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푼돈도 아끼는 세계 14위 부자 ‘부의 비밀’은 역발상·용인술

‘아시아 최고의 갑부’ 리카싱 허치슨 왐포아 및 청쿵실업 회장의 인생 역정과 성공 스토리

소준섭 | 국제관계학 박사 ㅣ sisa@sisapress.com | 승인 2010.10.04(Mon) 18:18: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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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 최고의 갑부인 홍콩의 리카싱(李嘉誠) 회장이 지난 9월15일 4백50억원을 기부해 화제에 올랐다. 그는 미국의 경제 전문지 <포브스>가 발표한 ‘2010년 억만장자’ 순위에서 지난해 말 기준으로 세계 14위 부자이다. 그는 누구이고, 어떻게 오늘의 부를 일군 것일까.

리카싱은 1928년 광둥 성 차오저우(潮州)에서 태어났다. 리카싱은 홍콩어 발음이고, 중국어 발음으로는 리자청이다. 아버지는 초등학교 교장을 지냈고, 조부는 청나라 말기에 조정이 12년에 한 번씩 각 성(省)의 우수 학생만을 대상으로 선발하는 시험에 뽑힐 정도로 수재였다. 1939년 일본이 중국을 침략하자, 1941년 그의 아버지는 가족을 데리고 홍콩으로 이주해 외숙의 집에 얹혀 살았다. 2년 뒤 그의 아버지는 병으로 세상을 떠났고, 가정 형편이 어려워진 리카싱은 학업을 포기하고 취업했다. 처음에 그는 외숙이 운영하는 손목시계 제조회사에서 청소를 하고 차를 끓이는 보조원으로 일했다. 그때 그의 나이 불과 14세였다. 이 시계 회사에서 매일 가장 먼저 가게에 나오고 가장 늦게 퇴근하는 사람이 바로 그였다. 그는 이곳에서 3년을 일한 뒤 17세 되던 해 철물과 플라스틱을 제조하는 회사에 들어가 영업사원으로 근무했다. 그는 그곳에서 뛰어난 영업 실적을 올려 18세에 과장으로 승진했고, 2년 뒤에는 사장이 되었다.

1950년 마침내 그는 스스로 7천 달러를 투자해 청쿵(長江)플라스틱 공장이라는 회사를 설립해 당시 가장 중요한 수출 상품이었던 플라스틱 조화(造花) 판매에 나섰다. 그는 당시를 이렇게 회상한다. “공장에서는 단지 플라스틱 장난감과 가정용품을 생산했을 뿐이다. 무역상사를 통해 그것들을 유럽과 미국으로 팔았다. 처음 10년 동안은 1주일 내내 휴일 없이 일했고, 매일 최소한 16시간을 작업해야 했다. 밤에는 또 공부를 했다. 뿐만 아니라 종업원이 부족해 판매와 수금도 내가 직접 해야 했다. 항상 잠이 모자라 아침에는 자명종 소리를 듣고서야 비로소 일어날 수 있었다. 참으로 견디기 어려운 시절이었다.”

   
▲ 지난 8월5일 홍콩 최고의 자산가인 리카싱 허치슨 왐포아 및 청쿵실업 회장이 2010년 전반기 실적을 발표하고 있다.
ⓒEPA

■ 신뢰와 역발상으로 이룬 엄청난 성공

리카싱은 품질이 좋은 상품을 저렴한 가격에 판매한다는 경영 원칙 아래 이를 성실하게 실천했다. 이러한 신뢰를 바탕으로 대형 백화점을 비롯한 많은 거래처들이 리카싱이 제시하는 가격 그대로 계약을 체결했고, 어떤 업체들은 미리 50%의 보증금을 선불하기까지 했다. 1957년에는 장강플라스틱 공장의 이름을 장강공업주식회사로 바꾸고 회사도 이전했다. 당시 공장은 두 분야로 나뉘어 한 곳은 플라스틱 완구를 만들었고, 다른 한 곳은 플라스틱 조화를 생산했다. 리카싱은 플라스틱 조화를 팔아 수천 만 홍콩 달러를 벌었고, 그의 회사는 세계 최대의 플라스틱 조화 생산 회사가 되었다. 그에게는 ‘플라스틱 조화 대왕’이라는 칭호가 붙여졌다.  

