끈 떨어진‘MB 절친’벼랑에 섰다
  • 소종섭 (kumkang@sisapress.com)
  • 승인 2010.11.01 14: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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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사저널 이종현

사정의 회오리가 가팔라지고 있다. 한화·태광그룹에 이어 C&그룹이 도마에 오르더니 대통령의 ‘50년 친구’인 천신일 세중나모여행 회장까지 구속될 처지에 놓였다. 천회장에 대한 수사에는 권력의 의지가 깊숙이 배어 있는 것으로 보인다. 천회장 수사에 얽힌 정권 핵심부의 의중과 천회장 침몰이 불러올 파장을 다각도로 짚어보았다.

사정 정국의 방향과 강도가 예사롭지 않다. 정권 핵심부는 작심하고 칼을 빼들었다. 어떤 이들은 권력과 관계없는 검찰의 독자적인 행보일 수 있다고 말한다.

그러나 그것은 순진한 시각이다. 아직 권력의 해는 저물지 않았다. 검찰 수사 막후에는 권력의 의지가 깊게 배어 있다고 보는 것이 상식이다. 지난 9월에 기자와 만난 청와대의 한 관계자는 “시간이 없다. 내년 하반기 이후에는 총선 정국이 시작된다”라고 말했다. 내년 상반기 안에 어느 정도 판을 정리하지 않으면 그 이후에는 사정 작업을 하고 싶어도 하지 못하게 되는 상황이 올 수 있다는 것이다.

검찰은 한화·태광그룹에 이어 C&그룹에 대해 수사를 진행하고 있다. 대기업 두 곳 정도도 추가로 수사를 받을 것이라는 관측이 파다하다. 검찰 내부에 밝은 한 소식통은 “검찰이 대기업 두 곳 정도를 상대로 수사에 착수하는 것은 시간문제로 보인다”라고 말했다. 여야를 막론한 정치권 인사들과 재계·관계 인사 다수가 이미 검찰 사정권에 들어 있다. 검찰은 이들 기업 외에도 건설 관련 유력 인사 등의 비리 정보 파일을 다수 확보해놓은 상태이다. 어느 것을 뽑아드느냐의 문제이다.

현재 펼쳐지는 사정 정국의 정치적인 함의는 두 가지로 보인다. 하나는 재계가 나서라는 메시지이다. 이명박 대통령이 지난 8·15 경축사에서 ‘공정 사회’라는 단어를 꺼낼 때부터 예견되었다. 청와대가 정부 고위 공직자들을 대상으로 진행한 ‘공정 사회란 무엇인가’라는 강연에서도(<시사저널> 제1094호 참조) “이젠 대기업 차례이다”라며, 노골적으로 대기업들이 앞장서서 투자와 고용에 나서라고 촉구한 것이 상징적이다.

다른 하나는 정국 주도권을 계속 쥐고 가겠다는 것이다. 당장 연말·연초 정국은 현재 진행 중인 각종 수사에 관심이 모아질 것으로 예상된다. 그만큼 메가톤급 인물이 수사 선상에 올라 있고, 사건은 어디로 튈지 모르는 불가측성을 가지고 굴러가기 시작했다.

우선 주목되는 인물은 이명박 대통령의 ‘50년 친구’인 천신일 세중나모여행 회장이다. 이대통령과 천회장은 고려대 61학번 동기이다. 학창 시절 이대통령은 상대 학생회장이었고, 천회장은 한국농어촌문제연구회 회장으로 있으면서부터 친분을 쌓았다. 한때는 같은 아파트, 같은 동에 살기도 했다. 그러나 지금 두 사람의 운명은 완전히 갈렸다. 한 사람은 최고 권력자가 되었지만, 다른 한 사람은 감옥에 갈 처지가 되었다.

서울중앙지검 특수1부는 지난 10월28일 천회장의 사무실을 전격적으로 압수수색했다. 검찰 관계자들은 천회장이 귀국하면 구속할 방침이라고 언론에 말했다. 언론들은 “검찰 수사가 권력 핵심을 향해 방향을 틀었다”라는 해석을 내놓았다. 현재 천회장이 받고 있는 혐의는 대우조선해양의 협력업체인 임천공업 이수우 대표로부터 40억원 상당의 금품을 받았다는 것이다. 3백54억여 원의 회사 돈을 횡령한 혐의로 구속된 이대표가 검찰에서 그렇게 진술했다.

