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년의 얼굴’ 보일 것인가
  • 이철희 | 한국사회여론연구소 부소장 ()
  • 승인 2010.09.27 17: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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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3 민주당 전당대회 시나리오별 분석 / 승자가 누구냐에 따라 ‘개혁이냐, 안정이냐’ 갈려

흔히 재미있는 ‘3대 구경거리’를 꼽으라 하면 불구경, 물 구경, 싸움 구경을 든다. 특히 싸움 구경이 재미있는 까닭은 분명하다. 옥신각신, 설왕설래, 갑론을박, 엎치락뒤치락 서로 치고 박고 싸우는 꼴이 흥미를 자아내기 때문이다. 물론 가장 큰 요인은 누가 이길까 궁금한 것이다. ‘사람들을 흥분시키는 요소’를 ‘와우 팩터’(wow factor)라고 하는데, 성패에 대한 궁금증이 바로 그 와우 팩터이다.

민주당의 전당대회가 종반전에 접어들고 있다. 지난 6·2 지방선거 결과만 놓고 보면, 2012년 정권 교체가 실현 가능한 일로 다가온 것도 사실이다. 그렇다면 다음 정권을 차지할 가능성이 있는 민주당이 자신들의 얼굴로 누구를 선택할지가 관심거리가 되는 것은 당연하다. 흥행 구도는 일단 좋다는 얘기이다. 하지만 흥행 요소가 부족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흥행 요소를 말할 때 우선 떠오르는 것이 다크호스의 등장이다. 뜻밖의 인물이 혜성같이 등장해 순식간에 판을 뒤흔드는 것이다. 새로움은 재미와 호기심을 유발한다. 민주당의 전당대회에는 이런 요소가 부족하다. 좀 더 근본적인 이유는 민주당의 전략적 무능이다. 전당대회가 당내 행사에 그치지 않고 국민적 관심을 끌어모으는 대형 이벤트가 되려면 역동성을 배가시켜야 한다. 역동성 배가는 곧 좀 더 많은 사람을 투표에 참여하게 하고, 투표가 자유롭게 이루어지도록 보장하는 것이다. 더 많은 사람을 참여시키기 위해서는, 일반 국민의 참여를 허용하고 유도해야 한다. 2002년 국민경선제가 돌풍을 일으킨 것도 일반인의 참여를 이끌어냈기 때문이다. 

어쨌든 전당대회는 진행되고 있다. 이것도 싸움인지라 재미있는 구경거리가 되기는 하지만 우리가 관심을 가져야 할 또 다른 포인트는 ‘싸움 뒤’(post-election)의 모습이다. 이른바 ‘빅3’라고 불리는 손학규 상임고문, 정세균 전 대표, 정동영 상임고문 중 누가 대표로 선출될지에 따라 민주당의 모습이 크게 달라질 수 있기 때문이다. 그 각각의 시나리오를 미리 예상해본다.

 

▲ 9월16일 춘천에서 열린 민주당 강원도당 대의원대회에서 ‘빅3’(손학규·정세균·정동영)가 지지자들의 환호에 답하고 있다. ⓒ시사저널 유장훈


■ 시나리오 1-손학규 상임고문이 대표로 당선되면…

손학규 고문이 갖는 비교 우위는 2012년 대선 경쟁력에 있다. 총선이 대선과 같은 해에, 그것도 현직 대통령의 임기 말에 치러지는 황혼 선거인지라 차기 대권 경쟁이 총선의 주요 요인이 될 수밖에 없다. 손고문이 대표 경선에서 승리한다면 바로 이런 점에서 강점을 가졌기 때문이다. 따라서 그가 대표가 되면 당장 민주당에 대한 기대는 지금보다 많이 높아질 것이다. 또, 대권 경쟁이 조기에 본격화되는 계기로 작용할 수도 있다. 

손고문에게 최대 난제는 민주당의 기존 질서를 혁신하는 것이다. 야성이 부족하다는 비판, 지지 기반과 유리되어 있다는 비판에 응답해야 한다. 다행히 그는 상대적으로 민주당의 기성 체제와는 자유로운 입장이라 혁신을 강하게 밀어붙이려 할 것이다. 당내 기득권이 별로 없다는 점은 그가 야권 통합이나 연대에도 매우 전향적으로 나설 수 있게 하는 호조건이다. 지난 지방선거 때 쌓은 유시민 전 복지부장관과의 신뢰를 바탕으로 국민참여당과의 통합도 추진할 것이다. 개혁적 또는 진보적 인사의 수혈, 그들과 시민단체와의 소통도 대폭 확장하려 할 것이다. 다만 과거 전력 때문에 진보 정당과의 연대나 연합 정치가 순조롭게 풀릴 것 같지 않다는 점, 지도부에 진입한 당내 경쟁자와의 불협화음 등은 손학규 대표 체제의 항로에 변수로 작용할 것이다. 

