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홈쇼핑 3사와 ‘지분 파킹’ 했다”
  • 이석 (ls@sisapress.com)
  • 승인 2010.10.25 18: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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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사저널>이 단독 입수한 태광 내부 관계자 녹취록에 언급…정권 실세 지원 있었는지 주목

‘태광 사태’의 진실은 무엇일까. 그룹 사정에 정통한 인사들은 “이미 예견된 수순이었다”라고 한목소리로 말한다. 태광그룹은 그동안 여러 차례 사정 기관의 표적이 되었다. 검찰·국세청·금감원뿐 아니라 국정원에서도 조사를 진행한 것으로 확인되었다. 익명을 요구한 케이블TV 고위 관계자는 “지난 2008년 말에 국정원이 태광그룹을 조사한 적이 있다. 케이블TV업계를 중심으로 태광그룹의 문제점을 조사한 기억이 있다”라고 귀띔했다. 이듬해에는 대검 중수부에서도 태광그룹을 내사한 것으로 전해진다.

하지만 태광그룹은 큰 생채기 없이 위기를 넘겼다. 극히 일부 인사가 회사의 핵심 정보를 공유하는 폐쇄적인 경영 구조 탓이다. 앞의 관계자는 “당시 수사관들이 상당히 애를 먹은 것으로 알고 있다. 검찰이 최근 태광그룹을 심도 있게 들여다보고 있다. 박윤배 서울인베스트 대표의 조사 자료가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다고 본다”라고 귀띔했다. 검찰에서도 ‘이번에는…’이라는 기대감이 적지 않았다. 수사와 무관한 서울중앙지검까지 지원에 나서는 등 검찰 정보망이 총동원된 분위기이다.

ⓒ시사저널 이종현

검찰 수사, 세 갈래로 진행돼

검찰 수사는 크게 세 갈래로 나뉜다. 차명 계좌를 통해 관리되는 이호진 회장의 비자금이 첫 번째이다. 사건 제보자인 박윤배 서울인베스트 대표는 <시사저널>과의 인터뷰에서 “비자금 규모가 1조원대까지 확대될 수 있다”라고 말했다. 임직원 명의로 차명 관리되는 증권 계좌만 수천억 원대에 이를 것으로 추정된다는 것이다. 박대표가 검찰에 제출한 문건에 따르면 태광 직원들은 지난 20년간 1백58주와 2백62주 단위로 태광산업 주식을 보유해왔다. 주소가 ‘태광산업 본사’로 기재된 직원이 상당수이다. 문건은 ‘창업주에게 상속받은 주식을 차명으로 관리해 온 것으로 의심된다’라고 지적했다.

대한화섬과 태광산업의 일부 주식은 자사주 형식으로 매각되었다. 현금화된 돈은 계열사인 고려상호저축은행이나 흥국생명 계좌에 다시 유입되었다. 이 돈 또한 수천억 원에 이를 것으로 추정된다. 이회장은 경기도 용인에 위치한 태광CC 일대 부동산도 직원 명의로 소유하고 있다.

비자금을 조성해 정·관계 로비용으로 사용했는지 여부도 검찰 수사의 핵심이다. 서울서부지검 형사5부측은 “정·관계 리스트에 대한 수사 계획은 당분간 없다”라고 분명하게 선을 그었다. 수사팀 관계자는 10월21일 기자들과 만난 자리에서 “비자금의 실체부터 확인해야 용처(정·관계 로비)를 파악할 수 있는 것 아니냐. 현재는 비자금 의혹 규명 수사에 집중하고 있다”라고 밝혔다.

하지만 검찰 안팎에서는 이 말을 액면 그대로 받아들이지 않는 분위기이다. 태광그룹은 최근 천안방송(2009년 6월)과 큐릭스(2009년 1월)를 잇달아 인수하면서 덩치를 키웠다. 현재 케이블TV업계 부동의 1위 자리를 지키고 있다. 하지만 인수 과정이 석연치 않다. 특히 천안방송은 한 차례 지분 세탁을 거친 뒤, 소유권이 태광산업에서 이호진 회장 일가로 넘어간 터라 뒷말이 나오고 있다. 실력자의 지원 없이는 불가능한 일이다. 정·관계 로비설이 적지 않게 나돌았던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실제로 태광산업은 지난 2001년 9월 천안방송 지분 67%를 GS홈쇼핑과 CJ홈쇼핑, 우리홈쇼핑(현 롯데홈쇼핑) 등에 나누어 팔았다. 대기업의 SO(종합 유선방송) 소유를 규제한 탓이었다. 4년 후 규제가 완화되자 이회장 일가가 최대 주주인 전주방송을 통해 이를 다시 사들였다. 매입가는 4년 전과 동일한 주당 2만원(총 66억원)이었다. 천안방송의 한 전직 임원은 “홈쇼핑에 지분을 잠시 맡긴 전형적인 ‘지분 파킹(분산 보유)’ 거래였다. 태광그룹의 계열사인 고려신용금고(현 고려상호저축은행)가 홈쇼핑의 지분을 인수하는 비용뿐 아니라 이자까지 대납한 것이 근거이다”라고 말했다.