▲ 천신일 회장(오른쪽)은 평소 “친구가 대통령이 되어 신세를 망쳤다”라고 말하기도 했다. ⓒ연합뉴스

 

“뒤로 갈수록 부담, 귀국할 것”

천회장은 수사가 본격화하던 지난 8월 출국해 현재 일본에 머무르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사실상 도피 생활을 하고 있는 셈이다. 천회장의 한 지인은 “미국 하와이에 갔던 천회장은 현재 일본의 한 호텔에 머물고 있다. 육체적으로 문제는 없으나 정신적으로 심기가 편치 않은 것으로 안다”라고 전했다. 한때 지인을 만나러 아카사카에 갔다 눈에 띄기도 했다.

<시사저널>은 이미 ‘천신일 구속’으로 가는 검찰 내부의 움직임을 지난 10월4일 발행된 제1095호에서 ‘거물급 의혹의 사나이, 보호막 걷혀지는가’라는 제목으로 보도한 바 있다.

이와 관련해 당시 청와대 관계자와 기자가 나눈 대화의 요지는 이렇다.

천신일 회장에 대한 수사를 어떻게 보아야 하는가?

털고 갈 수밖에 없을 것 같다. 나오면 나오는 대로….

검찰이 이미 여러 가지 혐의를 확보한 것 아닌가?

천회장은 자신이 지금과 같은, 이런 위치에 서리라고 생각하고 살아온 분이 아니다. 개발 시대에 앞만 보고 살아온 것 같다. 개인과 회사, 공·사를 구분하는 개념도 별로 없었던 것 같고…. 캐면 나올 수밖에 없다.

하지만 외국에 나가 있으니 수사를 진행할 수 있겠나?

계속 나가 있을 수 있겠나. 대통령께도 누가 될 텐데…. 귀국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그렇게 쉽게 돌아올까. 본인으로서는 억울하다는 생각을 할 수도 있지 않겠나. 대통령을 가까이서 열심히 도운 사람인데.

정권 입장에서는 뒤로 갈수록 부담이 될 수밖에 없다. 본인이야 억울하다고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드러난다면 어쩔 수 없다. 본인 입장에서도 현 정권에서 정리를 하는 것이 낫지 않을까.

천회장은 대선 때 상당한 역할을 한 이른바 ‘원로 공신’이 아닌가.

밖으로 알려지기는 천회장이 대선 자금 모금 등과 관련해 큰 역할을 한 것으로 되어 있는데, 사실은 그렇지 않다.

천회장이 반발할 수도 있을 것 같다.

그렇지 않을 것이다. 국정감사가 끝나면 귀국할 것으로 본다.

이 관계자에 따르면 청와대에 ‘천신일 경보’가 울린 지는 꽤 되었다. 청와대 민정수석실은 2008년 말 박연차 전 태광실업 회장의 구명 로비와 관련해 천회장에게 경고한 적이 있다. 천회장이 여기저기 구명 전화를 한 것을 포착한 민정수석실에서 “그렇게 하지 마시라”라고 경고한 것이다. 이런 일들이 겹치면서 천회장은 지난해 중반 이후 청와대에 들어가지 못한 것으로 알려졌다. 천회장이 공식적으로 청와대에 들어간 것은 ROTC 모임 회원들과 함께 이대통령을 만난 지난해 4~5월쯤이 마지막이었다. 청와대 참모들은 이후 대통령과 천회장의 연결 고리를 끊었다.

박주선 민주당 최고위원은 ‘천신일 수사’와 관련해 “검찰은 천신일 수사를 병행하면서 야당에 대해서 전무후무한 정치 탄압 수사를 가해 올 것이다. 천신일 사건에 대해서는 망원경 수사로 하는 둥 마는 둥 할 것이 뻔하고, 야당은 현미경으로 없는 죄도 만들어낼 것이다”라고 말했다. 그러나 이러저러한 분위기로 볼 때 천회장은 귀국 즉시 구속되는 수순을 밟을 가능성이 크다. 물론 대통령의 최측근 인사가 구속된다면 그만한 후폭풍 또한 야권을 덮칠 것으로 보는 것이 일반적이다.

