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막장·아이돌·독설이 신한류 코드인가

양적으로 사상 최고인 ‘대중문화 융성기’에 드러나는 문제점

하재근│대중문화평론가 ㅣ 승인 2010.11.22(Mon) 13:44: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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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0년대에 한국 대중문화 르네상스가 일어났다. 문화적 폭발이었다. 이때 한국 대중음악은 비로소 서구 음악의 음질을 따라잡았다. 그전까지는 나이트클럽에서 전주만 듣고도 가요와 팝송을 구분할 수 있었다. 그만큼 가요의 사운드는 뚜렷하게 허전했다. 서태지와 아이들이 활동한 후부터는 가요나 팝송이나 사운드에 큰 차이가 없게 되었다.

곧이어 H.O.T가 한국 대중음악계에 산업의 시대를 열었다. 자본의 치밀한 기획에 의해 만들어진 상품이 가요계를 선도하게 된 것이다. 대중은 열렬히 화답했다. 뉴키즈 온더블럭 등 외국 팝가수를 향한 열광은 이때를 기점으로 소멸했다. H.O.T는 한류의 시대도 열었다. 해외 대중음악을 수입하기만 하던 한국은 마침내 음악 수출국이 되었다. 2000년대에 들어서는 중국과 동남아시아 전체가 한국 대중음악 산업의 시장이 되었다. 미국처럼 한국도 국제 시장을 대상으로 문화 상품을 기획하는 나라가 된 것이다.

1990년대 후반에 영화 <접속>과 <쉬리>가 등장한다. 이 영화는 서태지와 아이들, H.O.T 등이 팝송에 대해 했던 역할을 영화계에서 수행했다. 즉 할리우드 등 해외 작품만 동경하던 한국 관객이 마침내 자국 영화를 우선적으로 보게 되었으며, 심지어 수출까지 하는 영화 한류의 시대를 연 것이다.

2000년대에 들어서 <겨울연가>와 <대장금>이 등장한다. 이 작품들은 해외에서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다. 이를 계기로 드디어 드라마도 국제 시장을 대상으로 기획하는 시대에 들어선다. 동아시아 시장을 양분했던 일본과 홍콩을 제치고 한국이 동아시아 최고의 대중문화 생산국이 되었다.

최근에 이런 도약을 상징하는 사건이 벌어진다. 일본 아이돌을 모방했던 한국이 마침내 일본 시장에서 인정받은 것이다. 소녀시대를 필두로 한 한국 대중음악은 ‘코리언 인베이젼’을 감행했다. 이것은 한국 대중문화 산업의 도약을 대내외적으로 확인한 사건이었다. 한국은 동아시아의 패자가 되었다.

이제 한국에서 연예인을 꿈꾸는 사람은 의례히 국제적 스타로의 성장을 바라볼 수 있고, 외국인도 아시아 스타가 되기 위해 한국의 기획사를 찾아오는 시대가 되었다. 역사상 이런 적이 없었다. 한국 문화의 위상은 사상 최고조에 달했다. 하지만, 이대로 다 좋은 것일까?

   
▲ MBC <라디오 스타>
ⓒMBC 제공

질적으로는 심각한 문화적 빈곤 현상 맞아

우리 대중문화가 질적으로 깊어진다거나, 양적으로 풍요로워진다는 징후는 전혀 없다. 그런 쪽으로는 오히려 퇴보하고 있다. 대신 겉보기에 화려하고 자극성이 강해질 뿐이다.

먼저 가요계를 보자. 아이돌들의 노래가 팝송에 필적할 만큼 기술적인 수준이 높아진 것은 사실이지만, 그것으로 끝이다. 아이돌 노래의 성숙을 얻은 대신 우리는 대중음악 전체를 잃었다. 요즘 가요계 화제는 미성년자 노출, 선정성, 짐승 복근 같은 것이다. 그렇게 자극을 주지 않으면 대중이 반응하지 않는다. 음악을 잃은 대중은 이제 음악을 들을 의지조차 잃었다. 중독성 있는 노래로 자극을 주면 그것으로 만족한다. 스무 살 전후의 예쁘고 잘생긴 아이가 섹스어필을 하며 자극적인 노래를 들려주는 것이 가요계의 모든 것이 되었다.

