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 커진 간 나오토의 ‘개혁 전쟁’
  • 도쿄·임수택 | 편집위원 (sisa@sisapress.com)
  • 승인 2010.09.27 17: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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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민주당 대표 되면서 ‘오자와’ 영향력 벗어나…새 내각 요직에 ‘반오자와’ 인사 대거 내세워

지난 9월14일 열린 일본 민주당 대표 선거에서 간 나오토 총리가 지방의원 및 당원 서포터들에게서 압도적인 지지를 받았다. 열세라고 예상되었던 국회의원 투표에서도 승리했다. 반면에 민주당 창당 이래 고비 때마다 대주주로서 결정적인 영향력을 미쳐온 오자와 전 간사장은 끝이 보이기 시작했다. 지금까지는 그가 없는 민주당은 생각할 수 없을 정도였다. 반세기 만에 정권 교체를 이룩하기까지 결정적 역할을 한 주인공이 바로 오자와였기 때문이다. 따라서 오자와는 그의 지분 이상으로 각종 선거, 당·정 인사와 정책 등에 깊숙이 관여해왔다. 이로 인해 총리와 간사장 간의 이중 권력 문제로 당내 분란이 끊이지 않았다.

지만 민주당은 이번 당 대표 선거를 통해 새로운 전기를 맞이하고 있다. 무엇보다 오자와의 영향력에서 벗어나기 시작했다. 간 나오토 총리는 내각을 총괄하는 관방장관 자리에 센 고쿠 요시토를 유임시키고 일찍이 간 나오토를 지지해 온 오카다 가츠야·마에하라 세이지·노다 요시히코를 각각 간사장·외상·재무상으로 임명했다. 세 사람 모두 ‘반(反)오자와’의 대표적인 인물들이다. 내각의 대신 자리에 오자와계는 단 한 사람도 임명하지 않았다. 부대신에는 일부 임명되었으나 계파 안배 차원이라기보다는 능력에 따른 인선이라는 것을 강조했다.

이번 내각 인선을 통해 간 나오토 총리는 오자와 전 간사장의 영향을 받지 않고 자유롭게 정권을 운영할 수 있게 되었다. 시민운동가 출신인 간 나오토 총리의 기본 철학은 개혁과 변화이다. 간 나오토 총리를 선두에서 지지해 온 오카다 간사장, 마에하라 외상, 노다 재무상도 모두 개혁을 표방하는 인물들이다. 특히 간 나오토 총리가 개혁하겠다는 강한 의지를 보여준 상징적인 인물은 총무상에 임명된 가타야마 요시히로 전 도토리 현 지사이다. 가타야마는 대표적인 반(反)관료주의자이며, 지역 주권을 개혁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인물이다. 그는 취임 기자회견에서 “지역 주권은 내 일생의 과업이다. 전력을 기울일 것이다”라며 투지를 불태웠다. 간 총리는 당 대표 선거 과정에서 오자와로부터 ‘관료 위임’ 정치를 한다고 비난받아온 것을 불식시키려는 노력을 보여주었다. 간 총리 자신이 지난해 7월 정권 교체를 하면서 내세웠던 주된 슬로건이 관료 집단에 대한 개혁이었는데 어느 새 관료 집단에 의존하고 있다는 것에 대한 자성의 의미이기도 하다. 나아가 개혁의 상징적 인물인 가타야마 총무상을 통해서 본격적으로 개혁 드라이브를 걸기 시작했다. 즉, 개혁과 변화를 바탕으로 경제 살리기와 재정 건전화를 추구하겠다는 것이다.

하지만 정권의 앞날이 녹녹하지만은 않다. 연일 계속되는 엔화 강세를 안정시켜야 하는 과제가 우선적이다. 지난 9월15일 1조8천억 엔(25조원)을 외환 시장에 투입해 치솟는 엔화를 조금 안정시키는 듯했으나 기세가 좀처럼 꺾이지 않고 있다. 소비세 인상 문제도 뜨거운 감자이다. 국민들은 민주당 대표 선거 때 소비세 인상을 주장한 간 나오토 총리를 지지해주었다. 이제 본격적으로 논의해야 할 시점이 무르익었다는 것이다. 하지만 각론으로 들어가면 그렇게 쉽게 결론이 날 문제가 아니다. 소비세 인상을 주장한 간 나오토 정권이 지난 7월 참의원 선거에서 크게 패배했기 때문이다.

