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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사저널

‘세계 탐구’에 빠진 열정적인 그들

시사저널 ㅣ webmaster@sisapress.com | 승인 2010.11.01(Mon) 14:36: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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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리 아픈 일상에서 탈출을 꿈꾸는 데는 너나가 따로 없다. 누구나 가끔은 세계 곳곳을 여행하는 꿈을 꾼다. 마음은 굴뚝같지만 현실적인 제약들이 걸림돌이다. 돈과 시간 그리고 용기. 그런데 나이와 직업을 초월해 자신만의 방법으로 세계 여행을 다니는 사람들이 있다. 이들은 자신만의 세계, 자신만의 꿈을 좇아 세계 곳곳을 누비면서 인생을 즐기고 있다. 어떤 이는 희망을 찾기 위해, 어떤 이는 오지의 어린아이들을 돕기 위해, 또 어떤 이는 미처 떠나지 못하는 이들을 대신해 여행에 나선다.

삶에 여유가 있어 떠난 것이 아니다. 떠돌아다니다 보니 어느새 여행이 인생이 되어버렸고, 한국으로 돌아오는 비행기에서 벌써 또 다른 여행을 목말라 하게 된다. <시사저널>은 용기 있는 아홉 명의 세계 여행가 혹은 모험가들을 통해 ‘여행 인생’을 들여다보았다.



사람 이야기 전하는 ‘대리 여행자’
노홍석 여행 다큐멘터리 PD

 
노홍석 PD(41)는 KBS <걸어서 세계 속으로>, EBS <세계 테마 기행>, OBS <사진 한 장 속의 세계> 등 각 방송사의 굵직한 여행 다큐멘터리를 제작한 ‘여행 전문 PD’이다.

여행이 직업인 그를 부러워하는 이들이 많다. “이번에는 어디가?”라는 친구들의 질투 어린 질문을 받은 적도 부지기수이다. 하지만 그는 “저녁에 맥주 한 잔을 마시러 가도 편하게 있지 못하고 테이블을 돌아다니며 사람들을 카메라에 담아야 하는 것이 일이다”라고 말했다. 6mm 카메라 렌즈를 통한 그의 여행이 우리네가 생각하는 ‘여행’과는 사뭇 다른 것이다.

노PD는 지난 2~3년 동안 32개국을 돌아다녔다. 선진국이나 유명 관광지가 아닌 해당 지역 소시민의 일상을 따라다니다 보니 생각보다 시간이 많이 걸린 셈이다.

그는 “언제나 PD로서가 아닌 일반 여행객, 시청자의 시선으로 그 나라, 그 장소를 보았다. 소소한 일상, 사람살이, 먹을거리와 같은 것들을 담아내고 싶었다”라고 말했다. 시청자의 눈으로 떠나는 그의 여행은 이른바 ‘대리 여행’이었다. 그래서 노PD의 철칙 가운데 하나는 ‘직접 가정을 방문해 경험해보는 것’이었다. 그는 “유럽이라고 하면 핵가족 형태가 일반적일 것 같지만, 증조할머니부터 증손녀까지 대가족이 사는 가정을 방문하기도 했다. 실제로 가보면 우리의 삶과 그들의 삶이 크게 다르지 않다는 것을 알 수 있다”라고 말했다. 비슷하다는 것, 다르지 않다는 것은 직접 부딪쳐보지 않으면 알 수 없는 것이었다.

유난히 그의 프로그램을 좋아하는 팬이 많은 것도 이 때문이다. 여행 책자나 TV에서 줄곧 소개되는 관광 명소가 아닌 ‘뒷골목’ 일상에 공감하는 이들이 많다. 그는 “나는 한국을 떠나기 전 그 나라에 대해서 공부를 많이 하지는 않는다. 현지에 도착해서 얻는 소재가 대부분이다. 젊은 사람들은 그들이 경험한 것에, 나이가 지긋하신 분들은 그분들이 경험해보지 못한 곳을 소개해준다는 것에 만족을 느끼신다. 그래서 사모님 팬들이 많은 편이다”라고 말하며 멋쩍게 웃었다. 홀로 6mm 카메라와 배낭을 짊어지고 나가 있는 2주 동안 쉬지 않고 담아온 영상들에 보람을 느끼는 이유이기도 하다.