드라마는 막장 일색이다. <인어아가씨> <하늘이시여> 등이 방영되었을 때는 충격과 비난이 있었다. <아내의 유혹> 이후로는 충격도 비난도 줄어들고 있다. 요즘에 와서는 더 이상 막장 드라마라는 구분이 따로 필요 없을 정도로 막장 코드가 일반화되고 있다. 착한 드라마로 찬사를 받은 <제빵왕 김탁구>에 강간 사주, 아동 납치, 존속 살해 등이 등장한 것이 대표적 사례라 하겠다. 장모와 사위의 사랑이 등장한 <황금물고기>가 크게 화제도 되지 않았을 정도이다.

2000년대 이후 예능은 대중문화계의 ‘최종 장르’가 되었다. 그 흐름을 주도한 것은 리얼 코드였다. 대중은 좀 더 생생한 것, 좀 더 날것의 자극에 열광했다. 이것을 대표하는 것이 리얼 버라이어티와 집단 토크쇼이다. 독설, 막말, 폭로가 난무하는 것은 이제 일상적인 풍경이다. 그렇지 않으면 대중이 반응하지 않는다.

결국 대중문화의 모든 분야에서 자극성이 강화되고 있는 것이다. 심지어는, 아직 창작의 진정성을 간직하고 있는 분야라는 영화에서마저도 올여름에 잔혹성 논란이 일어났을 정도로 자극성 강화의 추세가 무섭다.

자극적인 아이돌, 막장 드라마, 막말 폭로 예능, 잔혹 영상, 이런 식으로 감각성만 강화될 때 문화의 깊이라든가 풍부함이 살아날 수 없다는 것은 명백하다. 음식으로 치면 사탕, 초콜릿이나 인스턴트 식품만을 먹는 것과 비슷하다. 그것으로 균형 잡힌 영양을 기대할 수 있을까? 우리 대중문화는 지금 심각한 영양실조 상황으로 가고 있다.

사상 최고의 대중문화 융성기에 심각한 문화적 빈곤 현상을 맞고 있는 것이다. 이대로라면 우리 대중문화의 미래는 결코 밝지 않다. 신한류에 박수를 할 것이 아니라, 우리의 심각한 문제를 반성해야 할 때이다.  



황폐한 사회가 ‘가난한 문화’ 낳는다

어쩌다 이렇게 되었을까? 문화는 ‘밥’ 다음이다. 물질적 안전, 안정, 풍요가 확보된 후에야 사람들은 깊고 풍부한 문화를 즐기게 된다. 1980년대의 ‘단군 이래 최대 호황’ 이후에 1990년대 대중문화 르네상스가 찾아온 것을 보면, 지금의 황폐한 상황과 1997년 외환위기가 관련이 있다는 것을 짐작할 수 있다.

21세기는 양극화의 시대였다. 사상 최대 수출, 사상 최고 주가, 명품 열풍과 ‘88만원 세대’가 공존하는 시대이다. 화려한 대중문화 산업과 날로 깊어지는 그림자라는 이중 구조는 이런 사회 흐름과 유사하다. 양극화 사회는 사람을 괴롭게 만들고 경쟁으로 내몰았다. 심정적·물질적 여유가 완전히 사라졌다.

이런 상황에서 여러 가지 음반을 사고, 문화적 개성과 깊이를 추구할 수 없다는 것은 명백하다. 그저 한순간에 자극과 위안을 주는 아이돌, 막장 드라마, 리얼 예능 등에만 마음을 기대게 되는 것이다. 특히 젊은 사람들의 문화적 감수성이 황폐해지고 있다. 입시 경쟁과 취업 경쟁 때문이다.

보통은 제작사, 기획사, 창작자, 방송국 등이 질타를 받는다. 그러나 이런 시장 상황에서는 누구도 어쩔 수 없을 것이다. 결국 몇몇 업계 종사자의 마음가짐이 아니라 사회 전체가 변해야 한다는 얘기이다. 사회가 당장 변하지 못할 형편이라면, 국가가 문화의 종 다양성 발전을 위한 특단의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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