 

 

■ 시나리오 2-정세균 전 대표가 대표로 당선되면…

정당의 주인은 그 당에 오래 몸담고 있는 사람이 아니다. 다른 조직과 달리 정당의 주인은 국민의 신뢰를 많이 받는 사람이다. 즉, 표를 많이 가져올 수 있는 사람이 오너라는 얘기이다. 정세균 전 대표가 책임 경영을 하는 오너가 되기 어렵다는 현실, 이것이 그가 대표로 재신임을 받더라도 불가피하게 감당해야 할 약점이다. 스스로 유력한 대권 주자로 발돋움하지 않으면 힘이 쏠리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정 전 대표로서도 대권 행보는 선택이 아니라 필수이다. 그러나 이것이 여의치 않을 경우 두 가지 제약이 불가피하다. 하나는 당내 기득권 구조의 포로가 되는 것이다. 당권을 무기로 당내 기성 체제를 온존시키면서 생존을 도모하는 것이다. 불임성이 낳는 또 다른 제약은 야권 통합이나 연대의 메인 파트너가 되기 어렵다는 것이다. 누구라도 ‘바지 사장’을 파트너로 생각하지 않으려 할 것이기 때문이다.

정치에서는 인물이 정책이고 메시지이다. 정당의 경쟁력은 그 얼굴이 누구냐에 따라 달라진다. 2004년 ‘노무현 탄핵’ 이후 침몰하던 한나라당이 부활한 것은 ‘박근혜’라는 인물이 있었기 때문이다. 따라서 관리 체제로 판을 키우겠다는 논리는 억지스럽다. 그것이 가능하려면 대표는 사무총장 역할만 하고 대국민 리더십의 행사는 대권 주자에게 양보해야 한다. 이것은 불가능하다. 정 전 대표가 새롭게 대표가 되면 지난 2년과 크게 달라지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전망컨대, 당내의 기존 질서를 유지하는 안정 기조로 갈 것이다.

정세균 대표 체제와 관련해 주목할 것은 개헌 논의이다. 경험적으로 보면, 대통령 선거를 통해 권력을 장악할 가능성이 약한 사람들의 선택은 대권 포기가 아니라 권력 구조 변경, 즉 개헌이다. 이원집정부제든 내각제든 총리(또는 수상)의 힘은 막강하다. 지금 민주당 내에는 개헌파가 상당하다. 정 전 대표 자신도 대권 그림이 시원치 않기 때문에 당내 개헌파를 기반으로 여권의 개헌 시도에 호응할 수 있다. 이 경우 정 전 대표가 그려볼 수 있는 야권 연대의 수단은 선거 제도 개편이다. 전면적 비례대표제의 도입을 통해 이에 강한 애착을 보이는 진보 정당과의 연대를 모색하는 것이다.

■ 시나리오 3-정동영 상임 고문이 대표로 당선되면…

정동영 상임고문의 강점은 검증된 승부사라는 점이다. 그는 열린우리당 창당을 주도하고, 초대 당의장으로서 당의 지지율을 대폭 끌어올렸다. 노무현 대통령 당시 탄핵 돌풍이 워낙 거세 상대적으로 가려졌지만, 정고문은 탄핵 이전에 이미 ‘몽골 기병론’ 등으로 열린우리당의 지지율을 지속적으로 상승시키는 리더십을 보여주었다.

따라서 정고문이 대표가 되면 시민사회의 요구에 신속하게 반응할 것이다. 대권 주자의 중요한 경쟁력 요소 가운데 하나인 인간적 매력에서 엄청난 피해를 입은 상태이기 때문에 그로서는 ‘반응성’이 거의 유일한 무기이다. 정책이든, 노선이든, 대여 투쟁이든, 여론과 개혁·진보 진영의 요구에 기민하게 반응하는 것으로 승부하는 것이 불가피하다. 담대한 진보, 역동적 복지 국가론 등 그가 전대 캠페인에서 내세우고 있는 담론도 사실은 이런 전략에서 비롯된 것이다.

정고문이 취할 것으로 예상되는 ‘거침없는 행보’가 어느 정도 성과를 낼지는 미지수이다. 워낙 강한 심리적 비토 정서가 형성되어 있기 때문이다. 누구 말대로, 코나 입이 못생기면 수술하면 된다. 하지만 사람 자체가 싫은 것은 바뀌기가 쉽지 않다. 이런 점에서 정고문은 연합을 도모하는 데에서 부득불 상당한 애로를 겪어야 할 것이다. 그러나 만약 진정성이 인정되고, 그의 변신에 대한 신뢰가 생긴다면 예의 그 장점이 다시 살아날 수도 있다.

