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면초가 태광, 가족 분쟁 이어지나
  • 이석·조현주 기자 ()
  • 승인 2010.10.25 18: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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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찰 수사로 궁지에 몰린 태광그룹에 또 다른 회오리가 몰려들고 있다. 그동안 잠복해 있던 문제들이 한꺼번에 터지면서 고소·고발 사태가 잇따르고 있는 것이다. 이런 가운데 이호진 회장의 친·인척들도 가세해 재산 다툼 움직임을 보이고 있어 사태 추이가 주목된다. 

태광그룹에 거센 태풍이 몰아쳤다. 오너 일가의 비자금을 찾기 위해 검찰이 팔을 걷어붙였다. 자금 관리인으로 지목되는 인사들이 연일 검찰에 소환되고 있다. ‘왕상무’로 불리는 이선애씨의 집도 최근 압수수색을 당했다. 수면 아래 잠복해 있던 문제들이 한꺼번에 터지면서 고소·고발 사태도 잇따르고 있다. 말 그대로 ‘사면초가’이다. 이호진 회장의 친·인척들도 분란에 가세했다. 검찰 조사와 별개로 재산 환수 조짐이 감지되고 있다. 검찰 제보자인 박윤배 서울인베스트 대표는 “상속 재산이 이호진 회장에게 쏠린 데 대한 가족들의 불만이 적지 않았다. 어떤 식으로든 (재산을) 조정할 때가 올 것으로 본다”라고 귀띔했다.

이들은 현재 박대표와 향후 대응을 저울질하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친·인척들의 움직임이 소송으로 비화될지는 현재까지 미지수이다. 다만 어떤 식으로든 후속 조치가 있을 수 있다는 점에서 나머지 가족들의 행보가 주목되고 있다. 박윤배 대표는 “1단계 조치가 불법 재산의 청산이었다. 현재 검찰이 수사를 진행 중이다. 2단계는 전혀 다른 사안이 될 것으로 본다”라고 말했다. 박대표는 2단계 조치에 대한 구체적인 언급을 꺼렸다. “50% 정도 진행이 된 상태이다. 때가 되면 언론에 발표하겠다”라는 말만 반복했다. 하지만 그룹 사정에 밝은 인사들은 “2단계 조치가 재산 환수를 위한 소송이 될 가능성이 크다”라고 귀띔했다. 

상속 재산에 대한 가족들의 불만 커

박대표가 지난 9월20일 이호진 회장에게 보낸 내용증명에도 관련 내용이 언급되어 있다. ‘태광산업주식회사 주주 가치 정상 회복과 관련하여’라는 제목의 문건에는 상속 재산에 대한 가족들의 불만이 곳곳에서 묻어났다. 이 문건은 우선 박윤배 서울인베스트 대표와 나머지 가족들이 긴밀하게 움직이고 있음을 시사했다.

문건은 “3남(이호진 회장)이 주도한 누락 상속 재산에 대해 가족들은 깊은 의혹과 불신을 가지고 있다. 장남인 고 이식진씨와 차남인 고 이영진씨의 부인 및 자녀, 창업주의 혼외자 가족들과도 여러 경로를 통해 관계 형성을 도모하고 있다”라고 밝혔다. 문건은 이어 ‘누락 차명 재산에 대한 고지와 재상속을 실시해야 한다. 그렇지 않을 경우 이호진 외 상속 권리자와 협력하여 법적 조치를 취할 계획이다’라고 밝혔다.

상속 재산에 대한 가족들의 불신이 그만큼 컸다는 얘기이다. 필요하다면 법적 소송도 불사하겠다는 분위기이다. 사실 태광 일가들의 분쟁은 그동안에도 적지 않았다. 이임용 창업주가 작고한 직후의 일이다. 일부 친·인척과 임원을 중심으로 ‘이호진 퇴진 운동’이 벌어졌다. 일종의 ‘쿠데타’였다. 이기화 전 태광그룹 회장도 여기에 참여했다. 이 전 회장은 이호진 회장의 외삼촌이다. 그룹 창업 때부터 경영에 참여해왔다. 이들은 경영 투명성을 위해 전문경영인을 경영진에 포함시킬 것을 주장했지만, 실패했다. 이선애 상무도 한때 태광산업 등 핵심 계열사 지분을 장남 식진씨의 아들 원준씨에게 물려주려고 했다. 역시 실패로 끝났다. 오히려 이호진 회장의 계열사 지분 확대를 촉발하는 계기가 되었다. 이회장과 자녀들은 100% 지분을 보유한 비상장 계열사를 통해서 지속적으로 핵심 계열사 지분을 늘렸다. 이런 이유로 지금은 관계가 소원해진 것으로 알려졌다.
 