여느 PD들과는 다르게 그에게는 ‘여행 전문 PD’라는 타이틀이 따라다닌다. 그는 “내가 의자에 엉덩이를 붙이고 있는 시간이 짧아질수록 프로그램이 풍성해진다. 물론 시청자들의 여행을 대신 해주는 여행이 아닌가 하는 허탈감이 들 때도 있지만 ‘노홍석=여행 PD’라는 이야기를 전해 들을 때 보람을 느낀다”라고 말했다.

쿠바에서 살사 춤을 추던 여인, 나폴리에서 소매치기를 당할 뻔했던 기억, 티베트 난민촌에서 만난 뮤지션 가족들. 그가 카메라 렌즈를 통해서 만난 사람들은 끝이 없다. 껍데기가 아닌 그들의 삶에 깊숙이 들어갔고, 그들의 눈물과 웃음을 보았다. 그는 분명 ‘대리 여행자’일 수도 있다.

하지만 노PD는 사람 이야기를 찾아 전세계를 누볐다. 그리고 그에게는 훈장과도 같은 네 개의 여권과 그간의 영상들이 고스란히 남아 있다. 작은 렌즈로 세상을 이야기하는 이 남자가 행복을 느끼는 것은 바로 그 때문이 아닐까. 그의 프로그램은 끝났지만 그가 전하는 세상 이야기는 지금도 진행 중이다.  

김세희 기자 luxmea@sisapress.com



 “세계 곳곳 다니면서 낮게 사는 방법 배웠다”
이해욱 전 KT 사장

   
 우리나라에서 처음으로 세계의 모든 독립 국가를 여행한 사람은 누구일까. 지난 10월19일 이해욱 전 KT 사장(72)은 세계 1백92개국을 여행해 한국기록원으로부터 여행 인증서를 받았다. 그는 유엔 가입국에 바티칸·코소보·팔레스타인을 더한 1백95개 독립국 가운데 우리 정부가 여행을 금지한 아프가니스탄·소말리아·이라크를 뺀 나머지 국가들을 직접 다녀왔다.

이 전 사장은 서울대 상대를 나와 행시 1회, 체신부 우정국장과 차관을 거쳐 4년간 KT 사장을 지낸 뒤 1993년 은퇴했다. 그해 6월10일 아내와 함께 유럽 배낭여행을 다녀온 후부터 본격적으로 세계 여행을 계획하게 되었다.

그는 “공직자로 일했을 무렵인 1971년 일본 출장을 간 것이 첫 해외여행이었다. 당시 느꼈던 신선한 충격 때문인지 한 번 출장을 가면 돌아오기 싫을 정도였다. 원래 호기심이 많은 편이라 여행을 무척 좋아한다. 

이 전 사장이 1백92개국을 여행할 수 있었던 데에는 누구보다 아내의 도움이 컸다고 했다. 산부인과 의사였던 아내는 이 전 사장이 은퇴할 즈음 35년 동안 운영해왔던 병원 문을 닫고 남편과 함께 세계 여행을 다녔다. 그는 “아내는 서울 신림동의 병원 건물을 임대해주고 생긴 비용과 내가 모아놓은 돈을 세계 여행에 투자하자는 것에 선뜻 동의해주었다. 여행을 다닐 때에 누군가 옆에 있어 주는 것이 큰 무기가 되는데, 그 점에서 아내에게 고마움이 크다. 아쉽게도 2006년 11월에 떠난 아프리카 여행은 아내와 함께하지 못했다. 지부티·에리트리아·수단 여행은 나 혼자 일본인 관광객들과 떠났다. 

세계 여행을 하고 난 이후 달라진 점은 무엇이었을까. 이 전 사장은 “전세계를 누비면서 많은 것을 보고 느꼈지만 무엇보다 ‘낮게 사는 방법’을 터득한 것이 가장 큰 소득이다” “5만3천명이 모여 있는 그룹의 CEO로서 그동안 대접받는 생활만 해왔었다. 하지만 세계 여행을 시작한 순간부터 ‘대접받을 생각’을 버렸다. 안내에 따라 움직이고 격식을 차리는 것이 이제는 불편하게 느껴진다. 여행이 내게 준 가장 큰 가르침이다”라고 말했다.

