다던 아버지 말씀을 기억하느냐?”

“네. 형님.”

“그렇다면 지금 가장 안전한 길은 무어냐?”

“박근혜를 말씀하시는 겁니까?”

“그렇다. 그게 대세다. 박근혜가 후보로 나서면 아무 문제가 없지 않느냐?”

“형님, 어차피 이번 선거는 한나라당 후보가 당선됩니다. 박근혜가 꼭 대통령이 되어야 한다면 당내에서 선택받으면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당을 장악하고 있는 이재오가 김문수를 미는 이 상태에서 박근혜가 경선에 들어오려 하겠느냐? 만약 박근혜가 탈당한다면?”

“탈당이요?”

 

대통령은 고개를 가로저었다.

 

“그건 그 사람의 선택입니다. 하지만 한나라를 떠난 박근혜는 더 이상 박근혜가 아닙니다. 탈당 즉시 지지율은 바로 가라앉습니다.”

 

이상득은 크게 한숨을 내쉬고 청와대를 빠져나와 바로 박근혜에게 전화를 걸었다.

 

“차라리 탈당이 낫겠습니다.”

“…” 

 

며칠 후 박근혜는 경선 불참 선언을 했고 그날 밤 박근혜의 최측근이 이회창과 은밀한 만남을 가졌다.  

 

“총재님, 박대표는 총님과 같이 걸어나가고자 합니다.”

 

이회창은 웃었다.

 

“참 묘한 인연이군요. 내가 그토록 찾을 때는 그리도 차갑게 외면하더니 그분이 나를 찾을 줄은 몰랐는데.”

“박대표가 신당을 만들고 총재님과 합당한 다음 경선을 벌여 승자가 후보로 나서면 공정하지 않을까요?”

“생각해보지요.”

 

집으로 돌아오던 이회창은 대문 앞에 나타난 사람을 보고는 놀랐다.

 

“이장관 아닌가?”

 

이회창의 응접실에 앉은 이재오는 나직한 목소리를 한마디 한마디 이어나갔다.

 

“총재님, 형식은 아무래도 좋습니다. 우리 당으로 입당하시든 당 대 당으로 합당을 하든, 같이하시지요. 김문수, 정몽준 등과 같이 경선을 하시는 겁니다. 이기면 대권을 가지시는 것이고, 지더라도 제가 끝까지 총재님을 모시겠습니다.”

“박대표가 사람을 보냈던데.”

“박근혜와의 경선은 결과가 뻔하지 않습니까? 하지만 한나라에서의 경선은 총재님도 해볼 만하십니다.”

“정말 그렇게 생각하는가?”

“분명합니다. 총재님은 한나라의 상징과도 같은 분이십니다. 많은 대의원이 총재님으로부터 임명장을 받았고, 한나라당에는 아직도 이회창 향수에 젖은 사람들이 많습니다. 제 생각에는 총재님이 김문수, 정몽준과 붙어도 불리할 것이 없습니다.”

 

이회창은 한참 생각하다 결국 고개를 끄덕였다.

 

한편 여의도의 한 식당에서는 손학규가 그동안 공들여오던 사람을 만나고 있었다.

 

“유동지, 쑥스러운 얘기를 할 수는 없지만….”

“손대표님, 저는 벌써 결심이 섰습니다. 비록 저의 지지도가 있기는 하지만 대선이란 개인의 싸움이 아니라는 것을 잘 압니다. 민주당에서 저를 후보로 미는 일은 없을 테고. 두 정대표님들도 훌륭한 분들이지만 저는 손대표님이 저와 더 가까운 부류라고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유시민이 불출마를 선언한 후 손학규를 지지하고 나서자 민주당 ‘빅3’ 사이에  균형이 갑자기 깨졌다.

 

비록 손학규가 유시민의 지원으로 삼각 대치에서 유리한 고지를 점령하고 나서기는 했지만 야당은 깊은 고민에서 헤어나오지 못하고 있었다.  

 

“손학규·정동영·정세균 중 어떤 후보의 지지율도 김문수나 박근혜의 상대가 되지 않습니다. 방법은 박근혜가 탈당하고 나와 삼각 구도를 만들어주는 것뿐입니다.”