실제로 이회장이 지난 1997년 태광산업 사장에 취임한 직후만 해도 가족과의 지분 격차는 많지 않았다. 이선애 상무와 장남 식진씨 가족들의 태광산업 지분율은 25%대에 달했다. 이회장의 지분은 15.14%에 불과했다. 현재는 전세가 역전되었다. 나머지 가족들의 지분은 18%대에 불과하다. 대신 이회장측 지분은 25%대로 높아졌다. 케이블TV·금융 등 주력 계열사들 역시 이회장과 자녀들에게 상당 부분 지분이 넘어간 상태이다. 특히 이회장은 지난 2000년대 중반부터 티시스·티알엠 등 비상장 계열사를 잇달아 설립했다. 이들 회사는 매출 대부분을 그룹 물량에 의존하고 있다. SI업체인 티시스는 지난해 계열사 매출 비중(매출액 기준)이 처음으로 90%를 넘어섰다. 그룹 부동산 및 시설물 관리업체인 티알엠 역시 2년 연속 90%를 웃돌고 있다. 이회장은 그룹 장사를 통해 번 돈으로 또다시 핵심 계열사 지분을 매입했다.

지난 2006년에는 자녀들에게 재산을 물려주기 위해 유상 증자에 실권한 것이 아니냐는 의혹도 나왔다. 서울인베스트 분석에 따르면 티시스의 평가액은 지난 2006년 기준으로 20만원대에 달한다. 하지만 지분 100%를 보유한 이회장이 유상 증자를 포기했다. 대신 장남인 현준씨가 헐값인 1만8천9백55원에 9천6백주를 배정받으면서 2대 주주(49%)가 되었다. 티알엠 역시 비슷한 방법으로 현준씨가 지분 49%를 획득했다. 이번 사태가 검찰 수사로까지 비화된 데에는 이런 가족 간의 불화 때문이라는 시각이 적지 않다. 이호진 회장의 독주를 막기 위해 검찰에 핵심 정보를 흘린 것이 아니냐는 것이다. 그룹 사정에 정통한 한 관계자는 “가족들이 그동안 검찰에 이호진 회장을 고소하지 않은 데에도 이유가 있다. 고소보다는 검찰이 직접 수사를 하는 것이 더 파급력이 크기 때문으로 알고 있다”라고 말했다.

이른바 ‘차도살인 전략’은 일정 부분 성공을 보았다. 태광그룹에 대한 검찰 수사가 본격화되면서 사회적 주목을 받고 있다. 가족들이 불만을 제기했던 차명 상속 재산 역시 검찰이 깊숙하게 들여다보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가족 간 분쟁까지 발생할 경우 사태는 걷잡을 수 없는 파국으로 치달을 수 있다. 그룹 안팎에서는 벌써부터 이회장을 대신할 차기 경영진의 이름이 오르내리고 있다. 박대표는 “이호진 회장이 독식했던 상속 재산을 나머지 가족에게 분배한다면 회사의 구도는 지금과 많이 달라질 것이다. 그동안 소외된 가족들이 어떻게든 경영 전면으로 나올 가능성이 있다”라고 말했다. 이회장의 경우 살아 있는 형제가 없다 보니 장남의 아들인 원진씨가 대안으로 꼽힌다. 나이대가 어리다는 점이 문제이다. 때문에 외삼촌인 이기화 태광그룹 전 회장 체제로 그룹이 운영될 수도 있다. 이들은 기존 경영자인 이회장과 또 다른 ‘각’을 세울 수도 있다.