조현주 기자 cho@sisapress.com



문명 발상지가 주는 감동 교육 현장에 그대로 전한다
김지희 교사


“겨울에 찾은 그리스는 비가 많이 오고 우울했다.” 김지희 서울 광영여고 교사(여·45)가 기억하는 그리스의 첫인상이다. 엽서 속의 파란 하늘과 파란 바다가 맞닿아 있는 장관은 그리스의 여름이었다. 다음 해 여름, 김교사는 다시 그리스를 찾았다. 그리고 그만의 문화유산 여행기가 시작되었다.

김교사는 고등학교에서 세계사를 가르치고 있다. 그는 방학이 시작되자마자 한국을 떠나서 개학일을 하루 이틀 앞두고 돌아온다. 김교사는 “선생님인 내가 보지도 않고 학생들에게 이야기를 하려니 내키지가 않았다. 힘들더라도 직접 보고 와서 가르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라고 말했다.

 

그렇게 13년째. 그는 53개국을 돌며 문명 지역을 찾아 세계 각지를 누비고 있다. 철저한 준비를 하고 떠나지만 아무래도 한국이 아닌 탓에 생기는 에피소드도 많다. 그가 사막 횡단 버스를 타고 실크로드를 지나갈 때의 일이다. 김교사는 “30시간 동안 가는 버스였는데 출발하기 전 터미널에서 물을 한 병 샀다. 물병에 빨대가 꽂혀 있기에 신기해했는데, 알고 보니 균이 득실거리는 가짜 물이었다. 덕분에 버스를 타고 가는 내내 배를 붙잡은 채 식은땀을 흘렸고, 결국에는 참지 못하고 기사 아저씨를 졸라 사막 한가운데에서 볼일을 해결했다”라고 당시를 회상했다.

카메라가 그의 발목을 잡은 적도 있었다. 그는 “어디를 가든 기록을 남겨야 하는데 촬영이 금지되어 있는 곳이 많다. 이집트에서 고고학 박물관에 갔을 때도 촬영 허가를 해주는 티켓을 샀는데 어떤 구역에서는 경비원이 다짜고짜 카메라를 빼앗기도 했다. 그 구역은 촬영이 안 된다는 것이었다. 겨우겨우 매달려서 카메라를 빼앗기지 않았지만, 그런 경우에는 도록을 사서 나오는 수밖에 없어 아쉽다”라고 말했다. 그래서 귀국하는 그의 가방에는 도록이 한 가득 쌓여 있을 때가 적지 않다고 한다.

그렇게 중남미 국가, 지중해 연안의 국가, 시리아·모로코·요르단 등 문명의 발상지는 샅샅이 훑었다. 한 번쯤은 관광 여행을 할 만도 하지만 휴양지는 거들떠보지도 않는다. “휴양지에 가서 즐기는 방법을 모른다. 지금은 학생들에게 가르쳐줄 문명 지역을 찾아다니는 것이 우선이다.” 이렇게 그녀의 여행은 오로지 ‘교육’에 초점이 맞추어져 있었다.

그래서 아쉬운 곳이 이라크이다. 김교사는 “메소포타미아 문명의 핵심이 이라크에 있는데 일반 여행객이 들어갈 수가 없다. 시리아나 이란을 통해서 언저리를 둘러보기는 했지만, 정작 핵심인 이라크에 들어가지 못하는 것이 정말 아쉽다”라고 말했다.

분명 다르다. 그의 여행은 우리의 여행과는 다르다. 보고자 하는 것이 다르니 보이는 것이 다를 수밖에 없다. 그는 “박물관과 유적지만 가고, 여행이 아닌 작업에 가깝기 때문에 나와 함께 여행 가는 사람은 재미가 없다고 말하기도 한다. 하지만 고대 문명의 발상지를 직접 보았을 때의 감동, 몇천 년 전의 과거를 보는 감동은 정말 소름이 돋을 정도이다”라고 말했다.

과거를 찾아 세계를 누비는 그에게 여행은 ‘살아 있는 이유’이다. 다가오는 겨울, 그는 또다시 존재의 이유를 찾으러 떠난다. 스리랑카와 말레이시아에서 그는 또 어떤 감동을 카메라에 담아 올까. 김교사는 추운 겨울이 오기만을 기다리고 있다.     

