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 빠진 ‘추징금 추격전’ 13년
  • 김세희 기자 (luxmea@sisapress.com)
  • 승인 2010.11.22 13: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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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체 2천2백5억원 중 24%만 징수…은닉 재산 찾기 어려워 ‘배째라’ 식 계속되면 해결 힘들 듯

 

▲ 2003년 5월12일, ‘전두환 추징금’ 반환을 촉구하는 시민단체가 전씨의 자택 앞에서 항의 시위를 하고 있다. ⓒ시사저널 임준선

 
전두환 전 대통령의 전체 추징금 액수는 2천2백5억원이다. 하지만 지금까지 추징된 금액은 전체 추징금의 24% 정도이다. 말 그대로 ‘새 발의 피’에 불과하다. 지난 13년 동안 검찰과 전씨는 쫓고 쫓기는 ‘추징금 추격전’을 벌여왔다.

1997년 4월 대법원은 전씨에게 무기징역을 선고하면서 부정 축재로 인한 추징금을 부과했다. 전씨는 자발적 추징 의사를 거부했다. 이때부터 검찰은 그의 비자금을 추적하기 시작했다. 대법원 판결이 있은 지 약 한 달 후부터 추징금 징수에 본격 나섰다. 우선 추징 대상은 전씨 소유의 예금이나 무기명 채권 등이었다. 검찰은 그해 무기명 채권 1백26장과 이자 1백88억여 원을 추징했고, 이어 현금 5백30만원, 무기명 채권 10장 및 이자와 은행 예금 등 1백24억5천여 만원을 추가로 징수했다. 1997년 한 해에만 3백12억원(14%)을 집행하는 성과를 거두었다.

하지만 해가 갈수록 집행 실적은 거북이 걸음을 걸었다. 일단 현행법에 한계가 있었다. ‘추징금’은 형벌이 아니어서 압류 외에는 납부를 강제할 수단이 없다. 더구나 전씨의 경우 재산 대부분이 은닉되어 있는 데다가 그나마 드러나는 재산은 가족이나 친·인척 명의로 되어 있었기 때문에 법적으로 추징할 근거가 미약했다.

시효 앞두고 3백만원 납부한 속셈은?

그 후 검찰은 2000년 12월에 9천9백만원에 낙찰된 전씨의 1987년식 벤츠 승용차를 강제 집행했다. 이후 장남 전재국씨 명의로 된 용평 콘도 회원권 또한 경매에 붙여졌다. 검찰은 이를 통해 1억1천만원가량을 징수했다.

2004년 7월 검찰은 전씨의 차남 재용씨가 관리하고 있던 1백67억원 중 73억5천만원을 전두환씨의 자금이라고 특정했다. 전씨의 차남 재용씨는 2000년 12월 말 외조부인 이규동씨로부터 액면가 1백67억여 원(시가 1백41억원) 상당의 국민주택채권을 받고도 이를 은닉해 74억여 원의 증여세를 포탈한 혐의 등으로 구속되었다. 재용씨는 돈의 출처에 대해 결혼축의금 18억원을 외조부인 이규동씨가 관리하며 1백67억원으로 증식해 국민주택채권으로 되돌려준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러나 검찰은 재용씨가 채권을 관리하던 차명 계좌 등을 추적해 73억5천만원 상당의 채권 최초 매입 자금이 전씨의 비자금 관리 계좌에서 나온 것을 밝혀냈다.  

2004년 5월에는 대검찰청 중앙수사부가 전씨의 자금으로 의심되는 3백73억원을 발견하고 수사에 들어가자 검찰에 출두한 이순자씨는 ‘알토란 같은 내 돈’이라고 주장하며 결국 2백억원을 토해냈다.

