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극] 뜨거운 조명 아래에 선 1960년대생 ‘중견 트로이카’
  • 김진령 (jy@sisapress.com)
  • 승인 2010.10.18 17: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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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출가 박근형·최용훈·이성열, 1·3·4위로 상위권 올라 ‘주목’

 

연극 분야의 차세대 리더 조사에서 지난해 1위로 첫 등장한 연출가 박근형씨(47)가 올해에도 대표 인물로 꼽혔다. 지목률은 지난해보다 2% 높은 32%를 기록했다.

전체 순위는 박근형, 이상직(44·배우), 최용훈(47·연출가), 이성열(48·연출가), 조재현(45·배우), 장진(39·연출가), 조승우(30·뮤지컬 배우), 김광보(47·연출가), 양정웅(42·연출가), 박장렬(43·연출가·서울연극협회 회장) 순이었다. 지난해 3위였던 양정웅 극단 여행자 대표가 8위로 내려간 데는 최근 그가 국내 활동보다는 해외 활동에 치중하면서 국내 활동이 잠시 주춤한 것이 영향을 미친 것으로 보인다. 오는 12월에 그가 명동극장에 올릴 신작 <돈키호테>는 벌써부터 기대를 모으고 있다. 김광보 연출가는 올해 새로 순위권에 진입한 경우이다. 그는 부산시립극단 상임연출가로 부임했지만, 최근 남산예술센터의 위촉을 받아 <내 심장을 쏴라>를 연출하는 등 중앙 무대에서도 활발한 활동을 펼치고 있다.

이번 조사에서 눈길을 끄는 인물은 조재현·장진·조승우 등 연극 무대 바깥에서 더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는 3인이다. 배우 조재현은 최근 ‘연극열전’ 시리즈로 브랜드 연극의 붐을 불러 일으킨 주인공이라 연극 쪽에서 지명도가 높아진 것으로 풀이된다. 반대로 장진 감독의 경우 출발은 희곡과 연출이지만, 영화 쪽 활동에 치중하면서 영화인으로 각인되고 있다. 뮤지컬계의 대표 배우인 조승우가 순위에 든 것도 이례적이다. 순수 연극배우 출신으로는 국립극단 운영위원인 이상직 배우가 2위에 올라 연극배우들의 체면을 지켜주었다.

배우로는 이상직이 2위로 최상위

전체 순위에서 가장 눈길을 끄는 것은 연극계의 중견인 1960년대생 삼인방 박근형·최용훈·이성열이 상위권에 포진되어 있다는 점이다. 이들에 대해 연극협회에서 발행하는 월간 <한국연극> 최은우 편집장은 “한국 연극의 질을 유지하고 있는 대표 연출가들이다”라고 설명했다. 이들은 닮은 듯하면서도 조금씩 다르다. 세 명 모두 각자의 극단을 설립해 활동하고 있다는 것은 공통점이고, 박근형 극단 골목길 대표는 작·연출을 겸하고 있고, 최용훈 극단 작은신화 대표는 오직 연출만 한다는 점에서 조금 다르다. 최편집장은 “이성열 극단 백수광부 대표는 다른 두 명에 비해 소극장보다는 중·대극장용 무대 작품을 상대적으로 많이 올렸고, 자기 완결성이 강한 편이다. 이에 비해 박근형 연출가는 작품을 무대에 올리고서도 끊임없이 배우와 상호 작용을 주고받으며 대본을 수정한다”라고 전했다. 때문에 박연출가의 작품에서 배우가 돋보이는 경우가 많다는 것이다. 박연출가의 대표작인 <청춘예찬>에서 주인공 청년 역을 맡은 배우 가운데는 영화나 드라마로 진출한 경우가 꽤 많다. 1대 청년 박해일은 영화판에서 원톱 주연을 맡을 만큼 스타가 되었고, 2대 청년 김영필은 개봉 대기 중인 임순례 감독의 <소와 함께 여행하는 법>에서 첫 주연을 맡았다. <청춘예찬>을 통해 데뷔한 배우 고수희는 한국과 일본의 연극 무대와 영화, 드라마를 종횡무진하고 있다.


박연출가의 작품 가운데 <청춘예찬>과 <경숙이, 경숙 아버지>는 몇 년째 계속 반복해 무대에 오를 만큼 인기 있는 레퍼토리이지만 박연출가는 “상설 공연으로 가지는 않을 것이다”라고 말했다. “상설 공연장을 마련할 돈도 없거니와 함께 작업하며 경제적으로 힘들었던 동료들이 유명세를 타면서 바빠지고 경제적으로 잘되어 좋다. 한 작품을 너무 오래 하는 것은 창작자의 입장에서 재미없는 일이다”라고 말했다. 그가 새 작품을 올리면 영화나 드라마 쪽에서도 좋아한다. 새로운 스타가 떠오르기 때문이다.

 

 “극작? 나는 문학적 작가라기보다 현장 작가이다”
INTERVIEW / 박근형 연출가

고3 때 연극이 좋아 연극 단체에 들어간 박근형 연출가는 나중에 연극을 위해 대학을 다녔고, 지금은 한국예술종합학교에서 학생들을 가르치면서 2002년 자신이 창단한 극단 골목길을 통해 극작가 겸 연출가로 활동하고 있다.

요즘 연극계 사정은 어떤가?

어렵다. 내가 연극에 입문한 지 25년쯤 되었는데 늘 그래왔다. 그래도 지하실 한편에서 꿋꿋하게 창작의 열의를 지키는 사람이 많다.

연출가인가, 극작가인가?

나는 연출을 하고 싶다. 문학 수업을 받은 적이 없다. 현장에서 동료 작가나 선배들 영향으로 글을 썼을 뿐이다. 문학적 작가라기보다 현장 작가이다.

직접 쓴 대본만 선호하나?

그런 편견은 없다. 그때그때 맞춰서 하고 있다.

최근 브랜드 연극, 스타가 출연하는 연극이 인기를 끌고 있다.

연극을 만들어서 관객을 만나는 것이 무조건 순수할 수만은 없는 일이다. 상업적인 부분은 인간의 기분적인 부분 가운데 하나이다. 문제는 내용이다. 개그 프로가 나쁜 것이 아니라 연극이 개그 프로처럼 가버리면 안 된다. 너무 쉽게 상업적으로 만드는 것은 우리 모두를 폄하시키는 것이다. 연예인이 무대에 서면 장점도 있다. 연극에 대한 관심이 많아지고 그것이 우리를 또 자극시키고. 우리가 잘하면 관객이 많이 오지 않겠나.

연극의 전망을 어떻게 보는가?

내 세대가 선배 세대보다 못한 것 같다. 선배들은 더 힘들게 연극을 하면서도 문제의식을 잃지 않았다. 내 세대는 연극이 갖고 있는 세상을 꿰뚫는 본질이 부족하다고 생각한다. 삶의 근원을 찾아가는 그런 자세를 우리가 찾아가야 한다고 생각한다. 부끄럽다.

눈여겨보는 후배가 있나?

고선웅이나 이해제는 둘 다 극작과 연출을 겸하고 있는데 자기만의 언어를 뿜어내고 있다. 내가 좋아하는 작·연출가이다. 나하고는 조금씩 다 다르지만 근사한 작가들이다.

작·연출을 겸하는 것이 트렌드인가.

예전에는 분업화되었는데, 지금은 워낙 재주 있는 사람이 많아서…. 뭐가 문제가 있어서 그런 것은 아니다. 좋은 극작가도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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