김세희 기자 luxmea@sisapress.com



가난한 나라 시골 마을에 도서관 짓고, 우정 쌓고…
오지 여행가 김형욱씨

   
장발머리에 덥수룩한 수염, 푹 눌러쓴 모자, 편안한 옷차림의 김형욱씨(32)는 누가 보아도 오지 여행가임을 단번에 알아챌 수 있는 모습이다. 하지만 그를 오지 여행가로 한정 지을 수는 없다. 여행을 하고, 오지의 시골 마을에 도서관을 만들며, 가끔은 유명인의 사진을 찍어주는 일을 하기도 한다. 그는 “나의 직업은 ‘좋은 사람’이다”라고 말했다.

그의 인생은 그다지 평범하지 않았다. 20대 중반까지 지리산에 살았다. 산이 좋아 산에 있었지만 학교가 그에게 실망을 안겼던 탓도 있다. 그는 “내가 생각하던 대학이 아니었다. 낭만이 없고 경쟁만 있었다. 토할 것 같았다”라고 말했다. 우여곡절 끝에 8학기를 다니기는 했지만 졸업은 하지 않았다. 학교보다 산에 있는 시간이 많았으니, 졸업을 ‘못한’ 셈이다.

정처 없이 떠돌던 그는 어쩌다 보니 여행길에 올라 있었다. 때는 2005년쯤이다. 한 푼 두 푼 모은 돈으로 여행을 시작한 그가 간 곳은 ‘사람이 살고 있는 나라’였다. 그리고 그곳, 네팔·캄보디아·아프리카 등지에서 어린아이들을 만났다.

김씨는 “여행은 여행가들의 꿈이다. 내 꿈이었던 여행을 채워준 것은 자연도 건물도 아닌 현지 사람들이었다. 그 사람들을 통해서 행복이 무엇인지 배웠고, 가치관을 재정립할 수 있었다. 그런데 언젠가부터 궁금해졌다. 그네들의 꿈은 무엇인지. 아이들의 부모가 그러더라. ‘우리 애가 교육을 잘 받았으면 좋겠다’라고. 그래서 책을 가져다주기로 약속했다”라고 말했다.

이것이 그가 세계의 수많은 오지 시골 마을에 도서관을 만들게 된 계기였다. 하지만 개인의 돈으로 충당하기에는 한계가 있었다. 그래서 그는 ‘후원의 밤 콘서트’를 열고, 이메일을 통해 안 쓰는 영어책과 소액의 후원금 모집을 홍보하기 시작했다. 

그는 “내가 가진 명함에 있는 이메일로 ‘행운의 편지’를 보냈다. 나에게 쓸모없는 책 하나가 누군가에게 꿈으로 다가갈 수 있음을 알리고 싶었다. 보내고 나서 ‘미친 짓이었다’라는 생각을 했지만, 의외로 반응이 오기 시작했다”라고 말했다. 어떤 꼬마의 연필 열 자루, 또 누군가의 몇천 원, 몇만 원의 기부는 그에게 새로운 힘이 되기 시작했다. ‘화이팅’이라는 이름으로 들어온 100만원은 잊을 수 없는 기부금 중 하나이다.

모두가 ‘안 된다’고 얘기했다. 하지만 그는 ‘안 될 리가 없다’라고 생각했다. 지금까지 그래 왔고, 앞으로도 할 일은 많다. 마흔이 되기 전 오지 마을에 1천개의 도서관을 만들려던 그의 꿈은 ‘3만개’의 도서관으로 확대되었다. 그래서 그는 이제 미국과 영국으로 나가볼 요량이다. 그는 “영어책이 많은 미국이나 영국에 가서 내가 찍었던 사진을 깔아 놓고 맨땅에 헤딩을 해볼 생각이다”라고 말했다. 

마흔이 넘어서는 무엇을 하고 싶을까. 역시 여행광답게 “그냥 여행을 하고 싶다”라고 말했다. “괴나리봇짐 지고 아프리카에 가서 사진을 찍는 것이 꿈이다”라고 말하는 그에게서 또 다른 여행의 참맛을 엿볼 수 있었다.  