리카싱은 이에 그치지 않았다. 1958년에 부동산회사를 설립하면서 상권을 확대해 나갔다. 그리고 1971년에는 일종의 종합무역상사인 ‘청쿵실업’을 설립했다. 그 이듬해에 드디어 이 회사를 상장하게 되었는데, 상장 당일 상종가를 치는 등 비약적으로 성장하기 시작했다. 그리하여 상장한 지 1년 만에 회사의 토지보유 규모는 20배로 커졌고, 이때부터 그의 회사는 본격적으로 거대 기업으로 발전하게 되었다. 1979년 그는 상하이 후이펑(匯豊) 은행의 주식을 대대적으로 매입해 최대 주주가 되었다. 이어서 영국계 은행인 ‘화기황포(和記黃)’를 사들여 최초로 영국계 은행을 인수한 중국인이 되었다. 이때 그의 재산은 홍콩 정부와 필적할 정도가 되었다.

1989년 톈안먼(天安門) 사건이 발생했을 때, 대다수 외자 기업은 중국에서 철수했다. 하지만 이때 그는 사람들의 상식을 뛰어넘는 역발상으로 오히려 중국 시장에 적극적으로 진출하는 전략을 택했다. 그 결과 그는 중국 대륙에 가장 많은 투자를 한 홍콩 투자자가 되었다.

■ “평생 리카싱의 돈벌이를 해줬다” 홍콩인들의 탄식

리카싱은 홍콩을 비롯해 중화 지역 그리고 아시아에서 최고의 부호로 알려져 있으며, 홍콩 사람들은 그를 ‘이초인(李超人)’이라 부르고 있다. 홍콩 사람들은 그들이 평생 동안 오로지 리카싱을 위해 돈을 벌어주었다고 탄식하고 있다. 그들이 구입한 주택은 리카싱 회사가 지은 주택이고, 슈퍼마켓에 가서 무슨 물건을 사도 리카싱 회사와 관련이 있는 것이며 휴대전화 등 일상 용품 역시 마찬가지이기 때문이다.

■ 일평생 오직 한 여성만을 사랑한 리카싱

어린 시절 홍콩에 건너온 리카싱은 외숙의 집에 얹혀 살면서 그 집의 딸 좡밍위에(庄明月)와 인연을 맺었다. 리카싱은 자신보다 네 살 어린 그녀에게서 광둥어를 배우고 대신 그녀에게 중국 고전과 시가(詩歌)를 가르쳤다.

리카싱이 시계회사에서 일하며 공장에 다니고 있을 때 그녀는 학업을 계속해 홍콩 대학에 입학했지만 리카싱을 계속 연모했다. 리카싱이 플라스틱 제조회사를 설립하고 사업적으로 크게 성공을 거두었지만, 명문 집안 명문대학 출신인 그녀와 빈한한 가정 환경에 학업을 중도 포기한 리카싱을 비교하면 상식적으로 천양지차였다.

이러한 이유로 그녀의 아버지와 리카싱의 어머니 모두 이들의 결혼을 반대했다. 하지만 이들의 진정한 사랑은 가족들을 설득시킬 수 있었고, 마침내 1963년 결혼식을 올렸다.

이들 사이에 두 아들이 태어났다. 전통적인 현모양처였던 좡밍위에는 두 아들을 정성껏 키우고 헌신적으로 남편을 뒷바라지하면서 결코 전면에 나서지 않았다. 그녀는 58세 되던 1989년 심장병으로 돌연 세상을 떠났다. 적지 않은 홍콩의 백만장자들이 다수의 첩을 두고 애정 행각을 벌이는 것을 자랑으로 삼는 풍토이지만, 리카싱은 이제까지 단 한 번도 그러한 스캔들이 없기로 유명하다. 일생에 오직 한 여성만을 사랑했던 리카싱의 이러한 인품 때문에 그는 더욱 존경을 받고 있다.  