‘천신일 뇌관’에는 무엇이 들어 있을까

▲ 검찰은 지난 10월28일 세중나모여행 본사(아래)를 압수수색했다. ⓒ시사저널 윤성호

그러나 천회장의 구속은 예기치 않은 쪽으로 불똥이 튈 가능성도 있다. 천회장이 관련되어 있는, 권력과 관련한 예민한 사건이 여럿 있기 때문이다. 하나하나가 폭발력이 큰 사안들이다. 이른바 ‘천신일 뇌관’에는 무엇이 있을까.

우선 이명박 대통령이 대선 후보 시절인 2007년에 한나라당 당비 30억원을 천회장이 대신 내주었다는 의혹이다. 의혹을 제기하는 이들은, 천회장이 30억원을 이명박 후보에게 건넸고 이 자금이 대선 자금으로 쓰인 것이 아니냐고 의심한다. 이에 대해 천회장은 이대통령이 자신의 정기예금을 담보로 30억원을 빌려서 당비를 낼 수 있도록 편의를 봐주었을 뿐이라고 해명한 바 있다. 나중에 이자까지 되돌려받았다는 것이다. 검찰은 이 의혹과 관련해 천회장을 무혐의 처리했었다. 천회장은 최시중 방통위원장, 박희태 국회의장 등과 함께 대선 당시 이른바 ‘6인회’ 멤버로서 이명박 캠프의 최고 의사 결정 라인에 있었다.

‘포스코 인사 개입설’도 언제든 불거질 수 있는 폭탄이다. 그가 당시 포스코 회장이 유력하던 윤석만 포스코 사장에게 전화해 “차기 포스코 회장이 정준양으로 결정되었다. 윗분의 뜻이니 따르라”라고 두 번이나 말했다는 것이다. 우제창 민주당 의원이 이와 같은 내용을 폭로했다. 포스코 회장 선임 과정과 관련해서는 이상득 한나라당 의원과 박영준 지식경제부 차관 등의 이름도 오르내린 적이 있기 때문에 천회장이 왜, 어떤 이유에서 전화를 한 것인지 등 전말이 밝혀지면 파장이 일 수 있다.

천회장이 박연차 전 태광실업 회장에 대한 세무조사를 무마하기 위한 대책회의에 참석했다는 의혹도 여전히 살아 있다. 대책회의 참석자로 알려진 인물 가운데 이종찬 전 민정수석도 있는 등 이 문제 또한 현 정권과 관련해 예민한 부분이 있다.

물론 이런 ‘뇌관’들은 현재 천회장의 혐의와 관련해 거론되는 금품 수수 사건과 직접적인 관련은 없다. 그러나 검찰 수사 과정이나 재판 과정에서 천회장이 ‘폭탄 선언’을 할 수도 있고, 검찰 수사가 예기치 않게 이들 사건으로 번질 가능성도 있다. 천회장이 ‘권력의 최측근’ 인사인 만큼 또 달리 알려지지 않은 사건이 수사나 재판 과정에서 불거질 수도 있다. 그러나 권력 핵심부는 이런 위험성이 있음에도 워낙 도처에서 ‘천신일 의혹’이 제기된 만큼 ‘이왕 맞을 매라면 빨리 맞자’는 쪽으로 입장을 정한 것으로 보인다.

현재 검찰은 천회장을 빨리 귀국시키기 위해 압박 강도를 높이고 있다. 천회장의 개인 사무실과 회사를 압수수색한 데 이어 체포영장 청구 방침까지 밝혔다. 검찰의 한 관계자는 “그래도 천회장이 버티면서 귀국을 미룬다면 다음은 가족을 압박하는 수순을 밟을 것이다”라고 내다보았다. 천회장의 딸 등에 대한 혐의를 파고드는 쪽으로 수사 방향을 잡으면 천회장도 더 버티지 못할 것이라는 예상이다.

이른바 ‘원로 그룹’의 핵심 멤버 가운데 한 명이었던 천회장의 침몰은 연쇄 반응을 일으키며 여권 내부의 권력 변화를 추동하는 촉매제가 될 전망이다. ‘천신일’을 넘어 사정 태풍이 어디까지 불어닥칠지 여야는 바짝 긴장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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