조현주 기자 cho@sisapress.com



세계 일주 끝낸 ‘보통 아줌마’
주부 오현숙씨

그는 ‘대한민국 보통 아줌마’이다. 다른 것이 있다면 모험을 두려워하지 않는다는 것, 그리고 적재적소에 발휘되는 결단력이 있다는 것이다. 두 무기를 짊어진 ‘보통 아줌마’ 오현숙씨(51)는 그렇게 19개월간의 세계 일주를 떠났다.

여행을 떠나기 전 8년 간 꾸려오던 공장을 접고 임대를 내주었다. 그는 “어느 날 거울을 보니 내 얼굴이 너무 험악해 보였다. 이렇게 지쳐가면서 힘들게 살아야 하나 싶어 회사를 접었다”라고 말했다. 여행을 가기 위해 이제 갓 대학 1학년생이던 아들을 군대에 보내버린 웃지 못할 사연도 있었다. 당시 딸은 일본에서 유학 중이었다. 오씨는 “아이들을 다 내보내고 집은 세를 내놓았다. 그 돈으로 여행 경비를 충당할 수 있었다”라고 말했다. 그렇게 세 가족은 서로 다른 나라에서 2년여 간의 긴 시간을 보냈다.

 

아시아·남미·북미·아프리카·유럽 등 전세계 50개국을 돌아다녔다. 그중에서도 오씨는 ‘가장 살고 싶은 곳’으로 브라질을 꼽았다. 그는 “아주 작은 어촌 마을에 묵었는데, 숙소가 바닷가 앞 2층이었다. 아침에 산책을 하다 보면 모래 감촉도 너무 좋고, 배가 들어올 때 주위에서 맴돌고 있으면 생선을 얻어먹기도 했다. 매일매일이 여왕 같은 일상이었다”라고 회상했다.

오씨는 여행 경비에도 신경을 썼다. 실제로 그가 19개월간 쓴 돈은 2천8백만원가량. 보통 여행에서 1년에 2천5백만원의 경비가 드는 것을 감안할 때 그의 절약은 눈물겨웠다. 한국에서 쓰는 생활비보다도 적게 쓴 셈이었다. 가능한 경비를 적게 쓰기 위해 육로를 이용했다. 항공권도 대륙을 순환하는 저렴한 티켓을 끊어 한 번에 해결한 경우도 있었다.

한국에 돌아온 오씨는 현재 ‘보통 아줌마의 세계 일주’를 기록한 책 출판과 방송 출연으로 바쁜 일상을 보내고 있다. 그는 한국에 있는 보통 아줌마들에게 한마디 덧붙였다. “꿈만 꾸지 말고 도전을 해라. 용기를 내면 생각지도 못했던 덤을 한 아름 얻는 행운을 만나기도 한다.” 오씨의 인생에 새로운 전환점이 된 19개월의 세계 일주. 그는 보통 아줌마의 꿈을 현실로 보여주었다. 

김세희 기자 luxmea@sisapress.com



전세계 물고기 향해 낚싯대 드리운 ‘낚시광’
세계 낚시 여행가 정명화씨

낚시를 하기 위해 세계 30여 개 나라를 돌아다닌 사람이 있다. FTV의 해외 낚시 프로그램인 <더 로드>를 진행하고 있는 세계 낚시 여행가 정명화씨(53)이다. 낚시 여행을 하면서 고기만 낚는 것이 아니다. 전세계 구석구석에 살고 있는 현지인들과 소통할 수 있다는 것이 그가 낚시를 좋아하는 진짜 이유이다. ‘왜 낚시를 좋아하느냐’라는 물음에 정씨는 “말이 통하지 않아도 낚시만 하면 서로 친구가 된다. 어른·아이 할 것 없이 서로 경계를 풀 수 있다. 낚시 여행을 하면서 ‘사람 냄새’라는 것이 무엇인지 알 게 되었다”라고 말했다.