2006년 6월 서울 서초동 도로 일부가 전씨의 숨겨진 재산으로 드러나자 강제 경매를 통해 1억1천9백만원에 낙찰되었지만, 서대문세무서가 조세 채권을 압류하는 바람에 검찰은 추징금을 한 푼도 확보하지 못했다. 검찰은 추징 시효를 연장시키는 것에 만족해야 했다. 그 후 2008년 검찰이 전씨의 은행 채권 추심을 통해 징수한 4만7천원을 징수했다. 이후 2년5개월 동안은 한 푼도 징수를 하지 못했다. 만약 내년 6월까지 10원이라도 찾아내지 못하면 더 이상 추징이 불가능하게 된다. 그런데 전씨는 추징 시효 7개월을 앞두고 3백만원을 납부했다. 추징 시효를 넘기면 영원히 ‘추징금 압박’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왜 낸 것일까.

우선 추징 시효가 다가오자 이에 부담을 느낀 검찰이 전씨측에 먼저 연락해서 추징금을 내게 했다는 얘기가 있다. 이것이 사실이라면 검찰과 전씨측이 ‘짜고 치는 고스톱’을 친 것이나 다름없다. 또 한 가지는 전씨가 추징 시효에 부담을 느꼈을 경우이다. 전씨측은 최근 3년여 간 추징을 당하지 않은 터라 추징에 대한 부담이 적은 상태이다. 이런 상황에서 추징 시효가 지날 경우 국민적인 비난이 일어날 터이고 이를 모면하기 위해 일부러 추징 시효를 연장했을 가능성도 제기되고 있다.

현재 전씨가 내지 않은 추징금은 1천6백72억원이다. 전체 추징금의 76%에 달한다. 현실적으로 더 이상의 추징도 어려운 상황이다. 전두환씨 명의의 재산은 이미 드러날 대로 드러난 데다 측근이나 친·인척들에게 은닉한 비자금은 회수 불능 상태이기 때문이다. 팔순이라는 전씨의 나이 등을 감안하면 그가 납부해야 할 추징금은 영원히 ‘미스터리 자금’으로 남을 공산이 크다. 현행법상 추징금은 3년 동안 집행 실적이 없을 경우 자동 소멸되어 징수할 수 없다. 또한 전씨가 사망했을 경우 아들 등이 상속을 포기하면 영원히 추징할 수 없다.

이와 관련해 검찰은 “검찰 내부에서 추징금제 개선을 계속해서 논의 중이다. 미납 추징금을 받아내기 위해 끝까지 노력할 것이다”라며 징수 의지를 보이고 있다. 야당과 시민단체들도 ‘전두환 재산 환수 특별대책반’을 결성해 전씨의 추징금 징수에 발 벗고 나섰지만 별다른 성과를 내지는 못했다.   



ⓒ시사저널 이종현
노태우 전 대통령은 1995년 10월19일을 평생 잊지 못한다. 당시 민주당 소속인 박계동 의원이 국회에서 노씨의 ‘거액 비자금 은닉’을 폭로한 날이기 때문이다. 노씨는 재임 중에 대기업 총수 등에게서 4천100억원의 비자금을 조성한 것으로 드러나 포괄적 뇌물죄가 적용되어 법원으로부터 추징금 2천6백29억여 원을 선고받았다. 노씨의 추징금은 2008년 10월 12억원을 환수한 것이 마지막이다. 전체 추징 액수로 보면 지금까지 2천3백44억9백여 원(89.2%)을 추징했고, 3백억여 원은 미납된 상태이다. 노씨의 추징 시효는 내년 10월까지이다.

노씨는 지난해 조카인 호준씨를 상대로 1백20억원가량의 소송을 냈으나 패소했다. 노씨측은 호준씨가 설립한 냉동회사 오로라씨에스가 자신의 비자금으로 시작했고, 소송에서 이기면 추징금으로 납부하겠다고 밝혔었다. 하지만 노씨가 소송에서 패해 더 이상의 징수는 어렵게 되었다. 노씨는 돈 문제로 인해 동생 재우씨와도 소송전을 벌이는 등 가족 불화를 겪었다. 한편, 지난 7월 노씨의 부인 김옥숙씨가 모교인 경북여고에 5천만원을 기탁하겠다고 약정하고, 아들 재현씨가 대구 동구 노씨의 생가 앞에 노씨의 실물 크기 동상을 세운 것이 알려지면서 여론의 뭇매를 맞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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