ⓒ서울인베스트

 이기화 전 회장 “가족 분쟁은 사실과 달라”

기자는 그동안 다양한 루트를 통해 태광 일가 가족들과의 인터뷰를 시도했다. 돌아오는 답변은 한결같이 ‘No’였다. 지난 10월20일 서울 용산구 서빙고동 자택에서 어렵게 이기화 전 회장을 만날 수가 있었다. 그는 경영에서 물러난 10년 전부터 별다른 외부 활동을 하지 않고 있었다. 이 전 회장은 “이미 10년 전의 일이다. 아는 바가 없다. 나에게 물어볼 사안도 아닌 것 같다”라면서 서둘러 자리를 떴다. 이후에도 여러 차례 마주쳤지만 ‘침묵’으로 일관했다.

대신 측근을 통해 이 전 회장의 입장을 들을 수가 있었다. 하지만 이 측근의 대답은 그동안 알려진 것과 전혀 달랐다. 이 측근은 “세간에 나돌고 있는 가족 간 분쟁은 사실이 아니다”라고 일축했다. 그는 “태광그룹에는 창업주 때부터 유교적인 문화가 형성되어 있다. 외삼촌보다 2세에게 경영권을 물려주는 것이 선대 회장의 유지였다. 2세 체제로 간다고 해서 물러난 것이 전부이다”라고 말했다. 과도기에 잠시 회사를 이끌었을 뿐이고, 퇴임 과정에서도 큰 문제는 없었다는 것이 이 측근의 설명이다. 나머지 가족과 이회장 사이에도 크게 문제가 없었다고 한다. 여러 사람이 회사를 공동 경영하는 것보다 한 사람에게 맡기는 것이 고 이임용 창업주의 유언이었다. 자연스럽게 3남인 이호진 회장 쪽으로 힘이 쏠리게 되었다. 그렇다 보니 세간에는 이호진 회장과 나머지 가족 간의 불화설이 끊이지 않았다는 전언이다. 

 이임용 창업주는 민주당 총재를 지낸 이기택 민주평화통일자문회의 수석부의장의 누나인 이선애씨(태광산업 상무이사)와의 사이에 식진(사망)·영진(사망)·호진(48, 태광그룹 회장) 삼형제와 경훈(56)·재훈(54)·봉훈(52) 세 자매를 두었다. 이 가운데 장남인 이식진씨를 제외한 모두가 정·관·재계 유력 인사 집안과 혼사를 맺었다. 차남 이영진씨는 1976년 전 동국제강 회장인 장상준씨의 막내딸 장옥빈씨(58)와 결혼했다. 태광그룹의 현 회장이기도 한 삼남 이호진씨는 신유나씨(46)와 결혼했다. 신유나씨는 신격호 롯데그룹 회장의 조카이자 신격호 회장의 동생 신선호 일본산사스식품 회장(75)의 맏딸이다. 이회장의 결혼으로 태광가는 정주영가와도 연이 닿게 된다. 신격호 롯데그룹 회장의 조카 최은정씨가 KCC의 대표이사 사장인 정몽익씨와 결혼했기 때문이다. 정몽익씨는 고 정주영 현대건설 명예회장의 동생 정상영씨의 차남이다.
 
이임용 창업주는 자신의 세 딸 또한 예사롭지 않은 가문으로 출가시켰다. 장녀 이경훈씨는 LG그룹의 창업 멤버인 허만정씨의 막내아들 허승조씨와 결혼했다. 허승조씨는 현재 GS리테일의 대표이기도 하다. 허만정가와 사돈이 되면서 이임용 창업주는 효성그룹의 창업주 고 조홍제 회장에 이어 대우그룹의 김우중 전 회장가로까지 연을 넓혔다. 차녀 이재훈씨는 양택식 전 서울시장의 장남 양원용씨와 결혼했다. 양원용씨는 현재 경희대 의대 교수이다. 양택식가와의 혼맥을 통해서는 중앙일보 창업주인 홍진기가와 인연을 맺게 된다. 홍진기씨의 아들 홍석조씨(보광훼미리마트 대표이사 회장)의 부인은 양택식 전 서울시장의 동생 양기식씨의 딸이다. 이재훈씨 역시 현재 케이블TV를 운영하고 있다. 이임용 창업주의 삼녀 이봉훈씨는 한국베링거인겔하임의 한태원 회장과 결혼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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