해외 낚시 여행을 다니기 시작하면서 생긴 에피소드도 많다. 그는 특히 4년 전인 지난 2006년 우즈베키스탄의 국경 지대에서 경험한 일들을 떠올리면 아직도 눈물이 나온다고 했다. 정씨는 “우즈베키스탄 국경 지대에 있는 한 오지의 설산에 송어 낚시를 하러 간 적이 있다. 국경수비대의 감시를 피해 들어간 곳에 자그마한 마을이 있었는데, 길도 끊기고 전기도 들어오지 않는 곳이었다”라고 말했다.

 

그는 그곳에서 마을 사람의 초대를 받아 식사를 대접받게 되었다. 고마운 마음에 사람들에게 사진을 찍어주었는데, 마을 사람들은 ‘태어나서 처음으로 사진을 찍어본다’라며 무척이나 좋아했다고 한다. 정씨는 “그때 한 노부부가 나에게 한 말이 있다. ‘이곳은 전기도 없고 전화도 안 되지만 마음에 간직할 수 있는 것은 무엇이든지 있다. 네가 평생 이곳에서 살고 싶다면 언제든지 오라’라고 말해주었다. 그 이후 2~3차례 그 설산 마을에 가보려고 했지만 국경수비대의 감시로 가보지 못했다. 꼭 다시 가보고 싶은 곳이다”라고 말했다.

정씨는 1년에 절반 가까이를 해외에서 보낸다. 자신이 진행하고 있는 해외 낚시 프로그램을 위해서 어종을 선정해놓고 여행을 떠나거나, 개인적으로 사람들이 찾지 않는 오지 쪽으로 낚시 여행을 떠나는 식이다. FTV의 <더 로드>를 제작할 때에는 한 나라에서 10~20일 정도 머무르며 3~6회분의 방송 분량을 찍는다.

그는 “바로 한 달 전에도 촬영차 페루에 다녀왔다. 20세 때 낚시를 시작했으니 이제 낚시를 한 지 30년도 넘었지만 아직도 낚아보고 싶은 고기가 많다. 우선 카자흐스탄의 ‘웰스메기’와 인도의 ‘골드마시르’를 잡고 싶다”라고 말했다. 하지만 현실적 한계를 무시할 수는 없는 법이다. 정씨는 “<더 로드>만 해도 지난해 제작 여건이 좋지 않아 1년 동안 방송을 쉬었다. 다행히 올해는 제이에스컴퍼니의 후원으로 다시 방송을 진행할 수 있게 되었다”라고 말했다.

앞으로 그의 꿈은 낚시를 통해 한 나라의 생태와 역사 그리고 사람들이 살아가는 모습을 보여줄 수 있는 다큐멘터리를 만드는 것이다. 정씨는 “예전에 BBC 방송에서 방영한 인도의 ‘골드마시르’라는 어종을 주제로 그 나라의 문화와 역사까지 보여주는 자연 다큐멘터리를 보고 감동을 받았다. 나 역시 한국의 어종을 통해 한국의 정체성을 보여줄 수 있는 다큐멘터리를 만들어보고 싶다”라고 말했다.

조현주 기자 cho@sisapress.com



렌즈를 사이에 두고 세계인과 ‘통’하다
사진작가 김수씨

“사진을 잘 찍기 위한 방법에 별것은 없다. 자기만의 코드가 있으면 된다. 내 코드는 무조건 ‘사람’이다.” 사람이 좋아서 사진을 찍기 시작했다는 여행 사진작가 김수씨(36). 그는 사람 만나기를 좋아해 전세계 이곳저곳을 부지런히 돌아다닌다. 사실 그가 세계 여행을 즐기는 이유도 간단하다. 김씨는 ‘새로운 사람들을 만나는 데 여행만큼 좋은 것이 있느냐’라며 여행에서 만난 사람들 이야기를 쏟아내기 시작했다. 김씨가 찍은 사진의 주제는 대개가 여행을 하면서 세계 각국에서 만난 사람들이다.

   

그가 인물 사진에 관심을 갖게 된 계기는 바로 여행이다. 지난 2002년 서강대 공대 대학원에 다니다 독일 지멘스에서 근무하게 된 것은 그의 인생 경로가 뒤바뀌게 된 결정적인 전환점이었다. 그는 “독일에 근무할 때 시간이 날 때마다 유럽 곳곳을 돌아다니며 사진을 찍었다. 여행을 다니면서 인물 사진을 찍는 재미를 느끼게 되었다. 대화를 나누고 그 사람과 교감을 하는 순간에 나오는 사진은 항상 만족스러웠다. 독일 유학 말기에는 사진에 심취해서 당시 아무도 몰랐던 슬로베니아라는 나라에도 가게 되었다. 슬로베니아에서는 동양인이라고 주목을 받아 TV에 인터뷰가 나가기도 했다”라고 말했다.