“3파전을 만들어 민주당 후보 당선되는 일은 없도록 하겠어요”


다 죽은 것 같았던 이회창이 한나라와 합치자 충청 민심은 크게 술렁였고 박근혜 진영은 당황했다. 탈당하고 독자 후보로 나올 경우의 여론조사에서 포항과 울산 지역은 물론 부산·경남 일대에서 누수가 많아 걱정하던 박근혜 진영은 충청 민심마저 민주와 한나라 그리고 박근혜의 세 갈래로 나뉘자 점점 초조해졌다. 게다가 김문수는 이제 박근혜의 지지율을 턱밑에서 위협하고 있었고, 한나라 경선 후보들의 지지율을 모두 합하면 박근혜를 추월하고도 남았다. 세상에 가장 믿지 못할 것이 지지율이라 했던가. 이제 단일화가 되면 김문수는 박근혜를 상당히 앞지를 것이 명약관화했다.

 

박근혜와 행동을 같이하는 인사들의 의견은 사분오열되고 있었다. 

 

“대표님, 탈당해야 합니다. 탈당해서 국민들에게 직접 물어야 합니다.”

“아닙니다. 다시 경선 복귀 선언을 하고 경선에 참여해야 합니다. 대표님도 정몽준, 이회창, 소장파들과 단일화 협상을 해야 합니다.”

“해봐야 소용없습니다. 어차피 그들은 함께 가기로 되어 있습니다. 경선에서는 길이 없습니다. 탈당하지 않으면 후보로 나설 방법이 없습니다.”

 

그러나 박근혜는 답답할 정도로 말이 없었다. 경선 불참 선언을 했으니 한나라의 후보가 될 길은 없었고 지금 와서의 방법은 탈당밖에 없었다. 그러나 박근혜는 답답해 심장이 터질 정도로 아무런 말도, 행동도 없었다.

  

당의 미래를 걱정하는 초·재선 그룹 대표들은 탈당할 경우의 여론조사 결과를 가지고 이재오를 찾았다.

 

“장관님, 박대표가 탈당할 경우의 여론조사는 세 갈래로 지지세가 나뉘는 걸 보여주고 있습니다. 김문수와 박근혜와 민주당입니다. 김문수가 제일 좋기는 하지만 삼각 구도로 선거를 치르는 것은 우리 한나라당으로서는 너무 위험합니다.”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김지사가 제법 큰 차로 이기고 있잖아요? 박근혜든 민주당이든.”

“이 결과는 반드시 크게 변합니다. 박대표가 나가 창당을 한다면 신당 효과가 발생합니다. 신당 효과는 장관님도 잘 아시지 않습니까?”

“나는 해볼 만한 싸움이라 생각해요.”

“더 무서운 것은 민주당의 지지율입니다.”

“민주당의 지지율은 한심하잖소? 보다시피 어떤 후보를 대도 김문수나 박근혜에게 상대가 안 되는데?”

“여론조사는 속임수입니다.”

“속임수? 이렇게 여러 기관에서 그토록 많은 조사를 했는데 속임수라고?”

“여론조사 기관의 속임수가 아니라 민주당 지지자들의 속임수란 말입니다.”

“그러면 민주당 지지자들이 한나라당이나 박근혜를 지지한다고 조사에 거짓으로 응한다는 얘기요?”

“바로 그렇습니다. 생각해보십시오. 호남은 거의 민주당 지지이고 충청도는 셋으로 균등하게 나뉘어졌습니다. 게다가 젊은이들 중에도 민주당 성향이 많고 진보니 좌파니 하는 자들이 전부 민주당 지지인데 지지율이 이렇게밖에 안 나온다는 것은 어딘지 이상하지 않습니까? 장관님, 갈라지면 민주당에 내줍니다.”

“그러나 박대표가 대통령은 무조건 자신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하는 것은 무리가 있어요. 경선을 해야지. 본인 스스로 경선불참 선언을 했는데 내가 뭘 어떻게 하겠소?”

 

초·재선 그룹 대표는 다시 박근혜를 찾았다. 

 

“대표님, 탈당해서 출마하시면 민주당 좋은 일만 시키는 겁니다.”