   
▲ 최근 홍콩 국제 공항 인근에 허치슨 왐포아 및 청쿵실업이 건설한 ‘캐리비안 코스트’가 완공되어 위용을 드러냈다. 캐리비안 코스트는 아시아 금융의 집결지가 될 전망이다.
ⓒEPA

■ 부자는 작은 돈도 가벼이 여기지 않는다

리카싱은 여러 일화를 남기고 있다. 어느 날 리카싱이 집을 나서며 출근을 할 때 그의 비서가 자동차 문을 열고 차에 타려는 순간 상의 안쪽 호주머니에서 동전 하나가 떨어져 길가 우물로 굴러들어갔다.

그러자 리카싱은 비서에게 사람을 불러 그 동전을 찾도록 했다. 그래서 마침내 그 동전을 찾았고, 리카싱은 동전을 찾은 그 사람에게 100 홍콩 달러를 ‘상금’으로 주었다.

사람들은 우물에 빠진 그 동전이 무슨 특수한 사정이 있는 동전임에 틀림이 없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 동전은 그저 보통 동전일 뿐이었다. 리카싱은 “동전 하나도 역시 재물이다. 만약 당신이 그것을 가벼이 봐서 우물에 빠졌어도 그것을 찾지 않는다면, 재신(財神)은 당신을 천천히 떠나갈 것이다”라고 말했다.         

■ 기업의 발전 여부는 ‘인재’에 달려 있다

그가 가난한 가정에서 몸을 일으켜 당당히 아시아 최고의 갑부가 되기까지 큰 몫을 한 것은 그의 빼어난 용인술이다. 리카싱은 한 회사가 일정한 수준까지 성장한 뒤 기업이 한 단계 더 진전할 수 있는가의 여부는 전적으로 인재를 어떻게 기용하느냐에 달려 있다는 점을 분명히 알고 있었다. 그는 기업은 상이한 단계에서는 상이한 관리와 전문가가 필요하다고 인식했다. 창업 때부터 그를 돕고 같이 회사를 키워온 ‘동지’들을 물러나게 하고 과감하게 젊은 전문가들을 수혈했다. 그러면서 직원을 훈련시키는 야간 학교를 세웠고, 전도가 유망한 직원들을 외국에 보내 선진 기술 및 문명을 배우도록 했다. 자신도 가정교사를 초빙해 항상 전문 지식을 익혔고, 영어도 독학했다.

리카싱의 기업을 이끄는 간부 중에는 뛰어난 금융 두뇌와 비범한 분석력을 갖춘 재무 전문가도 있고 노련한 부동산 전문가도 있으며, 또한 생기발랄하고 젊은 홍콩인이 있는가 하면 엄격한 성품에 과단성을 갖춘 서양인도 있다. 리카싱이 오늘날처럼 커다란 성공을 거둔 것은 동양적 가족 관리 방식을 탈피한 그의 경영 방식과 깊은 관련이 있다. 그가 기용한 서양의 전문가 그룹은 서양의 선진 기업 관리 경험을 적용함으로써 기업을 경제적이고 과학적이며 효율적으로 운영되도록 했다. 동시에 리카싱은 대외적으로 서양인들을 소비의 주요 대상으로 삼았을 뿐 아니라 그들 서양인으로 하여금 서양 시장의 개척을 주도하도록 했다. 현대판 ‘이이제이(以夷制夷)’ 전략이었다.

인재 기용에 대해 리카싱은 이런 말을 남겼다. “대다수 사람은 모두 장점과 단점을 가지고 있다. 그러므로 각자의 능력을 다하게 해야 하고, 각자 자기가 필요한 곳에 있어야 하며, 재능을 헤아려 기용한다는 원칙이 중요하다. 이것은 하나의 기계와 동일한 이치이다. 예를 들어, 어떤 기계 부품이 5백 마력의 힘이 필요할 때, 비록 0.5마력은 5백 마력에 비한다면 훨씬 작지만 그러나 부분적인 역할은 충분히 해낼 수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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