1년 동안의 독일 유학을 마치고 그는 바로 삼성전자에 입사했다. 하지만 2년 만에 사표를 던지고 나왔다. 여행을 마음대로 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김씨는 “한 번 여행하면 6개월은 기본이다. 회사에 다닐 때에는 이런 여유가 없었다. 무엇보다 사진을 제대로 공부하고 싶었다. 회사를 그만두고 바로 중앙대 대학원에 들어가 본격적으로 사진을 공부하게 된 것도 그 때문이다”라고 말했다.

중앙대 대학원에서 사진 공부를 시작하게 된 이후로도 여행에 대한 그의 열정은 식을 줄 몰랐다. 결국 2006년 대학원을 휴학하고 6개월간 본격적으로 동유럽 국가를 여행했다. 그는 “체코·슬로바키아·루마니아·불가리아·헝가리 등 이왕이면 유명세를 타지 않은 지역을 여행했다. 특히 보스니아와 같이 내전이 있었던 지역은 기억에 남는다”라고 말했다. 2007년도 초 한국에 돌아와서는 동료들과 스튜디오를 차리고 본격적으로 사진 작업을 시작하게 되었다. 그해 5월부터 1년 반 동안 KBS의 시사 프로그램인 <단박 인터뷰>의 사진을 담당하게 되면서 인물사진 작가로서 입지를 굳혔다.

독일 유학 시절의 여행으로 그의 인생은 1백80° 달라졌다. 하지만 김작가는 한 번도 자신의 선택을 후회한 적이 없다고 했다. 그는 “여행을 통해 사람들과 소통하는 방법을 배우게 되었다. 여행에서 만난 사람들을 찍고 난 후에는 항상 그들에게 찍은 사진을 나눠 주었다. 언젠가 불가리아에서 만난 한 할아버지에게 내가 찍은 사진 중에 가장 마음에 든 것을 고르라고 했더니 내 사진을 짚었던 적이 있다. 그때 굳이 많은 말을 하지 않아도 서로 소통할 수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라고 말했다.      

조현주 기자 cho@sisapress.com



대중적 세계 여행 권하는‘여행 중독자 김치군’
파워블로거 정상구씨

한국으로 돌아오는 비행기 안에서 ‘다음에는 어디에 갈까’를 생각하는 정상구씨(30)는 자타가 공인하는 ‘여행 중독자’이다. 한국에 들어오는 것도 ‘다시 떠나기 위한 돈을 벌기 위한 것’이란다. 그는 현재 여행가이자 여행 작가, 칼럼니스트, 파워블로거 ‘김치군’으로 활발한 활동을 하고 있다.

여행 전문가가 보는 세계 여행은 어떨까. 그는 “나도 유명한 관광지 위주로 다닌다. 그곳을 가면서 나만의 관심사를 같이 엮을 뿐이지 특이한 관점으로 여행을 다니는 것은 아닌 것 같다”라고 말했다.

그래서일까. 그가 가장 많이 찾은 곳, 그래서 제일 잘 안다고 꼽은 곳은 미국, 캐나다, 쿠바였다. 그는 “미국에는 열 번 넘게 갔다. 자연을 좋아해 서부 쪽 국립공원을 찾아다녔고, 동부 쪽에서는 뉴욕이나 시카고를 자주 찾았다. 뉴욕이라고 하면 사치스러울 것 같지만 오히려 티켓 값이 저렴하고 공연의 질은 높은 뮤지컬이 많다”라고 말했다. 캐나다는 기차를 타고 횡단했고, 쿠바에서는 그의 유창한 스페인어 실력이 빛을 발했다.