“그런 일은 결코 없습니다. 내가 되거나 김지사든 누구든 한나라 후보가 되지 3파전을 만들어 민주당 후보가 당선되는 일은 절대로 없도록 하겠어요.”

 

박근혜의 확고한 대답에 한나라는 만세를 불렀다. 감동한 초·재선 그룹을 중심으로 경선 룰을 박근혜에게 유리하게 바꾸어서라도 박근혜를 경선에 참여시켜야 한다는 의견이 분분했지만 공당으로서 한 사람에게 유리하게 경선 룰을 바꾸는 것은 그리 쉬운 문제가 아니었다. 그러나 한나라당이 그렇게나 좋아했던 박근혜의 이 대답은 엉뚱한 곳에서 엉뚱한 싹을 틔우고 있었다.  

 

ⓒ일러스트 이철민

불철주야 뛰어다니던 정세균은 며칠 전부터 칩거하다 느닷없이 손학규 캠프를 찾았다.

 

“정대표님, 웬일로….”

“손대표님과 긴밀히 얘기를 좀 나누고 싶어서요.”

“뭐든 말씀하십시오. 귀를 씻고 듣겠습니다.”

“이대로라면 손대표님이 우리 민주당의 후보가 되는 것은 틀림없다고 생각합니다.”

“무슨 말씀을요? 정대표님도 지지가 좋지 않습니까? 정동영 후보도 훌륭하고요.”

“그래서 말인데 아주 힘든 얘기를 나누고자 합니다.”

“말씀하십시오.”

“대통령 후보가 되는 것은 정치인으로서 최고의 영광이기는 하지만 이번 선거는 우리 당 후보들의 지지도가 너무 낮게 나오는 것 같습니다. 박근혜 전 대표가 탈당이라도 했으면 좋겠지만 삼각 구도를 만들지 않겠다고 선언을 했으니 그걸 기대할 수도 없고요.”

“편하게 말씀하십시오.”

“손대표님께 실례가 될까 봐 조심스럽지만 어쩌면 이걸 찬스로 만들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듭니다.”

“어떻게요?”

“우리가 박근혜와 합당을 하는 겁니다.”

 

순간 손학규의 안색이 굳어졌다. 다 된 후보를 포기하라는 이 사람 정세균이 정신이 있나 하는 생각이 들었지만 시간이 흐르자 손학규는 정세균이 무슨 말을 하는지 알 것 같았다.

 

“내가 후보를 포기하면 우리 민주당이 100% 정권을 잡는다는 말이군요.”

“그렇습니다. 박근혜는 경상도 대표성이 있지 않습니까? 경상도와 전라도가 합치면 대통령이 안 나올 수 없습니다.”

“음.”

“박근혜의 말을 잘 생각해보십시오. 경선에 나서지도 않고 삼각 구도를 만들지도 않으면서 자신이나 한나라 후보가 대통령이 되는 길을 가겠다고 했습니다. 바로 우리와의 합작을 강력하게 시사하는 말입니다.”

“내가 후보를 포기하면 우리 당이 정권을 잡는다….”

“무엇보다 우리 정치의 숙원이었던 동서 화합을 하는 것입니다. 동서 화합을 해야만 남북 화합이 되지 않습니까? 비록 대통령은 박대표에게 주지만 우리가 구현하려고 했던 정치를 같이 열어가는 겁니다.”

 

지그시 눈을 감은 손학규의 눈가가 가늘게 떨렸다. 후보가 되기 위해 얼마나 오랜 세월 백의종군과 민생 탐방을 거듭하며 참고 또 참아왔던가. 그 모진 고생 끝에 이제 후보가 되기 직전 남에게 양보하라니. 오랜 동안의 정적이 흐른 후 손학규는 눈을 떴다.

 

“지난 경선에서 나는 정동영 후보의 가능성 없는 선거를 질타했었지요. 이제 내가 그 자리에 섰나 봅니다. 내 말을 지키기 위해서라도 기꺼이 박대표에게 양보하겠습니다.”

“훌륭하십니다. 박대표에게는 직접 전화하시지요.”

 

박근혜의 전화번호를 누르는 손학규의 손길이 가늘게 떨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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