▲ 대검찰청 중앙수사부 관계자들이 10월21일 태광그룹 이호진 회장의 어머니인 이선애씨의 자택을 압수수색한 후 물품을 차량에 옮기고 있다. ⓒ시사저널 윤성호

‘청와대 행정관 성 접대’, 불씨 되살아날까

<시사저널>이 최근 확보한 녹취록에도 이와 관련한 내용이 언급되어 있다. 태광그룹 내부 관계자들이 대화하는 내용을 녹취한 것이다. 녹취록에는 ‘홈쇼핑 세 곳이 태광과 지분 파킹 거래를 했다’라고 분명하게 언급되어 있다. 그럼에도 관련 기관에서는 지분 인수 과정을 문제 삼지 않았다. 앞의 전직 천안방송 임원은 “천안방송의 당시 주식 가치는 1천7백억원에 달한다. 이호진 회장은 지분 파킹 거래를 통해 30분의 1 수준인 66억원에 지분을 매입했다. 검찰 조사에서 의혹이 밝혀질 것이다”라고 전망했다.

케이블TV의 인수·합병(M&A) 규제를 푼 방송법 시행령 개정안이 지난 2008년 12월 큐릭스 인수를 앞두고 통과된 점도 석연치가 않다. 태광은 군인공제회 등에 ‘파킹’해두었던 지분을 되사는 방식으로 큐릭스를 인수했다. 두 달 후 청와대 행정관과 방통위 간부가 태광그룹 문 아무개 팀장에게 성 접대를 받다가 경찰에 적발되었다. 당시 업계에서는 “큐릭스 합병 승인을 위한 로비 차원이 아니겠느냐”라는 시각이 적지 않았다. 검찰은 그룹 차원의 로비 의혹은 없는 것으로 판단했다. 태광측도 “문팀장 개인의 일일 뿐이다”라고 해명했다.

그런데 최근 이같은 주장을 뒤집는 주장이 나왔다. 문팀장의 친형은 지난 10월19일 CBS와의 인터뷰에서 “문팀장이 최근 태광을 상대로 손해배상 소송을 청구했다”라고 밝혔다. 사측의 지시에 따라 로비를 했는데, 문제가 불거지자 모든 책임을 지우고 해고당했다는 것이 소송의 요지이다. 때문에 검찰 조사 과정에서 청와대 행정관 성 접대 사건이 다시 도마에 오를지 여부도 주목되고 있다. 이밖에도 이호진 회장이 자녀들에게 재산을 승계하는 과정의 문제점 역시 이번 검찰 조사에서 주목받을 것으로 전망된다.  

 ‘태광 비자금’ 판도라의 상자 열 ‘키맨’은 누구?

태광그룹에 대한 검찰 수사가 본격화하면서 비자금을 조성한 핵심 ‘키맨’이 누구일지도 주목된다. 검찰은 지난 10월21일 이회장의 모친인 이선애씨의 자택을 압수수색했다. 이씨는 태광그룹 비자금 조성과 운용을 총괄 지휘한 인물로 지목되고 있다. 지난 2006년 쌍용화재(현 흥국화재) 인수 때는 직원들의 차명 계좌를 통해 쌍용화재 주식을 사들였다가 검찰 수사를 받기도 했다. 공식 직책은 태광산업 상무이다. 하지만 그룹 설립 때부터 자금 관련 업무를 총괄해 온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그룹 내부에서는 ‘왕상무’로도 불린다.

앞서 검찰은 이상무의 친·인척인 이 아무개씨를 소환 조사했다. 부산 사무실과 자택에 대한 압수수색도 단행했다. 이씨 역시 태광산업 부산공장과 고려상호저축은행 감사를 지낸 ‘은둔파’ 인사이다. 하지만 창업 때부터 자금을 관리해 온 인물로 지목되면서 검찰 조사를 받고 있다.

검찰 안팎에서는 박명석 대한화섬 대표와 진 아무개 전 티브로드 대표의 소환설이 흘러나오고 있다. 박대표는 이상무의 최측근으로 꼽힌다. 이상무와 함께 그룹 창업 때부터 자금을 관리해 온 것으로 알려졌다. 이호진 회장 일가가 100% 지분을 보유한 한국도서보급의 주식 인수 과정에도 막후 역할을 한 것으로 전해진다. 이에 반해 진 전 대표는 이회장의 서울대 동창이다. 이회장이 경영에 나설 때부터 최측근 역할을 했다. 진 전 대표는 특히 태광그룹이 케이블 사업을 확대하는 동안 총괄 사장을 맡았다. 때문에 의혹을 풀기 위해서는 어떤 식으로든 검찰 조사가 불가피할 것으로 예상된다. 기자는 케이블TV 인수 과정을 듣기 위해 진 전 대표에게 여러 차례 전화를 했다. 측근에게도 메시지를 남겼지만, 답변이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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