   

이렇게 하루가 멀다 하고 떠나는 그의 블로그는 쉴 새가 없다. 그래서 혹자는 그에게 ‘김치군님(필명)은 부자인가 봐요’라고 묻기도 한다. 평균 한 달에 한 번, 많으면 네다섯 번 여행을 떠나는 그에게 돌아오는, 어찌 보면 당연한 선입견이다. 하지만 그는 “숙소로 돌아가는 길에서 햄버거 사먹는 것을 자세히 기록해 올릴 필요가 있나. 어쩌다 좋은 호텔, 좋은 음식, 좋은 비행기를 접하게 되면 블로그에 올리는 것이 그런 오해를 만든 것 같다. 나는 정말 빠듯하게 벌어서 여행을 다니는 사람이다”라며 웃었다.

실제로 그가 여행지마다 빼놓지 않고 찾아가는 곳은 현지 재래시장이다. “먹는 것을 좋아한다”라는 그는 처음 보는 음식을 두려워하지 않는 모험가이다. 악어 꼬리, 소 혀, 캥거루, 전갈, 해마 등은 이미 그의 혀를 거쳐갔다. 그는 “특이한 음식들뿐만 아니라 재래시장에 가면 처음 보는 현지 과일들도 많다. 먹는 방법을 모르니 직접 상인에게 부탁한다. 현지가 아니면 겪어볼 수 없는 것들이다”라고 말했다. 그는 빽빽한 도시 여행보다는 예쁘고, 소박한 볼거리를 즐기고 있었다.

김세희 기자 luxmea@sisapress.com



희망 찾아 떠나는‘공정 여행’ 본보기 되다
대학원생 김이경씨

한양대 대학원에 재학 중인 김이경씨(27)는 ‘희망을 찾아 떠나는 20대 공정 여행가’로 유명하다. ‘공정 여행’은 과연 무엇일까. 김씨는 “어디로, 얼마나 가는가가 아닌 ‘어떻게’ 가는가에 중점을 둔 여행이다”라고 말한다. 현지인과의 소통을 통해 자신만의 여행 방식을 만들어나가는 것이 그녀가 말하는 ‘공정 여행’의 시작이자 핵심이라는 것이다.

지난 2007년 9월 대학 재학 때 그녀는 친구 두 명과 함께 남아시아로 떠났다. 아시아에서 빈곤과 싸우고 있는 사람들을 직접 만나보고 싶었기 때문이다. 준비하는 데만 9개월을 들이고 떠난 여행이었다. 여행에 들어가는 비용은 여행기를 쓰는 조건으로 한 언론사로부터 경비 전액을 후원받아 마련했다.

 

방글라데시와 네팔을 지나 인도까지 여행하는 동안 그녀가 목격한 것은 ‘현실의 빈곤’이었다. 이씨는 “가난한 사람들에게 여행자가 가서 정당한 임금을 주거나 구호 사업을 통해 소득 수준을 보장해주면 그 사람들이 빈곤에서 벗어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었다. 하지만 현장에 가보니 그렇지 않았다”라고 말했다. 별다른 계획 없이 미국이나 유럽을 여행했을 때에는 느낄 수 없었던 감정이었다. 인도에서 만난 불가촉 천민들의 생활, 네팔에서 본 빈곤층에 대한 인권 침해는 그녀에게 또 하나의 도전으로 다가왔다.

김씨는 시골의 오지, 낙후된 공장, 변방의 황무지 마을을 찾아다니며 빈곤과 맞서 싸우는 사람들을 찾아 여행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들은 어느새 ‘공정 여행’을 통해 현지인의 일상에 서서히 빠져들기 시작했다.

그녀는 “사실 100일간의 남아시아 여행은 ‘공정 여행’을 염두에 둔 것은 아니었다. 그저 건물이 아닌 사람을 만나기 위해 떠났을 뿐이었다”라고 말했다.

하지만 돌아와보니 ‘100일 간의 공정 여행’은 추억에 남을 멋진 여행이었다. 김씨는 “‘공정’이라는 말에 얽매이지 않아야 한다. 여행은 일탈이 아닌가. 재미있는 나만의 여행 속에서 ‘공정 여행’을 발견할 수 있다. 자신만의 질문에 대한 대답을 여행에서 찾으려고 노력한다면 재미있는 여행, 공정 여행은 어렵지 않다”라고 강조했다.

김세희 기자 luxmea@sisapres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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