▲ 지난 9월14일 간 나오토 일본 총리가 민주당 대표 경선에서 승리가 확정되자 당 인사들에게 당 대표직 수락 인사를 하고 있다. ⓒAP연합

자민당의 지지도 하락 등 호재 속에 새로운 민주당 정체성 세울 기회

재정 문제도 심각하다. 올해 예산을 보면 세수를 넘어서 국채를 발행할 수밖에 없을 정도로 심각한 수준이다. 게다가 정권 차원의 공약으로 내년 예산에 반영해야 하는 자녀 수당, 고속도로 무료화 예산 등을 감안하면 좀처럼 재정 적자의 끝이 보이지 않는다. 국민들도 비록 정권의 공약이기는 하지만 현실성이 없다는 점을 들어 수정하거나 포기해야 한다고 생각하고 있다. 점점 늘어나는 사회보장비에 대한 해결책도 좀처럼 보이지 않고 있다. 오키나와 미군 해병대 기지 이전 문제는 아직도 뚜렷하게 가닥이 잡히지 않았다. “미군 해병대 전투부대는 더 이상 필요 없다”라고 주장한 오자와가 낙선되어 미·일 간 갈등의 소지가 사라지기는 했지만 명확한 해결책이 있는 것도 아니다. 게다가 최근 이전 시기 문제를 둘러싸고 신임 마에하라 외상이 “오바마 대통령이 오기 때문에 거기에 맞추어 모든 것을 진행할 생각은 없다”라고 말한 것을 두고 기타자와 토시미 방위상이 불쾌감을 드러냈다. 이러한 의견 차이는 향후 오키나와 미군기지 이전 문제를 풀어가는 과정에서 불씨가 될 수 있다. 무엇보다도 마에하라 외상 자신이 외교 전문가라는 자부심이 강하다. 또, 간 나오토 정권 창출에 크게 기여했다는 점에서 볼 때 내각에서 그의 목소리는 커질 수밖에 없다. 개인적인 캐릭터를 보아도 그는 소신을 굽히는 스타일이 아니다.

중국과의 문제도 관건이다. 최근에 발생한 센카쿠 열도(중국명 댜오위다오) 인근 해역에서 일본 해상보안청이 중국 어선을 나포해 선장을 구속한 문제로 중·일은 한판 대결을 벌였다. 외교 수장이 된 마에하라 외상은 그동안 중국측에서 중국의 군비 증강을 우려하는 발언 등을 한 전력을 들어 호의적인 인물로 보지 않고 있던 터였다. 중국의 전방위 압력에 놀란 일본은 구속했던 선장을 석방했지만 후유증은 계속될 전망이다.

이런 저런 어려움이 있지만 간 나오토식 변화와 개혁의 정치를 할 수 있는 기회 또한 그 어느 때보다도 많다. 먼저 당 대표 선거 이후 간 총리에 대한 지지도가 상승하고 있어 정국 운영의 주도권을 회복했다. 당내 계파 정치의 영향력도 축소되고 있다. 백전노장인 오자와 전 간사장의 쇠퇴는 역으로 간 나오토식 정체성을 만들어갈 수 있는 기회가 되고 있다. 또, 향후 3년 후의 참의원 선거까지는 큰 선거가 없다는 점도 국정 운영에 전념할 수 있는 좋은 기회이다. 최근에 사민당이 민주당에 호의를 보이면서 다시 관계를 복원하고자 하는 움직임을 보이는 것도 간 총리의 정치적 기반을 강화해주고 있다. 야당인 자민당이 국민적 지지를 크게 받지 못하고 있다는 점 또한 개혁과 변화를 드라이브할 수 있는 배경이 되고 있다. 민주당이든 자민당이든 이제 돈과 조직의 상징이었던 계파 정치에 경종이 울렸다.

오자와 세력이 약화된 지금, 새로운 정체성을 세우지 못하면 민주당은 다시 혼돈에 빠지게 되어 세력 간 대립이 재연될 가능성이 농후하다. 이번 당 대표 선거의 승리가 간 나오토 총리에 대한 적극적 지지라기보다는 지난 2006년 9월 고이즈미 전 총리 이후 총리가 무려 다섯 명이나 바뀌자 총리의 잦은 교체가 국익을 위해서도 좋지 않다는 생각에서 나온 소극적 지지라는 의견도 향후 정국을 예단할 수 없게 하고 있다.

내년 봄에 있을 통일 지방선거가 그 하나의 분기점이 될 수 있다. 오자와 전 간사장과 하토야마 전 총리의 정치 자금 스캔들로 추락한 민주당의 이미지를 환골탈태시킬 수 있을 것인가, 또 시민운동가 출신·자민당 출신·구 사민당계 출신들로 이루어진 복잡한 민주당의 이념적 스펙트럼을 어떻게 융합해갈 것인가, 관료 집단과 상생의 해법을 어떻게 찾아 갈 것인가 등이 초미의 관심거리이다. 지금 일본에서는 변화와 개혁을 내세운 간 나오토식 새로운 정치가 시험대에 오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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