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포폰 파문의 ‘몸통’은 ‘영포 라인’인가
  • 안성모·반도헌 기자 ()
  • 승인 2010.11.08 20: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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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간인 불법 사찰 사건의 5대 미스터리 / 청와대의 증거 인멸 연루 사실 드러나며 의혹 ‘눈덩이’

상황이 심상치 않아 보인다. 국무총리실 산하 공직윤리지원관실의 민간인 사찰 의혹 사건이 일파만파 갈수록 더 커지고 있다. 의혹은 새로운 의혹을 낳고 있고, 석연찮게 덮으려는 과정에서 더 큰 의혹으로 번지고 있다. 결국 청와대가 ‘대포폰’을 지급했다는 사실까지 드러나면서 사태는 걷잡을 수 없는 국면으로 치닫고 있다. “검찰이 부실 수사를 했거나, 청와대 연루 사실을 고의로 은폐한 것이 아닌가”라는 비판이 그치지 않고 있다.

지금까지 드러난 청와대 연루 의혹은 모두 네 가지이다. △이인규 전 지원관이 “이강덕 당시 청와대 공직기강팀장에게 민간인 사찰 내용을 구두로 보고했다”라고 진술한 것과 △사건 기록 대장에 적힌 ‘BH(청와대) 하명’ 메모 △지원관실 조사관 수첩에 기록된 ‘BH 지시 사항’ 그리고 최근 △청와대 최 아무개 행정관이 만든 ‘대포폰’ 등이 그것이다. 지원관실의 장 아무개 주무관이 불법 사찰 관련 증거를 인멸하는 데 최행정관의 대포폰을 사용한 사실이 드러났기 때문이다.

이명박 정부가 사면초가에 놓였다. ‘꼬리 자르기’라는 비난에도 큰 탈 없이 사건을 마무리하려던 시도는 수포로 돌아갈 가능성이 커졌다. 야당은 물론 여당 내에서도 검찰의 부실 수사를 지적하며 재수사를 촉구하고 나섰다. 대통령의 결단을 요구하는 목소리까지 나온다. 여기에 법무부와 검찰, 법원의 말이 제각각이다. 그야말로 통제 불능 상태이다.

이번 사태가 벌어진 결정적 이유는 바로 민간인 사찰을 지시한 ‘몸통’이 누구인지가 아직도 베일에 가려져 있기 때문이다. 청와대는 침묵을 지키고 있지만, 재점화된 불길은 이미 청와대를 향하고 있다. 그러면서 현 정권의 ‘이너서클’로 불리는 ‘영포(영일·포항) 라인’이 다시 도마에 올랐다. 이영호 전 고용노사비서관은 물론 박영준 지식경제부 제2차관의 이름이 다시 거론된다. 이번 ‘대포폰’ 사건을 여권이 제대로 처리하지 않으면 과거 김대중 정부 때의 ‘옷로비’ 사건처럼 끊임없는 공세에 시달릴 가능성이 크다. 청와대가 사건을 은폐하려 했다는 것이 사실로 드러날 경우 권력이 흔들릴 수도 있는 폭발성을 갖고 있다.

‘대포폰’으로 다시 불거진 공직윤리지원관실의 민간인 사찰과 관련된 5대 미스터리를 추적했다.

▒ ‘한 동네 출신’들이 엮인 이유는?

▲ ‘민간인 불법 사찰’에 대한 검찰 부실 수사의 몸통으로 떠오르고 있는 노환균 서울중앙지검장(왼쪽). 노지검장은 처음 대포폰 의혹이 제기되었을 때 권재진 청와대 민정수석(오른쪽)과 직접 소통했다는 의심까지 받고 있다. ⓒ시사저널 유장훈

이석현 민주당 의원은 대포폰의 존재 사실을 폭로한 후 사흘 뒤인 11월4일 의원총회에서 민간인 사찰과 관련한 검찰의 수사에 여러 가지 의혹이 있다고 밝혔다. 핵심 인물들의 ‘특별한 관계’를 조사했는지부터 따졌다.