공직자를 뽑든, 당직자를 뽑든, 모든 선거에는 단점이 있다. 지금 시점에서 한 사람을 선택해 미래를 맡겨야 한다는 점이다. 이는 임기가 보장되는 선거의 강점이자 단점이다. 장점은 리더십의 창조성 발휘가 보장된다는 것이고, 단점은 불확실성이다. 단점을 누르고 장점을 살리기 위해 공약도 따지고, 살아온 이력도 보게 된다. 어쨌든 민주당은 10월3일 선택을 해야 한다. 민주당의 미래는 이날 어떤 리더십을 선택하느냐에 따라 크게 달라질 것이다. 어쩌면 2012년 선거의 성패 또한 이날의 선택에 달려 있을지도 모른다.

 ‘단일화 실패’ 상처 입은 486의 다음 전략은?

초반 분위기는 밋밋했다. 그렇게 진행되던 민주당 전당대회가 ‘486세대 정치인’ 단일화 문제로 제법 뜨겁게 달아올랐다. ‘빅3’(손학규·정동영 고문, 정세균 전 대표)로서야 자신들에게 쏠릴 스포트라이트가 엉뚱한 데로 간 탓에 불만이 있을 것이다. 그러나 486 단일화 문제가 갖는 인화성이나 파급 효과만큼은 그들도 인정해야 했다. 빅3도 모두 칭찬하고 나섰다. 무엇보다 당내에서 486이 차지하는 비중이 만만치 않기 때문이다.

거칠게 평가하면, 지금까지 486은 현실 정치를 바꾸는 데 거의 기여하지 못했다. 어린 나이와 경험 부족으로 인해 역부족이었을 수는 있지만, 무언가 바꿔보려고 시도하는 모습조차 보여주지 못한 것이 사실이다. 그런 점에서 일부에서는 486 정치를 ‘부역 정치’ ‘하청 정치’라고 비판하는 목소리가 나왔다. 486 단일화는 이런 ‘과거’를 씻어내고, 새롭게 출발하겠다는 의지로 읽혔다. 때문에 주목을 받은 것이다. 486이 독자 세력화해 새로운 정치를 실현하는 데 나선다면 그것이 갖는 정치적 함의와 전당대회에 미칠 파장 때문에 당 안팎에서는 아연 긴장했다. 이들은 커다란 진통 없이 단일화 방법에도 합의했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단일화는 실패로 끝났다.

사실 냉정하게 보면 민주당 내 486 전체에게 무조건 책임을 묻는 것은 온당치 않다. 컷오프 성적에 의해 단일화를 하기로 하고, 우여곡절 끝에 비공식적으로 순위도 확인되었다. 이제 당사자들이 승복하면 단일화는 깔끔하게 성사되는 것이었다. 그런데 한 명이 불복했다. 그래서 단일화가 실패한 것이다. 따라서 불복한 한 명에게 1차 책임을 물어야 하는 것이 마땅하다. 그럼에도 486그룹 전체가 감당해야 할 책임의 몫이 없는 것은 물론 아니다. 

단일화 실패로 486 세력의 단일 대오는 불가능해졌다. 이인영 전 의원이 컷오프에서 2등을 한 것에서 알 수 있듯 민주당 내에서 변화와 세대교체를 바라는 정서는 견고하게 자리 잡고 있다. 이런 점에서 단일화만 제대로 되면 486은 ‘젊은 대표론’으로 빅3와 정면 대결하는 구도도 만들어볼 수 있었다. 단일화의 좌절로 기세가 꺾인 것도 문제이지만 이런 구도를 형성할 수 없다는 것이 486으로서는 가장 큰 손해일 것이다.

전당대회에서 대의원은 1인 2표를 행사한다. 따라서 486은 그들이 단일 후보라고 선포한 이인영 후보에게 한 표를 주더라도, 나머지 한 표를 빅3에게 줄 수 있다. 이것은 곧 이들이 빅3 대 486의 양자택일 구도로 전대를 치르는 것이 아닌, 기존의 계보 프레임을 유지하는 형태로 486의 지도부 진입을 도모하는 공존 구도로 치를 수 있게 되었다는 것이다. 이 경우 그들이 스스로 절연하고자 했던 하청 정치를 계속하는 것이기 때문에 그들의 명분은 크게 퇴색하게 될 것이다.

완벽한 단일화는 아니더라도 이를 계기로 486이 독자 세력화를 모색하는 쪽으로 결집할 수도 있다. 가능성은 작지만 몇몇 사람이 그런 쪽으로 움직여보려고 하는 것은 사실이다. 이렇게 되면 당장 당권을 잡지는 못할지라도 민주당의 향배는 486에 의해 좌지우지될 것이다. 과연 이들은 어떤 선택을 할 것인가? 10·3 전대는 민주당 486에게도 그룹의 존립과 명운을 가를 중대 고비라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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