이영호 전 청와대 고용노사비서관과 그의 직속 부하인 최행정관은 이대통령의 고향인 포항 출신이다. 여기에 공직윤리지원관실의 이인규 전 지원관과 구속된 김충곤 전 점검1팀장 그리고 하드디스크를 영구 삭제하기 위해 대포폰으로 업체와 통화했던 장주무관 등도 모두 포항 출신이다.

이의원은 “특히 이 전 비서관과 최행정관, 그리고 장주무관은 동네까지 한 동네라고 하던데, 누가 그렇게 못자리 하듯이 인사 발령을 낸 것인가. 불법 사찰을 용이하게 하기 위한 것으로 보이는데, 이 부분도 검찰이 조사했는지 의문이다”라고 말했다.

‘영포 라인’은 그동안 여러 차례 구설에 올랐다. 민간인 불법 사찰의 경우에서도 의혹이 제기되면서부터 주목을 받았다. 이상득 의원의 보좌관 출신인 박영준 차관이 그 중심에 있는 것으로 알려지면서, 자연스럽게 이상득 의원에게까지 불똥이 튀었다. 박지원 민주당 원내대표는 “민간인 사찰의 몸통은 형님 아닌가”라며 이의원을 직접 겨냥했다. <시사저널>이 지난 7월 초 접촉한 ‘여권 핵심 인사’는 “명확한 물증은 없지만, 박영준 (당시 국무총리실) 국무차장이 (공직윤리지원관실의) 몸통일 것으로 추정한다”라고 말한 바 있다. 이에 대해 박차관은 당시 “진실이 다 밝혀질 것이다”라면서 “누군가가 음해를 하고 있다”라고 ‘몸통설’을 강하게 부인했었다.

▲ 지난 7월9일 서울중앙지검 특별수사팀 관계자들이 서울 종로구 창성동 정부종합청사 별관 공직윤리지원관실을 전격 압수수색해, 물품을 들고 차량에 오르고 있다. ⓒ시사저널 임준선

 ▒ 검찰 부실 수사의 핵심은 노환균 서울중앙지검장인가?

노환균 서울중앙지검장이 ‘민간인 불법 사찰’에 대한 검찰 부실 수사의 몸통으로 떠오르고 있다. 세간의 큰 관심을 불러일으킨 사안을 수사하면서 검찰이 찾아낸 증거조차 무시해버렸다는 지적과 함께 ‘무시 전략’의 핵심 당사자로 노지검장이 거론된다. 이석현 의원은 “대포폰을 만든 청와대 행정관에 대한 수사를 노지검장이 반대했다”라고 주장했다. 노지검장이 청와대 관련 부분에 대해 직접 꼬리 자르기에 나섰다는 것이다. 신경식 서울중앙지검 1차장은 “전혀 그런 사실이 없다”라고 부인했지만, 의혹은 쉽게 가라앉지 않고 있다.

단계를 건너뛰며 체계를 무시하는 보고 스타일도 논란이 되고 있다. ‘그랜저 검사’ 사건을 한승대 서울고검장에게 보고하지 않아 물의를 일으킨 바 있고, 처음 대포폰 의혹이 제기되었을 당시에는 권재진 청와대 민정수석과 직접 소통했다는 의혹이 야당으로부터 제기되기도 했다. 대포폰 관련 부분에 대해 서울중앙지검의 주장과 이귀남 법무부장관, 서울중앙지법 재판부의 주장들이 서로 제각각인 부분도 노지검장의 보고 스타일 때문이라는 지적이 검찰 주변에서 나오고 있다.

일부에서는 노지검장의 행보를 그가 가지고 있는 정치적 성향으로 설명한다. 그는 경북 상주 출신에 대구 대건고, 고려대 법대를 나온 전형적인 TK-고려대 라인으로 유력한 차기 검찰총장 후보로 꼽힌다. 야당에서 표적 수사라고 비판했던 한명숙 전 국무총리 뇌물 수수 의혹 수사를 지휘하기도 했다. 서울지검의 한 출입기자는 “기자들과의 관계가 좋고 정치적 성향이 뚜렷하다. 청와대가 부담을 가질 만한 사건은 알아서 처리한다는 평가를 받는다”라고 말했다.

▒ 검찰의 ‘윗선 조사’를 청와대가 거절?

검찰의 수사 요구를 청와대가 거절했는지도 핵심 의문이다. 대포폰을 만들어 지원관실에 준 최행정관의 컴퓨터 로그인 기록을 처음에는 검찰이 조사하려고 청와대에 요청했지만, 거절당했다는 주장이 제기되었기 때문이다.

이후 청와대로부터 “자체 확인한 결과, 이렇다 할 내용이 없다”라는 통보만 받고 검찰이 컴퓨터 조사를 포기했다는 것이다.

청와대 개입 의혹에 대한 정황은 대포폰 이외에도 여럿 나왔다. 검찰이 복원한 하드디스크에서 ‘081001 민정수석 보고용’이라는 이름의 폴더도 존재한 것으로 확인되었다. 하지만 검찰은 조사를 청와대로까지 본격적으로 확대하지 않았다. 이 과정에서 외압이 있었는지가 여전히 의혹으로 남는다.

▒ 타인 명의의 대포폰을 퀵서비스로 청와대에 전달할 수 있나?

▲ 공직윤리지원관실의 불법 사찰 의혹과 관련해 이른바 ‘윗선’의 한 명으로 알려진 이영호 전 청와대 고용노사비서관이 지난 8월6일 서울 서초동 중앙지검에서 조사를 받고 나오고 있다. ⓒ뉴시스

청와대는 대포폰과 관련해 특별한 문제가 없다는 입장이다. 최행정관이 만든 것이 ‘대포폰’이 아니라 ‘차명폰’이라며 불법성 논란과도 거리를 두는 모습이었다. 노사 문제를 담당하고 있는 최행정관이 청와대에서 지급한 ‘행정폰’을 사용할 경우 신분이 바로 노출되기 때문에 원활한 소통과 업무를 위해 ‘차명폰’을 사용한 것이라는 해명이다.

하지만 이러한 논리는 설득력이 떨어진다는 지적이다. 노무현 정부에서 청와대 춘추관장을 지낸 김현 민주당 부대변인은 “신분을 노출하지 않기 위해서라면 ‘발신자 제한 표시’를 하거나, 개인 명의의 휴대전화를 이용하면 된다. 결국 불법 행위를 감추고 추적되지 않게 하기 위해 또 다른 휴대전화가 필요했던 것이 아니겠느냐”라고 말했다.

최행정관이 타인 명의의 대포폰을 청와대에서 퀵서비스로 전달받았다는 주장도 주목된다. 청와대의 접수 기록과 방문자 기록 등을 확인하면 누가 몇 대의 대포폰을 보냈는지 그 사실 여부가 밝혀질 수 있다. 그럼에도 청와대와 검찰은 이 부분에 대해 확인조차 하지 않고 있다.

▒ 검찰이 최행정관을 호텔로 부른 까닭은?

서울중앙지검 특수수사팀은 대포폰 의혹의 핵심 인물인 최행정관을 서울 시내 한 호텔에서 조사했다. 검찰이 최행정관에 대한 수사 사실 자체를 외부에 알리고 싶지 않았다는 의미이다. 결국 최근 의혹이 제기되기 전까지 대포폰은 물론 최행정관에 대한 수사 사실도 알려지지 않았다. 최행정관은 청와대 비선 라인의 핵심으로 지목되었던 이영호 전 비서관의 직계 부하이다. 청와대가 조직적으로 개입했을 가능성이 크다는 것이다.

하지만 검찰은 “범죄 혐의와 관련이 없어 더 이상 조사하지 않았다”라고 밝혔다. 이 전 비서관에게는 대포폰 관련 조사도 하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수사 중간 발표가 있기 며칠 전에서야 참고인으로 소환해 6시간 만에 조사를 끝냈다. 정태근 한나라당 의원은 지난 10월 초 외국으로 나간 것으로 알려진 이 전 비서관의 ‘해외 도피 의혹’까지 거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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